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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故최진실, 오늘(2일) 사망 16주기… 여전히 그리운 국민배우

배우 고(故) 최진실이 세상을 떠난 지 16년이 지났다.배우 최진실은 지난 2008년 10월 2일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항년 40세. 1988년 광고 모델로 연예계에 데뷔한 최진실은 같은 해 MBC 드라마 ‘조선왕조 500년-한중록’으로 본격적으로 방송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우리들의 천국’, ‘약속’, ‘질투’, ‘별은 내 가슴에’, ‘나의 신부’, ‘마누라 죽이기’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고 최진실은 2000년 야구선수였던 고 조성민과 결혼하며 아들 최환희, 딸 최준희를 낳았다. 하지만 두 사람은 2004년 이혼했다. 아들 최환희는 지플랫이라는 예명으로 가수로 활동하고 있으며, 최준희는 인플루언서로 활동 중이다.2008년 최진실의 사망 후 2010년 고인의 동생 최진영, 2013년 전 남편 조성민이 사망해 충격을 안긴 바 있다.이수진 기자 sujin06@edaily.co.kr 2024.10.02 07:27
연예일반

고(故) 최진실 사망 14주기… 여전히 그리운 국민 배우

배우 고(故) 최진실이 올해로 사망 14주기를 맞았다. 고 최진실은 지난 2008년 10월 2일 당시 나이 40세로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2008년 10월 2일 서울 서초구 자택에서 40세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고 최진실이 하늘의 별이 된 후 매년 10월 2일 전후로 경기 양평군 갑산공원에서는 가족, 지인, 팬 등이 참석한 추도식이 진행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시국에는 가족과 가까운 지인 등 소수로 거행됐다. 1968년 12월 24일생인 최진실은 1986년 KBS 공채 탤런트 시험에 합격, 1988년 광고 촬영을 시작으로 본격 연예계에 진출했다. CF 모델 당시에는 일명 ‘최진실 신드롬’을 일으키며 스타덤에 올라섰다. 이후 MBC 드라마 ‘조선왕조 500년 – 한중록’으로 연기를 시작한 고인은 여러 단역을 거치며 각종 드라마에 출연했다. 드라마 ‘당신의 축배’, ‘질투’, ‘사랑의 향기’, ‘별은 내 가슴에’, ‘장밋빛 인생’, ‘나쁜 여자 착한 여자’ 등에서 열연했다. 스크린에서도 활약을 이어갔다. 영화 ‘남부군’, ‘나의 사랑 나의 신부’, ‘마누라 죽이기’, ‘편지’ 등 다수의 작품에 등장했고 2008년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이 고인의 유작이 됐다. 김다은 기자 dagold@edaily.co.kr 2022.10.02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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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 귀' 전현무 "허재, 전성기 시절 BTS급 인기"

방송인 전현무가 전 농구선수 허재의 전성기 당시 인기를 전한다. 24일 방송되는 KBS 2TV 예능프로그램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이하 ‘당나귀 귀’)에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농구대통령 허재가 은퇴 선배로서 털어놓는 허심탄회한 이야기가 공개된다. 최근 진행된 녹화에서 김병현의 버거집 춘계 야유회에 참석한 허재는 식사를 하던 중 야구계를 은퇴한 이대형, 유희관, 이대은에게 “조심하지 않으면 한번에 훅 간다"며 은퇴 선배로서 경험에서 우러나온 진솔한 조언을 건넸다. 