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장년층에도 인기가 터진 KBS 2TV '구르미 그린 달빛'이다. 드라마가 방영되는 동안 온라인 상에는 엄마와 딸이 오랜만에 함께 TV 앞에 앉아 있었다는 반응도 심심찮게 올라왔다. 하루가 다르게 쏟아지는 요즘 아이돌을 잘 알지 못하는 엄마라면 딸에게 한 번쯤 이런 질문을 던졌을 것이다. "저 깔끔하게 생긴 신인배우는 누구니?"
보이그룹 B1A4의 리더이자 만능 엔터테이너로 손색없는 진영(24)이 '구르미 그린 달빛'을 통해 제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 시켰다. 영화 '수상한 그녀', MBC '맨도롱 또똣' 등을 통해 일찌감치 연기자의 길을 걸었고 때마다 호평 받았던 진영이다. 하지만 첫 사극에서 선보인 이미지는 기대 이상으로 신선했고 상상 이상으로 매력적이었다.
이번에도 짝사랑만 하다 주인공들을 위해 자리를 비켜준 진영이지만 조력자에 대한 시청자들의 애정이 남달랐던 만큼 그 여운도 크게 남았다. 진영으로서, 또 윤성으로서 나쁘지만은 않은 결말이었지만 "다음번엔 꼭 사랑이 이뤄지는 역할을 하고 싶다"며 몇 번이고 강조한 속내는 진심이다.
팀을 이끄는 리더로서, 프로듀서로서, 또 어린 시절부터 꿈꿔왔던 연기자의 길까지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다.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라도, 몸이 조금 힘들더라도 하고 싶은 일은 일단 시작해야 직성이 풀린다는 의지와 열정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연기돌=발연기'라는 공식도 옛말이다. 장족의 발전을 보이고 있는 아이돌들의 뛰어난 연기력으로 아이돌과 연기자의 경계가 서서히 무너지고 있는 요즘 눈여겨 볼 만한 또 한 명의 스타가 탄생했다. 입주 신고 완료다.
- '구르미 그린 달빛' 종영을 실감하나
"조금씩 실감난다. 드라마 이야기를 하나 하나 되짚어 보면서 '끝나긴 끝났구나' 생각하고 있다."
- 세부에서 배우들끼리 모일 수 있는 시간을 따로 마련해 줬다고 들었다.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
"그 땐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것 보다 '어디서 어떻게 놀까?'라는 이야기를 제일 많이 했던 것 같다. 스트레스 받았던 것 다 내려놓고 그저 즐기고 싶었다. 다 같이 여행가고 싶다는 말도 했다."
- 추진이 가능할까?
"7인방이 한 번에 모인 적이 있다. 내가 봤을 땐 우리가 모일 수 있는 자리가 그 때가 마지막일 것 같더라. 다들 너무 착하고 좋은 사람들이니까 지속적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마음을 표현했더니 다들 그렇게 생각하더라.
근데 만남엔 주도 할 사람이 필요하지 않나. 그런 사람이 없으면 절대 모이지 못한다. 그래서 내가 추진해 보겠다고 했다. 정 다 같이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안 되면 몇 명이라도 볼 수 있는 자리가 되길 바라고 있다."
- 주연들 중에서는 가장 큰 형이었다. 동생들과의 호흡은 어땠나.
"사실 현장에서는 동생들이라는 생각을 크게 안 했다. 어쨌든 연기로는 나보다 선배님들이고 내가 배워야 할 것들이 많았다. 자존심을 내세울 필요도 없었지만 내세운다고 해도 서로의 호흡이나 드라마에 도움이 될리 없다. 이야기를 많이 나누면서 잘 맞춰 나가려고 노력했다."
- 선배들도 많았다.
"조언을 진짜 많이 해 주셨다. 자식처럼 아껴 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특히 천호진 선배님은 촬영 전 내가 어려워 할 때마다 '이 부분은 이렇게 하면 좋을 것 같고, 이렇게 한 번 해 봐라'라고 친절하게 말씀해 주셨다. 그런 가르침을 어디서 받을 수 있겠나. 그 순간들이 잊혀지지 않는다."
- 중·장년층 시청자들의 유입이 굉장했다. 아이돌을 잘 모르는 시청자들은 대부분 진영을 신인배우로 알고 호감을 표했다.
