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하이니티 X 곽재선 문화재단 최우수 당선작] 반항의 향 ➅잘못된 열망
박지효 기자
6. 잘못된 열망
도시 중심으로 이동하니 서로 높이 싸움을 하듯 수없이 많은 고층 건물이 세워져 있었다. 저 멀리 있는데도 불구하고 눈에 또렷이 들어오는 클록터 본사 건물이 껄끄러웠다. 도시 중심이라면 어디에서든 보일 만큼 거대해서 지도가 필요 없었다. 회장이라는 사람이 왜 찾아오는 길을 알려주지 않았는지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하긴, 도시에 거주하는 이들은 클록터를 찬양할 테니 그만큼 크게 지었겠지. 도시의 자부심이 곧 클록터니까.
“이모션 사이클이 처음 출시되었을 때는 학부모들을 노렸죠?”
“아무래도 그렇지. 아마 기획 의도가 사춘기 청소년들의 감정을 제어해 공부 효율을 높인다, 그런 거였을 거야.”
이담이 지겹다는 표정을 지으며 비아냥거렸다. 그의 장난스러운 모습에 긴장이 조금은 잦아들었다.
인도를 걸을 때마다 마주치는 사람들은 다른 세기의 인류 같았다. 모두 경직된 표정에 비슷한 걸음걸이. 로봇…. 같달까. 내가 그들을 따라 몸을 굳히자, 이담이 속삭였다.
“굳이 연기 안 해도 돼. 여기 사람들은 남한테 관심 없거든. 클록터 내부에서만 조심해.”
“관심이 없다고요? 신고 안 해요?”
내 말에 그가 웃으며 답했다.
“학생들의 공부 효율. 학업 능력 향상을 노리고 시작했던 사업 규모가 커져서 직장인들도 이모션 사이클을 찾았지. 일의 효율을 늘려야 돈을 많이 벌 수 있었고, 어느새 업계 대부분에서 일하려면 이모션 사이클 시술이 필수적이었어. 좋은 기업들은 빠릿빠릿한 일 처리를 원하는 데다 이모션 사이클이 상용화된 사회에서 일반인으로 살아가기에는 무리가 있었거든. 잡생각이나 개인적인 감정에 휘둘려 삐끗했다가는 돈 몇백이 날아가니까. 자연스레 이모션 사이클은 여러 방면의 효율에 최대한 초점을 맞추어 나갔고, 나 살기 바빠진 사회에서 남들을 신경 쓸 여력은 없었던 거겠지. 클록터가 일부러 그런 기능을 추가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린아이들도 예방 주사처럼 시술하나요?”
“그럴 거야. 많은 애들이 초등학교 입학 전에 시작하지. 안 그러면 눈초리가 따가울 테니까.”
어쨌든 이 사회는 미쳤어. 그렇게 말하는 이담의 눈빛이 어딘가 모르게 공허해 보였다. 이미 커질 대로 커진 이 판을 내가 뒤집을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 같았다. 도망치고 싶어도 내게는 방법이 없었다. 뒤를 바라보며 후회하기는 늦었다. 배서화, 너 때문에. 네가 이상한 말만 하지 않았더라도 나는 겁먹고 돌아갔을 거야. 하지만 네가 그런 이상, 내가 도망칠 수 없잖아.
먹먹한 마음에 한눈 팔린 사이 이담이 무언가를 손에 들고 내게 다가왔다. 꽃잎 몇 개가 더럽혀진 데이지 한 송이였다. 이담은 말없이 내 팔목을 가져가 데이지를 묶어 주었다. 왕년에 많이 묶었다, 예쁘지 않냐는 중얼거림이 하찮았다. 줄기가 물러 터져서 물관 속 수분이 손목을 타고 방울방울 떨어졌다. 어디서 따온 건지….
“이류야!”
쓸데없이 화창한 뒷마당 햇살에 눈살이 절로 찌푸려진다. 노곤한 기분에 잠이 쏟아지려던 찰나 휘연이 말을 걸어온다. 손에 무언가 쥐고 있다. 등을 기댄 벽돌 담장이 거칠어서 피부가 아팠다. 자세를 고쳐 앉고 손바닥으로 눈 위를 가린 후에야 두 손에 꼭 쥔 물체를 바라볼 수 있었다.
