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호 감독 (사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이번엔 대중성이 없을 수 있단 감안은 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와서요. ‘내가 대중성이 있는 사람인가?’하는 생각을 요즘 조금 하게 되네요. (웃음).”
독창적인 판타지와 뾰족한 문제의식으로 자신만의 세계관 ‘연니버스’를 만든 연상호 감독이 본질에 집중한 초저예산 영화 ‘얼굴’의 흥행에 이 같은 소감을 밝혔다.
최근 일간스포츠와 만난 그는 제작비 2억 원을 들여 20명의 소수 정예 제작진과 13회차의 촬영으로 만든 이번 작업에 대해 “중독될 것 같았다. 영원히 상업 영화로 못 돌아갈 것 같을 정도”라며 “배우, 스태프들과 동아리 활동하는 것처럼 우리끼리 만들어 내는 과정이 재밌었다”고 떠올렸다.
지난 11일 개봉한 ‘얼굴’은 앞을 못 보지만 전각 분야의 장인으로 거듭난 임영규(권해효)와 살아가던 아들 임동환(박정민)이 40년간 묻혀 있던 어머니 정영희(신현빈)의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를 파헤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지난 21일까지 7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 순항 중이다.
연 감독의 첫 상업영화이자 천만 영예를 안긴 ‘부산행’보다도 먼저 구상된 작품이지만, 투자 과정이 녹록지 않아 지난 2018년 그래픽 노벨로 먼저 출간됐다. 연 감독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렇다’는 느낌으로 작업하고 그쳤던 작품인데 어느 날 비슷한 에피소드를 다룬 ‘그것이 알고싶다’를 아내와 보게 됐다”며 “이것처럼 ‘꼭 돈이 없어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면서 다소 충동적으로 도전했는데 하길 잘한 것 같다”고 말했다.
당초 막연히 1억 원이면 충분할 거라 생각했으나, 예산 산정으로 도출된 최소 금액이 2억 원이었다고 했다. 이는 여느 독립예술 영화 제작비보다도 적은 액수다. ‘노개런티’를 결정한 박정민은 물론, 모든 배우와 제작진이 업계 일반 수준을 충족하는 최저임금에 일정 지분을 나눠 갖는 러닝 개런티 형식으로 인건비를 받았다. 연 감독은 “사실 영화 예산의 가장 큰 부분은 인건비 보다 회차”라며 2~3일에 불과한 13회차로 압축해 진행했다고 강조했다.
“저예산으로 만든 가장 큰 계기는 ‘재밌는 영화를 만든다는 건 무엇인가’였어요. 유튜브나 재연 드라마는 적은 예산으로 만들어도 충분히 재밌잖아요. 그들과 경쟁하는 콘텐츠 창작자로서 한번 창피함이나 두려움을 각오하고 해보자는 게 최초 동기였어요.”
연상호 감독 (사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래픽 노벨과 달리 박정민이 시각장애 예술인인 젊은 임영규와 그의 아들 임동환을 1인 2역으로 표현하며 깊이를 더했다. 또 ‘1970년대 경제 고도 발전에서 잊혀진 것’이라는 메시지를 품어 ‘얼굴’이 등장하지 않는 인물, 정영희도 실험적인 촬영으로 담아내 차별화를 만들었다.
연 감독은 “(특히)정영희는 누구의 얼굴도 아닌 어딘가 존재할 것 같은 얼굴이길 바랐다. ‘그래서 어떤 얼굴인데’라는 질문도 많이 받았다”며 “연출적으로도 정영희의 얼굴이 등장하지 않는 시선각을 고민했고 신현빈 배우도 손, 어깨, 목소리를 사용해 컨셉추얼하게 접근했다”고 설명했다.
“투자배급사들이 ‘우리도 해보고 싶다’며 이런 형태에 관심을 가질 수 있을 정도의 성과가 났으면 해요.”
‘얼굴’은 적은 예산에도 메시지와 연출, 배우들의 호연까지 삼박자를 갖춘 완성도로 호평받고 있다. 제50회 토론토국제영화제에 초청돼 현지 영화 팬들과 평단의 뜨거운 반응을 빚었고, 개봉 전 해외 157개국에 선 판매됐다. 제작비가 낮다 보니 개봉 전 이미 순제작비를 넘겼다는 설명이다.
“사실 모든 영화를 적은 회차로 촬영할 순 없죠. 그래도 한국 영화가 다른 형태로 진화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 모델이 정답이 될 수 없어도 가능성 정도는 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