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환 감독이 이끄는 강원FC의 경기력이 심상치 않다. 아직 개막 4경기째(3무1패) 승리는 없지만, 인상적인 경기력으로 K리그 팬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시즌 승강 플레이오프(PO) 끝에 가까스로 잔류에 성공한 뒤 겨울 동안 윤정환 감독이 팀을 잘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달 31일 춘천송암스포츠타운 주경기장에서 열린 FC서울과의 하나은행 K리그1 2024 4라운드 역시 마찬가지였다. 비록 이날 강원은 서울과 1-1로 비겼지만, 시종일관 서울을 압도하는 경기력으로 팬들의 박수를 받았다. 경기 후 '극과 극'이었던 두 사령탑의 반응은 이날 양 팀의 경기력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윤정환 강원 감독은 “주도권을 가져가면서 경기를 잘 풀었다. 결과가 아쉽게 됐다”며 아쉬움을 삼킨 반면, 김기동 서울 감독은 “비긴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슈팅 수 15-5, 10개나 더 많았던 슈팅 수가 이날 강원의 경기력을 고스란히 대변했다. 이날 강원은 경기 초반부터 강력한 전방 압박과 짜임새 있는 축구로 서울 수비를 흔들었다. 잔디 사정 탓에 서울 수비 지역에서 잦은 실수가 나온 가운데 강원 선수들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거듭 파고들었다. 이상헌과 양민혁, 웰링턴 등 전방에 포진한 선수들이 강력한 압박과 연이은 뒷공간 침투로 기회를 만들었다. 웰링턴이 슈팅 4개, 양민혁과 이상헌이 3개, 김강국이 2개 등 고르게 슈팅이 나왔다는 점도 눈에 띄었다.
단단한 수비 조직력도 인상적이었다. 이날 서울은 전반 45분 동안 단 1개의 슈팅에 그칠 정도로 공격을 풀어가는 데 애를 먹었다. 강원의 수비가 그만큼 잘 이뤄졌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전방부터 압박이 시작돼 서울의 빌드업을 방해했고, 중원과 후방에선 몸을 사리지 않는 수비로 서울 공격을 차단했다. 그나마 후반 26분 크로스에 이은 헤더에 일격을 맞았지만, 이는 서울이 71분 동안 시도한 단 '3번째 슈팅'이었다.
'김기동호' 서울의 시즌 초반 경기력이 기대에 못 미치는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직전 경기에서 제주 유나이티드를 2-0으로 완파하며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던 상황이었다. 선수들 면면에서 나오는 객관적인 전력에서도 서울의 우세가 전망되는 경기였는데, 윤정환 감독의 강원은 공·수 양면에서 보란 듯이 그 흐름을 뒤집었다. 적장 김기동 감독이 “강원이 잘 준비한 것 같다”며 “질 수도 있었던 경기였다. 어웨이에서 승점 1점을 딴 것으로 만족한다”며 혀를 내두른 건 그만큼 이날 경기 양상이 일방적이었다는 의미였다.
비단 이 경기뿐만이 아니었다. 강원은 직전 대전하나시티즌과의 경기에서 볼 점유율과 슈팅 수에서 상대보다 우위를 점하며 적지에서 무승부 결실을 얻었다. 앞서 광주FC 원정길에선 6골이 터지는 난타전(2-4 패)을 벌이며 만만치 않은 저력을 보여줬고, 제주와의 홈 개막전에서도 슈팅 수에서 15-11의 우위를 점했다. 서울전뿐만 아니라 시즌 초반 전반적인 경기력이 지난 시즌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물론 아직 100%는 아니다. 아무리 경기력이 인상적이라고 한들 개막 4경기째 승리가 없는 성적 앞에선 그 의미도 퇴색될 수밖에 없다. 서울전도 웰링턴의 슈팅이 크로스바를 강타하거나 결정적인 슈팅 찬스를 놓치는 등 일찌감치 승기를 잡을 기회를 스스로 놓친 탓에 경기 흐름이 꼬였다. 개막 후 아직 무실점 경기가 없을 만큼 중요한 순간마다 수비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것도 윤 감독과 강원엔 고민의 대상이다.
그래도 이날 서울 수비를 잇따라 무너뜨렸던 것처럼 공격을 전개하는 과정만큼은 잘 이뤄지고 있다는 점은 기대요소다. 전술을 넘어 이제는 선수 개개인의 역량인 골 결정력 문제만 개선될 수 있다면 시즌 첫 승을 넘어 뚜렷한 상승곡선도 그릴 수 있다. 개막 후 번갈아 출전하고 있는 이광연과 박청효의 주전 골키퍼 경쟁, 시즌 초반 징계 변수 등으로 변화 폭이 큰 수비 라인 등이 자리를 잡으면 수비도 곧 제 궤도에 오를 거란 전망이 나온다.
무엇보다 강원이 지난 시즌 10위로 승강 플레이오프를 치렀던 팀이라는 점을 돌아보면, 시즌 초반 경기력이 눈에 띄게 달라진 모습은 의미가 크다. 윤정환 감독도 “서울을 상대로 이런 경기력을 보여준 것만으로도 (지난 시즌과 비교해) 큰 변화라고 본다”며 “이제는 결과를 가져와야 한다. 결정력이 미흡한 부분은 훈련을 통해 개선해야 한다. 마지막 중요할 때마다 실수가 나오는데, 이 역시 충분히 나아질 수 있을 거라 본다”고 자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