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공개된 넷플릭스 리미티드 시리즈 ‘원더풀스’(The WONDERfools)는 1999년 종말론이 득세하던 세기말, 우연히 초능력을 얻게 된 해성시의 루저들, 채니와 친구들이 평화를 위협하는 빌런에 맞서 자신과 세상을 바꿔가는 이야기입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유인식 감독과 배우 박은빈, 그리고 최대훈, 임성재가 다시 한번 뭉쳐 큰 기대를 모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극중 은채니(박은빈)는 시간적 배경이 되는 1999년 기준 27세로, 선천적 심장 이상으로 인해 언제 죽을지 모르는 내일이 없는 끝이 뻔한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 당시 세기 말 종말을 외치며 지구가 곧 망하니 심판 전에 영생을 얻으라는 종교인에게 종말 전에 심판을 해주거나 종말을 당길 수 없냐고 윽박지르는 독특한 캐릭터로 극의 포문을 엽니다.
‘원더풀스’의 첫 장면에 흐르는 음악은 라디오헤드(Radiohead)의 명곡 ‘크립’(Creep)입니다. 통상 드라마 첫 장면에 맞춰 삽입되는 음악은 작품의 시대적 배경과 분위기, 그리고 극중 인물의 이미지를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유인식 감독의 인터뷰 내용에 의하면, ‘크립’은 90년대를 휩쓴 곡으로 1999년 세기말 배경을 즉시 체감시키는 노래이며, ‘I’m a creep / I’m a weirdo / I don’t belong here’의 가사로 대표되는 소외감·아웃사이더 정서는 은채니(박은빈)를 포함한 ‘원더풀스’ 인물들의 정서와도 긴밀히 맞닿아 있습니다.
‘원더풀스’의 음악 저작권 클리어런스 업무는 필자가 운영하는 (주)메이저세븐이엔엠이 진행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크립’을 작품에 삽입하는 과정은 오랜 시간 협의를 거쳐야 했을 만큼 쉽지 않은 작업이었습니다.
사실 이 곡은 2019년 JTBC ‘슈퍼밴드’의 커버 음원 발매 당시에도 클리어런스를 진행해 본 경험이 있어, 저작자 정보나 협의 루트 자체는 비교적 익숙한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경연을 통해 아일(I'll), 홍진호, 김형우, 하현상이 원곡의 멜로디와 화성, 가사를 바탕으로 새롭게 연주하고 노래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즉 원곡의 저작권만 해결하면 되었을 뿐, 라디오헤드의 원반 음원(마스터권)을 사용하는 문제는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번 ‘원더풀스’에서는 은채니(박은빈)가 재생한 CD플레이어를 통해 전 세계인들이 기억하는 바로 그 라디오헤드의 연주와 목소리가 흘러나와야 했습니다. 따라서 곡 자체에 대한 저작권과 함께 해당 녹음물에 대한 권리, ‘저작인접권(마스터권)’까지 권리 협의 및 사용 승인을 취득해야 했습니다.
◇ 악보에서 음반으로, 음악이 기록된 ‘몸’이 바뀌다
음악은 본질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술입니다. 창작자의 머릿속에 떠오른 멜로디와 가사, 코드(Chord) 등의 구체적인 음악적 표현은 어딘가에 ‘기록’되어야 비로소 저작물의 형태를 갖추게 됩니다. 녹음 기술이 없던 시절, 음악을 기록하고 보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종이에 적는 것뿐이었습니다. 당시 음악의 ‘몸’은 곧 ‘악보’였던 셈입니다. 베토벤의 교향곡 제9번 ‘합창’의 자필 악보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될 정도로 높은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독일 음악가 루이 슐뢰서(1800~1886)의 회고록에서 베토벤은 “작품의 전체 모습이 머릿속에서 분명해지면, 남는 것은 그것을 악보로 옮겨 적는 일뿐”이라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베토벤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악상만으로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지만, ‘악보’라는 일정한 형식을 통해 시각화됨으로써 비로소 보호받을 수 있는 ‘저작물’로 성립되는 셈입니다. 이는 저작물이란 머릿속의 구상이나 아이디어가 아니라, 타인이 지각할 수 있도록 외부에 표현된 것이어야 한다는 한국저작권위원회의 설명과도 일치합니다.
