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한파가 몰아치고 있지만 극장의 온도만큼은 한여름처럼 뜨겁다. 영화 ‘서울의 봄’이 젊은 세대부터 중장년층까지 폭넓은 연령층의 관객을 사로잡으며 누적 관객 수 1000만 돌파를 코앞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의 봄’은 지난달 22일 개봉한 이래 ‘노량: 죽음의 바다’ 개봉 전까지 박스오피스 1위를 독식하며 파죽지세 행보를 보였다. 개봉 27일째인 지난 18일 누적 관객 수 900만 명을 돌파했으며, 강력한 경쟁작인 ‘노량: 죽음의 바다’가 개봉했음에도 평일 10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고 있다. 이 기세라면 크리스마스 연휴 안에는 누적 관객 수 1000만 달성이 확실시된다.
‘서울의 봄’은 ‘비트’, ‘아수라’ 등의 김성수 감독이 연출했다. 12·12 군사반란을 다룬 첫 영화로 개봉 전부터 관심을 받았다. 김성수 감독은 1979년 12월 12일 오후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9시간 동안 벌어졌던 신군부 세력의 군사반란을 영화적 상상력을 가미해 만들어냈다.
이미 결말이 정해진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하는 이 영화가 크게 사랑을 받은 데는 김성수 감독의 연출력과 훌륭한 각본이 있었다. 이태신(정우성)이 결국은 반란 진압에 실패하고 전두광(황정민)이 권력을 잡게 된다는 걸 알면서도 끝까지 손에 땀을 쥐고 진압군을 응원하게 되는 긴장감. 마치 스릴러 장르의 영화를 보는 것 같다는 평가까지 있을 정도다.
이동진 영화평론가는 자신이 진행하는 Btv ‘파이아키아’에서 ‘서울의 봄’을 올해 최고의 한국 영화 7위로 꼽으며 “12.12 군사반란이라는 복잡한 사건을 힘이 넘치는 연출과 배우들의 숙련된 연기, 훌륭한 각본으로 풀어냈다. 힘의 작용 자체에 대한 흥미로운 탐구를 담고 있다”고 호평했다.
배우들의 연기 또한 두말할 것도 없이 훌륭하다. 매번 특수분장에 3시간 이상을 소요하며 촬영에 임했던 황정민과 그의 대척점에서 완전히 다른 에너지를 뿜어내는 이태신 역의 정우성, 또한 김성수 감독이 “마치 연극 무대를 보는 것 같았다”고 평했던 배우들의 움직임. 김성수 감독에 따르면 ‘서울의 봄’ 배우들은 화면 뒷부분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도 실제 그 인물이 된 것처럼 몰입한 움직임을 보여줬다. 뒤에 잡히는 한 장면을 찍기 위해 서울에서 촬영장이 있는 지방까지 먼 길을 왔다갔다 했던 배우들의 성의는 일찌감치 인터뷰 등을 통해 알려졌다.
고무적인 건 ‘서울의 봄’이 한국영화의 비수기라 꼽혔던 11월 개봉작이라는 것. ‘오펜하이머’와 ‘겨울왕국’ 1, 2편 등 할리우드 작품의 경우 11월에 개봉하고도 누적 관객 수 1000만을 돌파한 사례가 있었으나 한국 영화로서는 ‘서울의 봄’이 처음이다. 특히 올해 기대를 모았던 한국영화들이 연이어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 하거나 흥행에 참패하고 있는 분위기 속에서 일군 1000만이라 더욱 의미가 깊다.
황영미 영화평론가는 “결국은 대중에게 재미를 준 영화가 흥행에 성공했다. ‘서울의 봄’은 관객에게 확실한 재미를 줬다”고 평했다. ‘서울의 봄’을 본 관객들은 “두 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이 한 시간도 안 되게 느껴지는 몰입감”, “한 번 더 보고싶다”, “내 인생에 극장에서 두 번 본 유일한 영화”, “탄식할 틈도 주지 않는다”, “상영시간 내내 지루할 틈이 없더라” 등의 찬사를 쏟아냈다. 최근 극장가 흥행공식은 ‘N차’를 하는 관람객을 잡아야 한다는 것인데, “한 번 더 보고싶다”, “두 번 본 유일한 영화” 등의 평가에서 ‘서울의 봄’ 역시 많은 관객들을 재차 극장으로 불러들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서울의 봄’을 통해 12.12 군사반란을 잘 알지 못 했던 MZ 세대 관객들까지 역사적 사실을 알게 되고, 영화를 본 이후 실제 역사 내용을 찾아보는 선순환 구조도 만들어지고 있다. 극장을 나선 뒤 관객들이 신랄하게 역사에 대해 토론하는 장면은 ‘서울의 봄’만의 독특한 관람 방식이다.
21일 오전 7시 기준 좌석판매율 1위를 차지한 ‘서울의 봄’은 개봉 5주차에도 꺾이지 않는 기세를 보여주고 있다. 비록 신군부의 12.12 군사반란 성공 이후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는 퇴보했을지 몰라도, 44년이 지난 뒤 영화관을 찾은 관객들은 무엇이 진짜 옳은 길이었는지를 관람과 응원으로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