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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일반

[경륜] 한국 경륜 30년, 최고의 명승부 5선

1994년 10월 개막한 한국 경륜은 1기 112명을 시작으로 28기까지 선수 수가 은퇴 선수까지 총 1,187명에 달하며, 과거 잠실 경륜장과 현재 광명스피돔에서 시행된 경주가 무려 6만 경주에 육박한다. 꽤 오랜 시간 경륜경정총괄본부 관계자를 비롯해 경륜 전문가, 경륜 선수, 고객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고객들의 가슴속 깊이 남아있는 ‘한국 경륜 30년, 역대 최고의 명승부 5선’을 선정해 보았다. 1. ‘10년 이상 시대를 앞서간 경주’라 평가받는 1998년 경륜 올스타전1994년 말 개막한 경륜은 95년 3월부터 본격적인 경주가 시작되었다. 이때 경륜 2기로 아마추어에서 프로로 직행한 김보현(은퇴), 원창용(은퇴), 정성기(2기, B3, 일산)는 단숨에 잠실 경륜장을 점령했고, 경기의 흐름을 바꿔놓았다. 당시 지역 최강은 창원팀이었고, 경륜의 일인자는 ‘국가대표, 중앙대학교, 기아자동차 실업팀’ 출신 선수들의 몫이었다. 이런 흐름은 2008년 조호성이 은퇴하기 전까지 무려 13년간 이어졌다. 하지만 이 기간 그 아성을 잠시지만 깨트린 이가 있었으니, 바로 경륜 4기 엄인영(은퇴)이다. 엄인영은 위의 상대들보다 2년 늦게 입문한 탓에, 초반에 혹독한 신고식을 치르기도 했지만, 차근차근 실력을 키워가며 98년 마지막 경주인 경륜 올스타전에서 위 선수들과 정면승부를 선포했다. 출발 총성이 울리고, 타종 전부터 원창용의 선행이 시작되었고, 엄인영의 젖히기 반격으로 주도권 다툼이 펼쳐졌지만, 두 선수가 경주 막판에 체력적 부담을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끝까지 뒤에서 참고 기다린 김보현이 추입, 역전에 성공했다. 이 경주는 당시 경륜을 대표하는 간판급 선수들이 총출전한 점, 개인전 못지않게 팀전 양상까지 더해진 점, 당대 최고의 맞수이자 가장 인기를 끌었던 엄인영, 원창용의 첫 정면 승부, 선행 대 젖히기에 이은 막판 추입까지 반전의 반전을 거듭한 전개 등 경륜에서 볼 수 있는 모든 매력을 발산한 경주로 꼽힌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이 경주를 당시에는 보기 힘든 ‘10년 이상 시대를 앞서간 경주’로 평가하고 있다.2. 조호성과 홍석한의 첫 맞대결(2004년 11월 28일 결승 14경주)2004년 혜성과 같이 벨로드롬에 등장한 조호성, 당시 ‘신인은 첫해 그랑프리 경주에 참여할 수 없다.’라는 규정으로 11월 마지막 경주를 끝으로 일찌감치 한 해를 마무리할 예정이었다.하지만 그때 그 마지막 경주에서 조호성은 당시 경륜 1위 홍석한(8기, A2, 인천)을 마주했다. 홍석한은 아마추어 시절부터 스프린터 종목에서 최고의 선수라 평가받았고, 이와 유사한 경륜 종목에도 최적화된 선수였다. 그런 그의 명성에 걸맞게 2002년과 2003년 그랑프리 2연패, 성적 1위, 상금 1위를 독식하고 있었다.이런 두 선수의 대결은 연말 그랑프리 못지않게 세간의 화제가 되었고, 아마추어 학생들까지 관심을 가질 정도였으며, 구름 관중이 잠실 경륜장에 몰려들었다.경륜계에서 가장 대표적인 창과 방패의 대결에서 우승은 조호성이었다. 당시 신인 조호성이 홍석한을 상대로 심지어 선행으로 우승을 차지한다는 것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었다. 하지만 조호성은 홈스트레치부터 선두로 나서며 적절하게 완급조절을 했고, 나머지 선수들을 견제용으로 활용하며 시종일관 홍석한을 괴롭혔다. 그리고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신인이었던 조호성은 첫해 홍석한이라는 어마어마한 대어를 낚았고, 이 경기로 인해 두 선수의 위상은 크게 바뀌게 되었다. 이후 엄청난 인지도를 얻은 조호성은 경주마다 유리한 위치를 점령하며 승승장구했고, 그랑프리 3연패의 위업을 달성했다. 3. 조호성을 무너뜨린 김민철(2007년 제13회 스포츠조선배 대상 경륜 결승 경주)홍석한을 무너뜨린 조호성은 그랑프리 3연패를 비롯해 연승 기록 등 경륜의 모든 기록을 갈아치우며 경륜의 황제로 군림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 조호성에게도 뜻밖에 천적이 나타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특선에서 준 강자 정도로 평가받으며 어찌 보면 평범했던 선수에 불과한 8기 김민철이다. 이날 대상경주에서 조호성을 만난 김민철은 당시 같은 팀 선수인 정점식(6기, 은퇴)과 송경방(13기, A3, 동광주)의 뒤를 따르며 거리를 크게 벌리는 일명 ‘차 간 두기’ 전술을 시도했고, 뒤따라오던 조호성의 속력을 올렸다 내렸다가 하는 완급조절로 타이밍을 빼앗아 막판 추입에 성공했다. 처음의 1승은 이변 또는 운이라 할 수 있겠지만, 이후 김민철과 조호성의 두 번째 맞대결에서도 김민철이 결승선을 먼저 통과했다. 경륜 황제 조호성을 상대로 연승을 거둔 유일한 선수이고, 특히나 대상 경륜이나 조호성이 연승 중일 때마다 조호성의 발목을 잡아 더 큰 인상을 남겼다. 4. 경륜의 춘추전국시대를 평정한 이명현(2012년 제18회 스포츠서울배 대상 경륜 결승 경주)2008년 올림픽 메달의 꿈을 이루기 위해 돌연 은퇴를 선언한 조호성이 떠난 경륜은 춘추전국시대에 돌입하게 된다. 힘 좋은 신예들이 등장하자 어느덧 선임되어버린 또 다른 경륜 강자 홍석한도 노쇠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수도권 황태자로 꼽히는 이국동(15기, A1, 신사)이 그랑프리를 접수하며 이전 지역 최강인 수도권의 명맥을 이어가나 싶었지만, 그 꾸준함이 이전 선배들의 명성에는 미치지 못했다. 