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시그널'의 여운은 아직도 진하다. 대중은 '시그널'을 두고 '인생 드라마'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 때문에 '불금'과 '불토'를 반납하고 일찍 집에 들어가 가족들과 '시그널'을 시청하겠다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현실적으로 그려진 이야기들과 '미생'의 김원석PD가 메가폰을 잡아 한 시도 놓칠 수 없는 숨막히는 장면들이 이어진 덕분이었다.
제작진은 배우들은 물론이고 사물에까지 살아 숨쉬는 듯한 숨결을 불어 넣으며 디테일에 힘썼다. 매 회 등장하는 악역들도 마찬가지다. 에피소드에 걸맞는 '사연있는' 악역들은 소름 돋는 열연을 펼치며 '시그널'의 보는 재미를 높였다. 이 중 임팩트 있는 활약을 했던 '안치수 계장' 정해균(47), '간호사 유괴범' 오연아(35), '재벌 아들' 이동하(33)를 취중토크에 초대했다. 이름하여 '범죄의 재구성'이다. 각각 사건을 조작하는 경찰, 유괴범, 재벌2세 범죄자로 활약하며 시청자들의 분노를 이끌었던 세 사람은 취중토크에 오자마자 "이 날을 기다렸다"며 반전의 미소를 지어보였다.
지난 2월 말 촬영이 끝난 후 오랜만에 재회한 세 사람은 반가운 인사를 나누며 곧 주종에 대해 심도있는 대화를 나눴다. "오늘은 인터뷰니까 만취말고 반취 정도 어떠냐" 진지한 대화를 나누던 세 사람은 인터뷰가 끝날 무렵 기분좋게 취했다. 범인의 입장을 대변해 열변을 토한 세 사람은 '시그널'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만들었고 그렇게 3시간은 훌쩍 지나갔다.
(오연아, 이하 '오') "매니저들? 차 안에서 거울로 눈 마주칠 때마다 놀라더라고요. 하하. 드라마 속 제 표정이 많이 무서웠나봐요. 저는 제가 그런 표정을 했는지 잘 몰랐어요. 그 장면이 방송된 이후에 다 저한테 무섭다고 하시니까 이제는 그 말을 듣는게 조금은 슬플 때도 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한이 서려 나온 것 같아요. 인생의 한. 하하"
-시그널에 출연 결심을 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오 "저는 오디션을 봤어요. 감독님이 '소수의견'을 보셨대요. 감독님이 오디션 보다는 한 번 보고 싶다고 하셨어요. 리딩을 정말 편하게 했어요. 무슨 배역으로 갔는지는 사실 잘 몰랐어요. 처음엔 다른 역할이 탐났어요. 국과수 검시관이 하고 싶었거든요. 대본 리딩 끝나고 검시관 역할 리딩도 해보고 싶다고 했는데, 감독님이 끝까지 수아 역으로 미시더라고요."
-시그널 속 사건들이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해서 부담도 느꼈을 법한데, 직접 악역을 열연한 느낌은 어땠나요.
오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너무 개입이 되어버리면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연기는 연기라는 생각이 들고, 어쨌든 우리는 그 역할에 몰입해서 보여줘야 하잖아요.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인 것 할 때는 오히려 생각 안해요. 제가 맡은 역할만 하면 되는 거니까요."
-오연아씨가 맡았던 윤수아는 정말 나빴었죠.
오 "전 그 캐릭터가 안쓰러웠어요. 드라마에서 아이를 살해하고 공소시효 기간인 15년이라는 시간을 철저하게 숨기면서 살아야 했잖아요. 취조실에서 연기할 때는 별 생각이 다 들더라고요. 윤수아에게 사랑하는 가족이 있을 수도 있는 거고요. 인간 윤수아에 대해서 대변하자면, 윤수아가 나쁜애긴 하지만 길 가는 할머니한테 욕하지는 않았을 것 아니에요. 누구나 실수를 저지르고 후회하는 시기를 겪듯이, 윤수아에게 숨어 살아야 했던 15년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15년간 숨겼는데 하루 남기고 감옥 갈 위기에 놓였다면, 몇 분이라도 살기 위해서 다른 간호사인척 꾸민 그 마음이 궁지에 몰린 쥐 같았아요."
-눈빛 연기는 압권이었죠. 그 연기를 할 때 어떤 생각을 했나요?
오 "이제까지 연기를 많이 한 것은 아니었지만, 정말 아무생각 없이 했어요. 감독님이 그 감정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내줬거든요. 연습을 하면 오히려 과해질 것 같았어요. 김혜수 선배님과의 호흡에서는 저절로 감정들이 나왔어요. 내 앞의 차수현(김혜수)라는 형사가 정말 강렬하게 눈빛과 대사를 이끌어내줬거든요. 역할에 미친 듯이 빠져들었어요. 이 와중에 감독님도 제가 스스로 생각할 수 있게끔 질문을 했어요. '이렇게 해'가 아니라 '윤수아는 얼마나 이 시간을 기다렸을까' 이렇게 물어보면서요."
-오연아씨는 김혜수와 취조실에서 팽팽한 연기 호흡을 펼쳤죠.
오 "김혜수 선배님과의 호흡이 인상적이었죠. 촬영할 때 눈으로 시선 싸움하는 경우가 잘 없어요. 그런데 우리는 정말 기싸움을 했어요.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런 생각도 다 하면서 몰입이 됐어요. 감정이 올라가는데 정말 도움이 됐죠."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요.
오 "대본 안에 '...'이 정말 많아요. 처음에 리딩할 때는 좀 어색했어요. 그 '...'을 의식하게 되니까요. 그런데 몰입하다보니까 이 점이 무섭더라고요. 갯수마다 느낌이 다른 것 같아요. 호흡도 달라지고요. 그런거에 따라서 충실하게 감독님이 디렉팅을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정확한 계획과 감정선이 다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우산을 쓴 채 결국 김혜수 선배님에게 잡히고 마는 장면이 기억나요. 범인의 마인드에서 옴짝달싹 할 수 없었던 그 장면이 혼란스럽기도 했고, 그 분위기에 온전히 취했어요."
-'시그널' 속 악역들 중 가장 나쁜 사람은 누구인 것 같나요.
오 "전 김원해 선배님. 너무 생각 없이 사회를 살아가고 있잖아요.(웃음) 행동도 잘 안하고 안마기로 안마만 해요. 가장 나빠요. 치열하게 살 때인데. 안일하게 대하는 모습들이."
-시즌2에서도 볼 수 있을까요?
오 "안타깝게도 전 과거에 뉴스에 나와요. 잡혔다고요. 안타깝네요. 그래도 여한은 없어요."
-차기작도 궁금해요. 워낙 '시그널' 속 이미지가 강했잖아요.
오 "곧 방송되는 드라마 '대박'에서 장희빈 역할을 맡았어요. 걱정이 너무 됐어요. '시그널' 촬영하기 전에도 이 역할을 맡으면서 걱정이 많았어요. 그런데 같은 악역이어도 틈새를 보여주는 것이 연기자가 해야할 몫인 것 같아요. 역할로는 같아 보일 수 있겠지만, 다 다른 사람이니까요. 열심히 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