그런 가운데 이대은이 전성기 시절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묻자 허재는 쑥스러워하며 당시 대통령과 배우 최진실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고 밝혀 모두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심지어 당대의 아이콘이었던 가수 김원준과 서태지와 아이들, 국민 미남 장동건도 허재의 인기에는 미치지 못했다는데. 전현무는 "지금으로 치면 BTS, 손흥민급"이라고 덧붙여 허재의 전성기 시절 일화와 후배들에게 건넨 조언은 무엇일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한편, 앞서 피구 공에 맞고, 줄넘기 줄에 걸리는 등 농구대통령답지 않은 허당미를 엿보였던 허재는 곧바로 “다음 건 뭐야!”라며 승부욕을 폭발시켰다고 해 과연 남은 경기에서 어떤 활약을 보여주었을지 궁금증을 더한다. 24일 오후 5시 방송. 박정선 기자 park.jungsun@joongang.co.kr 2022.04.23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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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실-최진영 남매의 생전 밝은 웃음...조선희 작가 추모 사진 올려

조선희 작가가 자신이 과거에 찍었던 고(故) 최진실-최진영 남매의 생전 모습을 공개하며 이들을 추모했다. 조선희 작가는 22일 오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최진실과 최진영 남매가 구한말 복장으로 밝게 웃으며 함께 찍은 사진을 올렸다. 그는 "요즈음 시간날때 옛날에 작업한 필름들을 정리중이다. 그때 이런 작업들을 이렇게 했구나… 하며 만감이 교차 하던 중 이 사진을 만나니 마음이 짠하다. 함께 존재했었는데…. 사라진 그들을 들여다 보며 인생의 덧없음에 새삼 놀란다"고 글을 썼다. 전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던 배우 최진실은 지난 2008년 10월 세상을 떠났다. 최진영은 2년 후 유명을 달리했다. 조선희 작가는 '그들을 추억하며'라는 해시태그를 마지막에 붙였다. 이 사진을 접한 팬들도 이들을 기억하며 먹먹하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있다. 이은경 기자 2022.02.23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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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최진실 딸 최준희, 순정만화 뚫고 나온 여신급 미모..."만찢녀 실사판?"

배우 데뷔를 앞둔 최준희가 故최진실을 똑닮은 여신급 미모의 근황을 공개했다.그는 13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순정만화 같은 모습의 근황 사진을 게재했다. 해당 사진에서 최준희는 꽃잎을 입에 물고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해 우아한 여신미를 발산했다.특히나 최근 체중 감량 후 엄마이자 톱스타 배우였던 故 최진실의 리즈 시절을 연상케 해 네티즌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한편 국민배우였던 故최진실의 딸인 최준희는 2003년 생으로 오빠는 래퍼 환희다. 최준희는 지난 해 말, 한 출판사와 계약을 맺고 작가 데뷔 소식을 알린 바 있다. 나아가 배우 이유비가 소속된 와이블룸과 전속계약을 체결하며 배우로 데뷔할 뜻을 전했다.이지수 디지털뉴스팀 기자 2022.02.14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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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계 50년 빛낸 파워피플③] "전설 또 전설" 안성기·박찬욱·김혜자…'반백년' 이끈 문화 거물

