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떠나는 외국인 선수가 있었나요. 외국인 선수에게 이런 자리를 마련해줄 것이라고 결코 예상하지 못했다."
정든 LG 트윈스를 떠나게 된 케이시 켈리(35)는 눈물을 훔치고 또 훔쳤다. 그는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면서 선수단, 구단,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남겼다.
켈리는 지난 20일 잠실 두산전에 선발 등판했다. 이별이 확정된 뒤 치른 고별전이었다. 우승에 도전하는 LG는 더 강력한 투수를 원했고, 결국 켈리와 작별을 선택했다.
LG는 구단 역대 최다승(73승) 기록과 함께 5년 6개월 동안 동고동락한 켈리를 예우했다. 교체를 통보한 켈리에게 20일 두산전 선발 등판의 선택권을 줬다. 6월 이후 좋은 모습을 보여왔던 켈리는 구단의 결정에 섭섭함을 느끼고 등판을 거절할 수도 있다. 그러나 켈리는 아내와 상의하겠다고 구단에 밝혔고, 몇 시간 뒤 "팀, 팬들과의 작별 인사를 위해 등판하겠다"고 결정했다. 그만큼 한국 야구와 문화를 존중했다.
그런데 이날 경기는 LG가 6-0으로 앞선 3회 초 수비 때 우천으로 중단됐다. 경기는 1시간 넘게 지연 후 정비를 통해 재개를 준비했다. 대개 우천으로 경기가 1시간 이상 중단 시 선발 투수는 선수 보호 차원에서 교체된다. 두산 선발 투수였던 발라조빅은 교체를 의미하는 아이싱을 했다. 반면 켈리는 그 순간 더그아웃 뒷편 복도에서 섀도우 피칭을 하는 모습이 중계 화면에 잡히기도 했다. 경기가 재개되면 어떻게든 마운드에 올라 멋지게 피날레를 하고 싶은 의욕이 느껴졌다. 아쉽게도 경기는 재개되지 못한 채 노게임이 선언됐다. 켈리는 "집중력을 유지하려 했고 끝내지 못한 이닝을 끝내고 싶었다. 비가 다시 쏟아질 땐 이게 내 마지막임을 직감했다"고 밝혔다.
LG 구단은 가족과도 같았던 켈리와 작별을 위해 준비 시간이 짧았지만 멋진 행사를 준비했다. 비가 쏟아지는 서울 잠실구장 내야 그라운드에 등번호 3번, 그 위에는 '켈리'라고 적힌 LG 트윈스 유니폼 상의를 본뜬 대형 현수막이 펼쳐졌다. 당초 빗줄기가 너무 굵어지면 행사를 다음날로 미루려고 했지만, 다행히 준비된 행사를 열 수 있었다.
켈리는 가족과 함께 단상 위에 올라 구단이 마련한 영상을 시청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LG는 2019년부터 올해 6월까지 켈리의 등판 모습과 각종 기록을 담은 특별 영상을 제작했다. 켈리는 "KBO에서 뛴 외국인 선수 가운데 이런 세리머니를 받은 경우를 본 적이 없다. 울지 않으려고 참고 있었는데 세리머니가 시작하니까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런 모습에 오지환과 박해민, 홍창기 등이 눈물을 글썽였고 주장 김현수는 꽃다발을 전달하며 허리를 90도 숙여 인사하며 예우했다.
켈리는 잠실구장을 한 바퀴 돌며 팬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했다. 또한 선수단과 기념 촬영도 했다. 투수 조가 따로 켈리와 사진을 찍자, 오지환과 김현수 등 야수조도 그라운드로 나와 켈리에게 추가 사진 촬영을 요청하기도 했다. 많은 선수들이 켈리와 껴안으며 고마움과 아쉬움을 전달했다. 비가 오는 와중에도 많은 LG 팬이 관중석에 남아 켈리를 응원했다.
켈리는 "궂은 날씨에도 팬 여러분께서 남아주셨는데 가슴 한구석에 특별하게 남을 거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