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이커머스 산업의 ‘초격전지’입니다. 쿠팡·네이버쇼핑·11번가·옥션·SSG닷컴·롯데온까지 규모와 영향력이 큰 이커머스 플랫폼만 10여 개에 이릅니다. 여기에 패션과 식자재 중심 버티컬 플랫폼까지 합친다면 아마 그 숫자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일 것입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국내 이커머스 업계는 매일이 전쟁터입니다. ‘국내 최저가 당일 배송’은 이제 당연한 서비스가 됐습니다. 수많은 플랫폼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소비자들은 더 이상 뻔한 조건에 구매 버튼을 누르지 않습니다.
아마도 이 땅의 이커머스 업계 종사자들은 1년 365일, 매 순간이 살얼음판을 걷는 심경일 것입니다. 일간스포츠가 이커머스 업계 종사자를 대상으로 대한민국 플랫폼의 현재와 미래에 관해 질문 했습니다. 국내 내로라하는 플랫폼들의 홍보 담당 10명이 주 대상이었습니다.
지난 2년은 '쿠팡'과 '무신사'의 시대
국내 이커머스 종사자들은 '지난 2년 간 최고의 활약을 한 이커머스 플랫폼이 어디라고 보는가'라는 질문에 압도적인 비율로 쿠팡을 꼽았습니다. 10명 중 7명이 쿠팡이 지난 2년간 눈에 띄는 성장을 거듭했다고 평가했습니다.
그 뒤를 이은 플랫폼은 무신사로, 총 3명이 손을 들며 쿠팡의 독주를 막았습니다.
쿠팡을 선정한 응답자들은 비슷한 듯 다른 이유를 밝혔습니다. 대부분 “누가 봐도 확실한 매출 볼륨을 일으켰고 흑자로 돌아섰다”, “아웃스탠딩한 실적이 대변한다”, “매출 신장세가 상당했다”며 압도적인 실적을 거론했습니다.
닮은 듯 다른 답변도 있었습니다. 한 응답자는 쿠팡이 “확실하게 전략을 갖고 사업 영역을 넓혀가는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다들 우려했지만, 가능성이 있다고 믿으면 밀고 나간다”고 분석했습니다.
또 다른 응답자는 “초기에는 식자재와 생활용품에 치중한 버티컬 수준이었는데, 이제는 뷰티와 명품까지 확대했다. 더 이상 다른 플랫폼이 갈 곳이 없다"고도 했습니다.
무신사를 꼽은 응답자는 패션계 독보적인 위상을 거론했습니다. 한 응답자는 “패션 플랫폼 중 따라올 수 없는 1위인데다, 글로벌 진출과 사업 다각화를 통해 힘이 커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무신사의 약점이었던 여성 고객층이 비약적으로 늘어난 것에 점수를 주는 응답자도 있었습니다.
5년 후 가장 위협적 성장은 '네이버'
이커머스 업계 관계자 10명은 모두 5년의 뒤에도 쿠팡과 무신사의 우상향 곡선과 영향력은 큰 이변 없이 이어질 것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그러나 '성장세' 자체로만 본다면 판도가 사뭇 달라질 것이라는 진단도 적지 않았습니다. 특히 10명 중 4명은 지난해부터 쇼핑 카테고리에 고삐를 쥐기 시작한 네이버가 향후 5년 동안 가장 위협적인 성장률을 달성할 것으로 보았습니다. 실제로 네이버는 그동안 판매자 중심의 기술, 정책, 교육 등 친판매자 중심 전략에서 더 나아가 빅브랜드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통해 단골 고객을 강화 중입니다.
네이버에 표를 던진 한 관계자는 "포털사이트 지위를 이용해 쇼핑 영역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무수히 많다. 다른 플랫폼이 신규 가입자를 찾을 때, 네이버는 이미 기존 유저들을 확보한 상태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이밖에도 "다양성이 중요한 미래 시대의 요구를 받아줄 수 있는 곳은 네이버"라는 답변도 있었습니다.
사실, 이번 질문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기타 답변이 아닐까 합니다. 네이버와 무신사, 쿠팡 외에도 다이소와 컬리, 지그재그도 표를 받았습니다. 한 관계자는 "통합 온라인 채널 '다이소몰' 연매출이 1000억원을 바라보고 있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다이소몰의 올해(1월~8월) 월평균 MAU는 390만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2024년 1월~8월)보다 68% 성장했습니다. 특히 지난 8월 MAU는 437만명을 기록하며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습니다.
'강남권 고급' 이미지를 갖고 있는 컬리는 최근 네이버와 협업으로 4000만 월간활성이용자(MAU)를 흡수하며 역량을 확대 중입니다. 카카오스타일의 패션뷰티 플랫폼 지그재그는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큐레이션으로 지난해 연매출 2000억 고지를 넘겼습니다. 차고 넘치는 이커머스 플랫폼의 홍수 속에서도 각자 나름의 '필살기'를 하나씩 품고 있는 곳들이었습니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것
그렇다면 이커머스 업계 종사자들은 플랫폼이 성장하는 데 가장 중요한 조건을 무엇으로 보고 있을까요.
10명 중 총 5명의 응답자는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브랜딩을 꼽았습니다. “자기만의 아이덴티티가 있어야 선택받는다. 플랫폼명만 떠올려도 연상되는 이미지가 확실해야 한다”, “아무리 투자를 많이 해도 자기들만의 색깔이 있는 곳이어야 선택된다”, “가격과 구성을 맞출 수 있어도 브랜딩은 그렇지 않다. 소비자가 들어와서 돈을 쓰고 싶은 브랜드의 색이 있어야 한다”, “이커머스 플랫폼이 너무 많기 때문에 브랜딩이 잘된 곳만 살아남는다”는 의견이었습니다.
지금은 질보다 양이라고 본 응답자도 있었습니다. “결국은 투자”, “아직은 공급으로 성장할 시기”라는 것이지요.
부가적으로 “어떤 상황에서 찾아와서 지갑을 여는 충성 고객층”, “유통 경기가 좋아야 이커머스도 잘된다. 외부적으로 경기 활성화가 돼야 한다”, “안정적인 자본력”, “셀렉션 능력”이란 답도 나왔습니다.
성장을 막는 걸림돌로는 플랫폼 간 출혈경쟁이 가장 많이 거론됐습니다. 이른바 '티메프' 사태가 그랬듯, 저가 출혈 마케팅과 경쟁으로 모두가 어려워 질 수 있다는 우려입니다. "브랜딩력도 자본력도 없는 좀비상태의 소규모 이커머스"들이 플랫폼 과다 경쟁을 초래한다는 것입니다.
정부의 규제를 족쇄로 보기도 했습니다. 정부는 일부 플랫폼 기업의 독과점을 막기 위해 온라인 플랫폼 독과점규제법과 거래공정화법인 '온플법'을 추진 중입니다. 이번 설문에 참여한 이커머스 업계 관계자들은 "기존에 이어 추가로 2~3중을 더 규제해 성장 동력을 꺾고 있다" "진짜 강자에게는 강하지 못한 공정하지 않은 공정거래위원회"라고 쓴소리를 했습니다.
갈수록 업황이 어려워지지만 돌파구는 있다는 희망은 버리지 않았습니다. "상장" "해외진출" "다양한 셀러 확보" "확고한 브랜딩"을 통해 지속가능한 성장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전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