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한국 남자 축구대표팀은 지난 7월 도요타 스타디움에서 열린 일본과 EAFF E-1 챔피언십(동아시안컵) 최종전에서 0-3으로 완패했다. 지난해 3월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린 평가전(0-3 패)에 이어 2연패였다. 한국 대표팀이 일본에 2연패한 건 2013년 이후 9년 만이었다.
축구인들이 최근 한일전을 지켜보면서 느끼는 건 일본 축구의 발전 속도가 예사롭지 않다는 점이었다. 지난달 17일 대학 선발팀을 이끌고 덴소컵에서 일본을 3-2로 격파했던 안효연 동국대 감독은 “일본 축구가 많이 달라졌다. 과거 일본은 기술적인 부분에서만 한국을 앞섰다. 지금은 준비를 아주 많이 해 세계적인 추세를 따라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존 강점인 패스 위주의 기술 축구에 체격까지 좋아져 저돌적인 축구가 가능해졌다는 게 일본 축구에 대한 대체적인 평가다. 일본은 유소년 선수 시절부터 일본축구협회(JFA)의 지침 교육에 따라 일관된 지도 방식이 강점이다. 이 덕분에 팀이나 감독이 바뀌어도 적응하기 쉽다. 여기에 투쟁심까지 생겨 일본의 축구가 한 단계 발전했다는 평가다.
모리야스 하지메 일본 축구대표팀 감독은 “일본 선수들은 한국에 대한 콤플렉스를 갖거나 심리적으로 열등감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본 축구의 발전상을 설파한 것이다. 과거 일본에서 선수 생활을 했던 한 축구인도 “훈련 시스템 등도 영향이 크지만, 일본 선수들의 투지·근성 등이 더 나아졌다는 얘기가 나온다. 한국은 (일본을) 이길 수 있는 게 없다”고 꼬집었다.
한국 축구 취재를 전문으로 하는 일본인 칼럼니스트 요시자키 에이지는 “일본은 기술 축구라는 강점이 있는 데다, 체격·투지까지 강해졌다는 평가가 맞다. 최근 한국과 일본의 경기를 살펴보면 ‘한국이 일본처럼 뛰고, 일본이 한국처럼 뛴다’는 게 적절한 비유”라고 짚었다. 투쟁심이 강점이었던 한국이 과거 일본처럼 패스 위주의 소극적인 플레이를 하고 있다는 의미다.
프로구단 감독 A는 “과거 일본을 꺾었던 건 근성을 앞세워 상대 선수와 몸싸움에서 우위를 점했던 이유가 컸다”며 “지금은 오합지졸이 됐다. 투지와 근성이 사라졌다. 활동량도 적어졌다. 일본과 경기에서 어떻게든 이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선수가 10명 중 1명 정도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한일 축구가 역전된 건 축구 색깔이 뒤바뀌었다는 점이 큰 영향을 끼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 축구가 더 과감하게 플레이하기 시작했다. 일본은 스피드와 체격을 앞세워 강하게 압박, 한국의 실수를 유발하고 있다. 프로구단 감독 B는 “일본 축구가 무서운 이유 중 하나다. 기술 좋은 선수들에 피지컬까지 더해졌다”고 했다.
일본이 고유의 축구를 업그레이드하는 사이, 한국은 새로운 스타일을 찾기에 급급했다. 프로구단 C코치는 “한국 축구의 색깔이 무엇인가. 대표팀 정도 되면 (축구 철학에 대한) 그림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요시자키 기자도 “예전 한국의 ‘뻥축구’는 정말 괜찮았다. 최근엔 새로운 스타일을 모색하느라 고생을 꽤 많이 하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