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장 들어서는 이강인 (알와크라=연합뉴스) 김도훈 기자 = 25일(현지시간) 카타르 알와크라 알자누브 스타디움 열린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조별리그 E조 최종전 한국과 말레이시아의 경기. 이강인이 경기장에 들어서고 있다. 2024.1.26 superdoo82@yna.co.kr/2024-01-26 00:28:31/ <저작권자 ⓒ 1980-2024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AI 학습 및 활용 금지> 대한축구협회(KFA)가 이강인(파리 생제르맹)을 위한 '사과의 장'을 마련한다. 지난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당시 불거진 이른바 하극상 논란에 대해 이강인이 직접 사과할 수 있도록 직접 자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KFA에 따르면 20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태국과의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대비 황선홍 감독과 대표 선수의 기자회견이 끝나고, 그리고 공식 훈련을 치르기에 앞서 이강인을 미디어 앞에 세운다는 계획이다. 다만 ‘아직 선수와 협의된 사안은 아니’라는 게 KFA 설명이다. 이강인이 요청한 게 아니라, KFA가 이강인을 설득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사안을 돌아보면 과연 대국민 사과까지 필요한 일인지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다. 물론 막내급 선수가 대표팀 주장인 손흥민과 충돌했다는 건 국내 정서상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국민적인 충격과 공분까지 이어진 이유였다. 동시에 어디까지나 대회 기간 대표팀 내부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이미 당사자들끼리 충분히 매듭을 지은 일이기도 하다.
실제 이강인은 손흥민을 직접 찾아가 사과했다. 손흥민뿐만 아니라 다른 대표팀 선·후배나 동료들에게도 일일이 전화해 사과의 뜻을 밝혔다. 소셜 미디어(SNS)를 통해서도 이미 손흥민은 물론 대표팀 동료들, 그리고 축구팬들에게 공개적으로 사과했다. 당사자인 손흥민마저 “(이)강인이가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한 번만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해 달라. 대표팀 주장으로서 꼭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선수들끼리는 이미 매듭지은 사안을, KFA가 굳이 나서서 불씨를 다시 지피려는 모양새다.
손흥민과 이강인이 화해했다. 사진=손흥민 인스타그램 공교롭게도 애초에 이강인과 손흥민 사태에 기름을 부은 건 다름 아닌 KFA였다. 대회 도중 선수단 내부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매우 이례적으로 인정해 이를 공식화하는 바람에 일을 더 키웠다. 이 과정에서 KFA는 선수들 뒤로 숨었다. 당시 사안이 어떻게 외부에 공개됐는지, 대회 기간 선수 관리에 대한 KFA 차원의 책임은 없는지에 대한 반성조차 없이 침묵으로 일관했다. 선수들끼리 어떻게든 갈등을 봉합하려 애쓰는데도 이 과정에서 KFA 역할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아가 이제는 이강인을 또 전면에 내세우고는 또다시 그 뒤로 숨으려는 모양새다.
정작 KFA는 그동안 각종 논란에 대해 책임을 회피하거나 침묵으로 일관했다는 점에서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흐름이다. 클린스만(독일) 감독 선임 과정에 대한 책임은 물론이고, 아시안컵 전지훈련 기간 선수들과 직원의 카드놀이 논란, 직원의 유니폼 판매 의혹 등에 대해서도 KFA는 홈페이지에 슬그머니 입장을 밝히는 데 그쳐왔다. 그간 한국축구를 뒤흔든 각종 논란에도 정몽규 KFA 회장을 비롯해 그 누구도 책임을 지는 이는 없었고, 대중 앞에 나서 고개를 숙인 이도 없었다. 그런데 정작 선수는 '대국민 사과'의 장으로 밀어 넣으려 하고 있다. KFA의 한심한 민낯에 팬들의 한숨도 깊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