지역 패권도 수도권과 경상권으로 양분화되었지만, 두 지역 모두 화력이 예전과 같지는 못한 상황이었다. 이런 춘추전국시대와 같은 대혼란을 평정하는 새로운 영웅이 탄생했는데 바로 이명현이다. 그가 특별했던 점은 큰 경기이거나 편성이 불리해도 당황하는 모습 없이 항상 편안하게 경기를 펼치고 또 우승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경기가 2012년 제18회 스포츠서울배 대상 경륜 결승 경주이다. 경주 초반 대열 두 번째에 있던 이명현(16기, S3, 북광주)을 최순영(13기, A2, 양주), 이욱동(15기, A1, 신사), 김영섭(8기, S1, 서울 개인), 김현경(11기, S3, 대전 도안)이 마지막 반 바퀴 남은 시점까지 가둬놓았음에도, 마지막 4코너에서 그의 전매특허인 ‘이단 젖히기’를 선보이며 우승을 차지했다. 이 경기를 통해 이명현의 위상은 하늘을 찔렀고, 독보적인 위치에 오르며 진정한 경륜 일인자로 등극했다. 유독 큰 경기에 강했던 이명현은 대상 경륜 7회 연속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남겼다.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이란 표현은 경륜에서는 이명현 몫이었다. 5. 그랑프리 5회 우승의 주인공, 정종진 화려한 등장(2015년 이사장배 대상 경륜 결승 경주) 스포츠는 물론이고 어느 분야에서 최고의 인물은 그 성장 과정만 보더라도 드라마 같은 감동 요소가 가득하다. 경륜에서 이에 걸맞은 대표적 선수를 찾는다면 바로 정종진(20기, SS, 김포)이다. 정종진은 넉넉지 못한 가정환경에서 어렵게 사이클에 입문했고, 아마추어 시절 노력형 선수였지만 큰 주목을 받지는 못한 선수였다. 경륜 입문 전 생활고로 옷 가게 아르바이트도 했었고, 경륜훈련원 재수 등 온갖 시련이 있었다. 이런 정종진이 그랑프리 5회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쌓은 대형 선수로 성장하는 모습은 보는 이들에게 감동까지 선사하기 충분하다. 정종진이라는 걸출한 선수가 화려하게 등장하는 서막을 알리는 경주가 2015년 이사장배 대상 경륜(네티즌배) 결승 경주이다. 이 경주에서 경륜에 입문하지 얼마 되지 않았던 정종진은 혈혈단신으로 박용범(18기, S1, 김해B), 박병하(13기, S1, 창원 상남), 이현구(16기, S2, 경남 개인), 이명현(16기, S3, 북광주)을 상대해야만 했다. 이 선수들은 역대 그랑프리 우승자로 당시 기세가 절정이었다. 정종진이 이런 선수들을 1:1로 상대해도 우승을 확신하기 어려운 상황인데, 무려 4명이나 만난 것 자체가 압박감이 상당했을 것이고, 경륜 고객들도 정종진이 이길 수 있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정종진은 대열 후방에 자리 잡은 후 2코너에서부터 폭발적인 속력으로 이 네 명의 선수들 모두를 넘어서는 데 성공했다. 이 경기를 통해 정종진의 위상이 크게 바뀌었고, 본인은 물론 김포팀을 사실상 최고의 지역팀 반열에 올려놓게 되었다. 예상지 ‘최강경륜’ 박창현 발행인은 “위 다섯 경주 모두 역대 최고의 명승부로 꼽을 만큼 경기 내용이 훌륭하다.”라고 말하며, “지금도 매주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명승부가 이어지고 있는 만큼, 많은 분이 광명스피돔을 찾아주었으면 좋겠다.”라고 전했다.한편, 경륜경정총괄본부는 ‘경륜 30년 최고의 명승부 5선’ 영상을 제작하고 있으며, 오는 6월경 장내 방송 및 경륜경정총괄본부 유튜브 등을 통해 공개할 예정이다.안희수 기자 2024.05.15 11:00
프로야구

[인생 2막] 유소년 육성하는 '비운의 천재'…"내 전성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

"끓는 피를 참고 사는 게 쉽지 않습니다."선수 시절 '비운의 천재'로 불린 강혁(49) 코치는 야구를 '전쟁'에 비유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시작한 야구가 지겨울법하지만, 그는 "가장 행복하고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은 야구를 가르치는 것"이라고 비장하게 말했다.강혁 코치의 야구 인생은 굴곡 그 자체다. 신일고 재학 시절 그는 대통령배와 청룡기 타격왕, 이영민 타격상, 사이클링 히트, 전국대회 31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한 '역대급' 유망주였다. 그 결과 졸업을 앞두고 OB 베어스(현 두산 베어스)와 한양대의 동시 러브콜을 받았다. 기량이 워낙 뛰어났던 터라 프로와 아마추어 모두 쉽게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이는 파국의 불씨가 됐다. 신일고를 졸업한 1993년, OB와 한양대의 선수 이중 등록 파문이 터져 한국야구위원회(KBO)로부터 영구 제명 처분을 받은 것이다. 최근 본지와 만난 강혁 코치는 "운동선수에게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다. 정말 힘들었다"며 "'세상이 날 주목할 수 있게 하자'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돌이켜보면 그때 야구를 그만뒀어야 했다. (개인 운동인) 골프로 종목을 바꿔야 했다"고 복잡한 속내를 드러냈다.영구 제명 처분 뒤 한양대로 향한 강혁 코치는 졸업 후 실업 야구(현대 피닉스)에 잠시 몸담았다. 그를 향한 시선이 바뀐 건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이었다. 유일한 실업팀 소속으로 금메달 획득에 힘을 보태자 동정 여론이 만들어졌다. 해빙 무드를 타고 6년 동안 발목을 잡은 영구 제명 족쇄가 풀렸다. OB에 '지각 입단'한 강 코치는 계약금을 5억원 받았다. 