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패러게임(APG) 2연패 도전은 아쉽게 무산됐다. 하지만 대한민국 장애인태권도의 간판 주정훈(32·춘천시장애인체육회)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평소 자신이 다칠까 봐 걱정하는 어머니를 경기장에 초대하지 않았던 그였다. 그러나 이번 대회에선 어머니와 형이 직접 응원을 왔다. 비록 금메달은 놓쳤지만, 은메달을 목에 건 아들을 보고 어머니가 웃어주셨기에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주정훈은 지난 21일 일본 나고야시 미즈호 공원 체육관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APG 남자 태권도 80㎏ 이하급(스포츠등급 K44) 결승에서 세계랭킹 3위 바흐트 알리레자(이란)에게 라운드 스코어 0-2(2-6, 6-12)로 패했다.
3년 전 항저우 대회에서 정상에 올랐던 주정훈은 대회 2연패를 노렸지만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2020 도쿄와 2024 파리 패럴림픽에서 2회 연속 동메달을 획득한 그는 2028 로스앤젤레스(LA) 패럴림픽 금메달을 목표로 선수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주정훈. 사진=공동취재단
이번 대회는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나고야에 도착한 뒤 배탈과 감기에 시달리며 정상적인 훈련조차 소화하지 못했다. 주정훈은 "나고야에 와서 체해 약을 먹었다. 어제까지 설사를 너무 많이 해서 살도 빠지고 다리에 힘도 없었다"라며 "오늘에서야 조금 괜찮아졌지만 평소보다 힘이 없고 많이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결승에서도 정상적인 경기력을 발휘하기 어려웠다. 1라운드를 2-6으로 내준 주정훈은 2라운드에서 먼저 득점하며 반격을 노렸다. 하지만 연이은 감점과 상대의 공격에 점수를 내주면서 결국 6-12로 패했다.
주정훈은 "솔직히 오늘 경기는 전부 100%가 아닌 상태였다. 어떻게 보면 운이 좋았다"라며 "남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훈련했기 때문에 이 정도 결과라도 나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감기나 배탈이 없었다면 더 좋은 경기력을 보여줬을 텐데 아쉽다. 상대가 더 잘 준비하고 나왔다"며 패배를 인정했다.
주정훈. 사진=공동취재단
그러나 이번 은메달은 주정훈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바로 어머니가 경기장을 찾아 직접 아들의 경기를 지켜봤기 때문이다.
그동안 주정훈은 어머니를 경기장에 부르는 것을 꺼렸다. 상대와 몸을 부딪치는 겨루기 종목의 특성상 혹시라도 다치는 모습을 보이면 어머니가 걱정하실까 봐서였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는 어머니와 형을 초대했다.
주정훈은 "아무래도 겨루는 종목이라 다치면 어머니가 걱정을 많이 하셔서 초대하지 않았다"라며 "그런데 이번 경기에서는 웃으면서 반겨주셨다. 앞으로도 기회가 되면 모시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어머니가 오신 대회에서 은메달을 땄으니 기분은 나쁘지 않다"라며 웃었다.
대표팀의 간판으로서 짊어진 부담감도 상당했다. 주정훈은 "점심을 먹으면서 후배들에게 '형이 국가대항전에 세 번째 나오는 건데 너희 때문에 부담을 너무 느낀다'고 장난스럽게 말했다"라며 "사실 첫날과 둘째 날 모두 부담이 너무 커서 자기 전에 식은땀까지 났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선수로서 숙명일 수 있지만, 동생들이 더 잘해준다면 나도 다음 시합부터는 부담을 조금 덜 수 있지 않을까 싶다"며 후배들의 성장을 기대했다.
주정훈. 사진=공동취재단
사실 주정훈은 이번 대회를 준비하면서 은퇴까지 고민했다. 오랜 선수 생활로 부상이 누적되면서 좋아하는 태권도를 마음껏 하지 못하는 날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는 "LA 패럴림픽에 갈까, 가지 말까를 두고 하루마다 생각이 달라진다"라며 "선수 생활을 오래 했고 부상이 누적되면서 좋아하는 태권도를 못 하는 날이 많아졌다. 그만두고 지도자가 돼 후배들을 봐줘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이번 대회는 주정훈에게 다시 한번 선수 생활의 의미를 일깨워줬다. 결승전에 오른 자신을 위해 대표팀 관계자들이 아낌없이 도움을 주는 모습을 보면서였다.
주정훈은 "여기 계신 모든 관계자분이 제가 결승에 올라갔다고 저를 위해 모든 걸 다 해주시는 걸 봤다"라며 "'이 맛에 내가 운동하지. 나는 아직까지 누군가에게 관심을 받고 도움을 받는 걸 좋아하는구나'라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동생들도 더 책임감을 갖고, 한국을 대표하는 자랑스러운 선수라는 사실을 머릿속에 새기며 모든 시합에 임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금메달은 놓쳤지만 어머니의 미소를 볼 수 있었다. 자신을 응원하고 도와주는 이들의 소중함도 다시 한번 느꼈다. 은퇴를 고민했던 주정훈에게 이번 은메달은 단순한 준우승 이상의 의미로 남았다.
LA 패럴림픽을 향한 도전을 이어갈지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그래도 이날만큼은 금메달을 따지 못했다는 아쉬움보다 어머니가 웃어주셨다는 사실이 더 크게 다가왔다. 주정훈이 은메달을 목에 걸고도 미소 지을 수 있었던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