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말만 골라서 하는 재주가 있는 사람이 있다. 어떠한 부정적인 이야기에도 긍정적으로 바꿔 생각할 줄 아는 배우. 정소민(28)은 공포스러웠던 코믹 연기도, 개봉 지연이라는 아쉬운 기다림에도 모두 해맑게 반응했다.
아빠와 함께 나섰던 둘 만의 영화 데이트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2년 만에 선보이게 된 영화에 대해 "오래 된 코트 속에서 만원짜리를 찾은 느낌"이라며 지은 미소 한 방은 정소민을 파악케 하는데 충분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수석이라는 화려한 타이틀과 함께 데뷔한 정소민은 호평과 혹평 속 적응 단계를 거쳐 이제 조금씩 제 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영화 '아빠는 딸(김형협 감독)'은 그러한 정소민의 도전의식과 성장을 담아낸 중요한 지표가 될 전망이다.
※인터뷰①에서 이어집니다.
- 아저씨 연기는 어떻게 준비했나.
"초반에는 뵐 기회가 많이 없어서 선배님 전작들을 참고했다. 그 중에서도 '고령화 가족'을 여러 번 봤다. 내가 생각하는 아저씨 연기를 볼 수 있는 윤제문 선배님의 거의 유일한 영화였다.(웃음) 캐릭터적으로 훔쳐올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 윤제문에게 직접적으로 도움받은 것은 없나.
"리딩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각자 해야하는 역할을 반대로 녹음해 갔다. '선배님은 이런 말투를 쓰시는구나. 이렇게 말씀 하시는구나'라는 것을 많이 공부할 수 있었다. 현장에서는 눈에 불을 켜고 뭐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 새로 생긴 습관이 있다면.
"내가 원래는 전혀 팔자걸음이 아닌데 현장에 가면 너무 나도 모르게 팔자로 걷게 되더라. 감독님이 '다른 작품 가셔도 이러면 어떡해요? 앞길 망치는 것 아니겠죠?'라고 농담섞인 걱정을 하셨다.(웃음) 지금은 괜찮다"- 캐릭터에 대한 공감도는 어느 정도였나.
"남자를 제대로 알아보고 이해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살면서 몇 번이나 될까 싶다. 아무리 아버지를 이해하려고 한들 딸로서 이해하는거지 그 사람이 돼 그 사람 입장에서 생각할 수는 없지 않나. 하지만 이번 영화를 통해 조금 더 가깝게 느끼게 된 것 같다."
- 아무래도 도연 캐릭터에 더 감정이입을 했겠다.
"정말 많이 공감했던 것이 나도 도연이와 비슷한 생동을 그 시기에 아빠에게 했다는 것이다. 아빠가 결코 싫고 미워서가 아니라 왜 그렇게 되는지 모르겠는데 그렇게 된다. 물론 착한 딸도 많겠지만 난 도연이랑 비슷했다."
- 관계가 불편했던 것인가.
"어려웠다. 우리 아빠는 극중 도연의 아버지처럼 회사에서 무시 당하고 힘들어 하는 느낌은 아니셨지만 엄격하셨다. 그래서 내 입장에서는 점점 더 아빠가 어려워졌고 그로 인한 불편함을 느꼈던 것 같다. 도연이도 그렇지 않았을까 싶다."
- 지금은 변화가 생겼나.
"대학교에 갈 때까지는 유지됐다. 그러다 난 나이가 들면서 이해의 폭이 넓어졌고, 아빠는 아빠대로 성격이 유해지면서 다시 엄청 친해졌다. 사람마다 시기는 다르겠지만 나에게는 확실히 이번 영화가 준 것이 많다. 아빠와 함께 할 수 있는 계기를 많이 마련해 줬다."
- 에피소드가 있나.
"최근 아빠와 태어나서 처음으로 단 둘이 극장에 갔다. 내가 엄청 심하게 감기에 걸려 아파하던 때였는데, 아빠가 TV를 보시면서 '조금 있다가 영화보러 나갈거야'라고 하시더라. '누구랑 보는데?'라고 물었더니 '혼자보지 누구랑 봐'라고 하셨다.
'나에게 영화를 혼자 보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인데 아빠는 왜 당연할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아빠를 그냥 보내면 굉장히 후회할 것 같더라. 몰랐으면 모를까 알고 있으니까. 엄마는 영화관에서 영화보는 것을 안 좋아한다. 그래서 몸이 엄청 아픈데도 아빠에게 '같이 가!'라고 했다."
- 아버지가 좋아하셨을 것 같다.
"아빠가 끊은 표 옆자리가 다행히 비어 있어서 나란히 앉아 영화를 봤다. 굳이 말씀은 안 하시지만 그래도 30년 가까이 같이 살았으니까 느껴지는 것이 있지 않나. 좋아하시는 것 같더라. 아빠에게 조심스럽게 '사진 한 장 찍어볼까?'라고 하면서 팝콘들고 인증샷도 찍었다."
- 잊지못할 추억으로 남을 것 같은데.
"이게 사실 작은 변화일 수 있고, 어떻게 보면 소소한 일인데 지금 이렇게 이야기 하면서도 기분이 좋다. 그런 변화가 있다는 것, 그런 경험을 했다는 것, 그리고 그 기회를 지나치지 않았다는 모든 것이 좋다. 그 시간이 행복했고 소중하다."
- 어떤 영화를 봤나.
"'재심'이다. 아빠 친구 분들께서 좋은 영화라고 추천을 해 주셨다고 하더라. 난 사실 (강)하늘이에게 VIP시사회 초대를 받았는데 드라마 촬영 때문에 못 갔다. '개봉하면 꼭 보겠다'고 했는데 그 영화를 마침 아빠와 함께 보게 됐고, 뿌듯한 마음에 인증샷이랑 메시지를 보냈다."
- 착한 답변이 왔을 것 같다.
"맞다.(웃음) '덕분에 아빠랑 영화봤어. 네 덕분에 힐링했다'라고 했더니 '진짜 보기 좋다. 고맙다'는 식으로 간만에 훈훈한 대화를 했다. 평소에는 절대 그런 사이가 아닌데. 하하."
- 내 성장만큼 부모님의 나이에 대한 변화도 느껴질 때가 있나.
"아빠에게 흰 머리가 많이 생겼는데 외모는 동안이다. 근데 어느 날 영화를 보러 갔는데 경로우대를 해 드리겠다고 신분증을 보여 달라고 했다더라. 그리고 지하철을 타면 자꾸 자리를 비켜 준다고.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좀 속상하긴 하다. 현실감이 느껴지니까. '늙으셨구나' 싶은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