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 모리뉴 감독이 다시 한번 경질돼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AS 로마(이탈리아)와의 계약 기간이 6개월도 채 남지 않았지만, 구단은 경질이라는 카드를 꺼냈다. 한편 모리뉴 감독은 일정 부분의 위약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외신에선 경질당했던 모리뉴 감독의 통산 위약금에 주목하기도 했다.
로마는 지난 16일(한국시간) 구단 홈페이지를 통해 “모리뉴 감독이 로마를 떠난다”면서 “감독과 그의 코치진은 즉시 팀을 떠난다. 2021년 5월 로마의 60번째 사령탑으로 임명된 그는 이듬해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파컨퍼런스리그(UECL) 우승, 지난해 UEFA 유로파리그 준우승을 이끌었다”라고 전했다.
애초 구단의 발표로는 단순 결별 소식이었기에, 정확한 사유가 전해지지 않았으나 현지 매체를 통해 모리뉴가 경질됐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탈리아 매체 라 가제타 텔로 스포르트는 “댄 프리디킨 회장은 모리뉴를 경질하기로 결정했고, 구단 훈련이 시작되기 전에 통보했다. 이번 결정은 지난 두 번의 패배뿐 만이 아니”라면서 “로마는 리그 주급 3위에 해당하지만, 리그 9위라는 점에 불만을 갖고 있었다”라고 짚었다.
지난 2021~22시즌 로마 지휘봉을 잡은 모리뉴 감독은 올 시즌을 계약 만료를 앞둔 상황이었다. 하지만 구단은 위약금을 주고서라도 그와의 결별을 택한 모양새다.
한편 같은 날 영국 매체 데일리 메일은 모리뉴 감독을 받을 위약금에 주목했다. 매체는 “모리뉴 감독은 통산 6번째로 경질됐다. 이 경우 위약금으로만 도합 8000만 파운드(약 1350억원)를 번 것으로 알려졌다”라고 전했다.
매체에 따르면 모리뉴 감독은 첼시를 이끈 두 기간 동안에만 2600만 파운드(약 440억원)를 받았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토트넘에서도 경질당하며 3400만 파운드(약 575억원)를 받았다. 끝으로 레알 마드리드, 로마에서 경질돼 2000만 파운드(약 338억원)를 추가로 벌어들였다.
토트넘과 맨유 시절 위약금이 높았던 이유는 계약 기간이 2년 가까이 남았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명장으로 손꼽히는 모리뉴 감독은 지난 2015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첼시에서 경질된 뒤 내리막을 걸었다. 그는 이후 맨유, 토트넘 지휘봉을 잡았지만 마의 3년 차를 넘기지 못했다. 토트넘에서는 카라바오컵 결승전을 하루 앞두고 경질되는 아픔을 맛보기도 했다.
모리뉴 감독의 차후 행선지는 트레블을 이룬 기억이 있는 이탈리아였다. 2021~22시즌 로마의 지휘봉을 잡은 그는 부임 첫해 UECL 우승을 이루며 놀라운 출발을 알렸다. UECL이 열린 건 이 시즌이 처음이었는데, 로마가 초대 챔피언이 된 셈이다. 당시 로마는 페예노르트(네덜란드)를 꺾고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로마가 UEFA 주관 대항전에서 트로피를 거머쥔 건 당시가 처음이었다. 단순히 공식 트로피로만 따져봐도 2007~08시즌 슈퍼컵 이후 무려 14년 만의 일이었다. ‘1년 차’ 모리뉴의 위업이다.
이듬해에도 로마는 승승장구했다. 파울로 디발라와 같은 슈퍼스타를 영입하면서 더욱 높은 위치를 노렸다. 하지만 공격진들이 연이어 장기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승부처에서 힘을 잃었다. 리그 레이스에서도 결국 힘을 유지하지 못해 6위로 마무리했다. 위안은 UEL 결승전이었다. 공교롭게도 이번 상대는 UEL의 제왕이라 불린 세비야였다. 세비야는 이 시기 전까지 6번의 UEL 결승에서 모두 웃은 바 있다.
로마는 120분 동안 1-1로 접전을 벌였지만, 결국 승부차기 끝에 지며 고개를 숙였다. 2년 연속 UEFA 대항전 우승을 노렸지만, 세비야라는 벽에 막혔다.