이처럼 당시 음악의 권리와 거래는 ‘소리’가 아닌 ‘기록된 악보’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음악이 청각 예술임에도 불구하고, 그 권리와 거래는 ‘시각적 기록물’을 매개로 성립되었다는 점이 흥미로운 아이러니입니다. 실제로 베토벤이 작품을 완성하면, 출판사는 악보 인쇄·판매권을 베토벤으로부터 양도받아 악보집을 출간했습니다. 베토벤은 대가를 일시에 지급받는 방식으로 원고나 필사본을 넘겼으며, 특정 의뢰자(발주자)가 있는 곡은 그들에게 독점적 우선권을 부여하기도 했습니다. 일례로 현악 5중주(Op. 29)는 프리스 백작의 의뢰로 작곡되어, 한동안 백작의 단독 권리 아래 묶여 있었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 기록 기술의 발달, 함께 늘어난 권리
베토벤 사후 소리를 기록하는 녹음 기술과 재생 장치가 발명되면서, 음악의 ‘몸’은 다시 한번 변화를 맞이했습니다. 음악이 악보라는 한계를 넘어 지금처럼 음반과 음원의 형태로 고정·유통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음악 산업이 발전함에 따라 음반사와 음반 제작자가 등장했고, 이들이 음반을 기획하고 제작비를 부담하여 녹음을 진행하는 관행이 자리 잡았습니다. 이에 따라 녹음물 자체에 대한 권리인 ‘마스터권’은 음반사나 음반제작자가 보유하게 됩니다. 오늘날 음악 시장에서 악곡과 가사에 대한 저작권뿐만 아니라, 저작인접권(마스터권)의 중요성이 이토록 대두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다만 이 마스터권이 언제나 최초 제작자에게만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닙니다. 권리의 양도나 매각을 통해 주인이 바뀌는 경우가 빈번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음악 저작권 클리어런스는 단순히 법 조문을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누구에게 어떤 권리가 있는가’를 정확히 파악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원더풀스’에서 ‘크립’을 사용하기 위해서도 이처럼 마스터권을 보유한 실제 권리자를 수소문해야 했습니다. 권리 소유주를 확인한 뒤에는 작품의 성격과 장면의 맥락을 설명하고, 어떤 순간에 어떤 방식으로 곡이 노출되는지, 왜 반드시 이 음악이어야만 하는지를 정리해 전달하며 설득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여러 차례의 논의와 수개월에 걸친 검토, 그리고 최종 계약 체결로 이어지는 천신만고 끝에 비로소 ‘크립’은 ‘원더풀스’의 첫 장면을 장식할 수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원더풀스’ 속 ‘크립’은 단순한 삽입곡을 넘어, 작품이 관객에게 건네는 첫인상이자 소외된 이들의 정서를 대변하는 강렬한 서문이 되었습니다. 악보 위에 적힌 권리와 음반 속에 고정된 권리는 엄연히 다릅니다. 그 차이를 명확히 구별하고 필요한 권리를 끝까지 확보해내는 일. 그것은 한 작품의 시대를 열고, 인물의 정서를 열고, 이야기의 문을 여는 가장 첫 번째 저작권 실무입니다.
김지욱 ㈜메이저세븐이엔엠 대표 김지욱 메이저세븐이엔엠 대표
▶ 저자소개=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 석사. 현재 (주)메이저세븐이엔엠의 대표로 음악 저작권과 콘텐츠 현장에서의 음악 저작권 관련 업무 및 자문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JTBC ‘싱어게인’, 넷플릭스 ‘은중과 상연’, tvN ‘태풍상사’, ‘폭군의 셰프’, SBS ‘우리들의 발라드’, Mnet ‘보이즈플래닛’ 등 다수 프로그램 및 콘텐츠의 음악 저작권 관리 업무를 맡아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