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82년생 김지영(김도영 감독)'이 누적관객수 200만 명을 돌파하며 작품성과 흥행성을 모두 잡았다. 개봉 전 혹시나 싶었던 우려섞인 반응은 영화가 공개되자마자 응원이 목소리로 뒤바꼈다. 무엇보다 동명의 베스트셀러를 영화화 한 '82년생 김지영'은 원작의 메시지를 최대한 살리면서 영화 그 자체로 완성도를 높여 의미를 더한다. 그간 많은 베스트셀러들이 영화화 됐지만 매번 흥행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던 상황. 이번 영화로 상업영화 데뷔 신고식을 치른 김도영 감독은 캐스팅과 화제성에 기댄 운빨이 아닌, '다음이 기대되는 연출자'로 존재감을 각인 시키는데 성공했다.
깊이 공감하고 이해했기에 잡을 수 있었던 메가폰이다. "외적 논란 때문에 연출을 두려워하지는 않았다"는 단호한 속내가 '82년생 김지영'에 대한 김도영 감독의 믿음과, 김도영 감독 본연의 뚝심을 확인케 한다. 10여 년간 배우로 활동했고, 결혼 후 두 아이의 엄마가 되면서 스스로 경력 단절을 경험하기도 했던 김도영 감독이다. 40대 중반을 넘어 영화 학교에 입학했던 도전은, 부엌 한 켠에서 조심스레 노트북을 켠 김지영을 생각나게 만든다. 내 이름 석자에 주어진 인생의 방향성. 김도영 감독의 등장과 '82년생 김지영'은 수 많은 김지영들에게 위로가 됐다.
-'82년생 김지영'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 "만든 사람으로서 '다행이다'는 생각이 든다. 주변 분들이 좋아해 주시고, SNS에도 공감 글이 많이 올라 오더라. 사실 원작이 있기도 하지만 이 이야기는 수 많은 분들이 오래 전부터 해 왔던 것이라 생각한다. 상업영화로 나오기까지 다양한 일들을 겪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제 반보 정도 내딛은 것 아닐까 싶다." -배우들과는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 "이제 조금 현장에서 있었던 일들을 되새김질 할 여유가 생겼다.(웃음) 마음은 처음 시작했을 때와 똑같은 것 같다. 어떤 아주 큰 기대보다는 '관객들과 진심어린 소통을 원한다'는 이야기를 조근조근 하고 있다."
-원작과 영화는 사뭇 다르다. "일부러 차별점을 두지는 않았다. 오히려 '결은 같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원작 소설을 영화로 만든다는 것에 대한 부담은 있었다. 워낙 사랑받고 관심받은 작품이기 때문에 비교 당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인 것 같다."
-그 적정선을 어떻게 지켜 나갔나. "'이해했던 내용들을 되짚고, 아는 선에서 아는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결론에 도출했다. 소설은 결말이 다소 씁쓸했는데 나는 책을 읽고도 위로를 받았다. 영화에서는 '대단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위로받은 마음을 조금은 더 쉽고 편안하게 전달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특정 악인은 없다. 남편조차 평범함에서 오히려 조금 더 좋은 남편이다. 그래서 더 와 닿는다. "어떤 사람이 악하거나, 나쁜 것이 아니라, 관습이나 문화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이라는 것에 집중했다. 그래서 인물을 나쁘게 그리기 보다는 '주변 풍경이 어떤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원작자 조남주 작가님의 팟캐스트 들은 적이 있었는데 '식초에 담긴 오이 이야기'에 많은 공감을 했다. 오이는 오이라는 정체성이 있지만 식초에 담겨져 있으니까 결국 피클이 된다. 그런 상황적인 면을 생각하게 됐다." -어쩔 수 없는 편가르기식 반응은 아쉬울 것 같다. "책 한권, 영화 한편으로 인해 벌어지는 일들 자체가 시사하는 바가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 서사는, 그 서사 자체가 갖고 있는 태생적 운명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작품이 살아있는 하나의 생명체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었다. 생명력이 있어 보였다. 그리고 처음엔 내가 영화를 택했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이 영화가 나와 제작사, 배우들을 택했고, 상업영화라는 틀 안에서 수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싶어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런 논란들이 있지만, 그 논란 속에서도 '분명 어떤 분들은 고민하고, 그 일들에 대해 생각하고, 생각을 정리하고, 행동까지도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바람이 있다."
-어떤 부분에 많이 공감했나. "막내 동생이 81년생이다. 내가 동생보다 10년이나 더 살았고, 그만큼 나이가 많은데도 '사는건 비슷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똑같지는 않지만, 일련의 모습들이 '82년생 김지영'에 담겨 있었다. 무엇보다 담담한 문투에서 큰 울림을 느꼈다. 격하지 않고 담담하게 흘러가는 것을 보면서 오히려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유모차 발로 미는 장면도 너무 자연스러워서 굉장히 디테일 하다고 생각했다. "육아를 경험한 분들에게는 너무 너무 당연해 눈에 띄지 않는 장면일 수 있다.(웃음) 손에 무리가 갈 수 밖에 없는 일이 많은데다가 유모차도 계속 손으로 밀면 힘들다. 현장에서 생각해낸 모습이긴 한데 (정)유미 씨가 찰떡같이 이해하고 연기를 해주시더라."
-'김도영의 삶'은 어땠나. "나 역시 이 사회에 살고 있으니까. 비슷한 일련의 과정들을 겪었고, 그러면서도 때론 '난 굉장히 운이 좋은 것 같다'고도 생각했다. 근데 소설을 읽으면서, 소설에 공감하는 분들을 보면서 '나만 이런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구나' 생각하게 되더라. 나도 육아가 시작되면서 경력 단절이 왔고, '이것을 어떻게 해결 해야할까, 이런 상황 속에서 어떻게 내 욕망을 좇을 수 있을까' 고민하는 시간이 있었다."
-극중 김지영은 글을 쓰는 것으로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갔다. 감독이 찾은 해결책은 무엇일까. "나 역시 다행히 글을 쓰게 됐고, 그것으로 영화 학교에 들어갔고, 만든 영화가 공감을 얻게 되면서 감독이라는 일을 하게 됐다. 다만 영화 학교에 들어갔을 땐 이미 40대 중반이 넘은 나이였다. 많은 분들이 그 나이가 되면 '다른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나도 도전을 했지만 '대단한 감독이 되겠다'는 마음은 아니었다." -어떤 마음이었나. "단순한 결과보다 '내 욕망의 방향을 향해 가야겠다'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삶이라는 것이 엄청난 걸음을 하지 않더라도 '방향'에 의미를 두어야 하는 것 아닐까 생각한다. 지영씨 엔딩을 정리하면서 '지영씨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응원했다. 나이 상관없이, 어떤 여건에 있더라도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뱃머리를 돌리는 것, 천천히 나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인터뷰 ②] 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