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감독에 그 수석코치다. 위르겐 클린스만(독일) 전 감독에 이어 안드레아스 헤어초크(오스트리아) 전 수석코치도 한국의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우승 실패의 원인으로 선수들을 탓했다. 대회 전반에 걸친 부진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없고, 손흥민(토트넘)과 이강인(파리 생제르맹)의 준결승 전날 갈등이 탈락의 원인이 됐다는 것이다.
헤어초크 전 수석코치는 지난 17일(한국시간) 오스트리아 매체 크로넨 자이퉁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아시안컵에서의 활약 이후 클린스만 감독과 함께 한국 대표팀을 계속 이끌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2026년 월드컵까지 계약을 이어갈 수 있는 요건을 충족했기 때문이었다”면서도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에 대해 정치권의 압박이 엄청나게 컸다. 결국 우리는 한국 대표팀 역할에서 내려와야 했다”고 밝혔다.
이어 헤어초크 코치는 “중요한 경기 전날 저녁, 손흥민과 이강인이라는 두 톱스타가 충돌하면서 팀 내 세대 갈등이 일어날 거라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면서 “감정적이었던 충돌은 결국 팀 분위기에 영향을 미쳤다. 훈련장에서만 간혹 봤어도 식당에서는 본 적이 없던 이런 일은 결국 몇 달 동안 쌓아온 모든 게 무너진 원인이 됐다”고 덧붙였다.
영국 더선의 보도, 그리고 대한축구협회의 이례적인 인정으로 수면 위로 드러난 요르단전 전날 손흥민·이강인 간 갈등이 결국 4강 탈락의 원인이 됐다는 것이다. 대한축구협회 등에 따르면 손흥민과 이강인은 요르단전을 앞둔 전날 저녁식사 자리에서 물리적 충돌을 빚었다. 손흥민은 식사 자리를 단합의 장으로 생각한 반면, 이강인 등 젊은 선수들은 탁구를 치려던 과정에서 갈등이 발생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손흥민은 손가락 탈구 부상을 입었고, 실제 손흥민은 소속팀 복귀 후에도 손가락에 테이핑을 한 채 경기를 치렀다. 이 과정에서 손흥민이 이강인의 멱살을 잡았다거나, 이강인이 손흥민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는 등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무성했다. 이강인은 소셜 미디어(SNS)를 통해 손흥민과 갈등에 대해 사과하면서도, 변호사를 통한 입장문을 통해 “손흥민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는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대한축구협회가 당시 상황에 대한 더선 보도를 빠르게 인정한 데다, 이강인의 SNS 사과나 입장문 등을 고려하면 요르단전 전날 손흥민과 이강인의 갈등이 발생한 건 정황상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다만 코치진이 대회 전반에 걸친 경기력 부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오직 손흥민과 이강인의 갈등을 탈락의 원인으로 꼽는 건 적절하지 않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손흥민과 이강인 등 선수 탓을 한 건 클린스만 감독 역시 마찬가지였다. 황보관 대한축구협회 기술본부장에 따르면 클린스만 감독은 지난 15일 대한축구협회 전력강화위원회의 아시안컵 리뷰 회의에 화상으로 참석해 “선수단 내에 불화가 있었고, 그 부분이 경기력에 영향을 줬다”고 핑계 댔다. 전력강화위원회에서 지적받은 전술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클린스만 감독이 인정하지 않았다는 게 황보 본부장의 설명이었다.
심지어 클린스만 감독은 최근 독일 시사매체 슈피겔과 인터뷰에서 “스포츠(경기) 측면에서 보면 성공적인 결과였다. 최고였다”고 지난 아시안컵 여정을 돌아본 바 있다. 그는 대한축구협회의 경질 발표가 나오기 직전 SNS에도 “준결승 전까지 12개월 동안 13경기 무패라는 놀라운 여정을 했다”고 평가했다. 최근 성적으로 따지면 1승 3무 1패(승부차기 공식기록은 무승부)에 그친 성적은 언급하지 않았다.
한국을 떠난 클린스만 감독과 헤어초크 수석코치마저 잇따라 선수 탓으로 일관하면서 이별과정마저도 ‘최악’이라는 평가가 나올 수밖에 없다. 대한축구협회가 빠르게 당시 상황을 인정하고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면서 대회 전반에 걸친 부진보다 오직 손흥민과 이강인의 이슈를 핑곗거리로 삼을 수 있도록 했다는 지적 역시 함께 나온다.
클린스만 감독과 코치진은 지난 15일 대한축구협회 전력강화위원회의 해임 건의 다음날 전격 경질됐다. 전력강화위원회는 클린스만 감독의 전술적인 능력 부족을 비롯해 국민들을 실망시킨 업무 태도, 선수단 장악 실패, 선수 발굴 노력 의지 부족 등을 지적하며 ‘감독 교체’가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고, 정몽규 회장도 결국 클린스만 감독의 경질을 결정했다. 계약 기간 1년도 채 채우지 못한 클린스만 감독은 역대 외국인 사령탑 가운데 가장 빨리 경질된 사령탑으로 남게 됐다. 경질에 따른 위약금은 코치진 포함 100억원대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