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와 대한축구협회(KFA)를 탈바꿈하겠다는 허정무(69) 전 대전하나시티즌 이사장의 쇄신 의지는 분명했다. 다만 표심을 얻기 위해서는 공약을 실현할 구체적 계획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허정무 전 이사장은 지난 25일 기자회견을 열고 제55대 대한축구협회장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그는 지금보다 한국 축구가 국제무대에서 더 나은 성적을 거둘 발판을 마련하고, KFA에 공정한 시스템을 뿌리내리게 하겠다고 공언했다. ‘개혁’이 이날 기자회견의 골자였다.
특히 허정무 전 이사장은 현 KFA의 운영 방식을 비판하며 “나는 권위적인 것보다 발로 뛰고, 함께하는 것을 좋아한다. 내 의견을 내세우고 고집을 세우기보다 듣는 데 중심을 두고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간 정몽규 회장의 독단적인 운영 등에 반하는 방식으로 환멸 난 축구 팬들의 마음을 달랜다는 심산이었다.
정몽규 회장을 향한 대내외적 민심이 악화 일로를 걷고 있는 가운데, 허정무 전 이사장의 쇄신 의지는 팬들의 호응을 얻을 만하다. 실제 허 전 이사장이 출마를 알린 뒤 반응은 엇갈렸으나, 그를 지지하는 팬들도 더러 있었다. 내년부터 KFA를 이끌 한국 축구의 수장이 정 회장만 아니면 된다는 분위기가 짙게 깔린 것도 한몫했다.
팬심을 동력 삼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한축구협회장 선거인단은 KFA 대의원과 산하단체 임원, 지도자·선수·심판 등 축구인 약 200명으로 구성된다. 결국 축구계를 속속들이 아는 축구인들의 표심을 잡아야 한다는 뜻이다.
허정무 전 이사장이 출마 기자회견을 통해 이들의 마음을 얻었을지는 미지수다. 당선된 후 직접 책상에 앉아야 세태를 살피고 미래를 그릴 수 있겠지만, 구체적인 KFA 운영 방향과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 등이 다소 모호했던 탓이다. 공약을 뒷받침하는 근거 등을 보면 축구인으로 구성되는 유권자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했는가에는 물음표가 붙는다.
특히 허정무 전 이사장은 정몽규 회장보다 나은 점을 묻는 말에 “나는 유소년 축구부터 프로팀까지 현실을 안다. 한국 축구를 어떻게 발전시켜야 하는지 생각해 왔다”고 답했다. 경기인들이 가지는 강점은 누구나 알 수 있다. 어떤 점에서 회장직을 더 잘 수행할 수 있고, 한국 축구의 진일보를 어떤 방식으로 이끌지를 어필하는 게 최선의 답변으로 보였다.
허정무 전 이사장은 2012년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직을 끝으로 지도자 생활을 마치고, KFA 부회장, 프로축구연맹 부총재, 대전하나시티즌 이사장을 지냈다. 이때의 경험을 토대로 한국 축구의 문제를 지적하고 자신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그러나 로드맵은 아직 완벽히 형성되지 않은 듯했다.
KFA에서 사업을 펴기 위해서는 자금 조달이란 현실적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허정무 전 이사장은 과거 용인축구센터 건립을 떠올리며 “국회도 찾아다니고, 시에서 브리핑도 했다”고 전했다. 이 일이 한참 지난 현재는 장담할 수 없는 일이라 분명 와닿는 답변은 아니었다.
허정무 전 이사장의 출마는 정몽규 회장에 대항하는 첫 입후보자가 나왔다는 것 자체로 의미가 크다. 그러나 허 전 이사장이 당선되기 위해서는 조금 더 구체적이며 현실적인 복안이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