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기획사와 아티스트의 전속계약 분쟁이 법정으로 가면 결론은 대체로 단순해진다. 계약이 유효한가, 해지되었는가. 아티스트와 소속사 중 누구에게 귀책사유가 있는가.
결론이 나서 계약관계가 무너진 뒤 남는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연습생 교육비, 음반·뮤직비디오 제작비, 안무·보컬 트레이닝 비용, 숙소비, 스타일링비, 홍보비 등 이미 투입된 비용을 누가 어느 정도 부담할 것인지가 남기 때문이다.
현재의 분쟁 구조에서는 아티스트가 전속계약의 해지나 효력 부존재를 인정받으면 소속사가 그동안 지출한 비용을 사실상 전혀 회수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반면 아티스트는 소속사의 투자로 형성된 실력과 인지도, 방송 경력, 팬덤과 대중적 이미지를 가지고 새로운 소속사로 이동할 수 있다. 계약은 끝났지만 투자로 만들어진 가치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이는 상당 부분 소속사가 감수해야 할 사업상 위험이다. 연예기획업은 모든 연습생과 아티스트가 성공할 것을 전제로 하는 사업이 아니다. 비용을 들이고도 데뷔하지 못하거나, 데뷔 후 수익을 내지 못하는 사례가 더 많다. 실패의 위험을 연습생이나 신인 아티스트에게 모두 전가한다면 과거의 이른바 노예계약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 불투명한 정산과 과도한 비용 전가로 아티스트의 권리가 침해되어 온 역사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과거의 불공정을 바로잡는 과정에서 반대 방향의 불균형이 생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소속사에게 잘못이 조금이라도 인정된다고 해서 그 잘못의 정도나 계약 파탄에 미친 영향과 관계없이 모든 투자비용이 소멸하는 구조가 정당한지는 별개의 문제다. 경미한 정산 지연이나 일부 의무 불이행과 아티스트의 인격권을 중대하게 침해한 행위를 동일하게 취급해서는 안 된다. 위반의 정도, 시정 가능성, 신뢰관계 파괴에 미친 영향에 따라 손해 부담도 달라져야 한다.
문제는 현재의 전속계약 분쟁이 이러한 세밀한 구분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다는 점이다. 소속사가 승소하면 아티스트에게 거액의 위약벌과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아티스트가 승소하면 소속사는 기존 투자비용을 거의 회수하지 못하는 ‘모 아니면 도’의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 이런 구조에서는 양측 모두 극단적인 소송을 선택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상대방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겨야만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전속계약은 단순한 근로계약도, 순수한 동업계약도 아니다. 소속사는 먼저 자본과 인력을 투입해 성공 가능성을 키우고, 아티스트는 자신의 시간과 재능, 인격적 가치로 그 투자에 응답한다. 따라서 계약이 중도에 종료되더라도 어느 한쪽에게 모든 손실을 전가하기보다 계약 파탄의 책임, 비용의 성격, 아티스트에게 남은 이익, 이미 회수된 수익을 종합해 부담을 나누는 장치가 필요하다.
소속사의 폭행, 강요, 정산자료 조작, 중대한 인권침해처럼 계약관계를 근본적으로 파괴한 행위가 인정된다면 비용 청구를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 경미한 의무 위반이나 해석상 다툼, 시정 가능한 정산 지연만으로 계약이 종료된 경우에는 아티스트에게 실제로 귀속된 일부 직접비용을 합리적인 범위에서 정산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아티스트의 권리 보호는 여전히 중요하다. 그렇다고 그 보호가 소속사의 모든 투자를 무가치하게 만들고, 한 번의 계약 분쟁으로 회사가 도산하는 결과까지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되면 자본력이 큰 대형 기획사만 위험을 감수할 수 있고, 중소 기획사는 신인 발굴과 장기 투자를 포기하게 된다. 그 피해는 결국 데뷔의 기회를 잃은 연습생과 신인 아티스트에게 돌아간다.
아티스트가 승소하면 소속사가 망하고, 소속사가 승소하면 아티스트가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지는 구조로는 지속 가능한 K-엔터테인먼트 산업을 만들 수 없다.
노종언 변호사 (법무법인 존재)
▶저자 소개=노종언 변호사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사법시험 합격 후 현재 법무법인 존재의 대표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구하라,박수홍, 오메가엑스, 선우은숙 사건 등 굵직한 연예계 분쟁을 수행한 엔터테인먼트 분쟁 전문가입니다. 다수의 사건을 수행하며 얻은 현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엔터테인먼트 법률 이슈에 대한 심도 있는 통찰을 제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