큰 관심 속에 프로 첫발을 내디뎠지만, 활약이 미미했다.2001년 1월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로 트레이드된 그는 2007년 선수 유니폼을 벗었다. 프로 통산 성적은 428경기 타율 0.249(930타수 232안타) 18홈런 115타점. 화려했던 고교 시절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다. 강혁 코치는 이를 두고 "몰락"이라고 표현했다.신(神)이 되고 싶었던 타자 혹자는 강혁 코치의 프로 실패를 두고 "게으른 천재" "나무 배트 적응하지 못했다"고 혹평한다. 강 코치는 "나를 잘 몰라서 하는 얘기"라고 고개를 저었다. 이어 그는 "신일고 2학년 때 저녁 7시부터 다음 날 오전 7시까지 밤새워서 스윙을 해본 적이 있다. 누가 시킨 게 아니었다"며 "더 잘해서 '타격의 신'이라는 얘길 듣고 싶었다. 손에 지문이 지워질 정도로 밤낮 가리지 않고 배트를 휘둘렀다"고 회상했다. 프로 적응의 변수는 '부상'이었다. 강혁 코치는 OB 입단 첫해 스프링캠프부터 어깨를 다쳤다. 일본 쓰쿠미 훈련에서 다이빙 캐치를 하다 왼 어깨가 밀린 게 화근이었다. 첫 단추가 어긋나자 조급함이 커졌다. 강 코치는 "입단 계약금을 많이 받으니, 주변의 시선이 쏠리더라. 그래서 더 오버 페이스를 하게 됐다"고 아쉬워했다. SK 이적 후에도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2001년 시범경기에서 수비 도중 슬라이딩을 하다 왼 어깨를 또 다친 것이다. 통증을 참고 경기를 뛰었지만 결국 그해 8월 수술대에 올랐다. 뭘 좀 해보려고 하면 부상과 재활 치료가 반복됐다.프로의 세계는 냉정했다. 부진과 공백이 길어지자, 입지가 좁아졌다. 강혁 코치는 "항상 쫓기는 마음으로 야구했다. (프로 출발이 늦은 만큼)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한 두 타석 못 치면 바로 교체였다"며 "고등학교 때 한 수 아래라고 생각했던 선수들이 프로에서 3~4년 경험을 쌓으니 날 뛰어넘더라. 그들과 다르게 난 성장이 멈춘 상태였던 거 같다"고 했다. 가장 후회하는 선택'선수 강혁'의 마지막은 2007년이다. 그해 강혁 코치는 김성근 신임 감독의 눈도장을 찍으려고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정근우, 최정을 비롯한 '젊은 피'에 밀렸다. 강 코치는 "개막 3개월 만에 1군에 올라갔는데 팀 연패 상황에서 병살타를 쳤다. 바로 1군 매니저가 오더니 2군으로 가라고 하더라"며 "그때 날 다시 부를 거 같지 않았다. 은퇴를 생각하니 슬슬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쪽팔리게 야구하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은퇴 후 인천 남구청 리틀야구단 감독을 거친 강혁 코치는 2013년 11월 SK 2군 타격 코치로 프로에 복귀했다. 2015시즌이 끝난 뒤 모교 신일고 감독에 부임한 그는 이후 KBO리그와 인연이 닿지 않았다. '야구 인생에서 가장 후회하는 선택'에 대해 강 코치는 "SK에 계속 있어야 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거기서 코치 생활을 하면서 위로 올라갔어야 했다. 그때는 그 선택이 맞다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면 그렇지 않더라"며 "모교 감독은 큰 영광이라고 생각했다. 10년을 승승장구해 보자는 마음가짐으로 갔는데 결국 2년 만에 나왔다"고 아쉬워했다. 신일고 감독 시절 길러낸 대표 제자는 문보경(LG 트윈스) 김휘집(키움 히어로즈) 등이다. '유소년 지도자' 강혁강혁 코치를 스카우트한 구경백 당시 OB 운영팀장(현 일구회 사무총장)은 "당대 최고였다"며 "콘택트 능력도 뛰어난데 프로에서 통할 파워까지 지닌 선수였다"고 회상했다. 대학 3학년 춘계리그 결승전 2사 만루에서 임선동(당시 연세대) 상대 고의사구를 얻어낸 건 두고두고 회자하는 '선수 강혁'의 명장면 중 하나다.강혁 코치는 '제2의 강혁'을 육성 중이다. 인천 서구에서 야구 아카데미를 운영 중인 그는 "내가 경험하지 않은 건 선수들에게 얘기하지 않는다. 단점보다 먼저 장점을 보려고 한다. '재밌고 즐겁게'가 모토"라며 껄껄 웃었다. 이어 "어디든지 날 필요로 하는 곳에서 선수를 가르치고 싶다"며 "모든 선수에게 열심히 하라는 얘긴 안 한다. 다만 김용희 전 감독의 얘기처럼 잘하고 싶으면 미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혁 코치는 크게 세 번의 선택을 했다. 신일고 졸업 후 프로가 아닌 한양대로 향했다. 한양대를 졸업한 뒤에는 상무(국군체육부대)가 아닌 현대 피닉스 유니폼을 입었다. 프로 코치로 경력을 쌓을 때는 훌쩍 모교로 떠났다. 그는 "선택마다 옳다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면 항상 틀렸다"고 자책했다. 지도자의 길은 그의 네 번째 선택일 수 있다. 이번엔 결과가 다를까.강혁 코치는 "아직 내 전성기는 오지 않았다. 최선을 다해 완수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인천=배중현 기자 bjh1025@edaily.co.kr 2023.12.18 07:01
연예일반

‘고려 거란 전쟁’ 백성현 “최수종=큰 성 같은 존재, 연기에 진심인 사람들만 모여” [IS인터뷰]

