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약 스타덤'에 오른 또 한 명의 배우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해낸 것은 아니다. '조개 속의 진주', 더 나아가 '제야의 고수'를 찾아낸 듯한 느낌이 더 강하다. 오랜 세월 연극무대에서 연극배우로 활동했던 박해수(37)는 주연으로 파격 발탁된 tvN '슬기로운 감빵생활'(2017)을 통해 일명 '필드' 진출 후 단번에 이름과 얼굴을 알리는데 성공했다.
물론 첫 드라마는 아니다. '무신'(2012) '육룡이 나르샤'(2015) '푸른 바다의 전설'(2016) 등을 통해 꾸준히 문을 두드렸다. 어느 날 문득 찾아 온 기적같은 운? 박해수 스스로 갈고 닦아놨던 기회의 장이다. '버티는 자가 승리한다'는 말은 진리다. 마냥 버티기만 한 것도 아니다. 본업을 잘하면서 '잘' 버텼다. 무명찾기의 달인 신원호 PD의 촉은 이번에도 통했다.
브라운관에서 받은 주목도와 높아진 인지도는 스크린 주연으로 이어졌다. 영화 '양자물리학(이성태 감독)'은 박해수의 첫 스크린 주연작으로 필모그래피에 고스란히 각인됐다. '양자물리학'은 비수기 개봉해 누적관객수 55만 명을 모으는데 그치며 예상했던 만큼의 파급력을 불러 일으키지는 못했지만, 펄펄 날아다니는 박해수의 연기를 남겼다.
많은 관객과 소통할 수 있다면 더욱 좋겠지만, 배우의 만족도가 크다는 것 만으로도 작품의 가치와 의미는 퇴색되지 않는 힘을 얻는다. 박해수는 '양자물리학'을 애정했고, 응원했고, 자신했다. 연극무대에서 만났던 배우들과 영화 현장에서 만났다는 것도 '양자물리학'이 박해수에게 남긴 뜻깊은 경험이자 추억이다.
한 작품의 성공이 배우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크다. 긍정적일 때도 있고, 때론 부정적일 때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건강한 멘탈의 소유자' 박해수는 긍정적인 영향력을 긍정적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스펙타클한 변화보다 우직함이 돋보이고, 한껏 들뜬 어깨보다 겸손함이 매력적인 박해수의 인생2막은 이제 진짜 시작이다.
※인터뷰②에서 이어집니다.
-짧은 시간, 인지도가 확 높아졌다. "급속도로 빠르다. 일단 너무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말을 하면 좀 웃길 수도 있지만, 내가 10여 년간 연극 생활을 하면서 연극 무대에서도 주인공만 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이런 기회가 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고, 그게 연극하는 동생들, 후배들에게는 용기와 희망이 되길 바란다. 잘 따라올 수 있게 좋은 본보기가 됐으면 좋겠다."
-신원호 감독과 작품 특유의 스타일이긴 하지만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스토리이긴 하다. "기적이다. 연극 바닥에 있다 단박에 드라마 주연을 맡는다? 말도 안 되는 일이고 그런 경우가 지금까지도 많이 없었다. 드라마계에서 봤을 땐 인지도 없이 그나마 신선도 정도만 있을테니까.(웃음) 물론 연극이 드라마·영화를 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절차도 아니고, 배우들도 그런 마음으로 연극을 하는건 아니지만 또 하나의 길과 가능성을 생각케 할 수는 있었다고 본다."
-'작품 하나로 삶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직접 경험했을 것이다. "신원호 감독님과 주변 스태프들이 '슬빵' 방송 전 '1, 2회가 나가면 깜짝 놀랄 변화가 있을거야. 너 이제 길에서 떡볶이도 못 먹어'라면서 장난스런 말씀을 하셨다. 1, 2회가 방송 됐는데 나는 길거리에서 떡볶이를 잘 먹더라. 하하. 솔직히 드라마틱한 삶의 변화가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가족들의 반응은 확실히 좋아졌다.(웃음) 내가 중요하다 생각하는 것이 그것이 아닐 수도 있고, 어쩌면 무딘 것일 수도 있지만 정말 그랬다."
-오히려 신원호 감독이 의아해 했겠다. "'넌 뭐 그냥 조용히 산 타고 가겠다. 내가 어느정도 위까지는 올려 놨지만, 앞으로의 갈 길은 천천히 알아서 잘 가겠다. 걱정 안 한다'고 하시더라. 그 말도 마음에 새겼다. 진심으로 감사했다." -박해수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에겐 과정인 것 같다. 그리고 관계성. '어떤 과정 속에서 어떤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맺고 행복함을 느낄 것인가.' 연극 할 때도 그랬지만, 너무 당연하고 뻔하고 재미없는 이야기일 수 있지만, 만약 결과는 좋은데 과정이 안 좋았다면 난 안 좋았던 과정이 더 길게 남을 것 같다. 과정 속에서 최선을 다하고, 좋은 관계를 만들어냈다면 결과가 조금 안 좋아도 '다음 작품에서는 더 잘 해보자'는 힘을 얻을 것 같다."
-지금 현 시점에서 가장 고민은 무엇인가. "'유연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은 한다. '내 방식을 너무 고집했을 땐 상처가 될 수도 있겠다' 그걸 깨달아가고 있다.(웃음) 사실 내가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하지만, 세상은 과정을 더 중요시 하지 않을 때도 있다. 냉정하게 말하면 그런 경우가 더 많다. 그 사이에서 '유연할 방법을 찾아야겠구나. 나와 달라도 다르다고 인정할 수 있어야겠구나. 너무 딱 잘라서 '아니다' 하면 안 되겠구나'라는 것을 계속 고민하고 있다."
-드라마·영화 주연이 됐고, 결혼도 했다. '제2의 인생'이라 봐도 무방하다. "일에 대한, 주연이라는 것에 대한 중압감은 없다. 근데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책임감은 확실히 커진 것 같다. 행복한 책임감이다. '가장으로서 태도를 조금은 더 안정화 시켜야겠다'는 마음이 크다. 연극 활동을 할 때 '이태원에 케밥 먹으러 갈까?'라는 말이 우리에겐 가볍고 장난스럽지만 진정한 취미이자 힐링이었다. '이태원 케밥' 자체가 나에게는 안식처이자 피난처 같기도 했는데 '이젠 케밥을 좀 덜 먹으러 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하하."
-다시 연극 무대에 서는 모습도 볼 수 있을까. "당연히. 너~무 하고 싶다. 연극은 나에겐 삶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볼 때도 할 때도 에너지가 충전되는 느낌을 받는다. 회복이 된다고 해야 할까? 평생 못 놓을 길이자 무대다."
-박해수가 박해수에게 하는 다짐이 있다면. "겸손하자. 들뜨지 말자. 좋은 작품 좋은 연기로 보여드리자. 다음 작품은 다음에 생각하자?(웃음) 늘 감사한 마음으로 관객들과 만나길 기다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