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의 신이 온들 이런 상황을 예상할 수 있었을까. 시즌 내내 KT 위즈 천적으로 군림했던 두산 베어스 곽빈(26)이 무너졌다. 반대로 선발로 불안했던 조던 발라조빅(28)은 롱 릴리프로 호투했다. 엇갈린 선택이 두산을 위기로 몰았다.
두산은 2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4 KBO리그 포스트시즌 와일드카드 결정 1차전에서 0-4로 KT 위즈에 완패했다. 정규시즌 4위로 KT에 시리즈 1승 또는 1무만 거둬도 됐던 두산은 이날 완패로 오히려 궁지에 몰렸다. 2차전에서 패한다면 KBO리그 역사상 최초로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패하는 4위 팀이 된다.
이날 두산의 패인은 물론 경기 시작과 함께 무너진 에이스 곽빈이었다. 선발진이 불안했던 두산은 그래도 정규시즌 공동 다승왕(15승)에 오른 곽빈이 있기에 사실상 단판 승부인 1차전 승리를 기대했다. 하지만 곽빈은 1회 초 선두 타자 김민혁을 시작으로 연속 출루를 내주며 연달아 4실점했다.
구위엔 문제가 없었다. 최고 구속으로 트랙맨 기준 156㎞/h가 찍혔다. 하지만 상대 리드오프 김민혁에게 너무 쉽게 볼넷을 내준 후 아웃 카운트 하나도 제대로 잡지 못하며 흔들렸다. 멜 로하스 주니어에게 안타를 맞더니 장성우, 오재일, 강백호에게도 연달아 무너졌다. 좀처럼 유리한 카운트를 잡지 못하고 스스로 불리한 상황에 몰리다 안타를 맞기 일쑤였다. KT 타자들도 무리하게 강한 스윙을 하기보단 가볍게 안타를 때려내 한 점씩 차곡차곡 득점했다.
정규시즌 곽빈의 모습을 생각했다면 상상하기 어려운 부진이다. 곽빈은 올 시즌 KT전만 6경기를 나와 5승 무패 평균자책점 1.51로 활약했다. 말 그대로 천적이었다.
이강철 KT 감독은 경기 전 "곽빈이 올해 유난히 우리 상대로 등판한 경기가 많았던 것 같다"면서도 "변명이 아니라 두산과 팀 상대 전적이 안 좋은건 우리가 시즌 초반 선발 1명으로 버틸 때 많이 만나서도 있다. 그래서 팀 간 시즌 상대 전적은 크게 생각하지 않는다. 곽빈을 상대할 때도 우리 공격력이 많이 떨어졌는데, 신중하게 상대하는 게 득점 확률이 높을 것 같다"고 했다.
이 감독의 말이 정답이었던 걸까. 경기 후 만난 이 감독에게 곽빈 공략에 대해 묻자 그는 "1회에 그렇게까지 점수가 날 줄은 몰랐다. 우리 팀이 항상 곽빈을 상대로 스트라이크존 바깥 공에 많이 당했다. 오늘은 그 볼을 잘 참고, 스트라이크를 잘 쳐서 좋은 연결이 된 것 같다"고 웃었다.
이강철 감독의 자신감이 통한 것과 달리 이승엽 감독의 자신감은 어긋났다. 이 감독이 곽빈을 믿는 건 당연했다. 비록 이날은 패했으나 곽빈은 올 시즌 두산에서 유일하게 규정 이닝을 소화했고, 리그 공동 다승 1위인 15승도 수확했다. 그나마 선택지가 될 수 있던 조던 발라조빅은 9월 5경기 2패 평균자책점 6.63으로 흔들렸다. 결국 이승엽 감독은 막판 그를 포스트시즌에서 불펜으로 쓰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무너진 곽빈과 달리 발라조빅은 이날 완벽히 호투했다. 4점 차로 끌려가는 부담 적은 상황이라는 점을 고려해도 4이닝 동안 1피안타 6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해 KT 타선을 차갑게 식혔다.
이강철 감독도 혀를 내둘렀다. 이 감독은 "발라조빅을 오늘 처음 상대 투수로 만났는데, 저렇게 공이 좋은지 몰랐다. 선수들도 공이 좋다고 하더라"고 떠올렸다.
결과가 어쨌든 이승엽 감독의 곽빈 1차전 선택은 옳았다. 하지만 단기전은 결과가 모든 걸 지배한다. 이승엽 감독으로서는 씁쓸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을 성적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