“그냥 딛고 가는 작품이 아니라 사명감을 가지고 찍었어요. 베테랑들이 모여 공들여 찍는 게 대하 사극이잖아요. 작품에 빠지게 되면 이렇게 좋은 작품이 나오는구나 싶더라고요.”배우 백성현이 KBS2 대하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 포문을 활짝 열었다. 3회까지만 등장하는 특별출연이지만, 주인공이라 해도 믿을 만한 존재감이다. 첫 시작을 여는 캐릭터라 부담이 됐다는 말과 달리 백성현은 대체 불가한 매력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고려 거란 전쟁’은 고려를 하나로 모아 거란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고려의 황제 현종(김동준)과 그의 정치 스승이자 고려군 총사령관이었던 강감찬(최수종)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 지난 26일 방송된 6회 시청률은 7.8%(닐슨코리아 전국 기준)를 기록했다. 매회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하며 안방극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백성현은 고려 7대 황제 목종을 연기했다. 목종은 남색에 빠져 지냈으나, 어머니 천추태후(이민영)가 김치양(공정환)의 아들을 태자로 남으려고 하자 반대하는 인물. 백성현은 대량원군(김동준)을 후계자로 만들기 위해 모후와 대립하는 과정을 탄탄한 연기력으로 완성하며 드라마의 몰입도를 높였다. 백성현은 짧은 등장에도 강렬한 존재감으로 SNS에서 뜨거운 반응을 일으켰다. 백성현은 최근 서울 중구 KG타워 일간스포츠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주변에서 짧아서 아쉬웠다, 고생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다. 출연한 작품을 볼 때 긴장하는 편이 아닌데 이번엔 긴장되더라. 다행히 칭찬을 많이 해주셔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목종은 초반부 문을 여는 캐릭터예요. 초반부에 잠깐 나오는 캐릭터는 어떻게 보면 단순하다고 생각들 수도 있어요. 그런데 목종은 입체적이고 재밌는 캐릭터 같더라고요. 한편으론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어 부담감이 크기도 했죠.” ‘고려 거란 전쟁’은 주인공인 현종 대신 목종의 이야기로 문을 열었다. 이에 막중한 책임감도 있었을 터. 백성현은 “극중에서 목종은 현종, 강감찬과 만나지도 않는다. 천추태후와 김치양, 유행간과의 이야기로만 궁중신을 이끌어가야 했다”며 “우리가 궁중 암투를 다뤘다면 저쪽(현종-강감찬)은 전쟁 이야기를 다뤘다”고 설명했다.“주인공들과는 만날 수 없는 희한한 경험이었어요. 누구에게 의지할 수 있는 상황이 전혀 아니었어서 감독님하고 상의도 하고 캐릭터 만들 때도 심혈을 많이 기울였죠. 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인물을 만들어가는 게 재밌었어요.”백성현은 1994년 데뷔한 후 다양한 작품에서 주인공의 아역으로 활약했다. 특히 최수종의 아역을 두 번 맡은 적 있는데 2002년 ‘태양인 이제마’와 2004년 ‘해신’을 통해서다. 이날 백성현은 “최수종 선배는 내게 큰 성 같은 존재다. 선배를 마지막으로 봤던 게 ‘해신’ 때였다. 그때가 고등학교 1학년이었는데 이후로 한 번도 못 뵀다. 이번에 오랜만에 뵀는데 선배님도 절 기억해 주시고 신기해하시더라”고 말했다. “선배님이 ‘두 아이 아빠가 돼서 아직까지도 연기하고 있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웃음) 첫 대본 리딩 때가 생각나요. 정말 연기에 진심인 분들만 계시더라고요. 함께 호흡하는 것만으로도 배울 점이 있었어요. 제가 짧게 나오긴 하지만 정말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성장할 수 있는 작품이었죠.”5살에 시작해 두 아이의 아빠가 되기까지. 백성현은 현재의 삶이 너무 좋다며 만족스러움을 표했다. 그는 “생각보다 결이 다 비슷한 작품을 해왔더라. 거의 다 선한 역할을 해와서 그런지 ‘고려 거란 전쟁’을 하면서 너무 재밌었다”며 “이젠 연산군 같은 캐릭터도 해보고 싶다”고 털어놨다.“‘고려 거란 전쟁’을 봐야 하는 이유를 꼽자면 명품 배우들의 연기가 아닐까요. 저희의 왕이신 최수종 선배부터 다른 배우들까지 연기에 구멍이 없다고 봐야죠. 또 전쟁신도 어마어마할 거라고 자신해요. KBS 사극 역사상 최고의 전쟁신들이 펼쳐질 예정입니다.”박로사 기자 terarosa@edaily.co.kr 2023.12.01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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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거란 전쟁’ 최수종 아역 출신 백성현 “두 아이 아빠 돼서 재회, 신기해하시더라” [인터뷰①]

배우 백성현이 17년 만에 최수종을 다시 만났다고 이야기했다.백성현은 27일 서울 중구 KG타워 일간스포츠에서 KBS2 대하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 인터뷰를 진행했다. ‘고려 거란 전쟁’은 고려를 하나로 모아 거란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고려의 황제 현종(김동준)과 그의 정치 스승이자 고려군 총사령관이었던 강감찬(최수종)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백성현은 고려 7대 황제 목종을 연기했다. 목종은 남색에 빠져 지냈으나, 그의 어머니인 천추태후(이민영)가 김치양의 아들을 태자로 남으려고 하자 반대하는 인물. 백성현은 대량원군(김동준)을 후계자로 만들기 위해 모후와 대립하는 과정을 탄탄한 연기력으로 완성하며 드라마의 몰입도를 높였다.백성현은 최수종의 아역을 두 번 맡은 적 있다. 2002년 ‘태양인 이제마’와 2004년 ‘해신’을 통해서다. 이날 백성현은 “최수종 선배를 마지막으로 봤던 게 ‘해신’ 때였다. 그때가 고등학교 1학년이었는데 그때 이후로 한 번도 못 뵀다. 이번에 오랜만에 뵀는데 선배님도 절 기억해주시고 신기해하시더라”라고 말했다.