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인(22)이 파리 생제르맹(PSG·프랑스)의 트로페 데 샹피옹(프랑스 슈퍼컵) 우승을 이끄는 맹활약을 펼치자 현지 시선도 크게 달라진 분위기다. 이강인이 대회가 끝난 뒤 곧바로 아랍에미리트(UAE) 출국길에 올라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대표팀에 차출되자, “앞으로 PSG엔 큰 타격이 될 것”이라며 현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을 정도다.
프랑스 풋메르카토는 4일(한국시간) “PSG의 이번 시즌 첫 우승 트로피를 장식한 툴루즈전 승리는 이강인과 아치라프 하키미(모로코)가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임을 재확인한 경기였다”면서 “이강인은 그러나 1월 12일부터 2월 10일까지 열리는 AFC 아시안컵에 참가한다.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이 이번 대회에서 강력한 우승 후보라는 점을 감안하면 꽤 오랫동안 카타르(개최지)에 머무르게 될 텐데, 이는 PSG엔 큰 타격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강인은 아시안컵, 하키미는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 각각 참가한다.
이날 이강인은 프랑스 파리의 파르크 데 프랭스에서 열린 2023 트로페 데 샹피옹 툴루즈전에 선발 풀타임 출전, 결승골 등 맹활약을 펼치며 팀의 2-0 완승과 우승을 이끌었다. 트로페 데 샹피옹은 전 시즌 프랑스 리그1과 쿠프 드 프랑스(프랑스컵) 우승팀끼리 격돌하는 대회다. PSG는 이날 승리로 통산 12번째이자 3년 연속 정상에 올랐다. 그 중심에 이강인이 섰다.
이강인은 전반 3분 만에 골을 터뜨렸다. 오른쪽 측면에서 올라온 우스만 뎀벨레의 크로스를 왼발 논스톱 슈팅으로 연결했다. 강력한 슈팅 대신 절묘하게 방향을 바꾸는 슈팅으로 귀중한 선제골을 터뜨렸다. 전반 35분엔 문전에서 가슴 트래핑에 이은 바이시클킥으로 추가골까지 노렸는데, 골키퍼 정면으로 향하면서 아쉬움을 삼켰다.
대신 전반 종료 직전 역습 상황에서 킬리안 음바페의 추가골의 기점 역할을 해냈다. 중원에서 공을 잡은 그는 왼쪽으로 파고들던 브래들리 바르콜라에게 패스를 건넸고, 이 패스는 음바페의 오른발 추가골로 연결됐다. 결국 경기는 PSG의 2-0 승리, 그리고 트로페 데 샹피옹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명실상부한 프랑스 최강의 팀 입지를 재차 다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이강인의 이날 결승골과 활약상은 그래서 더 의미가 컸다.
이강인은 직접 결승골을 넣었을 뿐만 아니라 쐐기골 장면에서도 힘을 보탰다. 또 경기 내내 날카로운 패스와 드리블 등 존재감을 뽐냈다. 덕분에 그는 팀이 우승을 차지한 경기의 공식 최우수선수로 선정됐다. 이날 이강인은 패스를 무려 50회 중 48회를 성공시키며 패스 성공률이 96%에 달했다. 드리블 돌파는 2회 모두 성공으로 연결했고, 파이널서드 지역으로 향한 패스도 5회나 됐다. 인터셉트나 볼 경합 등 수비 측면에서도 힘을 보탰다. 이날 가장 빛난 선수였다는 점이 공식 최우수선수 선정으로 재확인됐다.
자연스레 현지 평점도 대부분 최상위권이었다. 소파스코어는 이강인에게 팀 내 4번째로 높은 평점인 8점을 줬다. 최고 평점은 하키미(8.8점), 그리고 수문장 잔루이지 돈나룸마(8.5점)였다. 폿몹 역시 평점 8.3점이었다. 이는 팀 내에서 4번째로 높은 평점이자 미드필더 중에선 가장 높았다. 유력지인 7점이라는 무난한 평점을 줬다. 음바페, 뎀벨레와 같은 평점이다. 하키미와 돈나룸마가 최고점이었다. 그나마 현지 매체 르파리지앵은 이강인에게 6.5점을 줬다. 교체된 바르콜라가 7점을 받았다는 점에서 다소 의아한 평점이었다. 다만 이 매체는 앞서 이강인을 콕 집어 평점 3점을 주는 등 이강인에게만 유독 박한 평점을 내렸던 전력들이 있다. 큰 의미를 둘 매체 평점은 아니었다.