“데이지꽃?”
“응! 선물. 선생님한테 허락받고 꺾어왔다?”
해맑게 건네는 선물을 나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내 손으로 데이지가 옮겨지려던 순간 꽃잎 위의 작은 개미가 보였다. 내가 기겁하면서 몸을 움츠리니 휘연이가 개미를 떼어 바닥에 내려주었다. 스스럼없이 곤충을 만지는 모습이 신기했다. 휘연이 건넨 데이지를 손에 쥔 채 조용히 대화를 나누었다.
“꽃이 좋아?”
“꽃보다는 꽃말이 좋거든. 꽃말이 뭔지 알아? 꽃말.”
“꽃에 의미 붙인 거 아니야?”
휘연이는 뭐가 그리 재밌는지 생글생글 웃으며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자그마한 정수리에서 얕은 온기가 느껴졌다. 더위를 타나 보다.
“맞아! 되게 멋진 거 많거든. 막, 진지하고 어른 같아. 그거 꽃말이 뭐게?”
내 손에 들린 하얀 데이지를 바라보았다. 어휘가 부족한지라 잘 생각나지 않았다.
“사랑이나 행복, 그런 걸까나.”
휘연이가 틀렸다며 데이지를 도로 뺏어갔다. 나름 맘에 들었던 참인데 뺏기니 심술이 났다. 맞힐 때까지 돌려주지 않을 거냐는 물음에도 대답이 없었다. 휘연이의 말을 기다리며 여러 빛깔의 구름이 뒤섞인 이상한 하늘을 바라보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꿍얼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휘연이가 꽃을 내 귀에 꽂으며 또박또박 외쳤다.
“희망!”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손가락 끝에 닿는 축축한 감각은 달갑지 않았다. 거친 아스팔트 표면에 닿았다가 튀어 오른 빗방울은 금세 내 옷자락을 적셨다. 이담이 옆에서 무언가 설명하고 있었다. 뭐지, 나 지금 걸으면서 졸은 건가.
“꿈이라도 꿨어? 졸려서 그래?”
“아뇨. 뭐라고 하셨죠?”
“집중 안 하지. 우산이나 사서 갑시다. 이따 다시 말해줄 테니까.”
비를 피해 편의점으로 급히 들어갔다. 투명 우산 하나를 집은 이담은 내게 음료 하나를 가져오라 말했다. 딱히 마시고픈 게 없지만 뭐라도 얻어먹고 싶은 마음에 아메리카노를 골랐다. 이담이 눈썹을 잠시 꿈틀거리더니 계산했다.
“우산 하나만 샀어요?”
“크기가 큰데 뭐. 요즘 우산도 비싸.”
비 맞기 싫으면 잔말 말고 들어오라는 그의 말을 수긍했다. 이담의 왼손에는 딸기 우유가 들려있었다. 무언가 이질적인 조합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딸기 우유를 한 모금 빨아들이는 이담의 모습을 촬영했다. 그가 인상을 찌푸리고는 뭐하냐고 물었다.
“그냥 웃겨서요.”
“네가 더 웃기거든. 웬 커피? 어른 놀이 하네. 카페인 안 좋거든.”
“사람 머리 막 때리지 마시죠. 딸기 우유에 들어가는 설탕도 안 좋거든요.”
계속되는 말싸움에 김빠지는 웃음을 지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바닥을 밟을 때마다 바지 밑단이 축축해졌다. 공기는 그새 습해져 눅눅했다. 건물 창문 곳곳의 새하얀 불빛이 물웅덩이에 비쳤다. 아까의 알록달록하고 불량한 거리와 대비되었다. 이 도시에서는 색조차 금지되는 걸까. 무거운 신발 밑창을 질질 끌며 아스팔트를 밟았다.
“그나저나 휘연이랑 아는 사이에요?”
“알지. 서로 아는 건 아니고 나만. 에이스야. 일 처리 빠릿빠릿하고 똑똑해서. 소속은 모르겠지만 다른 부서에서도 유명해.”