이어 “선배님이 ‘두 아이 아빠가 돼서 아직까지도 연기하고 있냐’고 물어보시더라.(웃음) 첫 대본 리딩 때가 생각난다. 리딩인데도 다들 몰입하면서 했고, 정말 연기에 진심인 분들만 계셨다. 함께 호흡하는 것만으로도 배울 점이 있다. 짧게 나오긴 하지만 정말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성장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고 소회를 밝혔다.KBS2 대하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은 매주 토, 일요일 오후 9시 25분 방송된다.박로사 기자 terarosa@edaily.co.kr 2023.11.29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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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신원전’ 국제대상 수상...배드보스 “그림으로 사회 도움되는 메시지 던질 것” [IS인터뷰]

“그림이 나를 살렸다. 힘든 시기를 견디게 해준 그림으로 사회에 조금이나마 도움되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음악 프로듀서 겸 팝아티스트 배드보스(본명 조재윤)는 그림을 수익 사업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를 겪었을 당시 배드보스에게 그림은 힐링의 원천이 됐고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해준 소중한 작업으로 다가왔다. 그는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닌 그림을 통해 자신처럼 더 많은 사람들이 의미있는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고 했다.배드보스의 이같은 뜻이 국내를 넘어 일본에서도 통했다. 그는 지난 10일 일본 도쿄도미술관에서 열린 제55회 일본국제미술공모전 ‘신원전’에서 고종 황제의 고명딸 덕혜옹주의 초상화를 팝아트로 해석한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The Last Princess in Joseon D.H)를 출품해 ‘국제대상’을 수상했다. 지난해 열린 제54회에서 은상을 수상한 데 이어 신원전 두번째 수상이다.사실 배드보스는 이번 공모전에 한 차례 출품 거절을 당했다. 덕혜옹주 출품 전 독립운동가인 도산 안창호를 그린 그림을 내세웠으나 현지 업계 관계자들의 불편함만 샀다. 덕혜옹주는 어린 나이에 일본으로 끌려갔으며 정략결혼의 희생양이 된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로서 우리나라엔 슬픔의 기억이다. 반대로 일본에는 굳이 언급하고 싶지 않은 역사일 터. 이 같은 덕혜옹주 작품으로 다시 도전을 한 것은 배드보스의 오기였다. 배드보스는 “수상을 기대하지 못했다. 역사적 의미에 기반했을 때 오히려 작품에 대한 극단적인 현지 반응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며 “이번 작품을 두고 일본 미술 업계 관계자들이 마음을 열어준 것에 대해 나름의 성과가 있다고 본다. 지난 역사에 대해 사과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의미를 더했다. 그림으로 양국의 역사를 다시 한번 상기시킬 수 있는 기회였고 배드보스도 작가로서 뜻깊은 시간이었다고 했다. 그는 “앞으로도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작품으로 많은 이들의 생각을 건드리고 싶다. 미술 작가로서 할 수 있는 가장 큰 행위”라고 뿌듯해했다. 배드보스는 음악 업계에 종사해왔으며 전공 역시 해당 분야다. 드라마 OST 제작을 하고 곡을 썼다. ‘쉬즈 곤’(She’s gone)으로 유명한 스틸하트의 보컬 밀젠코 마티예비치, 영국 ‘브리튼즈 갓 탤런트’ 우승자 폴 포츠의 국내 매니지먼트를 맡는 등 매니지먼트사도 운영했다. MBC플러스 예능 ‘우리 동네 팻밀리’, YTN라이프 ‘군인들은 무슨 책 읽어’ 등을 제작하며 방송 프로그램 제작사로도 업력을 쌓았다.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엔터 사업이 어려움을 겪었고 공교롭게도 아버지까지 세상을 떠나면서 심적으로 크게 흔들렸다. 그때 그를 일으켜 세워준 게 그림이었다. 배드보스는 “우울증이 심하게 왔었는데 미술치료가 도움이 된다고 해서 도전하게 됐다. 생각보다 내게 너무 잘 맞았고 힘든 시기를 버틸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이어 “7~8시간 동안 휴대폰도 꺼둔 채 그림을 그린다. 그 순간만큼은 걱정, 근심이 사라진다”며 “앞으로도 그림을 그릴 것이다. 이 사회에 도움이 되는 메시지를 던지며 의미있는 일을 할 것”이라고 의지를 다졌다.현재 배드보스는 덕혜옹주에 이어 인물 시리즈로 이방자 여사 초상화를 그리고 있다. 이방자 여사는 일본 국왕 메이지의 조카인 나시모토노미야 모리마사 친왕의 딸로서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 이은과 정략적 약혼을 하고 황태자비가 됐다. 1945년 광복으로 일본 왕족에서 제외되어 재산을 몰수 당하는 등 불행을 겪으면서도 1962년 한국국적 취득 후 사회사업에 전념한 인물. 배드보스는 “역사의 깊이를 담아낼 수 있는 인물들을 그리며 많은 이들에게 과거에 대한 의미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드리고 싶다”라고 기대감을 남겼다. 지승훈 기자 hunb@edaily.co.kr 2023.09.13 0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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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영 ‘악귀’ 김태리, 악귀 없앴다..”그래 살아보자” 깊은 여운으로 마무리