대신 풋메르카토가 이강인의 이날 활약상을 조명했다. 매체는 “이날 이강인은 경기 시작과 동시에 멋진 팀 플레이를 선보이며 3분 만에 선제골을 넣었다. 자신감을 찾은 그는 전반 내내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경기의 중심에 서서 바르콜라와 함께 빠르고 깔끔하게 측면에서 공격을 풀어갔다”며 “전반 35분엔 오버헤드킥으로 추가골까지 노렸지만 골키퍼 선방에 막혔다. 그래도 그는 경기 공식 최우수 선수로 선정됐다. 이날 이강인의 패스 성공률은 96%에 달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팀의 우승을 이끄는 맹활약을 펼친 이강인은 곧바로 짐을 싸 UAE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현재 UAE 아부다비 캠프에서 아시안컵 최종 담금질을 이어가고 있는 대표팀에 합류하기 위해서다. 위르겐 클린스만(독일)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이미 UAE 아부다비에서 최종 훈련을 이어가고 있다. 이강인만 프랑스 슈퍼컵 일정 때만에 제일 마지막에 합류할 예정이다.
한국의 아시안컵 조별리그는 오는 15일 바레인전을 시작으로 20일 요르단, 25일(이상 오후 8시 30분·한국시간) 말레이시아전 순서로 진행된다. 객관적인 전력상 클린스만호 조별리그 통과 가능성은 매우 크고, 대회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 중 하나로 꼽히고 있는 만큼 16강 토너먼트 이후에도 오랫동안 카타르에 머무를 가능성이 크다. 대망의 아시안컵 결승전은 내달 10일 예정돼 있다.
PSG 구단 입장에선 최대 2월 10일까지는 이강인 없이 경기를 치러야 하는 셈이다. 이 과정에서 쿠프 드 프랑스 결과에 따라 프랑스 리그1 4경기를 포함해 5~6경기는 이강인의 결장이 불가피하다. 경우에 따라선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레알 소시에다드전까지 여파가 이어질 수도 있다. 이날 트로페 데 샹피옹 활약상을 돌아보면 PSG 구단 입장에선 한숨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현지에서 먼저 ‘타격’이라는 표현을 쓸 정도다.
풋메르카토는 “이강인은 루이스 엔리케 감독의 로테이션과 시스템에서 더 큰 역할을 맡기 시작했다. 그런 이강인이 몇 주 동안 결장하는 건 PSG에 큰 타격이 될 수밖에 없다”며 “PSG는 아시안컵과 아프리카 네이션스 등 대표팀 차출 기간 동안 이강인과 하키미가 매우 그리울 것”이라고 전했다.
이번 트로페 데 샹피옹 우승으로 이강인은 발렌시아(스페인) 소속이던 지난 2018~2019시즌 코파 델 레이(국왕컵) 우승에 이어 5년 만에 프로 두 번째 우승 타이틀을 커리어에 새겼다. 다만 이강인은 발렌시아 시절 코파 델 레이에는 토너먼트 6경기를 치른 뒤 결승전은 직접 출전하지 못했다. 2019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차출 여파 탓이다. 우승이 걸린 무대에 나서 결승골을 터뜨리는 등 직접 PSG를 정상으로 이끈 이번 우승이 더욱 의미가 큰 이유다.
이강인은 경기 후 공식 최우수선수로 선정된 뒤 현지 인터뷰를 통해 “만족스러운 결과다. 우리의 목표는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것이었다. 이 팀에서 기분이 좋고,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 매우 행복하다”며 “세계적인 선수들과 함께 뛰는 건 늘 도움이 된다. 나 역시 그들에게 많이 배우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겸손한 반응을 보였다. 그는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우승 세리머니에서도 당당히 맨 앞줄에 섰다. 트로피를 들어 올린 주장 마르키뉴스 바로 옆에 자리해 우승의 기쁨을 만끽했다. 이강인의 첫 우승에 프랑스 프로축구 리그1 사무국도 축하를 전했다. 리그1은 공식 소셜 미디어를 통해 "이강인에겐 프랑스에서 품은 첫 우승 타이틀"이라고 소개했다.
한편 우승의 기쁨을 채 만끽하기도 전 곧바로 출국길에 오른 이강인은 현지시간으로 5일 오전 7시(한국시간 정오) UAE 두바이에 도착한 뒤, 곧바로 아부다비로 이동할 예정이다. 이날 오전 10시에 예정된 대표팀 훈련에 이강인이 참여하면 클린스만호는 '완전체'로 훈련에 나서게 된다. 국내에서 실내 소집 훈련을 하던 본진은 물론 손흥민(토트넘) 황희찬(울버햄프턴) 등 다른 해외파들도 영국에서 곧바로 UAE로 향해 대표팀에 합류한 상태다. 이강인을 포함한 클린스만호는 오는 6일 이라크와 아시안컵 전 마지막 평가전을 치른 뒤 10일 카타르 도하에 입성해 아시안컵 대비 마지막 담금질에 나설 예정이다. 1960년 마지막 우승 이후 무려 64년 만의 아시안컵 우승에 도전하는 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