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 레전드 박지성 현 전북 현대 디렉터가 대한축구협회와 정몽규 축구협회회장 등을 향해 작심 발언에 나섰다. 최근 축구 대표팀 사령탑으로 홍명보 감독을 선임한 절차 등과 관련해 “체계 자체가 완전히 무너졌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박지성 전북 디렉터는 지난 12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진행된 문화행사 MMCA 플레이 : 주니어 풋살에 참석한 뒤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결국 회장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직격 했다. 거센 사퇴 요구를 받고 있는 정몽규 회장의 거센 사퇴 요구에 힘을 실은 것이다.
박지성 디렉터는 “규정이 없는 상황에서 ‘회장이 내려와야 한다, 내려오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이 외부의 압력으로 얼마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면서도 “회장이 그만둔다고 했을 때 대안이 있는지도 고민을 해봐야 한다. 당장 무언가를 해야 하는 것보다 장기적으로 협회를 바라보는 시선들을 재확립시키고 신뢰를 심어줄지가 우선돼야 한다. 그 상황에서 그 답(정몽규 회장 사퇴)이 맞는 거라면, 그렇게 해야 한다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했다.
박지성은 “(축구협회는 현재) 체계 자체가 완전히 무너졌다. 체계를 바로 세우고 앞으로 나아갈 거라는 기대는 5개월 전이 마지막이었다”고도 강조했다. 5개월 전은 선임 과정부터 논란이 됐던 위르겐 클린스만(독일) 감독을 경질한 시점이자, 새로운 전력강화위원회가 출범하면서 새로운 감독 선임 작업을 시작한 시점이기도 하다.
박지성은 그러나 “전력강화위원회를 구성하고 제대로 된 선임 절차를 밟는다고 발표한 건 무언가 변하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팬들에게 심어줬던 것이다. 결국 그러지 못한 건 팬들에게도 충격이지만, 협회 안에서도 큰 충격일 거다. 체계를 변화시키는 건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다. 결국 모든 걸, 다시 하나부터 쌓아야 하는 상황을 맞이했다”고 덧붙였다.
현재 축구계의 분위기에 대해 “첫 번째 드는 감정은 슬픔”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에서 축구를 시작했고, 아직도 축구라는 분야에 있으나 ‘우리가 이것밖에 되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든다. 또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아쉬움도 크다. 너무 슬픈 상황이고, 마음이 상당히 아프다”며 “가장 슬픈 건 뭐 하나 확실한 답이 없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2002 월드컵을 통해 한국 축구는 상당히 변했고, 앞으로도 많이 변할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때와 달라진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이렇게 받은 것”이라며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참담하다”며 “문제는 과연 어디까지 이래야 하는 것인가라는 점이다. 이제는 어느 정도라도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이야기는 나와야 한다. 협회에서 일을 한다는 건 이제는 아무도 하고 싶지 않은 일이 되어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축구계 선배이기도 한 홍명보 감독이 대표팀 사령탑에 선임된 것에 대해서도 박지성은 쓴소리를 가했다. 박지성은 “홍명보 감독과 이야기를 나눈 건 전혀 없다”면서 “현 상황에 대해 답이 보이지 않는 상황인 것만은 확실하다. 여기서 누군가는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고, 해결책을 최대한 빨리 제시해줘야 한다. 한국 대표팀뿐만 아니라 유소년까지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최악의 상황은 면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출항 전부터 거센 비판을 받고 있는 만큼 홍명보호의 성공 가능성도 부정적으로 봤다. 박지성은 “새로운 감독이 부임한 뒤 기대감을 갖고 시작해도 성공을 확신하기 어려운 게 대표팀”이라며 “감독 선임 직후 이런 상황이 지속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다. 솔직히 (홍명보 감독이) 어떻게 극복해 나갈지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선임 번복 가능성에 대해서도 “충분히 가능성은 있다”고 내다봤다. 박지성은 “그래도 새 감독이 왔을 때 기대감, 사람들의 기대 심리가 큰 상황에서 시작하는 감독이 대부분이다. 이런 상황에서 시작하는 감독은 솔직히 처음이다. 어떤 결과를 맞을지 모른다”며 “감독 선임을 번복하느냐, 마느냐는 협회와 홍명보 감독의 결정이 남아있다. 쉽사리 지금 상황에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은 남아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선수들에게 직접 이야기를 듣진 않았지만, 선수들도 얼마나 당황하고 있을지는 어느 정도 예상이 된다”며 “지난 5개월 간 국내파 감독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여론과 평가가 안 좋았다. 분명 그 선택(국내파 감독 선임)은 하지 않을 거라는 기대 속에서 오히려 국내파 감독이 선임됐다는 데 선수들도 굉장히 당황스러운 상황이지 않을까 싶다. 다만 선수들이 나설 상황은 분명히 아니다. 선수들은 (선임) 결과를 받아들이고 자기 역할을 할 거라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매듭을 짓지 않고 나아가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협회가 어떤 조치를 취하느냐에 따라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내부 폭로에 나선 후배 박주호 전력강화위원에게도 지지의 뜻을 전했다. 박지성은 “가장 먼저 느끼는 건 회의 기간 내내 상당히 많은 무력감을 느꼈겠구나라는 것이다. 본인의 의견이 100% 받아들여질 수는 없겠으나, 안에서 얘기했던 절차대로 진행되지 않으니 그 자리에 있을 필요도 없다는 무력감이 상당히 컸을 것”이라며 “아무리 좋은 사람들을 데리고 와도 행정절차가 투명하지 않고 시스템이 올바르지 않다면 결국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 가장 안타까운 결과”라고 덧붙였다.
축구계 선배로서 후배들에게는 “가장 큰 생각은 미안하다는 것”이라고 했다. 박지성은 “선배로서 조금이나마 좋은 환경에서 후배들이 실력을 뽐낼 수 있게 만들어줬어야 한다. 어느 정도 영향력을 보일 수 있는 사람들이 좋은 영향력을 보여줬다면, 일이 이렇게까지는 되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며 “한국 축구 역사에 가장 좋은 선수들로 구성돼 있는 이 시기에 그걸 뒷받침할 수 없는 상황이, 축구인들 뿐만 아니라 팬들 역시도 가장 아쉽다고 생각할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