“에이스?”
기억 속 선휘연은 그저 해맑기만 한 아이였다. 상기시키고 싶지 않은 그 하루만 빼고. 그런 감성적인 아이가 이성이 제일 중요한 기업의 에이스라, 기분이 이상했다.
“당신도 비슷한 사연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동생. 이모션 사이클 임상 실험자로 기억해. 일이 안 좋게 흘러가다가 봉변당해서.”
이담이 묘하게 신경이 긁힌 듯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고는 금세 빈 딸기 우유 곽을 한 손으로 구겨 쓰레기통에 던졌다. 화가 난 걸까, 기억하기 싫은 장면이 떠오른 걸까. 어느 쪽이 되었든 이 일은 더 이상 언급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
쇠사슬에 꽉 묶여 터질 듯이 뛰는 심장과 달리 내 몸은 높디높은 클록터 본사 건물 앞에 도달해 있었다. 그 높이가 너무나 아찔해서 바라만 보고 있어도 머리가 지끈거렸다. 세 걸음 앞에 출입문이 있었다. 발을 내딛기 전 이담이 내게 경고했다.
“첫째, 냉정하게 굴 것. 삐걱대거나 어색하게 굴면 의심받기 쉬워. 둘째, 목소리는 일정하게. 네 감정을 티 내지 마. 마지막으로 네가 한이류라는 사실을 들키지 말 것. 이는 회장실에 들어가기 전까지 필수적이야.”
나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십 분 후, 한 시간 후의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손끝에서 이루어지는 지휘 하나하나가 갈림길을 만든다. 목소리를 가다듬고 자동문에 들어섰다.
“인식되었습니다.”
이담이 사원증을 인식하자 복잡하게 생긴 여러 기계가 차례차례 열려 나갔다. 그들이 나를 거부할 수도 있었기에 이담의 등 뒤에 꼭 붙어야만 했다. 최첨단 로봇으로 들이차 있을 거라는 내 예상과 달리 많은 직원이 로비를 관리했다. 이모션 사이클을 받은 인간이 로봇보다 활용도가 좋기 때문이겠지. 직원들은 정말 서로에게 관심이 없어 보였다. 무표정이라고 하기도 어려운 굳어진 눈빛으로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고 있었다.
계획은 이랬다. 이담이 데이터를 파괴한다. 나는 코딩에 재능이 없어서 이 부분은 전적으로 이담에게 맡기기로 했다. 다음. 내가 회장에게 가서 대화하며 시간을 끈다. 잘 마무리 짓고 중간에서 만나 건물을 빠져나온다. 이모션 사이클을 몰락시킬 방법은 이담의 거처에 가서 회의. 그 이후는 아직 생각하지 않았다. 머릿속으로 절차를 정리하며 엘리베이터에 들어섰다. 이담이 속삭였다.
“네 얼굴 아는 사람은 없을 거야.”
긴장한 탓인지 몸이 경직되어서 다리가 저렸다. 어디라도 좋으니까 등을 기대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건물이 어찌나 높은 건지 올라가는 내내 귀가 먹먹했다. 매끄럽게 상승하던 엘리베이터가 멈춰 섰다. 문이 열리고 직원 한 명이 들어왔다. 감은 눈 너머로 얕은 전기가 통하는 듯한 감각이 느껴졌다. 흠칫하며 눈꺼풀을 열자 내 시야에 들어온 건.
“한이류?”
안광도, 눈동자의 미세한 떨림도 존재하지 않는 얼굴이었다. 무릎까지 길게 늘어진 흰색 가운은 완벽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가면을 쓴 듯 일정한 표정에서는 아무런 감정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담이 내 새끼손가락을 툭 하고 건드렸다. 반응하지 말라는 신호였다. 하지만, 어느 인간이,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이, 이 상황에서 평온하게 굴 수 있어?
“야.”
도서관에서 본 휘연이는 닿지 못하는 존재 같았다. 내가 이곳에 있다고, 그렇게 외치고 싶어도 결코 닿을 수 없는, 그런 하늘 같은 아이. 그렇지만 지금은 코앞에 그 존재가 선명했다. 가장 먼저 치밀어 오른 응어리를 뱉어냈다.
