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발 투수의 구원 등판 자청, '투혼'이라는 이야기를 꺼내자 KT 위즈 투수 엔마누엘 데 헤이수스(베네수엘라)는 미소를 지었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 아리엘 후라도(삼성 라이온즈·파나마)도 '투혼의 휴식' 이야기를 했다. 이를 들은 헤이수스는 "우리 중남미 선수들의 열정과 남다른 희생정신이 아닐까 생각한다"라며 웃었다.
헤이수스는 지난달 31일 수원 KIA 타이거즈전에서 6회 초 깜짝 구원 등판했다. 마운드에 오른 헤이수스는 선두타자 볼넷과 안타로 무사 1,3루 위기를 맞았지만 이후 세 타자를 범타 처리하며 실점 없이 이닝을 마쳤다.
지난해 키움 히어로즈에서부터 현재 KT까지 선발 마운드에만 올랐던 그는 이날 KBO리그 처음으로 불펜 투수로 등판했다.
24일 오후 수원 KT위즈파크에서 열린 2025 프로야구 LG와 KT 경기. KT가 5-0 승리했다. 경기종료후 승리투수가 된 헤이수스가 미소 짓고 있다. 수원=정시종 기자 capa@edaily.co.kr /2025.06.24.
사연이 있었다. 원래 이날 헤이수스는 다음 선발 등판을 위한 불펜 투구가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경기 직전 내린 비로 불펜 투구를 할 수 없었다. 그러자 헤이수스가 투수 코치에게 요청했다. "오늘 경기에 불펜 등판하고 싶다"라고 자청했다. 불펜 피칭을 실전 등판으로 대체하겠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타자 없이 던지는 불펜 피칭과 실점으로 직결되는 실전 투구는 다르다. 정신적 압박감은 물론, 피로도가 상당하다.
그러나 헤이수스가 먼저 나섰다. 이강철 KT 감독은 "마침 그날 상대 타자들이 왼손이 많아서 (좌완) 헤이수스가 나가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지난 2일 만난 헤이수스는 "지금 여러 팀이 포스트시즌을 위해 싸우고 있지 않나. 당시 내 몸 상태가 좋았고, 한 이닝 정도는 팀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자원했다. 다행히 결과도 좋게 나와서 기쁘다"라고 전했다.
2024 KBO리그 프로야구 키움히어로즈와 두산베어스의 경기가 10일 오후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렸다. 7대 1로 승리한 후라도, 헤이수스 등 키움 선수들이 경기 종료 후 관중에 인사하고 들어가고 있다. 고척=김민규 기자 mgkim1@edaily.co.kr /2024.09.10/
비슷한 시기, 그의 '전 키움 동료' 후라도가 가을야구를 위해 휴식을 자청했다는 에피소드가 공개돼 화제를 모았다. 현재 26경기 171⅓이닝을 소화한 후라도는 200이닝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었는데, 휴식을 자청해 지난달 31일 1군에서 말소됐다. 개인적으로 한 시즌에 200이닝 이상을 던져본 적이 없어 체력 관리를 위해 쉬겠다고 한 것이다. 대신 가을야구에서 몇 이닝이고 던지겠다는 투혼을 예고했다. 중요한 시기를 앞둔 일보후퇴였다.
이를 들은 헤이수스는 "후라도도 나도 현재 가을야구를 향한 열정이 크다. 팀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면 개인보단 팀의 한국시리즈(KS) 진출, 우승만을 생각하며 던지는 건 당연하다. 평소에 후라도와 많이 이야기를 하는데, 팀을 위해 뛰려는 의지가 서로 강하다"라고 말했다.
삼성 후라도. 삼성 제공
헤이수스의 불펜 등판을 본 이강철 감독은 그의 포스트시즌 불펜 등판을 시사하기도 했다. 왼손 불펜 투수가 많이 없는 팀 사정상, 헤이수스의 불펜 투입은 '가을야구 승부수'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이에 헤이수스는 "팀에서 내가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해 준비할 것이다"라며 투혼을 예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