‘악귀’가 한국형 오컬트 미스터리의 대단원을 마무리했다. 지난 29일 방송된 SBS 금토드라마 ‘악귀’ 최종회에서는 악귀에게 잠식된 산영(김태리)이 살아내겠다는 자신의 의지로 악귀를 없앴다. 설사 시력을 잃더라도, “그래 살아보자”라고 다짐한 꿋꿋한 생의 의지 엔딩은 깊은 여운을 남겼다. ‘악귀’의 최종회는 자체 최고 기록인 시청률 11.3%(닐슨코리아, 전국 기준) 기록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아울러 채널경쟁력과 화제성을 가늠하는 핵심 지표인 2049 시청률은 5.3%를 기록하며 6주 연속 한주간 방송된 전체 프로그램 중 1위를 차지했다. 최종회에서는 해상(오정세)이 홍새(홍경)와 함께 향이의 시신과 옥비녀를 찾아낸 후, 산영의 그림자가 돌아오는 모습이 그려졌다. 해상은 악귀를 없애는 다섯 개의 물건을 봉인하지 않았는데, 머리를 풀어헤친 악귀의 그림자가 사라졌다는 점에 의문을 품었다. 산영의 뒤를 밟은 홍새는 그가 금은방, 화원, 자동차 정비소 등 사람을 독살할 때 쓰는 독성물질이 있는 곳을 찾아다니자, 눈앞의 산영이 악귀란 사실을 눈치챘다.해상 역시 산영의 엄마 경문(박지영)을 통해 악귀가 산영을 거울 속에 가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경문은 가족 사진을 모두 없애고, 미술 공부를 시작해보겠다는 산영이 딸이 아니란 걸 단번에 알아봤다. 해상은 그제야 마지막 의문을 풀었다. 악귀가 자신을 끌어들여 마지막 물건 옥비녀를 찾게 한 건 다섯 가지 물건과 이름이 악귀의 그림자를 없애는 방법이기 때문.악귀가 산영을 완전히 잠식하기 전에 악귀를 없애야 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 해상과 홍새는 실마리를 찾아냈다. 해상의 할머니 병희(김해숙)가 병실에서 떨어져 죽어가면서도 “나 혼자만 죽을 수 없다”며 왼손 검지에 상처를 내 다잉 메시지를 남긴 것. “여아의 손가락을 신체(神體)로 만든다”, 즉 진짜 태자귀가 된 향이의 손가락을 찾으라는 의미였다. 이에 해상은 홍새와 함께 본가를 샅샅이 뒤졌지만, 어디서도 신체는 발견되지 않았다.그 사이, 악귀는 경문에게 자동차 부동액을 탄 주스를 먹이고 해상 본가로 향했다. 경문이 딸을 살리겠다며, 해상이 찾고 있는 신체에 대해 실토했기 때문이다. 무당 최만월(오연아)은 병희에게 이번 태자귀는 보통 질긴 게 아니라 사람한테 달라붙을 수 있으니, 그때는 신체를 없애야 한다고 알려줬고, 악귀는 병희가 이를 어디에 숨겼는지 알고 있었다. 악귀가 거실 액자 뒤에서 신체를 찾아내자, 이를 몰래 지켜보던 해상이 나타났다. 그리고 신체를 빼앗아 불태우려고 했다. 악귀는 산영의 몸을 해하며 “이 몸이 죽으면 산영이 못 돌아온다”고 발악했고, 해상을 공격해 쓰러뜨렸다.악귀가 다시 신체를 손에 넣은 순간, 거울 속에 갇혔던 산영이 돌아왔다. 산영은 또래들이 직장에 다닐 때, 배달음식을 들고 뛰었고, 우연히 만난 동창의 대리 운전도 해야 했다. 한강다리 위에 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외롭고 고단한 삶이었다. 하지만 산영은 악귀가 가둔 거울 속에서 자신을 죽이려 달려드는 자신의 얼굴을 봤다. 어둠 속으로 스스로를 몰아세운 건 바로 자기 자신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자기만을 위해 살아보겠다는 의지로 어둠을 몰아냈다. 지독한 가난으로 나무껍질을 벗겨 먹고, 동생을 팔아먹고, 못된 귀신이 되면서까지 살고 싶었던 악귀는 그렇게 자신이 잠식했던 산영에 의해 사라졌다.악귀를 없앤 후, 산영은 버킷 리스트를 하나씩 이뤄가며, 꿋꿋하게 자신만을 위한 삶을 꾸려갔다. 눈을 감고 주변의 물건을 만져보는 등 언제 닥칠지 모르는 실명에도 대비했다. 해상은 몇 천억이나 되는 재산을 모두 사회에 환원해 여전히 ‘미친 교수’란 소리를 들으며 학생들을 가르쳤다. 홍새는 밤낮으로 수사에 매진했고, 경문은 능숙한 카페 사장님으로 거듭났다. 그리고 어느 곳에선가 문춘(김원해)과 강모(진선규)가 그런 두 사람을 성원했다.산영은 여전히 귀신이 보였지만, 무섭고 두렵지만은 않았다. 해상과 함께 “길을 잃고 떠도는 귀신을 좋은 곳으로 보내주고, 수많은 사람들의 염원을 담아낸 거대한 정화의식”인 ‘선유줄불놀이’ 광경을 바라보는 산영의 얼굴엔 행복한 미소가 피었다. 그 순간 산영에게 또다시 흑암시 증상이 찾아왔지만, “그래 살아보자”는 목소리엔 활기찬 생의 의지가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귀신뿐 아니라 주변도 돌아볼 수 있게 된 해상의 진심 어린 염원대로, ‘악귀’는 “모든 이들의 소원이 이뤄지고, 모두가 행복하길 바란다”는 메시지와 여운을 남기고 끝을 맺었다.유지희 기자 yjhh@edaily.co.kr 2023.07.30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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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IS] “아빠?”…‘악귀’ 김태리, 죽은 父 진선규 귀신 만났다…10% 기록

