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효 감독은 지난 21일 조호르 다룰 탁짐(말레이시아)과 2024~25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엘리트(ACLE) 리그 스테이지 3차전을 앞두고 홈구장 잔디 상태에 불만을 드러냈다.
광주는 애초 이 경기를 광주월드컵경기장에서 치르기로 했다. 하지만 AFC 감독관이 이 구장에서 치르기 어렵다고 판단해 AFC에 보고서를 제출, 경기장을 찾다 찾다 230㎞ 이상 떨어진 용인 미르스타디움을 택했다. 열악한 여건 탓에 원래 홈팬들의 열렬한 지지를 안고 뛸 기회를 뺏긴 것이다.
'미르스타디움 잔디가 광주의 플레이를 펼치기 좋은가'라는 질문을 받은 이정효 감독은 "광주 구장에 비하면 어디든 좋을 것 같다. 어디도 광주FC 구장보다 나쁜 구장은 없을 거로 생각한다. 오늘도 보니까 다른 구단 구장과 비교할 필요 없을 것 같다"고 답했다.
광주의 플레이를 구현하기 좋다는 간단한 답변만 할 수 있는 물음이었는데, 이정효 감독은 강한 어조로 홈구장의 현실을 말했다. 그간 이 감독이 뱉은 발언들을 고려하면, 그리 놀라운 답변은 아니다. 하지만 이 감독이 필요한 답변만 해도 되는 상황에서 강한 언사를 벌인 것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단순 불만이 아니다. 빠른 변화를 촉구한 것이다. 광주는 내달 27일 상하이 선화(중국)와 ACLE 리그 스테이지 5차전을 안방에서 치러야 한다. 그전까지 광주월드컵경기장이 정상 복구되지 않으면 또 한 번 임시 홈구장을 찾아야 하는 촌극이 벌어질 수 있다. 앞으로는 이런 사태가 두 번 다시 벌어지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도 내포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광주시체육회는 광주 팬들의 원성 속에 곧장 잔디 보수 작업에 들어갔다. 현재 광주월드컵경기장은 어느 정도 정상적인 형태의 구장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하지만 행정 난맥상이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과오를 재고하게 하는 일은 분명 필요했다.
이정효 감독은 마음속에 담아둘 이야기를 공식 석상에서 서슴지 않고 말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적어도 축구와 관련된 일에 한해서는 그렇다. 한국 정서상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질타받고 주변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리는 경향이 여전히 짙다. 많은 팀의 수장이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말을 아끼는 이유다. 그러나 '예스맨'만 있으면 변화는 없다. 이는 곧 발전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 한순간 솔직하지 못해 마음을 숨기면 문제는 곪아 터져서 더 커진다.
자기 축구를 한껏 펼치고 싶고 제자들의 발전을 최우선시하는 이정효 감독은 2022년 K리그2에 속한 광주를 이끌 때부터 자기를 방패막이 삼아가며 팀을 발전시켰다. 그간 한국 축구에 관한 민감한 질문을 받을 때도 그는 주저하지 않고 소신을 펼쳤다.
과감한 언사 덕에 '한국의 모리뉴'라는 별명을 가진 이정효 감독의 말은 실력이 뒷받침되기에 힘을 받는다. 힘 있는 감독의 말에 쉬쉬하던 일들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이 감독의 솔직한 발언 덕에 광주와 K리그, 나아가 한국 축구에까지 긍정적인 영향이 확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