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안 하면 죽을 병에라도 걸린 것처럼 끊임없이 연기하는 배우 최전방에 있는 조진웅이다. '충무로 다작 끝판왕'이라는 말이 과언이 아닐 정도로 차기작에 차차기작까지 몇 편을 손에 쥔 채 공백없이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주연급으로 올라선 후 더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지금의 조진웅에게 휴식은 사치다.
열일의 행보는 흥행이라는 보상으로 돌아왔다. 최근 성적이 썩 좋지 않아 아쉬움이 차곡차곡 쌓이던 찰나 '독전(이해영 감독)'의 성공은 큰 선물이 됐다. '독전'은 누적관객수 300만 명을 돌파, 손익분기점을 가뿐히 넘긴 것은 물론 개봉 후 12일 연속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지켜내고 있다.
연기가 주는 고통은 아이러니하게도 배우를 살게 만드는 원동력이 될 때가 많다. 배움은 늘 뒤따르기 마련. 인터뷰 내내 촬영 당시를 회상하며 몇 번이나 머리를 쥐어뜯은 조진웅이었지만 그만큼 얻은 것도 많아 보였다. 감히 헤아릴 수 없는 고민의 깊이는 늘 응원과 기대감으로 번진다. - '독전' 어떻게 봤나 "내가 출연 한 영화이기 때문에 '난 너무 좋은데' 그렇게 말하면 내 얼굴에 침을 뱉는 것이라…. 하하. 많은 작품을 하면서 스스로 정의를 내린 것이 '이야기가 억지스럽지 않고 말이 되면' 조금 인정하는 부분이 있다. 그 말은 곧 '난 엄청 잘 봤다'는 뜻이다."
- 억지스러운 영화도 있긴 있었나. "솔직히 어떤 영화는 '억지스럽다'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땐 굉장히 마음을 졸인다. 일련의 과정들을 미리 소화시켜 놓고 영화를 보는 것이기 때문에 이제는 어느정도 나름 떨어져 볼 수 있는 눈이 연마가 됐는데 그래도 두근거리긴 마찬가지다. '너무 많이 갔네', '덜 갔네' 하기도 하고, '말이 안 되는 것 같다' 의구심이 들면 흥행면에서도 많이 힘들었던 부분이 있는데 그런 면에서 '독전'은 '말은 된다'는 평을 전하고 싶다. 빠른 전개 속에 개연성은 조금 떨어질지 모르나 말은 된다.(웃음)"
- 남자들의 우정, 브로맨스를 뛰어넘는 무언가가 저변에 깔려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준열이는 좋아하는 것 같다. 하하. '케미'라고 하지 않냐. 남자끼리 그런 말 제.일 싫다. 근데 아이러니하게도 남자들과 출연하는 영화가 대부분이다. '독전'에서 락(류준열)과 원호(조진웅)은 우연찮게 공조를 하게 되는데 사실 그 감정이 시나리오 상에서도 잘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다 감독님께서 '형 같았으면 좋겠어'라는 디렉션을 주더라. 그 말에 꼬여있던 많은 부분들이 확 풀렸다." - 연기적으로 접근하기 힘들었나. "공조는 하고 있으나 결국 락은 사건에 개입된 단체의 용의자다. 때문에 형사인 원호 입장에서는 어느정도 객관성을 유지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되는 것이다. 그걸 표현하기는 더 어려웠다. 많은 고민을 했고 해결 안되는 지점들이 있어 답답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냥 수갑만 풀면 되는데도 막막했던 것 같다. '안쓰럽게 쳐다보는 형이면 어떨까?'라는 디렉션이 명쾌했다기 보다는 혈을 탁 뚫어주는 느낌이었다." - 사실 형사와 용의자 사이에 말이 안되는 감정이기는 하다. "맞다. 나 역시 촬영을 하면서 여러 번 고개를 털었다. '너 누구야' 했을 때 '전 누굴까요? 전 락 입니까. 뭡니까'라는 답변이 원호에게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무언가로 와 닿았던 것 같다. 자꾸만 쏠리는 감정에 '정신차려, 정신차려!' 했던 것 같다. 아쉬운건 '고민한 만큼 연기로 잘 표현될까' 걱정했는데 영화에서도 그닥 잘 드러나지 않았던 것 같다. '너 아직도 갈길이 멀구나?' 했다."
- 새로운 배움이 있었겠다. "닥쳐진 상황에 아주 집요하게 집중할 수 있는 나만의 어떤 사고의 피지컬이 생긴 것 같다. 촬영은 즐거웠다. 다만 내가 더 아쉬움을 느끼는 이유는 아끼는 장면이 최종 편집됐기 때문이다. 그거 하나만 보고, 그것 때문에 달려간 것인데 영화에 담기지 않았더라. 그래서 나도 내가 연기한 원호를 100% 받아 들이면서 보지 못했던 것 같다. 감독님께 '영화 잘 되면 꼭 넣어주십쇼'라고 부탁했다."
- 엔딩에 대한 호불호가 갈린다. "'첫 장면부터 누굴 만나고, 지지고 볶고 싸우는 것이 이걸 위한 전사일 뿐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어떤 마음인지 아는데 내 입장에서는 '독전'과 원호를 잘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된 장면이었다. 락은 원호에게 뼈를 찌르는 질문을 던진다. '너 여기 왜 왔어?'가 아니라 '그래서 어떻게 할거야?'. 응징하러 갔지만 '응징하면?'이라는 말에 물음표가 붙는 것이다. 명확한 답은 없지만 노르웨이까지 갔던건 여러모로 좋은 경험으로 남을 것 같다."
- 여행삼아 다시 떠날 생각은 없다. "두번 다시 가고 싶지는 않다. 한번이면 됐다. 하하. 확실히 북유럽이 멀긴 멀다. 이동할 때 학을 뗐다.(웃음) 현지에서 만난 스태프에게 '북유럽은 어때?'라고 물었더니 '심심하다'고 하더라. 또 통역해주는 친구는 고등학생이었는데 그 친구도 '심심하다'고 했다. '나 아니?' 했더니 안다고는 하더라. '암살'이었나 내가 나온 영화를 봤다길래 한국에 돌아와서 소장하고 있던 DVD를 보내주기도 했다. 볼 수는 있지만 다운받는데 몇 시간이 걸린다고 해서. '나에게 북유럽은 살 곳은 못 되는구나' 싶었는데 적막하고 들떠있을 이유가 없는 나라라 '독전'과는 잘 어울렸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