‘악귀’ 김태리가 죽은 아버지 진선규의 귀신과 만났다.지난 1일 방송된 SBS 금토드라마 ‘악귀’ 4회 시청률(이하 닐슨코리아 기준)은 수도권 가구 10.8%, 전국 가구 10%를 나타냈다. 순간 최고 12.3%까지 오르며 동시간대 및 토요 미니시리즈 1위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이날 방송은 오랜 시간 쫓았던 악귀와 드디어 대면한 해상(오정세)의 이야기로 문을 열었다. 해상은 “꼬마였는데, 많이 컸네. 네 엄마는 누가 죽인 걸까?”라며 조롱하는 듯한 얼굴로 자신을 도발하는 악귀에 맞섰다. 그가 건강과 안전을 바라는 염원을 담아 어린 여자아이에게 해주던 ‘배씨 댕기’를 언급하자 악귀의 입가엔 웃음이 사라졌다. 해상은 어머니가 죽기 전 가지고 있던, 그리고 구강모(진선규)가 산영(김태리)에게 남긴 그 댕기의 주인을 찾아내, “네 이름을 알아내겠다”는 굳은 의지를 전했다. 그때, 정신이 돌아온 산영은 숫자 ‘21’과 ‘176’을 중얼거렸다. 악귀가 흘린 새로운 실마리였다.산영과 해상은 이씨 할아버지(문창길)로부터 연락을 받고, 트라우마를 진정시킨 태영(이하은)과 만났다. 태영은 1년 전쯤 요양병원으로 할아버지를 찾아왔다는 강모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강모가 할아버지에게 “어린 여아 실종 2주 경과”란 오래된 신문 기사를 보여주며 ‘여아’가 누구인지 물었다는 것. 기사를 본 할아버지는 ‘이목단’이란 이름을 기억해냈다고 했다. 곁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이씨 할아버지도 장진리에서 어떤 여자 아이가 없어져서 마을이 뒤숭숭했었다는 기억을 첨언했다. 지금까지 나온 단서인 덕달이 나무와 배씨 댕기 모두 여자 아이를 가리켰다.산영과 해상은 국립중앙도서관 자료실에서 이씨 할아버지와 태영의 기억을 바탕으로, 1958년 5월~9월 사이 장진리 인근 지역 신문 기사를 검색했다. 그 결과, 산영이 “염매를 만든 비정한 무당”이란 제목의 기사를 찾아냈다. 염매는 어린아이를 굶겨 죽여 귀신을 만드는 주술 행위로, 어려서 죽은 귀신을 ‘태자귀’라 부른다는 해상의 설명을 들은 산영은 강모가 유일하게 출판한 저서에서 읽었던 태자귀를 기억해냈다. 이에 그 책을 다시 꺼내 보던 중, 태자귀를 설명한 책 페이지가 바로 ‘21쪽’과 ‘176쪽’이란 사실을 발견했다. 악귀가 흘린 숫자의 비밀이 풀린 순간이었다. 해당 페이지에는 그런 귀신을 쫓는 대표적인 의식이 ‘백차골 허제비 놀이’라는 설명도 있었다.산영과 해상이 향한 백차골의 마을회관에선 노인들이 대부분인 마을 주민들이 ‘당제’ 준비로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당제는 길거리에서 횡사한 ‘객귀’가 사람한테 붙는 걸 막으려는 이 마을의 오랜 전통으로, 몇 년 전 해상도 이곳에 한 달여간 머무르며 연구했던 제사였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던 해상의 얼굴에 불길한 기운이 드리웠다. 분명 마을 이장(이용석)은 매해 빠짐없이 당제를 지냈다는데, 너무 많은 객귀가 보였기 때문. 최근 줄초상 치르듯 노인들이 죽거나 아파서 쓰러졌다는 사실도 이상했다. 객귀를 몰아내기 위해 강력한 객귀 물림인 ‘허제비 인형’을 찾아봤지만, 오늘 아침에도 이장이 치성을 들였다는 인형이 감쪽같이 사라졌다.그날 아침 당집을 청소했다는 박씨 할머니(이용이)를 찾아간 해상은 밥상 앞에 마주 앉은 귀신을 봤다. “조심하라”는 해상의 주의에도 할머니는 꼼짝도 하지 않았고, 밥상엔 귀신에게 차려진 듯한 밥과 국, 그리고 수저가 놓여있었다. 해상은 할머니 눈에도 귀신이 보인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박씨 할머니는 그 귀신이 “시골이 싫어 가출했다가 자살한 딸”이라고 털어놓으며, “허제비 인형을 태웠으니, 아무도 딸을 해치지 못할 것”이라고 차분히 말했다. 하루도 잊어본 적 없던 딸이 집에 돌아오자, 귀신이라도 딸을 곁에 두고 싶은 할머니의 간절한 마음이 빚어낸 잘못된 선택이었다.그 사이 마을엔 객귀들이 몰려들었다. 마을을 둘러보던 산영도 거울을 통해 수많은 객귀를 보고 새파랗게 질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다 발을 헛디뎌 넘어진 산영이 고개를 들었는데, 저만치 폐업한 지 오래된 듯한 가게의 창문에 백발의 누군가가 비쳤다. 이상한 느낌에 다가간 산영은 먼지가 가득 낀 유리를 닦아냈다. 문 너머 서있는 누군가는, 바로 아버지 강모였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 떨리는 목소리로 “아빠?”라고 부른 산영. 또다시 충격 엔딩이 안방극장을 강타했다.한편 ‘악귀’는 매주 금, 토요일 밤 10시에 방송된다.권혜미 기자 emily00a@edaily.co.kr 2023.07.02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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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캡틴 나상호 "카타르서 축구·탁구 실력 모두 늘었죠" [IS 인터뷰]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이 막을 내린 지 보름 넘게 지났지만, 축구대표팀 공격수 나상호(27·FC서울)는 그때의 추억을 떠올리면서 “아직도 꿈 같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의 잔디를 밟는 순간, 16강 진출을 확정한 후 ‘붉은악마’를 향해 달려가던 찰나, 그리고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 적힌 태극기를 펼쳐 웃던 미소까지.성공리에 생애 첫 월드컵을 마친 나상호를 경기도 구리의 GS챔피언스파크에서 일간스포츠가 만났다. 나상호는 언론 인터뷰·구단 행사 등 빡빡한 일정을 보낸 뒤 2023시즌을 위한 담금질을 시작했다. 그는 “바쁜 일정으로 피곤한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모두 좋은 취지이지 않나. 오히려 (불러 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나상호는 인터뷰 일정을 조율하기 어려울 만큼 ‘인기 스타’가 됐다. 