“왜 그랬어?”
엘리베이터 상단의 숫자는 계속해서 치솟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 없었다.
“뭐가.”
선휘연의 얼굴은 여전히 근육의 자그마한 미동도 없었다. 뭐가 그리 바쁜지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스마트폰을 타닥거리고 있었다.
“도망쳤잖아.”
“한이류 맞아? 반가워하지를 않네.”
“너 같으면! 반갑겠어? 지금, 이 상황이? 일말의 양심조차 없구나.”
오른손에 이담의 차가운 손목시계가 닿았다. 그는 마치 아무것도 안 들린다는 듯 나와 선휘연을 쳐다보지 않았다. 그렇지, 애먼 사람까지 끌어들일 필요는 없지.
“시술 안 받았구나. 30층에서 받을 수 있는데. 하고 갈래?”
“장난해? 왜 그러는 거야?”
나도 모르게 손이 먼저 나갔다. 무작정 멱살을 잡았다. 검지 마디에 스친 선휘연의 살결이 서늘했다. 갑작스러운 충격에 선휘연의 스마트폰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흥분하지 마. 네 손해야.”
“구차한 변명이라도 해! 그날, 떠날 때, 나랑 서화 생각은 안 했어?”
내 입에서 흐른 서화의 이름에 휘연이가 제법 놀란 듯했다. 잊고 살아왔던 기억일 거다.
“배서화? 오랜만이네. 잘 지내나….”
“너는 안부 물을 자격 없어. 적어도 말이라도 하고 갔으면 화 안 내. 너 똑똑했잖아. 그때 무슨 상황인지 파악할 수 있었잖아.”
“아직인가. 몇 년 전인데, 그게.”
자꾸만 알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렸다. 뭐가 아직이라는 거야.
“아, 부작용.”
휘연이 작게 외치고는 작은 메모장을 펼쳐 무언가 적어 내려갔다.
“에이스 납셨네. 몇 년 만에 반가운 친구 얼굴 봤는데 일할 마음이 나?”
“내가 감격의 눈물이라도 흘려야 하나. 이류야, 그런 거 유치해.”
“네가 왜 토악질 나는 그 인간들 사이에 섞여 있는 거야. 그러면, 이렇게 되면.”
너도 증오해야만 하잖아…. 미처 내뱉지 못한 말을 꾸역꾸역 삼켰다. 인정해 버리기는 싫기 때문이다. 고개를 푹 숙였다.
엘리베이터가 회장실에 다다를 참이었다. 문이 열리고 휘황찬란하게 꾸며진 복도가 눈에 들어왔다. 휘연이 먼저 내리며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내게 말했다.
“조금 반가운 것 같네. 서화랑 너, 센터 재학생이지? 정신 차리고 도시로 건너와. 친구로서의 조언이야.”
“넌 이제 친구 아니야.”
“마음대로 해. 나 바빠.”
휘연이 슬쩍 뒤를 돌아보고는 이담과 눈을 맞추었다. 누군지 모르는 눈치였다. 삼 초쯤 빤히 바라보다가 알아차린 듯 말을 이었다.
“당신이구나? 상부에서 관리 명령 떨어진 직원. 둘이 잘 어울려.”
휘연이 내뱉는 문장은 정교하게 구성된 회로였고 그 속 글자 하나하나는 전선 같았다. 할 말은 모조리 던지면서 감정은 시든 게 섬뜩했다. 한동안 자리에서 발을 떼지 못했다. 가느다랗게 이어진 실밥을 물어뜯는 감각, 거스러미가 자꾸만 나를 찔러댔다. 휘연아, 같은 나이에 같은 처지에서 자랐지만 우리는 너무 다르네.
“직진해서 오른쪽 계단. 회장실 통로니까 서두르지.”
이담이 그렇게 말하며 내 손목을 잡아끌었다. 창밖이 어느새 어두컴컴해졌다. 아스라이 보랏빛을 띠는 하늘이 보였다. 불안을 뒤로하고 섣불리 나섰다. 스마트폰 화면에 띄워진 줄글을 바라보았다. 장난스러움이 묻어나는 서화의 메시지였다.