일간스포츠 창간 50주년을 맞아 연예계 50년을 빛낸 파워 피플을 꼽았다.일간스포츠가 창간된 1969년부터 올해까지 지난 50년간 연예계엔 시대와 문화를 대표하는 수많은 아이콘이 꾸준히 나왔다. LP에서 카세트테이프, CD, 음원으로 음악을 소비하는 방식이 변하면서 그 시대 가요 트렌드를 이끄는 스타들이 등장했다. 1980년 컬러 TV 방송이 시작되고, 점점 다양한 드라마가 쏟아지면서 뉴페이스도 많이 나왔다. 드라마의 한류 열풍과 함께 한류 스타가 탄생했다. 올해 100주년을 맞이한 한국 영화는 멀티플렉스 시대를 열며 시장 규모를 확장했고, 1000만 영화·1000만 배우를 탄생시켰다. 그렇다면 지난 반세기 동안 변화와 성장을 거듭한 연예계를 대표하는 얼굴들은 누굴까. PD·감독·소속사·제작사 등 현직 연예계 관계자 100명에게 연예계 50년을 빛낸 파워 피플 5인을 뽑는 설문조사를 진행했고, 이를 합산한 결과로 순위를 매겼다. 11위~15위 11위부터 13위까지는 '한국 영화계의 살아있는 전설' 안성기(17표), 임권택 감독(16표), 박찬욱 감독(15표)이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1957년 영화 '황혼열차'로 데뷔해 올해로 활동 62주년을 맞은 배우 안성기, 1962년 영화 '두만강아 잘있거라'로 입봉해 57년의 세월을 한국영화와 함께 한 임권택 감독은 한국영화 100년 역사 중 절반 이상의 시간을 힘 쏟으며 충무로의 과거를 이끌고 현재의 뿌리가 된 역사적 인물들이다. 국내 최초 1000만 영화 주역, 원조 세계적 거장이 오랜 세월 탄탄하게 닦아놓은 레드카펫이 있었기에 한국영화의 성장도 가능했다. 1992년 영화 '달은... 해가 꾸는 꿈'으로 데뷔한 박찬욱 감독은 선배들이 깔아놓은 레드카펫을 차분히 걸으며 한국영화의 르네상스 시대를 이끈 대표적 인물이다. '올드보이' 57회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 '박쥐' 62회 칸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하며 '깐느박'이라는 칭호까지 얻은 박찬욱 감독은 대한민국이 낳은 세계적 거장으로 국내외 영화인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다. 방송가에선 '무한도전' 김태호 PD(11표)와 '모래시계' 고 김종학 PD(10표)를 빼놓고 말할 수 없다. '무한도전'이라는 단 한 편의 필모그래피로 10년의 풍파를 겪어낸 김태호 PD는 숱한 유혹에도 MBC를 지키며 국내 예능을 대표하는 전무후무 최고의 예능 PD로 존재감을 높였다. 휴식기 후 '놀면 뭐하니?' '같이 펀딩' 등 여러 편의 프로그램을 한꺼번에 선보이고 있는 김태호 PD는 초반 담금질을 마치고 '제2의 김태호 전성기'를 이끌어낼 전망이다. 첫 작품 '수사반장'을 시작으로 '여명의 눈동자' '모래시계' 등 한국 드라마 반백년을 대표하는 걸작을 만들어낸 김종학 PD는 방송국·드라마의 안정기와 작품을 통해 수 많은 스타를 탄생시킨 장본인으로 명장 중 명장으로 손꼽혔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김종학 프로덕션을 차려 작품 활동을 이어갔지만 63세의 나이로 갑작스레 별세,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16위~20위 1961년 KBS 1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해 58년간 '국민엄마' 위치를 견고히 지켜내고 있는 김혜자(9표). 1980년부터 2002년까지 무려 22년간 방영된 '전원일기'는 김혜자의 세월을 고스란히 대변하고, JTBC '눈이 부시게'를 통해 55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해내기도 했다. 대배우 김혜자와 함께 한 세월, 어느 하나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다. 