어느덧 모리뉴 3년 차 시즌을 앞둔 로마는 루카쿠·레안드로 파레디스·헤나투 산체스·에반 은디카·후셈 아우아르·사르다르 아즈문 등을 영입하며 전 포지션을 보강했다. 이적료를 많이 사용할 수 없는 재정상, 임대와 자유계약(FA) 이적을 적극 활용했다.
로마는 올 시즌 초반 경쟁력을 보여주는 듯했지만, 인터 밀란·유벤투스·AC 밀란·피오렌티나·라치오 등 리그 내 상위권 팀과의 경쟁에서 매번 밀렸다. 로마는 리그 컵대회에서도 모두 고배를 마셨다. 16일 기준 리그 순위는 9위(승점 29). 아직 UEL 32강이 남았고, 모리뉴 감독과의 계약은 오는 6월까지였으나 구단은 빠른 쇄신을 택한 모양새다.
모리뉴 감독은 로마를 이끌고 공식전 138경기 68승 30무 40패라는 기록을 남겼다. 경기당 승점은 1.70으로, FC 포르투(포르투갈)를 맡은 이래 가장 낮은 승점이기도 하다. 부진했다고 평가받은 토트넘 시절은 1.77로 미세하게 높았다.
모리뉴 감독이 다시 한번 상위 리그 지휘봉을 잡을 수 있을까. 애초 이번 시즌 전 사우디아라비아의 오퍼를 거절했던 모리뉴 감독이다. 향후 행선지에 팬들의 시선이 모인다.
한편 모리뉴 감독의 경질에 대해 파비오 카펠로 감독은 구단을 향해 쓴소리를 남겼다. 이탈리아 매체 풋볼 이탈리아에 따르면 카펠로 감독은 “모리뉴는 마치 팀을 지도해보지 않은 사람처럼 취급 받았다. 미국 출신 구단주들은 감독들에게 존중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 파울로 말디니는 전화로 경질됐고, 모리뉴는 오전 훈련을 앞두고 팀을 떠나야 했다. 오직 비즈니스 고나점만 존재하고 있는 것 같다”라고 지적했다.
모리뉴의 러브콜을 받고 로마에 합류한 디발라는 자신의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감사 인사를 남겼다. 디발라는 “모든 것에 감사한다. 함께 일할 수 있어 즐거웠다. 감독, 코치진 모두에게 행운이 있기를 빈다. 곧 다시 만나길 바란다”라고 전했다. 디발라는 2021~22시즌을 끝으로 자유계약선수(FA) 신분으로 유벤투스를 떠난 뒤 한동안 팀을 찾지 못했다. 막대한 주급과, 부상 이력탓에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이때 손을 내민 게 모리뉴 감독이었다.
로마 유니폼을 입은 디발라는 승승장구했다. 우려를 낳은 부상은 이어졌지만, 로마 합류 후 공식전 56경기 24골 14도움으로 이름값을 했다. 한편 디발라에게는 이번 겨울이적시장 이적허용금액(바이아웃) 조항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모리뉴 감독이 경질되기 바로 하루 전에 만료됐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로마와의 계약기간은 2025년까지다.
한편 모리뉴 감독은 팀을 떠나며 일부 팬들과 눈물의 작별 인사를 나눴다. 이탈리아 매체 풋볼 메르카토는 구단을 떠나는 모리뉴 감독의 모습을 담았다. 모리뉴 감독은 차에 앉아 거듭 고맙다는 말을 전하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팬들은 응원가를 부르며 그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장면이 SNS를 통해 공개됐다.
로마의 차기 사령탑은 ‘레전드’ 다니엘레 데 로시다. 데 로시는 로마에서만 616경기 63골 60도움을 올린 ‘아이콘’격 선수다. 커리어 막바지 보카 주니어스(아르헨티나) 유니폼을 입고 7경기를 뛴 뒤 축구화를 벗었다.
대신 지휘봉을 잡은 데 로시는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을 이끌던 로베르토 만치니 감독을 보좌하는 테크니컬 코치로 활약했다. 이후 2022~23시즌 중 세리에 B SPAL을 이끌었는데, 단 17경기에서 3승 6무 8패를 기록한 뒤 경질됐다. 사실상 지도자 커리어가 전무한 만큼, 로마의 이번 선택에 의문이 따른다.
로마는 16일 기준 세리에 A 9위에 위치했다. 모리뉴 감독이 이끈 지난 두 시즌에는 연속 6위에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