‘반항아답게 굴어. 꼴사납게.’
서화에게 조금 전 휘연이와의 대화를 들려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의외로 내색하지 않고 넘어가 버릴 수도 있다. 서화라면 앞 말고 뒤에서 앓을 거다. 이제 걔는 우리를 친구로 취급하지 않는다고, 선휘연이 아니라고 말한다면 비난받는 쪽은 오히려 나일지도 모른다. 지금 누가 나와 같이 분리수거장에 있는지 모르겠거든.
작은 기계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 복도에 비해 회장실은 사치를 부린 티가 나지 않았다. 한 면을 장식한 유리 통창만 뺀다면 말이다. 도시의 전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었다. 내가 저런 풍경 기억해서 뭐 하겠나 싶지만. 내가 입구에서 주춤거리는 사이 이담이 먼저 안쪽으로 들어섰다.
“회장님. 한이류 학생이 방문했습니다.”
회장님, 상상만 하던 호칭이 귓가에 꽂히니 꽤 웃겼다. 뭐에 그리 열중하는지 통창을 향한 가죽 의자에서는 색색거리는 숨소리만 들려왔다. 이담이 구두 굽 소리를 내며 다가가자, 그제야 작은 대답과 함께 의자가 돌려졌다.
“안녕?”
늘어진 앞머리에 반쯤 가려진 눈이 마주쳤다. 어딘가 죽어있는 눈동자가 내 속눈썹을 쏘아붙였다. 생각보다 젊은 그의 모습에 당황했다. 오히려 말끔하게 정장을 갖추어 입은 이담의 모습이 더욱 회장에 어울렸다. 느슨해진 넥타이와 조금 널널한 셔츠가 그의 풀어 헤쳐진 장발과 어우러졌다. 테 없는 네모난 안경에 나와 이담이 비쳤다. 내가 얼 탄 사이 그가 먼저 말을 꺼냈다.
“겁을 먹었나.”
마치 사냥감을 구경하듯 흥미로워하는 목소리에 압도되었다. 처음에는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순종적으로 구는 편이 나았다. 나를 가까이 끌어들이는 손짓에 침을 한 번 삼키고 태연하게 걸어갔다. 그에게서 진한 박하 향이 퍼져 내 후각을 자극했다. 별로 간직하고 싶지는 않네. 순간적으로 눈살을 약간 찌푸렸다. 그가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무슨 냄새라도 나요?”
“박하 계열 향수를 쓰시나 봐요. 갑자기 향이 확 끼쳐서….”
“오, 진짜네.”
그가 무심하게 감탄했다. 내가 말의 뜻을 캐묻기도 전에 이담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회장님, 20층에서 부서 회의 일정이 있습니다.”
“가봐도 돼. 학생 에스코트 고마워.”
생글생글 웃으며 답하는 그의 모습은 휘연이와 대비되었다. 이담이 내게 눈짓을 한 번 보내고는 회장실을 빠져나갔다. 회장은 이담이 계단으로 내려갈 때까지 문밖을 빤히 바라보았다.
“서화한테 들었거든. 조향도 한다고 들었는데. 취미예요?”
서화한테? 왜인지 모르게 친근감 있는 호칭에 경계심이 들었다. 서화는 왜 내 조향에 대해 털어놓은 걸까. 지극히 사적인, 본인의 친구 이야기를 할 정도의 교류는 없었을 텐데 말이다. 내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니 그가 계속 웃으며 말을 이었다.
“왜? 재밌어요? 알려줘.”
“본인 의지만으로 영원히 간직할 수 있는 게 감정 아닌가요…. 제 권리를 앗아가는 것 같아서 싫었어요. 감정이 통제되는 세상에서 감정을 간직할 방법은 조향밖에 없었거든요.”
“당돌하시네.”
