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연(47)이라 고맙고, 전도연이라 다행인 작품이 또 한 편 탄생했다. 긴가 민가 믿음직스럽지 않은 작품을 만났을 때, 깊이 있는 배우의 힘은 굉장히 중요한 힘을 발휘한다. 충무로를 넘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배우 전도연이 선택한 작품에 신뢰가 더하는 이유다. 우려와 걱정 속에제작된 영화 '생일(이종언 감독)'은 이제 "왜 함부로 만들었어"라는 작품에 대한 비난이 아닌, 영화를 관람하지 않으면 오히려 미안함을 느끼게 만들, 스스로에게 후회가 남을 작품으로 '감사하게' 탄생했다.
여전히 언급조차 조심스러운 '세월호' 이야기다. 전 국민적 트라우마를 남긴 희대의 사고는 풀리지 않은 숙제로 지금까지 많은 이들에게 부채감을 느끼게 한다. 이 때문에 세월호를 영화적 소재로 차용한다고 했을 때, 매서운 시선부터 보내게 되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무조건적 비난부터 받는 작품을 선택해야 했던 배우의 고민은 말로는 쉽게 풀어낼 수 없을 정도로 더했다. 한 번의 고사 끝에 출연을 확정 지은 전도연은 부담감을 뛰어넘은 무서움을 온몸으로 받아 내야 했다. 그럼에도 후회는 없다. 오히려 "하지 않았으면 후회했을 것이다"라는 심경 변화를 토로했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지금'을 담아낸 '생일'의 또 다른 이름은 바로 '진심'이다.
"이왕 만들어질 영화라면 잘 만들어지길 바란다"는 일부 대중의 소망을 고스란히 녹여냈다. 인터뷰 내내 울컥하는 마음을 숨기지 못하며 결국 펑펑 눈물을 쏟아 내기도 한 전도연은 "이 작품에 참여했다고 해서 그분들의 마음을 이해한다 말할 순 없고, 감히 거창한 사명감이나 책임감을 갖지도 못한다. 솔직히 너무 두려웠고 무서웠다. 하지만 유가족분들이 '감사하다. 고맙다'는 인사를 해 주셨을 때 '그래, 그거면 되지 않나'라고 생각했다. 잊고 있지만 잊히지 않게, 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작은 위로를 함께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강조했다.
>>인터뷰②에 이어
- 실제 엄마라 더 감정 이입을 했을 것 같다. "아이가 있으니까, 아이를 잃었을 때 엄마 마음, 여자 마음이 어떨지 너무너무 알겠더라. 하지만 잘 알 것 같다고 해서 또 다 알 수는 없다. 내가 느끼는 슬픔의 감정인지, 순남으로 느낄 수 있는 감정인지 좀 헷갈리기도 했다. 내 감정이 좀 더 앞서 나갔을 수 있다. 감독님과 독려하고 격려하면서 연기했다."
- '밀양'에서는 아들 잃은 어머니를 연기했다. 10년이 지난 뒤 만난 순남은 어땠나. "사실 '생일'을 결정하는 데 고민했던 이유 중 '밀양'의 신애도 있었다. '밀양'을 끝내고 '자식 잃은 엄마 역할은 하지 말아야겠다. 안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생일'을 보면서 '밀양'의 신애가 많이 생각났다. 물론 신애와 순남이 다른 건 알지만 이 감정적인 다름이 말로 일일이 설명돼는건 아니다. '밀양'의 신애는 그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고 싶어 달려들었다면, 순남은 한 발짝 빠져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했다는 차이가 있는 것 같다."
- 이후에 또 자식 잃은 엄마 캐릭터가 들어오면 할 것 같은가. "이제는 '진짜' 안 하고 싶다. 정말, 진심으로 안 하고 싶은데. 왜 그렇게 자식을 잃은 엄마 역할이 많은지 모르겠다."
- 시사회 당일 광화문 세월호 추모관이 헐렸다. 의미 있는 기록물로 남겨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유가족분들 동의하에 그렇게 진행하기로 했다는 걸 기사를 통해 봤다. '생일'에 참여했다고 해서 거창하게 어떤 사명감이나 의무감, 책임감을 갖고 있지는 않다. 감히 가질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 영화에 동참할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하고, 힘들게 선택했지만 그 선택에 대해 스스로에게 고맙다고 생각했다. 하지 않았다면 너무 후회했을 것이다. 극 중 엄마가 다가와서 안아 주는 그런 느낌인 것 같다. 영화를 본 모든 분들이 영화 속 '그런 이웃'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 초반 우려는 '전도연·설경구가 해 줘서 고맙다'는 반응으로 바뀔 것 같다. "나도 그 정도면 된 것 같다. 영화를 다 찍고 '홍보 시작해야지' 하는데 또 무서웠다. '영화를 보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다른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될 텐데' 하면서도 마주하기 너무 무서웠던 것 같다. 걱정도 많이 했다. 그래서 유가족분들이 '만들어 줘서 감사하다. 고맙다'는 인사를 해 주셨을 때 우리도 '그거면 되지 않나'라고 생각했다"
- 선택을 주저하는 관객들에게 한마디 남긴다면. "어떤 혼란을 야기시키는, 자극적인 이야기가 절대 아니다. 그런 작품이었다면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의 이야기고, 또 우리의 이야기다. 국민적 트라우마 맞다. 나 역시도 '구조될 거야'라고 믿고 있다가 오랜 시간 황망해했다. 잊지 말자고, 기억하자고 하지만 사실 조금씩 잊고 있었고, 잊히기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 나 역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바라보기만 했던 것이 사실이다. 지금은 배우라는 업을 삼고 있는 사람으로 이 작품에 참여함으로써 아주 작지만 뭐라도 하나 할 수 있는 것이 생긴 것 아닐까 생각한다. 같은 마음이라면 이 작품을 많이 봐 주시길 바란다."
- 영화를 보며 어른들의 부채감을 느꼈다. 어떤 사람이 좋은 어른일까. "너무 어렵다. 좋은 어른? 좋은 엄마? 솔직히 모르겠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보면 아버지가 아들에게 그 아이가 경험한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내가 봐도 이상적인 어른 그리고 부모인 것 같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힘들다. 아마도 죽을 때까지 좋은 사람, 좋은 엄마로 완성되지는 못할 것 같다. 계속 노력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