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의 대명사는 화려한 퍼포먼스를 앞세운 아이돌 그룹입니다. 그렇다고 그들의 노래가 모든 청춘의 노래는 아닙니다. 눈에 많이 띄지 않지만, 다양한 청춘은 그들의 희망, 사랑, 좌절, 아픔 등을 담아 노래하고 있습니다. 큰 무대에 설 기회는 적지만,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청춘들의 꿈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일간스포츠는 방송사나 매체에서 소개될 기회가 많지 않은, 청춘뮤지션들의 이야기를 이 코너를 통해 소개하고자 합니다.
<카더가든에게 청춘이란 뭘까요>카더가든에게>
"술인 것 같아요. 술 먹고 작업을 하진 않지만 정말 많이 마셔요. 그리고 같이 술 마시는 사람이 몇 명 안 돼요. 다섯 손가락 안에 꼽아요. 저한테는 지금이 술을 마실 수 있는 정점이에요. 가끔 기하 형이 내려오는 느낌이 든다고 하더라고요. 술을 마시면서 하는 이야기나 술을 마시고 집에 가면서 하는 생각, 술에서 깨고 나서 떠오르는 생각들이 가사로 나올 때가 많아요. 정신 없이 후회 하고 반복 하다가 나이 들면 이런 일들을 추억할 것 같아요. 지금은 어쩔 수 없이 술 먹고 실수를 반복하지만, 이게 틀리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혼란스럽지도 않고요. 그냥 시행착오를 반복하면서 성장하는 느낌이에요."
'옅은 슬픔이 방을/가득 메울 때쯤/알고있었다는 듯 내게/기대 춤 추네/나는 무너져 가네 yeah eh/난 솔직하려 했었고/넌 불안했겠지/작은 따뜻함들은 창문 새로 스미네/너도 흐려져가네 yeah eh/But little by little baby' -카더가든 '리틀 발이 리틀(LITTLE BY LITTLE)' 중
뮤지션들이 찾는 뮤지션이 있다. 그 중 최근 각광받는 뮤지션은 카더가든이다. 래퍼 빈지노가 첫 보컬 참여자로 꼽은 뮤지션이다. 이로 인해 유명세를 탄 카더가든은 오혁과의 인연으로 프로 음악 세계에 발을 내디뎠다.
이후 장재인의 새 앨범에 참여는 물론, '좋니'로 제2의 전성기를 연 윤종신의 작업에도 러브콜을 받았다. 특히 윤종신은 최근 일간스포츠와의 취중토크에서 눈여겨 보는 후배로 카더가든을 꼽을 정도였다.
카더가든의 음색과 음악은 새벽에 들어야 더욱 빛난다. 쇳소리가 살짝 담긴 미성은 은근하게 귀를 감싼다. 악기들의 향연도 들을거리다.
첫 활동명은 메이슨더소울이었다. 2016년 예명이 오글거린다는 이유로 오혁의 추천을 바꾸고 지금의 카더가든이 탄생했다. 카더가든은 본명인 차(Car) 정원(The Garden)을 뜻한다.
"이름을 바꾸고 오히려 할 수 있는 음악이 많아요. 정원에 담고 싶은 음악의 폭이 넓어졌죠. 메이슨더소울 땐 소울풍 느낌만 해야될 것 같았거든요."
카더가든은 20세부터 돈을 벌기 위해 사회에 나왔다. 공장에 다니며 '돈'이 목적인 채로 살았다. 그러다가 취미로 시작한 힙합음악 모임에서 작곡 프로그램을 배웠고, 군대에서 선임의 강제(?)지시로 피아노를 쳤다. 그렇게 음악의 길로 들어서 본업으로 삼고 있다.
"음악을 할 수 없는 환경에서 자랐어요. 할 생각도 없었고요. 출퇴근하면서 들었던 음악을 본업으로 삼을지 꿈에도 몰랐네요."
카더가든의 청춘은 음악의 세계에서 빛이 나고 있다. 새벽을 품은 목소리, 뮤지션이 찾는 뮤지션 카더가든이 '청춘별곡' 네 번째 손님이다.
- 왜 이름이 카더가든인가요. "본명이 차정원이에요. 카더가든 전 이름이 메이슨더소울이엇어요. 이 이름이 점차 오그라들기 시작했어요. 정말 아무생각 없이 지었던 이름이거든요.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오혁이 이름을 영어로 바꿔보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해서 바로 바꿨죠."
