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준플레이오프(PO)는 '박병호 시리즈'로 불린다. 2011년부터 키움 히어로즈 유니폼을 입고 전성기를 보낸 박병호(36)가 공교롭게도 KT 위즈로 이적해 나선 첫해 가을 무대부터 친정팀을 만나 칼을 겨누고 있기 때문이다.
리그 정상급 선수로 성장한 키움 주축 선수 이정후·김혜성·안우진은 박병호가 메이저리그(MLB) 도전을 마치고 국내 무대에 복귀한 2018년부터 4년 동안 한솥밥을 먹었다.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박병호가 포스트시즌(PS)에서 얼마나 위력적인 타자인지 바로 옆에서 지켜봤다.
이정후는 16일 열린 준PO 1차전을 앞두고 "올 시즌 정규시즌도 중요한 상황에서 (박)병호 선배님한테 홈런을 맞고 패한 기억이 있다. 가을 야구에서 유독 극적인 홈런을 많이 치셨다. (같은 팀일 때는) 항상 더그아웃에서 환호했지만, 이제는 큰일 난다. 선배님 앞에 주자를 두면 안 된다. 홈런도 맞으면 안 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박병호는 그동안 KBO리그 역대 대표 명장면을 수차례 만들어냈다. 2013년 두산 베어스와의 준PO 5차전에선 0-3으로 지고 있던 9회 말 2사에서 상대 투수이자 에이스 더스틴 니퍼트를 상대로 백스크린을 직격하는 동점 스리런 홈런을 쳤다. 2018년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와의 PO 5차전에서도 7-9, 2점 지고 있던 9회 초 2사 2루에서 투수 신재웅의 포심 패스트볼(직구)을 밀어쳐 기적 같은 동점포를 때려냈다. LG 트윈스를 상대한 2019년 준PO 1차전에서는 0-0 동점이었던 9회 말 중월 끝내기 홈런을 쳤다.
이정후의 불길한 예감은 맞아떨어졌다. 박병호는 다른 유니폼을 입고 나선 PS 무대에서도 클러치 능력을 보여줬다. 16일 준PO 1차전에서 4번·지명 타자로 선발 출전한 그는 KT가 0-4로 지고 있던 7회 초 선두 타자로 나서 키움 두 번째 투수 김태훈의 슬라이더를 공략해 가운데 담장을 넘겨버렸다.
앞선 6회까지 키움 선발 안우진을 상대로 3안타에 그치며 침묵했던 KT 타선은 이 홈런으로 깨어났다. 이어진 상황에서 장성우와 강백호가 연속 출루했고, 심우준이 1점 차로 따라붙는 2타점 좌전 안타를 쳤다. 8회도 강백호가 우전 적시타를 치며 기어코 동점을 만들었다. KT는 8회 수비에서 불펜진이 무너지며 4-8로 졌지만, 승부 흐름을 바꾸는 박병호의 힘은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1차전 종료 뒤 수훈 선수 인터뷰에 나선 안우진은 "손가락에 물집이 잡힌 탓에 6회까지만 던졌지만, (7회 초 선두 타자였던) 박병호 선배님까지는 상대하고 싶었다"고 돌아봤다. 경기 후반, 비교적 넉넉한 점수 차(4점)로 앞서 있었지만, 피홈런이 미칠 여파를 경계했던 것. 실제로 안우진의 불길한 예감은 현실이 됐다.
박병호는 17일 열린 2차전에서도 1회 초 중전 안타로 선제 타점을 올렸다. KT는 2-0으로 승리하며 준PO 균형을 맞췄고, 박병호는 결승타를 올렸다.
지난 2년(2020~2021) 동안 2할대 초반 타율에 그치며 저조한 성적을 남겼던 박병호는 KT에서 새 출발 하며 제 모습을 되찾았다. 정규시즌 홈런 35개를 치며 개인 통산 6번째 홈런왕에 올랐다. 지난달 10일 키움전 주루 중 오른발목 부상을 당해 한 달 가까이 결장했지만, 복귀 뒤 대타로 나선 8일 KIA 타이거즈전과 10일 NC 다이노스전에서 홈런을 치며 괴력을 보여줬다. 부상 여파로 주루·수비가 어려운 탓에 PS는 대타로 나설 것으로 보였지만, 13일 와일드카드 결정전부터 선발로 나섰고, 준PO 1차전에선 홈런까지 때려냈다.
박병호는 1차전 홈런으로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통산 준PO 최다 홈런(9개) 득점(19개)과 타점(17개) 기록을 늘렸다. 먼저 3승을 거두는 팀이 나올 때까지 '박병호 시리즈'가 이어질 전망이다. 유독 준PO에서 강한 모습을 보인 그가 친정팀을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야구팬은 즐겁다. '극장포'가 또 나올지 관심이 모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