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올림픽 대표팀이 활·총·검을 들고 세계 무대를 휘젓고 있다. 섬세하지만 빠르고 강한 손기술, 첨단 기술까지 접목한 체계적인 훈련을 앞세워 쾌거를 이뤄냈다.
현지 시간 28일 기준으로 한국 대표팀은 2024 파리 올림픽에서 총 3개의 금메달을 수확했다. 27일 펜싱 오상욱(28·대전시청)이 남자 사브르 종목에서 한국 대표팀의 첫 금메달을 목에 건 이후, 28일 여자 사격 공기권총 10m 오예진(19·IBK기업은행)이 깜짝 금메달을 따냈다. 이후 임시현(21·한국체대) 남수현(19·순천시청) 전훈영(30·인천시청)으로 구성된 여자 양궁 대표팀이 단체전에서 우승했다.
여자 양궁 대표팀이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수확했을 때, 한국은 잠시나마 올림픽 종합 순위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사격에서 은메달 2개를 추가로 따내며 뒤를 받친 것이 컸다.
5연속 입상부터 올림픽 10연패까지
한국 펜싱은 오상욱의 금메달로 2008년 베이징 대회부터 5회 연속 올림픽 개인전 메달을 따냈다. 2008년 베이징 대회에서 남현희의 여자 플뢰레 개인전 은메달로 입상하기 시작한 한국 펜싱은 2012년 런던 대회 김지연(여자 사브르)의 금메달과 최병철(남자 플뢰레), 정진선(남자 에페)의 동메달로 명맥을 이어갔다.
2016년 리우 대회에선 박상영이 남자 에페 개인전 금메달을 따내 '할 수 있다' 신드롬을 일으켰다. 리우에서 남자 사브르 개인전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사브르 맏형' 김정환이 2021년 열린 도쿄 대회에서도 개인전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오상욱은 개인전 동메달리스트 김정환과 구본길, 김준호 등과 '어펜져스(펜싱+어벤져스)'를 이끌었던 막내 선수. 2020 도쿄 대회에선 개인전 8강에서 탈락했으나, 3년 뒤 파리 금메달로 한을 풀었다. 2019년 세계선수권과 아시아선수권,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까지 모두 개인전을 제패한 그는 올림픽 금메달까지 수확하며 '그랜드슬램'을 달성, 전성기를 열었다.
진종오가 은퇴한 이후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했던 사격에선 27일 박하준(24·KT)-금지현(24·경기도청)의 공기소총 10m 혼성 은메달로 신호탄을 쐈다. 28일에는 오예진과 김예지(31·임실군청)가 나란히 금·은메달을 차지하며 파란을 일으켰다.
한국 사격 선수가 올림픽 시상대에 함께 올라간 건 2012 런던 대회 50m 권총 진종오(금메달) 최영래(은메달) 이후 처음이다. 아울러 오예진은 리우 대회 50m 권총 진종오 이후 한국 선수로는 8년 만에 올림픽 결선 신기록도 세웠다.
양궁은 여자 단체전 올림픽 10연패에 성공하며 '세계 최강'임을 재입증했다. 한국은 양궁 단체전이 처음 도입된 1988년 서울 대회부터 단 한 번도 빼놓지 않고 이 종목 우승을 합작했다. 세 선수 모두 올림픽 경험이 없어 우려의 목소리가 컸지만, '이변 없이'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올랐다.
양궁 대표팀은 이번 대회를 준비하면서 '슈팅 로봇'과 함께 훈련하며 정확도를 높였다. 또한 '고정밀 슈팅머신'을 도입, 선수들이 최상의 폼을 유지하도록 노력했다. 후원사 현대차그룹의 연구개발(R&D) 기술을 활용한 훈련 장비를 적극 활용한 결과, 양궁 대표팀은 여러 나라의 맹렬한 추격을 뿌리칠 수 있었다.
활·총·검으로 금 42개…'병장기의 민족'
2024 올림픽 대표팀의 목표는 금메달 5개, 종합 순위 15위 이내였다. 단체 구기 종목과 투기 종목이 지역 예선에서 대거 탈락하면서 목표를 낮춰 잡았다. 2020 도쿄 대회에서 거둔 6개보다도 적은 수치. 하지만 한국 대표팀은 활·총·검의 힘으로 대회 시작 사흘 만에 목표의 절반 이상을 이뤄냈다.
올림픽에서 '병장기 종목'의 강세는 최근 더 두드러진다. 28일 기준 한국 대표팀이 역대 올림픽에서 따낸 금메달은 총 99개. 이 중 42개가 활·총·검으로 따낸 쾌거였다. 세계 최강 양궁에서 28개의 금메달을 수확했고, 사격에서 8개, 펜싱에서 6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고도성장 시기에 한국은 태권도(통산 금메달 12개)와 유도(11개), 레슬링(11개)을 앞세운 격투기 강국이었다. 최근에는 무게 중심이 병장기 종목으로 바뀌었다. 2012 런던부터 2016 리우, 2020 도쿄, 2024 파리 네 개 대회에서 얻은 총 28개의 금메달 중에서 활·총·검으로 따낸 것만 22개(양궁 12개, 사격 5개, 펜싱 5개)에 달한다.
체육 철학자인 김정효 서울대 외래교수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한국 선수가 활·총·검에서 뛰어난 이유는 선천적인 이유와 후천적인 이유가 있다. 한국인은 선천적으로, 역사적으로 집중력이 좋고 손기술이 좋다"라면서 "우리는 젓가락을 사용한다. 어릴 때부터 손 감각이 뛰어나다. 또한 손의 감각은 두뇌 집중력과 연관돼 있다"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한국이 반도체 부문 세계 1위에 오를 때 나왔던 분석과 유사하다.
김정효 교수는 "근대 스포츠는 보통 큰 근육을 사용한다. 큰 근육을 사용하는 스포츠에선 (한국인이) 서양인의 신체를 이기기 어렵다. 양궁이나 사격, 탁구 등은 다르다. 손 감각을 최대로 활용할 수 있는 스포츠. 이 종목에서 한·중 동양인 선수들이 강한 이유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여기에 막대한 훈련량과 협회의 지원, 첨단 기술 접목까지 더해져 지금의 (병장기)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라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