이와 함께 문화의 콘텐트화로 영화·방송 등 각종 분야를 진두지휘, 기업으로 문화를 선도하며 문화계 거물로 활약 중인 이미경 CJ그룹 부회장(7표), 코미디의 인간화, "콩나물 팍팍 무쳤냐"라는 희대의 유행어를 남기며 성대모사·패러디의 신으로 추앙받은 고 이주일(7표)이 공동 17위다. 타고난 연예인, 본업 능력 최고치, 한류의 시작, 배우 대표 기획사를 설립한 공통점을 갖고 있는 '뵨사마' 이병헌(6표)과 '욘사마' 배용준(5표)이 19위, 20위로 랭크됐다. 그 외 인물들 70년대 대중가요의 중심이자 희대의 기자회견을 남긴 '영원한 오빠' 나훈아, 60~70년대 미남 배우로 명성을 떨치며 국회의원까지 지낸 '한국영화의 상징' 고 신성일, 70~80년대 TV 드라마를 이끌며 '수사반장' '전원일기'로 대표되는 국민 아버지 최불암, '만인의 연인'으로 사랑받으며 신드롬급 인기를 이끈 '아이돌형 배우'의 시초가 된 '하늘의 별' 고 최진실, '1980년 최고 문제작' 대하소설 '태백산맥' 한 편으로 모든 것이 설명되는 조정래 작가가 4표를 받았다. '쉬리'로 한국영화 패러다임을 바꾸고 '태극기 휘날리며'를 통해 1000만 관객 시대를 연 강제규 감독, 대한민국 연예계 역사의 산증인이자 최고 원로 송해, 한국 록 음악의 아버지 '레전드 아티스트' 신중현, 대중음악 작곡가에서 세계적 보이그룹 방탄소년단을 키워낸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수장 방시혁 대표가 3표를 얻었다. 예능·드라마 PD에서 영화감독으로 전천후 멀티플레이 능력을 자랑하고 있는 김석윤 PD, 배우들의 배우, 모든 여배우들이 롤모델 김혜수, 김종학 PD와 국내 드라마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송지나 작가, 광복 후 영화산업 발전의 시발점 신상옥 감독, 천재 싱어송라이터 고 유재하, 코미디계 대부 이경규, 60~70년대 가요계의 여제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 미(美)의 트로이카 최전방에서 여배우 최초 쌍천만 배우에 등극한 전지현, 자본주의 영화계 프로듀서 2세대를 대표하는 제작자 차승재 대표가 2표, 강수연(배우) 강우석(감독) 강호동(방송인) 김기영(감독) 김민기(공연연출가) 김승옥(작가) 김영하(작가) 김청기(애니메이션감독) 김희선(배우) 배철수(가수) 보아(가수) 송창의(PD) 싸이(가수) 신영복(작가) 심재명(제작자) 아이유(가수) 앙드레김(디자이너) 유동근(배우) 고 유현목(감독) 윤석호(PD) 윤여정(배우) 이준익(감독) 이효리(가수) 전도연(배우) 주철환(PD) 최동훈(감독) 고 최인호(작가) EXO(가수) H.O.T.(가수)가 소중한 한표를 획득했다. 조연경 기자 cho.yeongyeong@jtbc.co.kr [연예계 50년 빛낸 파워피플①] 조용필·봉준호, 반세기 대중문화사 대표 얼굴 '공동 1위'[연예계 50년 빛낸 파워피플②] 김수현·김은숙, 韓 대표 스타 작가..유재석, 대체불가 예능인[연예계 50년 빛낸 파워피플③] "전설 또 전설" 안성기·박찬욱·김혜자…'반백년' 이끈 문화 거물 2019.09.2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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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IS] 연예계 '우울증 주의보'… 스타도 감정 노동자

'우울증'이란 그림자가 연예계를 덮쳤다. 한 달 사이에 두 명의 목숨을 앗아 갔다. 잇따른 비보에 연예계는 그저 비통할 뿐이다.지난 21일 갑작스러운 비보가 들려왔다. 배우 전태수의 사망 소식이 바로 그것. 약 4년 동안 연예 활동을 중단했던 전태수는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꾸준히 치료를 받았고 상태가 호전돼 복귀를 꿈꿨지만, 이루지 못한 꿈이 돼 버리고 말았다.연예인의 우울증 문제는 비단 전태수의 일만이 아니다. 앞서 고 이은주·최진실·채동하 등 수많은 스타들이 우울증을 앓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약 한 달 전에 세상과 유명을 달리한 샤이니 멤버 고 종현도 우울증으로 마음고생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고 종현은 유서에 '난 속에서부터 고장 났다. 