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자 복싱 최초로 올림픽에 출전한 임애지(25·화순군청)가 3년 전 도쿄 대회를 떠올렸다. 당시 대학생 신분으로 꿈의 무대를 밟은 임애지는 ‘메달’의 부담감에 시달렸고, 제 기량을 뽐내지 못했다.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고 했던가. 임애지는 파리에서 펼쳐질 본인의 두 번째 올림픽 여정을 마음껏 즐길 예정이다. 복싱을 시작한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치열한 승부의 세계에 발을 들인 그는 즐기면 호성적은 따라온다고 믿는다.
10대 때 태극 마크를 달고 ‘복싱 천재’로 통했던 임애지는 영락없는 20대 여성이다. 평소 인스타그램을 즐긴다. 새로운 취미를 찾아 이것저것 시도하기도 한다. 독서는 그가 진득하게 해온 취미다. 피 튀기는 투기 종목 선수와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임애지는 평소 책을 읽으며 영감을 얻는다.
근래엔 손자병법을 읽었다고 한 그는 최근 본지를 통해 “내가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상대가 강하면 방어하면서 움직이고, (내가) 자신 있으면 공격적으로 움직이라는 부분이 있었다. 그걸 읽으면서 운동에 접목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며 웃었다.
한국 여자 복싱 최초 올림픽 메달 획득에 도전하는 임애지는 올해 초 계획을 세우면서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을 분류했다. 임애지는 당시 올림픽을 해야 하는 일로 분류했다. 그는 “(올림픽 출전이) 바람보다 의무감이 있지 않은가. 대학생이었다면 하고 싶은 일로 적었겠지만, 이제는 직장인이라 이렇게 적었다”고 했다.
파리행 티켓을 얻는 여정은 순탄치 않았다. 지난해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AG) 54kg급 메달 기대주로 꼽혔지만, 16강에서 만난 방철미(북한)에게 졌다. 당시 메달을 땄다면 파리행도 확정할 수 있었는데, 기회를 놓쳤다. 지난 3월 이탈리아에서 열린 세계예선 1차 대회에서도 티켓을 눈앞에서 놓쳤고, 결국 올림픽 개막을 두 달 정도 앞둔 지난달 초에야 출전이 결정됐다.
“올림픽 티켓을 못 따서 너무너무 절망적이었다”고 돌아본 임애지는 지난달 태국 방콕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복싱 2차 세계 예선 대회를 앞두고 심신이 지쳐 나날을 눈물로 지새웠다. “선생님(코치), 제가 3라운드를 다 소화할 수 있을까요?”라고 되물을 정도로 자신감이 뚝 떨어졌다고 한다.
천신만고 끝 올림픽 출전권을 얻은 힘은 동료들의 무한한 지지였다. 임애지는 “(진천) 선수촌에서 사귄 도쿄 올림픽 선·후배들이 이번에도 거의 다 나가더라. 그들이 ‘애지야, 우리 그때 여기(도쿄)에서 사진 찍었던 것처럼 (파리에서도) 같이 찍자’고 했다. 넌 무조건 될 거라는 응원을 받았다”면서 “(파리에 가는) 이리영(아티스틱 스위밍)과 김수지(다이빙)가 기를 나눠주겠다면서 내게 왔다. 리영이는 파리 에디션을 선물로 주기도 했다. 이들과 파리에 가고 싶다는 동기부여가 됐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고난을 이겨낸 임애지는 밝은 내일을 꿈꾼다. 두 번째 올림픽 출전인 만큼, 3년 전과는 마음가짐이 다르다. 그는 “확실히 여유가 있다. 오연지(34·울산광역시체육회)와 좋은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다”면서 “일본은 이웃 나라라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은 없었던 것 같다. 근데 파리는 가는 시간이 있으니, ‘비행기 안에서 뭐 하지’ 등을 생각하며 되게 떨린다”며 설렘을 드러냈다.
파리를 본인의 무대로 만들고 싶어 하는 임애지는 “즐기면서 후회 없이 하고 싶다. 즐기고 싶다는 게 곧 잘하고 싶다는 뜻”이라며 “도쿄 때는 사실 출전에 안주했다. 이제는 색 상관없이 메달을 보고 있다”고 힘줘 말했다.
임애지는 본인 체급인 54kg급 강자들을 분석, 그들을 링 위에서 쓰러뜨리기 위해 구슬땀을 흘렸다. 반드시 파리 올림픽 시상대에 태극기를 올린다는 일념으로 주먹을 뻗은 주먹이 결실을 볼까. 만약 그가 바란 대로 메달을 획득한다면, 한국 여자 복싱 역사상 최초로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탄생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