창고라고 하면 물품 저장소를 뜻합니다. 드넓은 세상 밖 더 울려퍼지길 바라는 음악들을 ‘창고’에서 꺼내려 합니다. 사연과 의미 깊은 노래들을 세세하게 들여다보며 감성에 젖어보는 건 어떨까요.
마지막 인사가 너무나 아름다운 선율과 가사로 완성됐다. 프로듀서 토일의 ‘시한부’을 두고 하는 말이다.
‘시한부’는 토일이 지난 2021년 발표한 첫 정규 앨범 ‘커튼 콜’의 더블 타이틀 곡 중 하나다. 래퍼 릴러말즈와 로꼬가 부른 노래로 랩과 보컬이 섞인 싱잉랩 계열의 곡이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노래는 마지막을 앞두고 있는 어느 관계 속 느끼는 감정을 담고 있다. 릴러말즈의 담백한 목소리로 채워지는 도입부 가사와 더불어 곧바로 이어지는 울부짖는듯한 고음 보컬까지, 곡은 극적인 요소를 초반부터 보여준다.
이 곡이 더욱 매력적으로 끌리는 이유는 릴러말즈 보컬에 얹어진 현악기 중심의 오케스트라 사운드가 음악의 감동을 배가시키기 때문이다. “기억해 주겠니. 초를 키던 밤을. 떨어지던 별. 그게 미웠던 날을. 나는 울었고. 안아줬던 품은. 아직까지도. 나를 안아줘”로 완성된 릴러말즈의 벌스는 가히 여느 발라드곡에 뒤지지 않는 감동 포인트다. 순식간에 벅찬 감정을 느끼게 하는 킬링 훅이다.
감정을 확 끌어올렸다가 다시금 차분히 래핑을 던지는 릴러말즈의 벌스 부분도 리스너들을 마음을 울린다. “적어내려가는 위시 리스트. 뭐가 좋을지 고민하는 중야 baby 마지막이잖아 우리”, “이제 곧 떠나야해 난 멀리 이제 곧 떠나야해 난 멀리”. 여느 강하고 자극적인 힙합 음악의 가사와는 거리가 멀다. 피아노 기반의 멜로디 전개 역시 곡을 더욱 서정적으로 느끼게 한다.
토일이 ‘시한부’를 앨범 타이틀곡이자 1번 트랙으로 배치시킨 것도 이 곡에 대한 자신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토일은 줄곧 릴러말즈와 작업을 꾸준히 해왔던 프로듀서다. 두 사람의 음악 합이 ‘시한부’로 하여금 비로소 최고점에 이른 게 아니냐는 호평이 줄을 잇는다. 릴러말즈는 서울예고, 한예종, 맨해튼 음악대학까지 이르는 기악과 전공의 인재다. 그는 ‘시한부’를 통해 전공인 클래식과 힙합을 모두 아우르는 높은 수준의 음악적 역량을 표출, 팬들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시한부’는 누군가와의 이별, 어떠한 상황에서 멀어지는 인물의 모습을 고스란히 표현해냈다. 삶에 있어서 반드시, 혹은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하는 상황들은 빈번하게 찾아온다. 그 순간에 대한 기억이 좋을수도, 나쁠수도 있다. ‘시한부’에는 그런 복합적인 감정이 모두 담겼다. 4분 가까이 되는 러닝 타임 중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릴러말즈, 로꼬의 목소리는 쉴새 없이 리스너의 감성을 건드린다. ‘시한부’와 함께 무언가와 헤어지는 감정을 조금 더 격하게 쏟아내 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