- 이름을 바꾸면 혼란이 올 수도 있는데 과감한 시도였네요. "메이슨더소울로 정규앨범을 발표해서 만류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래도 바꾸고 싶었어요. 그리고 결정할 때 고민을 많이 하지 않아요. 마음 내키면 하는 사람이거든요. 이제는 이름을 바꿀 생각이 없어요."
- 목소리에 매력적인 쇳소리가 있어요. "초기엔 쇳소리가 없었어요. 목을 써서 노래를 계속 하다보니 쇳소리가 생겼어요. 지금 이 목소리가 좋아요. 메이즈더소울 땐 미성 느낌이 많이 났어요. 옥타브도 높은 편이라 미성보단 쇳소리 들어간 게 더 자연스러워요."
- 가수 이전에 회사를 다녔다고요. "원래는 음반 활동을 할 생각도 없었어요. 단지 돈 벌 생각만 했죠. 그래서 공장에 다녔고요. 동네에서 삼삼오오 힙합하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 집에 놀러가면 녹음을 할 수 있었어요. 가끔 노래를 해달라고 부탁을 하면 가서 노래를 했죠. 재미삼아 작곡 프로그램으로 녹음본도 제작했고요. 우연찮게 래퍼 주석이 제 자작곡을 들었고, 데뷔하게 됐죠."
- 현 소속사인 두루두루에 몸 담게 된 계기가 있나요. "홍대에서 혁오와 함께 공연을 한 적이 있어요. 혁오는 두루두루 소속이었고요. 그 공연에 대표님이 오셨어요. 처음엔 조건 없이 정규 앨범을 홍보해 주셨어요. 나중엔 이 회사에 들어가야겠다고 마음을 굳혔죠."
- 오혁와 어떻게 친해졌나요. "아는 분이 둘이 만나보면 좋겠다고 소개시켜 줬어요. 그때 '위잉위잉' 나오기 전이었어요. 처음 봤는데 정말 멋졌어요. 준비하고 있는 음악도 좋았고요. 그때 '톰보이'도 나왔죠. 오혁은 술을 못 마셔서 주로 만나서 밥을 먹었어요. 그만의 세계관이 있어서 듣는 게 재밌었요. 목표한 걸 얻기 위해 지구력을 갖고 노력하는 스타일이 보기 좋았어요. 20대 초반에 보기드문 케이스죠. 미대생이 아르바이트해서 스튜디오 빌리고, 클래식한 방법으로 음반을 내니까요."
- 음악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 뭘하고 있을까요. "공장에서 승진했을 것 같아요. 정말 여러군데 다녔어요. 자동차 손잡이도 만들었어요. 딱히 기술은 없어도 성실하면 돼요. 대학도 안 나왔고 군대는 갔다 왔는데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어요. 어릴 때부터 제 생활을 책임져야해서 선택한 길이었어요."
- 음악은 언제부터 하고 싶다고 생각했나요. "고등학교 때 카피 밴드를 했지만 진지한 의도로 한 건 아녔어요. 호기심을 갖다가 제대 후 음악에 빠졌죠."
- 처음부터 프로 뮤지션을 할 생각은 없었군요. "그럴 환경이 아니었어요. 부평이 고향인데 음악을 하기엔 삭막한 곳이었어요. 21세부터 월세를 내야해서 일 하느라 바빴죠. 뮤지션은 꿈도 못 꿨어요."
- 산전수전 다 겪었겠네요. "이런 경험이 지금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사회생활은 인간관계와 직결되는 것 같아요.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해서 사람들과 부딪히는 법을 배웠어요. '저 사람은 저런 사람이니까 조심해야지'라는 생각을 갖게 됐죠. 그래서 군대에서도 그리 힘들지 않았어요."
- 나름 성공해서 부모님이 좋아하시겠어요. "어렸을 때 부모님이 이혼해서 중3부터 고3까지 고모 밑에서 컸어요. 어릴 때 사고도 많이 치고 이상한 짓 많이 하고 다녔어요. 그래도 절대 안 혼냈어요. 고모는 제가 정상적으로 살아가는데 도움을 많이 준 분이에요. 그래서 고모가 굉장히 좋아하세요. 제가 방송 나오면 재방송까지 챙겨보세요. SNS도 확인하고요. 요즘은 '어디가서 대마초 피우는 것 아니냐. 싸움하고 다니는 것 아니냐'라고 잔소리를 해요. 고모 머릿 속에는 여전히 철없는 조카죠."
- 돈은 많이 벌었나요. "수입이 점차 괜찮아지고 있어요. 제 또래들이 신입사원인데, 그들 보단 잘 벌고 있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