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도 산 게 아닌 상태인데 의료적으로 연명만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인 것 같아요. 우리 영화 ‘소풍’이 던진 질문이 그거 아닌가 싶어요. 제 입장이라면 저는 제 의지로 마지막을 해결할 수 있는 게 행복이라 생각할 것 같아요.”
영화 ‘소풍’에서 금순 역을 맡은 김영옥은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 같이 말했다. ‘소풍’은 절친이자 사돈 지간인 두 친구가 60년 만에 함께 고향 남해로 여행을 떠나며 16살의 추억을 다시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 개봉 후 좋은 반응을 얻으며 올해 한국 극영화 가운데 처음으로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김영옥은 ‘소풍’에서 고향에서 평생을 산 금순을 연기했다. 금순은 16살 때부터 친구인 은심(나문희)과 사돈까지 된 사이. 어린 시절 고향을 떠났던 은심이 오랜만에 고향에 오면서 두 사람은 다시 깊은 속내를 나누게 되고, 그러면서 둘 모두 존엄한 삶과 마지막을 고민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사실 전 유언을 수도 없이 흘리고 다녔어요. 젊을 때 제가 좀 많이 아픈 적이 있거든요. 동료들에게 ‘누가 나중에 와서 김영옥 아들이다, 딸이다 하면 어루만져주기라고 해라’고 하곤 했어요. 그래서 마지막을 많이 고민을 해봤고, 연명치료에 대해선 회의적이에요.”
영화에서 ‘소풍’은 두 가지의 의미를 지닌다. 한바탕 즐기다 가는 인생 자체를 비유하고 있기도 하고 60년 우정을 이어온 금순, 은심 두 친구의 마지막 나들이를 의미하기도 한다. 전자가 ‘삶’에 무게를 두고 있다면 후자는 ‘죽음’을 생각하게 한다. 언뜻 보기엔 노년에 다다른 친구들의 이야기를 서정적으로 다룬 작품이지만, 파고들면 들수록 무게감이 상당하다. ‘소풍’을 보고 난 많은 관객들이 ‘생각이 많아진다’는 후기를 남기는 건 이 때문이다.
김영옥은 “백세시대라곤 하지만 꼼짝 못 하는 채로 생명만 유지하는 걸 누가 그렇게 원하겠느냐”며 “‘소풍’을 통해 존엄사 문제가 우리 사회에서도 더 논의됐으면 한다. 나 역시 아들, 딸들에게 의식이 오락가락하고 더 이상 회복될 가망이 없을 때는 더 오래 (치료를) 끌지 않는 방법을 고민해 보라고 이야기한다”고 밝혔다.
김영옥이 이런 어려운 작품을 선택한 건 나문희 때문이었다. 60년지기를 자연스럽게 연기할 수 있는 배우는 김영옥뿐이라고 생각한 나문희가 끈질기게 김영옥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처음엔 안 한다고 했던 김영옥도 나문희의 긴 기다림에 응답했다.
그는 “사실 좀 오만해 보일 수 있겠지만 누가 내가 꼭 필요하다고 하면 ‘이건 진짜 내가 해야겠구나. 그래, 이건 내가 해야 잘 표현할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든다”면서 “그래서 내가 스스로를 망가뜨릴 정도로 욕심을 부릴 때가 있다”며 웃었다.
“살다 보면 언젠가는 노인이 되잖아요. ‘소풍’은 80대 노인들의 이야기지만, 젊은 사람들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부모 세대가 해온 희생과 사랑 그런 것들도 알아주면 고맙겠고요. 자꾸 서로를 머리로라도 이해하려고 하면서 살다 보면 어느 순간은 가슴으로 이해되는 날도 오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