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배중현의 야구 톺아보기] '갬블 스타터'가 아니면 뷰캐넌 앞에선 뛸 수 없다
KBO리그 '준족'들이 넘지 못한 산이 하나 있다. 바로 삼성 외국인 투수 데이비드 뷰캐넌(32)이다. 뷰캐넌은 지난 시즌 단 하나의 도루도 허용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도루 시도가 아예 없었다. 지난 시즌 규정이닝을 채운 투수(20명) 중 도루 시도가 '0회'인 선수는 리그에 뷰캐넌이 유일했다. 이 부문 최다인 박종훈(SSG·시도 58회, 허용 44회)과 비교하면 차이가 하늘과 땅 차이였다. 올 시즌에도 3경기 선발 등판해 '0'의 행진을 유지 중이다. 지난해 기록을 포함할 경우 30경기 연속 도루 허용 제로. 외국인 투수들은 흔히 퀵 모션이라고 부르는 슬라이드 스텝(slide step)이 느리다. 도루의 중요성이 크지 않은 미국에선 큰 문제가 없지만, KBO리그에선 다르다. 외국인 투수의 KBO리그 성공 여부를 판가름하는 키포인트 중 하나가 도루 억제 능력이다. 2018년부터 LG에서 3년을 뛴 타일러 윌슨은 수준급 성적을 자랑했지만, 도루 허용(통산 63개)에 애를 먹었다. 2019년 제이콥 터너(당시 KIA)는 그해 리그에서 두 번째로 많은 도루 26개를 내주며 흔들렸다. 뷰캐넌은 다르다. 허삼영 삼성 감독은 "뷰캐넌은 투구 폼과 견제 폼이 동일하다. 슬라이드 스텝도 거의 1.2초대에 들어간다. '갬블 스타터'가 아니면 성공할 확률이 희박하다. (도루를 시도하려면) 전조 현상이나 습관이 있어야 하는 데 찾아내기 쉽지 않다"고 극찬했다. 슬라이드 스텝이 1.3초대 안에 형성되면 리그 최상위 수준이다. 정현욱 삼성 투수코치는 "뷰캐넌은 포크볼을 비롯해 바운드가 쉽게 되는 구종을 잘 던지지 않는다. 제구가 좋은 투수라 포수가 송구하기도 좋고 팀 내 포수들도 도루 저지율이 높아 시너지 효과를 낸다"고 말했다. 삼성 포수 강민호는 국가대표 출신으로 경험이 풍부하다. 포수가 공을 미트에서 빼 던지는 시간(팝타임·pop time)이 짧다. 뷰캐넌의 빠른 슬라이더 스텝과 최고의 궁합을 자랑한다. 뷰캐넌은 '예방 주사'를 맞았다. 미국을 떠나 2017년부터 일본 프로야구(NBP) 야쿠르트 구단에서 3년을 뛰었다. NPB는 KBO리그보다 투수 약점을 더 집요하게 파고든다. 허삼영 감독은 "일본은 뛸 수 있는 주자가 한국보다 훨씬 많다. 1점이 소중한 리그"라며 "일본은 (외국인 투수를 선발할 때) 번트 수비나 슬라이드 스텝이 보완된 선수를 선호한다"고 말했다. 뷰캐넌은 NPB에 입성할 때부터 슬라이드 스텝에 대한 좋은 평가를 들었다. 리그를 거치면서 도루 저지 능력이 더 향상됐다. 그는 "슬라이드 스텝이 빠른 것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고 말했다. 오픈 마인드도 중요하다. 정현욱 코치는 "뷰캐넌도 일종의 습관이 있다. 보통 외국인 투수들은 본인의 방식을 고집한다. 하지만 뷰캐넌은 문제점이 있으면 고치려고 노력한다"며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 어느 외국인 선수보다 적극적"이라고 말했다. 뷰캐넌은 KBO리그에서 순항 중이다. 지난해 삼성 외국인 투수로는 1998년 스캇 베이커 이후 22년 만에 15승을 달성했다. 올 시즌에도 2승 1패 평균자책점 1.74로 위력적인 모습이다. 지난 15일 대구 한화전에선 삼성 외국인 투수로는 역대 6번째(갈베스 2회·크루세타·카도쿠라·맥과이어·라이블리) 완봉승까지 기록했다. 도루를 허용하지 않으니 대량 실점 위기도 그만큼 적다. 그가 성공 가도를 달리는 가장 큰 이유다. 배중현 기자 bae.junghyune@joongang.co.kr
2021.04.20 0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