천천히 날 갉아먹던 우울은 결국 날 집어삼켰고 난 그걸 이길 수 없었다. 나는 날 미워했다. 끊기는 기억을 붙들고 아무리 정신 차리라고 소리쳐 봐도 답은 없었다. 막히는 숨을 틔워 줄 수 없다면 차라리 멈추는 게 나아'라고 남겼다.지난 2009년 배우 박진희는 연세대학교 사회복지학 석사 논문 '연기자의 스트레스와 우울 및 자살 생각에 관한 연구'를 통해 '자살과 먼 거리에 있을 것만 같은 연예인 전체의 40%가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로 불린다. 화려한 곳에 더 큰 그림자가 드리우는 법이라 했던가. 연예계는 굉장히 화려하지만 한 사람의 마음이나 정신적인 부분은 쉽게 상처받기에 최적화된 조직이다. 톱스타가 되기 위해 과한 경쟁을 해야 해고, 때로는 미래가 없는 불안감에 시달린다. 또한 악플과 전쟁도 치러야 한다. '화려한 감정 노동자'인 셈이다.강남심리치료센터 곽현종 원장은 22일 전화 통화에서 "연예인뿐 아니라 우리나라 국민의 40% 이상이 자살 충동을 느낀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정신 건강을 돌봄에 있어 굉장히 취약한 나라"라며 "연예인은 인기로 먹고사는 직업이다. 성공해야만 생존이 가능한 직업이다. 월급이 꼬박꼬박 나오는 게 아니고 CF나 영화 등을 찍는 소수만 생존할 수 있는 생태계다. 대중이 기억해 줄 땐 자신의 존재감이 확인되다가도 잊히면 자신 곁에 아무도 없다는 허무함·공허함·불안감이 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울증은 완치가 불가능할까. 곽 원장은 완치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대체로 많은 분들이 약물 치료에 의존한다. 약을 먹을 땐 감정이 편안하긴 하다. 약 기운이 떨어지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서구에서는 근본적인 내면의 변화를 위해 심리 치료를 하는 걸 권유하고 있다"고 말했다.이어 "연예인이다 보니 우울증을 밝히는 걸 꺼린다. 억압 문화가 다분한 한국에선 정신력이 강한 사람을 우수한 사람으로 평가한다"며 "힘들 땐 힘들다고 말하면서 위로를 받아야 하는데 숨겨야만 하는 상황이 많다"고 덧붙였다.곽 원장은 스타들의 잇단 죽음으로 그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하거나 그 영향으로 힘든 감정이 더욱 심화돼 따라 자살하는 현상인 '베르테르 효과'를 걱정했다. 곽 원장은 "연예인들의 행동은 파급효과가 크다. 한 사람의 죽음이 사회적으로 끼치는 영향이 크다. 공인으로서 책임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 우울증을 앓고 있다면 주변에서 세심하게 관심을 갖고 돌봐 줄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미현 기자 2018.01.2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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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史] '갓창정' 임창정도 이랬던 시절이…26년 엔터테이너 인생 돌아보기

임창정은 만능 엔터테이너 원조다.1990년 영화배우로 데뷔한 그는 1995년 가요계에도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예능까지 접수하며 다재다능한 매력을 선보였다. 그때부터 만능 엔터테이너로 불렸다.배우로서는 26년, 가수로 21년을 살아온 임창정은 늘 유쾌한 입담과 당당함으로 대중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데뷔 때부터 정규 13집을 발표한 2016년까지 그의 역사를 되짚어봤다. ▶ 1990년대부분의 사람들은 임창정이 1995년 '이미 나에게로'를 발표하며 가수로 데뷔한 것으로 알지만 17살 때인 1990년 영화 '남부군'으로 데뷔했다. 