그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버려서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앉아 있을 때는 몰랐던 큰 키가 나를 한 번 겁먹게 했다. 온 신경이 침착하자는 다짐에 쏠려 있던 참에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그러고는 박하 향이 아닌 다른 달콤한 향이 풍겨왔다. 바닥을 내려다보자, 무슨 향이 담겨 있는지 모를 향수병이 깨져 있었다. 큰일이라는 걱정이 먼저 뇌에 가득 찼고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향을 맡아보니 노래방을 간 날이었다. 저번에 수영장에서 깨트려서 또다시 만든 건데 매번 깨져버리네. 쪼그려 앉아 나도 모르게 유리 조각을 주우려 하자 그가 나를 멈춰 세웠다.
“이리 와요. 다친다.”
그가 방금까지 앉아 있던 의자를 가리켰다. 다리도 아팠는데 거부할 이유는 없다. 냉큼 의자에 쓰러지듯 앉아버렸다. 그가 흩어진 유리 조각을 빤히 바라보다가 나를 응시했다. 사과하려 입술을 떼려던 참이었다.
“어, 알았다. 이거 노래방? 센터에서 조금 떨어진 사거리였나.”
“네?”
“그렇게 만드는 거 아니에요? 재밌었던 기억 모아서. 노래방 맞잖아.”
그가 실실 웃으며 말한 문장을 몇 초 뒤에야 이해할 수 있었다. 서화조차 헷갈리는 향수의 기억을 이 사람이 어떻게?
“사실 이류 양을 만나자고 말한 건 호기심이었어요. 제일 규모가 큰 센터에서 반항아로 거론되는 아이가 어떨지 궁금했으니까. 그런데 별거 없네요. 그냥 남들과 같은 아이일 뿐인데.”
차마 그를 똑바로 바라볼 자신이 없어 애꿎은 책상만을 바라보았다. 사무용 책상 위에 놓인 종이 묶음 사이로 보이는 건 ‘감정 순환의 원리 피실험자 명단’이라고 쓰인 서류였다. 어느 순간 그가 뭐라고 조잘대는지 들리지 않았다. 수많은 이름 사이에서 익숙한 세 글자를 발견해 버린 탓이었다. 휘연이가 피실험자 명단에 있었다. 이는 그때, 그날, 그곳에서 이루어진 일이었다. 빨간 줄이 곳곳에 그어졌는데도 표시 하나 없는 네 이름이 가장 먼저 보인 건 왜일까.
“대기업 문서 훔쳐보고 그러면 안 되는데.”
“선휘연이 일을 그렇게 잘해요?”
내 말에 그가 웃음을 터트렸다. 이상함을 인지했다. 도시에 들어와 들은 웃음은 나와 이담의 소리뿐이었다. 더군다나 이곳은 클록터 안 최상층이다. 들려서는 안 될 소리를 들어버린 셈이다.
“특별히 보게 해줄게요. 그 문서는 선물이라서요. 휘연 씨가 중요한 게 아닐 텐데.”
그와 내 사이에는 그리 크지 않은 책상 하나만이 놓여있었다. 그가 희고 긴 손가락으로 문제의 문서를 끄집어냈다. 그러자 보이는 빨간 줄과, 내 이름. 내 이름?
“이모션 사이클이 무엇인지는 교육받았겠죠? 감정의 순환을 활용해 역으로 이를 억제한다. 감정 순환의 원리. 정식 명칭이 정해지기 전 임시로 그렇게 불렀습니다. 설명은 이쯤하고, 알아서 해석할 수 있으리라 믿어.”
머릿속이 뒤집혔다. 예상치 못한 입력값은 오류로 범벅된 결과를 도출해 낸다. 자연스레 내 눈이 따라간 곳은 페이지 왼쪽 아래 각주였다. 부정하고 싶었다. 아니, 이미 부정당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 강제로 내 신념을 부정당했다. 그가 깨진 향수병을 보란 듯이 즈려밟고 내게 다가왔다. 오지 말라고 말을 뱉을 여유도 없었다. 그가 종이 한 장을 힘겹게 붙잡은 내 왼손에 본인의 손을 포갰다. 그러고는 또박또박 읽어 내려갔다.
“임상 실험 실패. 추후 성장기 관찰이 필요함. 이때가 몇 년 전이더라. 슬슬 시작될 때거든.”
