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야구는 강속구 열풍이다. 메이저리그(MLB)의 패스트볼 평균 구속은 매년 증가해 올 시즌 151㎞/h를 기록 중이다. 2014년 기준 KBO리그와 비슷한 패스트볼 평균 구속(142㎞/h)을 기록했던 일본프로야구도 올 시즌 그 수치를 146㎞/h까지 끌어올렸다. 반면 KBO리그는 구속 향상을 이루어 내지 못했다. 지난해 도쿄 올림픽에서 한국 대표팀이 메달 획득에 실패하자, 구속을 비롯한 국제 트렌드를 쫓아가지 못한다는 비판도 함께 따라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구속을 올릴 수 있을까. MLB가 속도 경쟁에서 앞선 비결 중 하나가 바이오 메커닉스 분석이다. 이는 슬로 모션 카메라나 모션 캡처 센서 등 각종 장비를 이용하여 운동 동작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모든 행위를 통틀어 뜻한다. 더는 맨눈과 경험에 의존하지 않고 보다 객관적인 분석을 가능하게 해 신체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도록 이끈다는 데 의의가 있다.
투수들은 저마다 투구 폼이 다르다. 그러나 신체를 사용하는 원리는 똑같다. 따라서 빠른 공을 던지는 원리도 같을 수밖에 없다. 바이오 메커닉스 분석은 이 공통점을 찾아내어 개인 스타일(투구폼)이 아닌 보편성(빠른 공을 던지는 원리)에 근거해 명확한 해답을 제시한다.
구속을 결정하는 요인은 간단하다. 팔을 휘두르는 속도가 빠를수록 구속은 빨라진다. 하지만 오직 팔의 힘으로 시속 140㎞가 넘는 공을 던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빠른 공을 던지기 위해선 팔이 아닌 다른 부위로부터 반드시 도움을 받아야 한다.
신체 부위들은 관절을 통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특정 부위에서 다른 부위로 향한 에너지의 전달이 가능하다. 이러한 '키네틱 체인(kinetic chain·신체 부위 간의 힘 연결성)'은 투구 동작에서도 활용된다.
투수는 앞다리를 들어 올리는 '리프팅' 후 홈 플레이트를 향해 하체가 뻗어 나가는 '스트라이드'를 통해 에너지를 생성한다. 이 에너지는 발목부터 시작해 무릎과 허리를 지나 상체로 넘어간다. 그 후 어깨-팔꿈치-손목 순으로 이동, 최종적으로 손끝에 다다르며 공을 던지면 투구 동작이 완성된다. 하체가 생성한 에너지가 크다면, 체인을 통해 상체로 전이되는 에너지도 비례해 커져 구속이 향상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흔히 하체 위주 투구폼이 강조되는 이유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하체에서 상체로 전이될 강한 에너지를 생성하는 원리도 존재한다. 바로 ‘지면 반력(反力)’인데, ‘모든 작용엔 같은 크기의 반작용이 존재한다’는 뉴턴의 제3 법칙에 따라 지면에 힘을 가할 때 일어나는 에너지를 의미한다. 효율적인 지면 반력을 활용하면서 투수는 지면으로부터 큰 에너지를 생성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하체를 지나 상체로 전달할 수 있고 이에 따라 구속이 향상된다.
투수가 활용하는 지면 반력은 크게 두 가지다. 뒷발(우투수 기준 오른발)을 이용한 추진력과 앞발을 이용한 제동력이다. 투수는 스트라이드 시 뒷발로 투수판을 밀어준다.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투수판과 반대 방향인 홈 플레이트를 향한 에너지가 생성된다. 이어 하체가 홈 플레이트를 향해 뻗어 나간다. 뒷발의 지면 반력은 자동차의 가속 페달과 같은 역할을 한다. 뒷발로 지면을 강하게 밀수록 추진력이 향상된다.
스트라이드가 끝나면 리프팅 했던 앞발이 착지한다. 앞발이 땅에 닿아 눌러주면 이에 따른 반작용으로 지면에서 생성된 에너지가 키네틱 체인을 통해 상체로 전달된다. 앞발의 지면 반력은 자동차의 브레이크 페달과 같은 역할을 한다. 빠르게 달리던 자동차가 급정지하면 탑승자의 몸이 앞으로 튕겨 나가는 것과 같은 원리다. 브레이크를 강하게 밟을수록 관성에 의해 몸이 더 많이 튕겨 나가듯이 스트라이드 후 앞발로 강하게 착지할수록 더 많은 에너지를 상체로 전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지면 반력의 크기와 구속은 반드시 정비례할까? 그렇진 않다. 지면 반력으로 에너지를 많이 생성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를 손실 없이 온전히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에너지 전달은 거저 이뤄지지 않는다. 효율적인 에너지 전달을 위해선 각 신체 부위가 올바른 순서로 움직여야 한다. 이 순서를 뜻하는 것이 바로 ‘키네마틱 시퀀스(Kinematic Sequence·힘의 연결 순서)’다. 투구 동작은 항상 신체가 측면을 향한 채 시작한다. 야구인들은 이 상태를 ‘닫혀 있다’고 표현한다. 그리고 회전 운동을 통해 신체가 정면을 향하는 것을 ‘열린다’고 표현한다. 투구 동작에서 올바른 순서는 신체의 열림이 골반-어깨-팔 순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골반이 아니라 어깨가 먼저 열리는 등 이 순서가 지켜지지 않으면 에너지 전달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즉 에너지의 손실이 생긴다. 에너지를 온전히 전달받지 못한 팔은 스스로 새로운 에너지를 생성해야 한다. 그러면 빠른 공을 던지기 어려워지고, 팔이 받는 부담도 증가해 부상 위험이 생긴다. 투구 밸런스가 무너진 투수에게 흔히 ‘몸이 일찍 열린다’, ‘공을 팔로만 던진다’라는 평가가 내려지는 것도 이러한 키네마틱 시퀀스가 올바르게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국내에도 과거에 비해 바이오 메커닉스 분석에 대한 인지도가 상승하여 다수의 프로 구단이 활용하는 추세다. 외부 업체와 협약을 맺어 모션 캡처 센서와 지면 반력 측정기가 설치된 구단들이 증가하고 있다. 사설 아카데미나 고교야구 팀에서도 이러한 장비들을 도입하는 곳이 하나둘씩 늘어나고 있다.
한국 야구가 바이오 메커닉스 분석을 본격적으로 받아들인 지 몇 년이 지나지 않았다. 이를 고려하면 향후 국내 선수들의 구속 증가에 대한 전망은 낙관적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은 생소해 보일 수 있는 각종 측정 장비들이 상용화되면 한국 야구의 수준이 한 단계 더 오를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