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되면 후루룩~ 국으로 먹는 생선 있잖아요, 얼굴이 둥글하고 눈은 작으며 몸통은 납작한 생선이요. 입안에 넣으면 이게 살인가 푸딩인가 싶은. 주로 동해에서 아침 해장으로 먹는.”
이 정도 말하면, 이어서 이런 대답들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곰치.” “아니지 꼼치지.” “물곰이라 하지 않나?” “우리 동네는 물메기라고 하는데.” “미거지가 정답.” “잠뱅이 아니고?”
알아두어도 별로 쓸데가 없는 음식 이야기라고 여기에 연재되는 칼럼을 대충 읽으시는 독자 여러분, 오늘은 집중 좀 해주셔야 합니다. 맛칼럼니스트인 저도 수시로 익히지만 잘못 말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 내용인데, 이거 기억했다가 잘 써먹으면 한순간에 ‘박사급’ 대접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얼굴이 둥글하고 눈은 작으며 몸통은 납작한 이놈은 꼼치과 생선입니다. 이 꼼치과 생선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동해에서 잡히는 것은 미거지이고, 남해와 황해에서 잡히는 것은 꼼치입니다. 학술적인 분류 명칭은, 그러니까 미거지와 꼼치 이 둘뿐입니다. 동해에서 곰치 또는 물곰이라 부르는 것은 미거지입니다. 남해에서 미거지 또는 물메기, 또 황해에서 잠뱅이 또는 물잠뱅이 등으로 부르는 것은 꼼치입니다.
이 박사급 지식은 현장에서는 의미가 없습니다. 동해에 가서 “미거지국 주세요” 하면 “뭔 소리를 하는 거야” 하고 외계인 보듯이 할 것입니다. 남해와 황해에 가서 “꼼치국 주세요” 해도 마찬가지 대접을 받을 것입니다. 일단은 식당 간판에 적혀 있는 명칭대로 주문을 하시고, 이 박사급 지식은 일행에게 아는 척하는 용도로 써야 합니다.
박사급 지식을 뽐내다가 이런 질문을 받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미거지하고 꼼치는 맛이 달라?” 이건 정말 어려운 질문입니다. 미거지와 꼼치를 생김새로 구분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맛으로 구분한다는 것은 신의 경지의 일입니다.
저는 대충 이런 식으로 얼버무리고 맙니다. “미거지와 꼼치를 한 자리에서 비교하며 먹어본 적이 없어서 잘 몰라. 그런데 미거지든 꼼치든 말이야, 맛있게 먹으려면 전날 밤에 술을 잔뜩 마셔야 한다는 것은 똑같아.”
우리나라의 몇몇 물고기 이름은 혼돈 그 자체입니다. 지역민이 부르는 이름이 따로 있고 어류학에서 부르는 이름이 따로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같은 혼돈을 발생시킨 사람들이 미웠습니다. 현장에도 안 나가보고 이름을 붙였다고 비판했습니다.
요즘은 생각이 다릅니다. 헷갈리는 이름 덕에 오히려 그런 생선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만들어서, 최종에는 그 생선을 더 맛있어지게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말이 맛을 만드는 것이지요.
정약전은 '자산어보'에 꼼치과 생선을 해점어라는 이름으로 올려놓았습니다. 점어는 메기이니까, 해점어는 바다메기입니다. 물메기라는 명칭이 그때에도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해점어 아래에 미역어라고도 적어놓았는데, 미거지와 유사한 발음입니다. 미꾸라지처럼, 겉이 미끌미끌하니까 미거지라는 이름이 붙었을 것입니다.
“예전에는 못생기고 맛이 없어서 버렸다.” 이런 말을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만, 전혀 근거가 없습니다. 어민은 이럽니다. “그 맛있는 것을 왜 버려?” 근거가 없다고 정색할 것은 없습니다. 꼼치과 생선은 이런 말을 하면서 먹어야 더 맛있습니다.
제 고향에서는 미거지 또는 물메기라고 합니다만, 남해의 꼼치과 생선이니까 학술적 명칭은 꼼치가 맞습니다. 국으로 먹는데, 보통은 맑게 끓입니다. 이 생선만 맑게 끓이는 것이 아닙니다. 대구든 감생이든 뭐든 싱싱한 생선은 맑은 국으로 끓입니다.
동해에서는 곰치 또는 물곰이라고 합니다만, 학술적 명칭은 미거지가 맞겠지요. 여기서도 국으로 먹는데, 보통은 김치를 넣습니다. 김치가 들어간 꼼치과 생선의 국을 처음 대하였을 때에는 거부감이 들었습니다. 어릴 때에 먹었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고향을 떠난 지가 40년이 넘었습니다. 먼먼 고향에 갈 일보다 동해의 고성, 속초 등지에 갈 일이 더 많습니다. 이제는 김치가 든 꼼치과 생선의 국에 익숙해졌습니다. 양념이 적어 쨍한 맛이 나는 강원도 동해의 김치여서 맑고 깨끗한 꼼치과 생선과 잘 어울립니다.
권지예 기자 kwonjiye@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