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심은경, 김정현 (사진= ‘대한민국에서 건물주 되는 법’, ‘세이렌’ 캡처) 서늘하다. ‘초점’ 없는 눈으로 장악한다. 배우 심은경과 김정현이 각각 tvN 토일드라마 ‘대한민국에서 건물주 되는 법’, 월화드라마 ‘세이렌’에서 차갑게 식은 얼굴로 돌아왔다. 장르물의 핵심 축인 ‘악역’이라는 공통점 속에 두 사람은 극의 긴장과 흐름을 단단히 틀어쥐었다.
월화는 김정현이다. 그는 ‘세이렌’에서 베일에 싸인 재력가 백준범 역을 맡았다. “사람은 숫자로만 움직이진 않잖아요?”라는 대사처럼 감정에 충실한 인물이다. 연기의 정점은 지난 5회였다. 마음에 두고 있었던 한설아(박민영)와 차우석(위하준)의 키스를 목격한 뒤, 혼자 소파에 앉아 와인을 마시며 서서히 굳어가는 표정은 그야말로 압권. 미세하게 떨리는 안면 근육과 호흡만으로 백준범에 대한 궁금증을 높였다. 해당 모습이 담긴 유튜브 클립은 공개 3일만에 조회수 10만회에 육박하며 “김정현 때문에 본다”라는 평가를 끌어냈다. 사진=유튜브 채널 ‘tvN DRAMA’ 캡처 김정현은 소속사를 통해 “백준범은 상황과 상대에 따라 말투와 태도의 온도가 크게 달라지는 인물로 그 변화가 자연스럽게 드러나도록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며 “때로는 냉정하게 상대를 대하다가도 예상치 못한 순간에 따뜻한 면을 보이기 때문에 이러한 온도 차이를 인물의 내면과 상황에 맞게 조율하고자 했다”고 연기 주안점을 밝혔다.
주말은 심은경이 책임진다. 그는 ‘대한민국에서 건물주 되는 법’(이하 ‘건물주’)를 통해 리얼캐피탈의 실무자 요나 역으로 첫 악역을 맡았다. 등장부터 강렬했다. 피투성이가 된 남성이 “살려만 달라”고 애원하자, 웃으면서 그 건물자체를 폭파시켜버린다. ‘세이렌’ 김정현과 공통점이 있다면 바로 ‘양면성’이다. 좋아하는 여인에게는 그 누구보다 스윗한 눈빛과 말투를 보여주는 김정현처럼 심은경은 타인의 목숨을 위협하다가도 길가의 달팽이를 소중히 보살피는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인다. 사진=유튜브 채널 ‘tvN DRAMA’ 캡처 심은경에게 ‘건물주’는 6년 만의 한국 드라마 복귀작이다. “촬영장에 가는 게 설레었다”고 스스로 말할 만큼 애정이 깊다. 그래서일까. 장면 곳곳에 디테일이 숨어 있다. 대표적인 건 1화 속 기수종(하정우)에게 건물 점유를 압박하는 통화 장면. 이때 요나의 오른쪽 셔츠 커퍼스에 핏발 선 기괴한 눈동자 장식이 눈길을 끈다. 이는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에서 가져온 레퍼런스로 심은경이 직접 제안했다. 눈가의 붉은 음영역시 “섬뜩하면서도 아이 같은 면을 동시에 강조하고 싶었다”는 심은경의 열정이 들어간 디테일이다.
‘건물주’와 ‘세이렌’ 모두 평균 시청률은 닐슨코리아 전국 유료 가구 기준 4%대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김정현의 정교한 감정 설계와 심은경의 기괴한 디테일은 이미 수치 이상의 몰입감을 선사하고 있다. 화면을 장악한 두 배우의 서늘한 질주가 지지부진한 시청률 곡선마저 돌려세울 수 있을지가 관전 포인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