때 묻지 않은 모습이 인상적이다. '남부군'은 정지영 감독 작품으로 안성기와 최민수·최진실이 출연한 전쟁 영화다. 임창정은 이때부터 긴 무명 생활을 시작했다. ▶ 1995년임창정은 단역으로 활동하던 시절 드라마 종방연에서 노래를 부르다가 감독에게 기획사를 소개 받고, 정규 1집 '이미 나에게로'를 발표했다. 가수로 처음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것. 그러나 당시 큰 인기를 얻지 못하고 다시 무명의 시간은 연장됐다. ▶ 1997년제1의 전성기를 맞는다. 1997년 영화 '비트' 출연과 동시에 정규 3집 앨범을 발표했다. 임창정은 '비트'에서 '17대1'이라는 명대사를 남기며 대중에게 확실한 눈도장을 찍었다. 또한 '그때 또 다시'로 KBS 2TV '가요 톱10'에서 5주 연속 1위를 거머쥐었고, 상반기 골든컵을 들었다.하반기에도 '결혼해줘'로 다시 한 번 골든컵을 차지했다. 이는 '가요톱10'에서 한 해에 단일 앨범의 수록곡으로 골든컵을 두 번이나 수상한 것으로 '가요톱텐'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 기록이다. 이 곡으로 골든디스크 본상까지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더불어 KBS 2TV '슈퍼선데이-금촌댁네 사람들'에 고정 출연하며 코믹 연기로 주목받으면서 배우·가수·예능까지 섭렵하며 '만능 엔터테이너'라는 고유 수식어를 처음으로 얻었다. ▶ 2003년이후 2003년까지 총 10집의 앨범을 내고 승승장구했다. 1997년에 이어 2001년에도 '날 닮은 너'로 골든디스크 본상을 차지했다. 가수로서 10집까지 내고 연기자로 돌아가겠다는 예전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돌연 가수로서 은퇴를 선언하고 영화 배우로서 전념했다. 영화 배우로 젼향한 후 2008년엔 영화 '스카우트'로 44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남녀 최우수 연기상을 수상했다.▶ 2009년가수 은퇴 5년 만에 11집을 들고 컴백했다. 임창정은 방송에서 은퇴 이후 친구들과 노래방에 가면 자기 노래만 2시간 동안 부르고 마이크를 넘겨주지 않을 정도로 가수 활동에 미련이 남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 2013년개인사로 인해 공백기가 길었음에도 전성기 시절 못지 않은 인기를 구가했다. 정규 앨범만 발표했던 임창정은 2013년 첫 싱글 앨범 '나란 놈이란'을 내고, 첫 예능으로 JTBC '히든싱어'에 출연했다. 쟁쟁한 모창자들 사이에서 '내가 임창정이다'라는 걸 보여주며 건재함을 알렸다. 전현무의 깐족 진행에도 뒤지지 않는 입담을 선보이며 화제를 이끌었다. ▶ 2015년임창정에게 제2의 전성기가 돌아왔다. 이번엔 첫 번째 미니앨범이었다. '또 다시 사랑'으로 아이돌 돌풍도 잠재웠다. 음원 차트에서는 없어질만 하면 다시 상위권에 진입해 '음원 좀비'라는 수식어도 붙었다. '국민곡'이라고도 불리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 2016년'또 다시 사랑'에 이어 '내가 저지른 사랑'까지 연속 히트다. 임창정은 6일 정규 13집 '아이엠(I'M)'을 발표하고 1년 만에 컴백했다. 타이틀곡 '내가 저지른 사랑'은 공개와 동시에 각종 음원 사이트 8곳에서 1위를 차지하며, 올킬을 기록했다. 1년 전에 발표해 '국민곡' 반열에 오른 '또 다시 사랑'도 차트에 진입하는 기염을 토했다.임창정은 이날 SNS에 올킬 소감을 밝혔다. 그는 "결과가 좋아서 행복한게 아니라 내 노래를 들어 줄 누군가가 있기에 행복하다는 걸 느끼며 눈물범벅으로 아침을 보내고 있다"며 고마움을 표현했다. 이어 "사고 안 치고 노래 연기 열심히 하겠다"라고 덧붙였다.이미현 기자 lee.mihyun@joins.com 2016.09.0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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