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인 걸 알면서도 끊어내지 못하는 관계가 있다. 다신 꼴도 보고 싫다며 난리 치다가 뒤돌아서면 사무치게 보고 싶어지는 그런 사랑. 블랙핑크 로제의 신곡 ‘톡시 틸 디 엔드’의 이야기다.
‘톡시 틸 디 엔드’는 로제가 지난 6일 발매한 첫 정규앨범 ‘로지’의 타이틀 곡이다. 로제는 앨범 발매 전 다수의 방송 및 인터뷰에서 “솔직한 내면을 이야기하고 싶었다”라고 강조했다. 뚜껑을 열어보니 생각보다 더 솔직하고 직설적이다.
“그냥 있는 그대로 말하자. 우리 관계는 처음부터 독이었어 / 넌 체스를 가장 좋아했지. 근데 체스 말 대신 내 마음을 갖고 놀았어 / 널 용서 못할 이유 수도 없이 많아. 티파니 반지 안 돌려준 것도 그렇고 / 마지막까지 서로를 망치는 우리”
‘톡시 틸 디 엔드’는 로제가 전 연인을 떠올리며 쓴 노래다. 로제의 일기장 같은 가사가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최정상급 인기를 자랑하는 아이돌이 이토록 진솔한 사랑 이야기라니. 사실 이런 ‘하트 브레이킹’ 서사는 해외 팝스타들이 자주 사용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다만 K팝 업계에선 막강한 팬덤을 지닌 가수가 자신의 노래에 전 연인을 언급하는 건 이례적이다. ‘톡시 틸 디 엔드’가 마냥 뻔한 사랑 노래가 아니라 로제가 K팝이란 굴레를 벗어나려 한 도전이라고 여겨지는 이유다. 이 곡은 15일 기준 멜론 ‘톱100’ 차트 7위, 벅스 실시간 1위, 플로 1020대 차트 2위를 기록하며 순항 중이다.
감각적인 뮤직비디오도 화제다. ‘톡시 틸 디 엔드’ 뮤직비디오는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영상미와 로제의 연기가 약 3분 동안 흘러나온다.
감독은 라메즈 실얀이다. 요절한 천재 래퍼 릴 피프의 ‘에브리바디스 에브리띵’ 뮤직비디오를 연출한 라메즈 실얀은 비싸고 운용이 까다로운 35mm 필름 촬영을 고집하기로도 유명한데, 로제의 ‘톡시 틸 디 엔드’ 뮤직비디오도 필름 카메라를 사용했다. 덕분에 2000년대로 돌아간 듯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극 중 로제의 연인으로 등장하는 에반 모크도 주목받고 있다. 그는 스케이트 보더이자 모델, 배우로 활동 중이며 미국 드라마 ‘가십걸 리부트’에서 아키 멘지스로 국내팬에 잘 알려져 있다. 에반 모크는 뮤직비디오에서 사랑스러우면서도 치명적인 그야말로 ‘톡시’ 같은 역할를 잘 소화했다는 평가다.
로제와 에반 모크의 짤막한 키스신도 등장한다. 앞서 ‘아파트 신드롬’을 일으킨 브루노 마스와도 뮤직비디오에서 귀여운 볼 뽀뽀를 했었던 로제. ‘톡시 틸 디 엔드’ 뮤직비디오가 공개되자 브루노 마스가 로제의 인스타그램에 “잠깐만, 저게 누구야?”라며 질투하는 댓글을 남겨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톡시 틸 디 엔드’ 뮤직비디오는 15일 기준 4158만 회 조회수를 기록중이며 유튜브 인기급상승에도 꾸준히 올라가고 있다.
다만 선공개 곡 ‘아파트’ 같이 로제에 신선한 모습을 기대했다면 ‘톡시 틸 디 엔드’가 조금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확실한 건 이 곡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공식 뮤직비디오 클립에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서로에게 독이 되는 관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걸 예술적으로 잘 표현했다”, “마주하고 인정하기 쉽지 않은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아 울림이 크다” 등 약 8만 개의 댓글이 달렸다.
글로벌 성적표 역시 로제의 인기를 증명해 준다. 정규 앨범 ‘로지’는 13일 기준 영국 오피셜 앨범 톱100 최신 차트 4위로 데뷔했다. 해당 차트에 들어온 K팝 여성 솔로 가수는 로제가 처음이다. ‘톡식 틸 디 엔드’는 영국 오피셜 싱글 톱100에는 72위로 들어왔다. 선공개 곡 ‘아파트’는 이 차트에 4위로 처음 이름을 올린 뒤 2위까지 올랐으며, 이후 5주 연속 3위, 최근 4위를 기록하는 등 최상위권에 머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