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희찬(27·울버햄프턴)에게 지난 2023~24시즌은 ‘커리어하이’ 시즌이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29경기(선발 25경기)에 출전해 무려 12골·3도움. 팀 내 최다득점 공동 1위이자, 데뷔 커리어하이 기록이기도 했다. 프로 데뷔 후 리그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한 시즌은 이번이 네 번째지만, 다름 아닌 세계적인 빅리그인 EPL 무대에서 이룬 첫 두 자릿수 득점이라는 점에서 의미는 더욱 컸다.
그러나 가파른 상승세 속에서도 황희찬은 지난 6일(한국시간) 싱가포르와의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5차전에선 벤치에서 출발했다. 손흥민(토트넘)의 골이 터졌을 때 경기장 밖에서 이를 지켜보던 황희찬의 묘한 표정은 당시 중계진도, 팬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됐다. 이후 황희찬은 후반 12분 교체로 투입됐다. 최전방과 측면을 넘나들며 기회를 모색했고, 후반 36분 조유민(샤르자SC)의 어시스트를 기어코 득점으로 연결했다. 한국의 7-0 대승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득점이었다.
다만 스피드와 저돌적인 돌파뿐만 아니라 올 시즌 득점력에도 눈을 뜬 황희찬을 ‘조커’로만 활용하는 건 분명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상대 체력이 지쳤을 때 조커로 투입되면 황희찬 특유의 강점들이 더욱 극대화될 수도 있겠지만, 이번 시즌 황희찬의 기세를 돌아보면 선발로 출전해도 충분히 경쟁력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적지 않은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황희찬이 선발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었던 건 워낙 쟁쟁한 자원들 때문이다. 김도훈 임시 감독은 손흥민과 이강인(파리 생제르맹)을 좌우 측면에 두고, 이재성(마인츠05)이 중앙에 포진하는 형태로 2선 공격진을 꾸렸다. 양 측면에 선 손흥민과 이강인의 파괴력이 워낙 좋은 데다, 이재성이 중앙에서 연계 등 밸런스를 잘 잡아주고 있으니 사령탑의 고민도 깊어질 수밖에 없다.
지난 싱가포르전 당시 주민규(울산 HD)와 교체돼 최전방에 포진했던 것처럼 황희찬이 원톱 자원으로 분류돼 선발 자리를 노려볼 수도 있다. 다만 주민규가 지난 싱가포르전에서 1골·3도움의 맹활약을 펼친 터라 이마저도 만만치가 않은 게 사실이다. 황희찬의 이번 시즌 기세를 대표팀에서도 이어갈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대표팀 상황상 여의치가 않다.
그렇다고 황희찬을 ‘조커’ 역할로만 국한하는 건 대표팀 입장에서도 분명한 손실이다. 다른 2선 자원들과는 분명 다른 장점을 가지고 있는 데다, 상승세도 워낙 가파르기 때문이다. 공격진을 최대한 다양하게 꾸리는 건 축구 대표팀 공격의 다양성 측면에서도 반가운 일이 될 수 있다.
황희찬이 워낙 다양한 역할을 소화할 수 있다는 점은 그래서 더 반가운 요소가 될 수 있다. 양 측면은 물론 최전방도 소화가 가능한 만큼 공격진 구성에 따라 어느 형태로도 변화가 가능하다. 황희찬이 왼쪽에 포진한다면 손흥민이 중앙이나 전방 등 보다 자유로운 움직임이 가능하고, 오른쪽에 포진하면 이강인의 중앙 이동 등이 가능하다. ‘황희찬 원톱’이라는 새로운 옵션이 본격적으로 시험대에 오를 수도 있다.
최근 황희찬은 A대표팀 소집 후 2연전 모두 교체로 나선 적은 없다. 2연전이라면 꼭 1경기는 선발 기회를 받았다. 파울루 벤투(포르투갈) 전 감독도, 위르겐 클린스만(독일) 전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그만큼 황희찬을 조커가 아닌 선발로 활용해 경기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사령탑들의 고민이 이어져 왔다는 의미다. 이번엔 김도훈 임시 감독이 그 바통을 이어받는다. 11일 오후 8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중국과의 월드컵 예선 최종전, 황희찬의 활용법을 두고 적잖은 고민을 할 가능성이 크다. 차기 정식 사령탑에게도 중요한 메시지를 남길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관심이 쏠리는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