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종언 변호사 스마트폰 화면을 켜면 온통 ‘인권’의 언어들이 쏟아진다. 부당함을 고발하는 해시태그, 억울함을 호소하는 폭로 영상, 그리고 실시간으로 타인의 도덕성을 심판하는 수많은 방구석 배심원들. 바야흐로 인권의 대중화 시대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인권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한 인간의 파멸은 더 쉬워졌고, 명예는 단 몇 초 만에 종이조각처럼 구겨진다. 정의를 외치는 군중이 가장 잔인한 가해자가 되는 풍경. 지금 우리는 인권이 도리어 타인을 죽이는 살인무기가 된 기묘한 모순을 목격하고 있다.
이 모순의 중심에는 인권의 권력화가 자리 잡고 있다. 인권의 본래 출발점은 국가라는 거대한 권력으로부터 무력한 개인을 지키기 위한 방패였다. 하지만 오늘날 인권은 극도로 사유화되고 권력화됐다. 내 아픔과 피해를 증명하기 위해서라면 타인의 존재 자체를 부정해도 좋다는 ‘도덕적 면죄부’이자, 나만의 정의를 관철하기 위해 상대를 단죄하는 ‘사적 권력’이 된 것이다. 내 권리만 절대화될 때, 인권은 더 이상 약자의 보호막이 아니라 상대를 사회적으로 매장하는 가장 합법적인 흉기로 변질된다. 이 과정에서 타인의 사생활이나 방어권, 적법절차 같은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가해자 옹호’라는 낙인 아래 손쉽게 무력화되고 만다.
감춰졌던 고통에 이름을 붙이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은 분명한 인류의 진전이다. 진짜 문제는 ‘인권’이라는 화려한 구호가 넘쳐나는 것에 비해, 이를 공정하게 조율할 사법적·제도적 구제책은 여전히 구시대적이라는 점이다. 법과 조약은 화려하지만 정작 피해가 발생했을 때 신속하게 가해를 멈추고 회복을 도울 구체적 절차는 오히려 퇴행해 버렸다. 이 빈틈을 타고 들어온 것이 바로 사이버렉카들의 사적 제재와 온라인 여론 재판이며, 디지털 플랫폼은 이 분노를 먹고 자라는 거대한 산업이 되었다. 알고리즘은 인류애나 유대의 가치 대신 혐오를 배양하고, 타인의 고통은 조회수를 올리기 위한 트래픽의 재료로 전락했다.
해법은 인권을 줄이는 데 있지 않다. 인권을 더 깊게 만드는 데 있다. 이 왜곡을 바로잡으려면 ‘선언하는 인권’에서 ‘작동하는 인권’으로 발전해 나아가야 한다. 국가든 플랫폼이든 신속한 긴급 보호와 더불어 피신고인의 방어권, 충분한 반론 기회를 균형 있게 보장해야 한다. 무죄추정과 적법절차는 가해자를 비호하기 위함이 아니라, 국가나 여론의 폭력으로부터 한 인간의 존엄을 지킬 마지막 방어선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이제 우리는 ‘나만의 인권’에서 ‘관계의 인권’으로 시선을 돌려야 한다. 세계인권선언과 우리 헌법이 가리키는 궁극적인 방향 역시 개인의 고립된 힘이 아닌, 서로의 존엄을 인정하는 공동체적 관계다. 내 목소리를 가장 크게 내는 것이 인권의 완성이 아니다. 미워하는 사람에게조차 반론할 기회와 돌아올 길을 열어두는 태도, 즉 상대의 인간다운 최소한의 자리를 남겨두는 품격이 진짜 인권의 존재가치이다. 인권은 나를 지키는 방패로 시작하지만, 타인을 향한 칼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노종언 변호사 (법무법인 존재)
▶저자 소개=노종언 변호사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사법시험 합격 후 현재 법무법인 존재의 대표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구하라, 박수홍, 오메가엑스, 선우은숙 사건 등 굵직한 연예계 분쟁을 수행한 엔터테인먼트 분쟁 전문가입니다. 다수의 사건을 수행하며 얻은 현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엔터테인먼트 법률 이슈에 대한 심도 있는 통찰을 제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