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1 제주 유나이티드의 공격수 김범수(22)는 요즘 선두 팀 스타보다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받고 있다. 대학 진학, 프로 진출에 모두 실패한 후 한때 7부리그에서도 뛰었던 그가 1부리그 제주에서 선발 출전해 골까지 터뜨렸기 때문이다.
7일 전화 인터뷰에 응한 김범수는 컨디션 관리를 위해 이날 충분한 휴식과 훈련 스케줄을 꽉 짜놓은 상태였다. 그는 지난 2일 홈에서 열린 K리그1 19라운드 FC서울전에서 선발 출전해 전반 26분 K리그 데뷔 골을 터뜨렸다. 5일 김천 상무 원정 20라운드에도 선발로 나섰다.
김범수는 지난달 제주에 입단해 지금까지 4경기를 소화했다. 김범수가 제주 유니폼을 입기까지 여정은 한 편의 드라마 같았다.
고등학교 때 클럽팀에서 축구를 했던 그는 또래 중 꽤 두각을 나타냈다. 김범수는 “내가 욕심을 과하게 냈다. 명문대학에 지원했다가 낙방했다”고 했다. 프로축구 R리그(리저브 리그)에도 지원했지만 실패했고, 실업리그인 K3 팀에도 지원했다가 미끄러졌다. 그가 선택한 건 입대였다.
김범수는 “군대에 가니까 축구 생각이 아예 안 나더라. 다른 일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역할 때쯤 ‘내가 제일 잘하는 게 축구인데 왜 그만두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무작정 아마추어 팀인 K5와 K7 팀에 찾아가서 같이 훈련하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돌아봤다.
그래도 군대에서는 축구할 때만 되면 '메시'가 되지 않았을까. 공교롭게도 그가 복무 중이던 2020년부터 코로나19 대유행이 왔고, 단체 활동을 거의 하지 못했다. 사병들 사이에서 축구 실력 한번 뽐내보겠다는 사소한 바람조차 이루지 못했다. 김범수에게 “그래도 K리그1 선수 중에 기갑부대에서 장갑차 몰아봤던 유일한 선수 아니겠나”라고 하자 웃음을 터뜨렸다.
김범수는 2021년 봄 전역 후 동두천 원팀(K5)과TDC(K7)에서 훈련을 하다가 그해 여름 우연히 기회를 잡아 중랑축구단(K4)에 들어갔다. “하도 몸이 안 올라와서 동네 조기축구에도 빠짐 없이 나갔는데, 한 번은 조기축구 상대 팀에 중랑축구단 감독님이 계셨다. 나 뛰는 걸 보시더니 팀에 들어올 생각이 있는지 물어보셨다. 곧바로 다음날 찾아갔다”는 게 김범수의 설명이다.
그렇게 들어간 K4는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어려운 리그였다. K리그에서 뛰었던 선수들이 상당수 있기 때문이다. 김범수는 “K4는 연륜이 있고 기술도 좋은 선수들이 많다. K4라는 이름만 보고 낮춰 보는 이들도 많은데, 그렇지 않다”고 했다.
그러다가 올해 봄부터 제주 스카우트가 K4에서 뛰는 김범수를 눈여겨 보기 시작했다. 제주 구단에서 테스트 제의를 받았고, 몇 차례 연습 경기를 치른 결과는 합격이었다. 한때 축구를 포기하려 했던 김범수는 6월 21일 대구FC와 경기에서 드디어 K리그1 무대를 밟게 됐다.
골을 넣은 7월 2일 FC서울전은 김범수의 제주 홈 경기 데뷔전이었다. 그는 “사실 경기 전부터 너무 긴장됐다. 선발 명단으로 내 이름이 경기장에 울리고 관중 함성이 나오는데 긴장감이 엄청났다”면서 “골 찬스가 났을 때 ‘이건 무조건 넣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골을 터뜨렸다. 순간 그 더운 날에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고 했다.
남기일 제주 감독은 그에게 “네가 잘 돼서 그걸 보고 다른 어린 선수들도 잘 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으면 한다”는 말을 전했다고 한다.
김범수는 개인적인 목표를 잡기보다 입단한 지 얼마 안 된 제주에서 팀에 보탬이 되도록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실패에 부딪혀 축구를 포기하려 했던 열아홉 살의 김범수와 같은 처지의 후배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을까. “하부리그에서 뛰어 보니, 낮은 리그에 있다고 선수들이 스스로를 낮추더라고요. ‘나는 안 돼’ 이런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갖고 있어요. 저는 선수들이 그런 생각을 절대로 안 했으면 좋겠어요. 할 수 있다는 마음이 제일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