예상외로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몸이 차갑게 식지도 않았다. 손이 떨린다고 느끼지도 못했다. 얇은 종이 한 장만이 미친 듯이 팔랑이고 있었다. 그가 내가 앉은 의자를 안다시피 하며 방향을 돌렸다. 눈앞이 고층 건물의 불빛으로 가득 찼다.
“위치추적? 계약? 내가 그리 시간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서. 깊은 뜻은 없어요. 재밌잖아. 과거의 실험체가 어떻게 살아가나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본 것뿐이야. 우연히도 자기 자신을 증오하는 모습이더라고.”
호흡이 가빠졌다. 스스로 인지하지 못했다. 내 몸을 온전히 소유하지 못했다. 시간이 반 박자 빠르게 흐르는 느낌은 정말 끔찍하다는 사실만을 깨달았다. 이 악물고 쫓던 앞의 꼬리가 사실 내 것이었다면.
“어느 날 생각났어. 사춘기가 존재할 필요가 있나. 어차피 감정만 격해지고 싸움만 늘잖아. 천재지? 사업 아이템으로 적당하고. 학부모들이 열광하더라. 나는 별로 한 것도 없어. 자기들끼리 퍼지고 퍼져서, 끝도 없이. 효율이 증진되면 모두가 좋잖아. 산업 발전에도 기여 많이 되었을걸. 그런데 말이야, 인간은 장점만 바라보고 단점을 외면해. 다들 바보 아니야? 알아차렸겠지만 나는 시술 안 했어.”
눈앞이 흐려졌다. 누구를 탓해야 해? 당시의 나 자신? 없어진 선생님? 선휘연? 서화? 클록터? 당신? 선과 악의 기준을 뭉뚱그리면 어떡하라는 거야? 애초에, 뭐야, 그게.
그가 내 귀에 속삭였다.
“너도 같은 처지야. 이류야.”
각기 다른 비명이 머릿속에서 요동쳤다. 악몽을 꿔도 소리만은 선명히 남지 않았는데 오늘은 왜 그러는 거야. 얕은 바람이 닿은 귀의 선명한 감각과 여전히 흐르는 부패 된 노래방의 향은 현실을 직시하라고 명령하고 있었다.
“서화는 수영장을 싫어한댔나. 트라우마가 많구나, 센터 재학생들은. 시술받을래? 이모션 사이클에 추가할 신기술 개발 중이야.”
“당신은 돈에 눈먼 인간일 뿐이야. 천재 그딴 게 아니라. 감정을 모조리 없애고 효율만 바라보면 그게, 그게 사람 사는 거냐고. 사람이야. 자아가 있잖아. 인간 개조해서 로봇이라도 만드는 거냐고!”
“진정하세요. 아직 어려서 모르나 본데, 사회는 감성팔이 해서 살아갈 수 있는 곳이 아니야. 오히려 내 자아 버리고 무슨 일이든 수행해야 박수받는 구조라고.”
그토록 증오하던 이모션 사이클, 물거품이 되었다. 내 몸에는 이미 곳곳에 속박이 걸려있었다. 위치 추적기 하나 가루로 만들었다고 통쾌해할 때가 아니었어. 양쪽에서 두피를 당기는 듯한 두통이 느껴진다. 머릿속이 다시 한번 뒤엉킨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할수록 호흡이 힘들어진다. 가시지 않는 역겨움에 입을 막았다.
“공기가 안 좋나. 물이라도 줄까요?”
주변의 풍경이 번졌다. 눈물이 앞을 가려 네모난 빛이 구슬로 바뀌었다.
나, 나 모르겠어. 판단이 안 돼. 정말 이쪽이 선이었다고? 우리가 틀렸대. 부정당했어. 방법이 없어. 정답이 뭐래? 뭔데?
서화야….
[제1회 하이니티 X 곽재선 문화재단 최우수 당선작]
<반항의 향>은 매주 금요일 연재됩니다. (➆ 창조주, ➇ 옛정, 애정, 우정에서 계속)
박지효 기자 jihyop@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