"진심으로 좋았다. 어쨌든 나는 B1A4라는 팀의 일원이고 현장에는 나 혼자 가지만 팀의 이름을 걸고 나간다는 마음이 있다. B1A4를 한 번이라도 더 알릴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실시간 검색어에 내 이름과 B1A4가 같이 올라가는 경우도 많았다."
- 팀에 대한 애착이 상당하다.
"'허튼 짓 하고 있지는 않구나. 멤버들도 봤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더라.(웃음) 혼자만의 일은 아니니까. 나를 통해 B1A4를 알게 되는 분들도 생기는 것 같아 뿌듯했다. 뭘 하든 '팀을 위해 열심히 해야겠다, 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임한다."
- 멤버들이 모니터도 해 주던가?
"열심히 해준다. 놀리듯이 내 대사를 따라하기도 했다. 겉으로는 티격태격 하지만 참 고맙다. 날 진심으로 봐 준 것이고 모니터를 해 준 것이니까. 다들 바쁠텐데 관심을 가져준 것이라 고맙더라."
- 바로가 드라마를 찍을 때 역시 모니터를 해줬나?
"당연하다. 챙겨보려고 노력했고 바로와 이런 저런 이야기도 많이 나눴다."
- 윤성의 엔딩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다. 죽는다는 것은 눈치채고 있었지만 그렇게 죽을 줄은 생각 못했다.
"'2부작만 더 길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다. 조금 더 풀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부분들이 많다. 하지만 18부작으로 생각하면 알맞게 잘 끝난 것 같다. 드라마 상으로는 급작스러운 죽음 같긴 하지만 윤성이의 마음을 따졌을 땐 적당하다고 봤다."
- 어떻게 이해했나.
"죽기 직전에 라온이를 찾아 갔는데 결국 차이지 않나. 윤성이는 거기서 마음을 접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한다. '기대도 착각도 하지 않겠다' 윤성이가 나름 제 뜻을 표현한 방식이다."
- 오로지 라온이를 위한 결정이고 결심이다.
"아마 윤성이에게는 더 이상 삶의 의욕이 남아있지 않았을 것이다. 라온이를 만나기 전에도 딱히 삶에 대한 욕심이 없었던 아이인데 그 의욕을 생기게 해 준 여자가 라온이 아니냐. 라온이가 우는 모습에 윤성이는 그대로 무너졌고 상처주기 싫은 마음에 제 마음을 접어버린다. 나에게는 윤성이는 그 만큼 착한 아이였다."
- 죽는 순간에는 어떤 마음이 들던가.
"라온이를 위한 마지막 선물?(웃음) 윤성이는 애초부터 떠나려는 마음이 있었을 것 같다. 정확하게 표현은 안 됐지만 라온이가 윤성이를 살려 보겠다고 어디론가 가려고 할 때 손을 잡는다. 충분히 살 수 있었는데 살려고 노력하지 않았던 것 같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그리고 진심으로 좋아했던 여인을 지켜줬으니 할 일을 다 했다는 생각을 했을 것 같기도 하고. 윤성이에게는 분명 급작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 진영과 윤성의 클라이막스였다. 촬영 전과 촬영이 끝난 후에도 복합적인 감정이 상당했을 것 같은데.
"촬영을 하면서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그 날 따라 안개가 엄청 심했다. '윤성이가 가는 길을 배웅해 주는건가? 하늘도 도와주나?'라는 생각이 들더라. 특수효과처럼 엄청 뿌옇게 끼어 있어 분위기도 묘했고 신기했다.
사실 촬영 전에 대본을 받고 보면서 많이 울었다. 윤성이의 삶이 딱하게 느껴지면서 슬프더라. 끝까지 배려하는 모습이 멍청하고 바보 같기도 한데 멋있었다. 라온이 앞에서는 죽기 직전까지 눈물을 안 보이려고 한다. 자세히 보면 칼에 찔리고 나서 라온이가 깜짝 놀라 하니까 상처를 슥 가린다. 배려심이 엄청 깊은 친구다.
또 라온이에게 트라우마로 남을까봐 웃는 모습도 많이 보인다. 대사 한 마디 한 마디를 할 때마다 슬펐고 끝났을 땐 정말 정신이 멍했다. 내가 잠깐 진짜 윤성이가 된 것 같은 느낌도 들면서 기분이 이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