그는 우루과이와 치른 카타르 대회 조별리그 1차전(1-1 무)에서 강렬한 임팩트를 보여줬다. 공격 포인트는 없었지만, 후반 29분까지 머리가 뒤로 젖힐 정도로 ‘죽어라’ 뛰는 모습에 팬들은 감동했다. 나상호는 “공을 뺏기면 숨이 넘어갈 때까지 상대를 쫓아가야 한다는 생각만 했다”고 머쓱해했다.당초 카타르 대회에서 우측 공격수 자리는 걱정거리였다. 황희찬(울버햄프턴)이 햄스트링(허벅지 뒤 근육) 부상으로 조별리그 1·2차전에 결장했다. 나상호와 권창훈(김천 상무)에겐 물음표가 붙었다. 그러나 나상호가 좋은 경기력으로 황희찬의 자리를 메웠다. 이후 부상에서 회복한 황희찬이 포르투갈과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손흥민(토트넘)의 패스를 받아 결승 골을 터뜨렸다. 나상호는 “2022시즌을 시작할 때부터 ‘잘 준비해서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꼭 선발돼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시즌 중에는 소속 팀 성적에 신경을 더 썼다. K리그1 잔류를 확정하고, 대한축구협회(FA)컵 결승도 끝난 뒤엔 월드컵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라며 “우루과이전 선발 출전은 경기일 점심 식사하면서 알게 됐다. ‘드디어 첫 경기구나’ 하는 마음에 설렜다”고 밝혔다.카타르 대표팀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는 전언이다. 나상호도 “선수단 내 선·후배 사이가 정말 좋았다”고 돌아봤다. 그는 또래 동료들과 대부분 시간을 보냈다. 김문환(28·전북 현대) 황희찬, 황인범(올림피아코스) 김민재(나폴리) 조유민(이상 27·대전하나시티즌) 백승호(26·전북)가 이들이다. 나상호는 “운동과 취침 시간 빼고는 ‘나상호방’에서 항상 붙어 있었다”며 웃었다.이들은 숙소 탁구장에서 자주 모였다. 나상호는 “탁구 진짜 못한다. 내가 안쓰러웠는지, 인범이가 도와준 덕분에 카타르에서 실력이 조금 늘었다. 그래도 해볼 만했던 상대는 문환 형이었다. 나는 펜홀더그립”이라며 “승호와 유민이가 실력자였는데, 내가 보기에는 승호가 더 잘한다”고 전했다. 탁구도 즐거웠지만, 첫 월드컵에서 뛰는 게 가장 흥분됐다. 나상호는 파울루 벤투 전 대표팀 감독 부임 후 지속해서 차출돼 ‘벤투호 황태자’라는 말을 들었다. 칭찬보다는 비난의 뉘앙스였다. 나상호는 “‘모든 걸 보여줄 때다’ ‘후회 없이 뛰자’라는 각오였다.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린 거 아니겠나. 준비를 잘한 만큼 오히려 즐겁게 뛰었다”고 했다.서울은 8일 전지훈련지인 태국 후아힌으로 출국한다. 지난 3일 첫 팀훈련을 시작한 ‘서울 주장’ 나상호는 2023시즌에는 좋은 성적으로 보답하겠다는 각오다. 서울은 최근 3시즌 하위 스플릿(6~12위)에 그쳤다. 나상호는 “많은 서울 팬이 카타르까지 오셔서 응원해주셨다. 그만큼 서울 팬들은 축구에 진심이다.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행복 축구’만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구리=김영서 기자 zerostop@edaily.co.kr 2023.01.06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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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막내아들' 이성민, 실체 드러낸 송중기 와 대면+분노..최고 시청률 18.4% 폭등

'재벌집 막내아들' 송중기가 이성민 앞에 실체를 드러내는 모습으로 강렬한 엔딩을 선사했다. 지난 26, 27일 방송된 JTBC 금토일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5, 6회에서는 세기말의 위기와 맞닥뜨린 순양그룹과 진도준(송중기 분)의 모습이 그려졌다. 어머니(서정연)를 또 다시 잃고 순양의 완전한 주인이 되려 새로운 판을 짠 진도준. 불꽃 튀는 수싸움 끝에 '미라클 대주주'로서 진양철(이성민) 앞에 선 그의 모습은 더욱 휘몰아칠 전개에 궁금증을 폭발시켰다. 시청률 역시 무서운 상승세를 기록 중이다. 27일 방송된 6회 시청률은 전국 14.9% 수도권 16.5%로 자체 최고를 경신했으며, 분당 최고 시청률은 무려 18.4%까지 치솟아 동시간대 1위를 지켰다. 타깃 2049 시청률은 7.9%, 분당 최고 8.7%으로, 이 역시 전 채널 통틀어 1위를 차지했다. 1997년 국가 부도 사태가 대한민국을 휩쓴 가운데, 홀로 이를 대비해왔던 진도준은 오세현(박혁권)과 함께 '미라클인베스트먼트'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미라클이 첫 번째로 인수를 선택한 기업은 윤현우(송중기)의 아버지(이규회)이 몸 담았던 아진자동차였다. 미라클은 현직 노동자들의 고용 승계를 조건으로 아진자동차와의 협상에 나섰고, 이는 무탈히 인수 성공으로 이어지는 듯했다. 그러나 업계 2위 아진을 원하는 이는 또 있었다. 진양철 역시 휘몰아치는 계열사 구조조정의 압박 속, 순양자동차를 지키기 위해 아진자동차와의 합병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진양철의 방해에 하루아침에 '투기 자본'이라는 낙인이 찍히게 된 미라클. 그럼에도 진도준은 포기할 수 없었다. 순양차와 아진차의 합병은 노동자들의 정리해고로 이어질 터였고, 이는 곧 지난 생에서 윤현우가 어머니를 잃은 이유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가운데 또 하나의 변수가 등장했다. 정부가 대영자동차의 주도 하에 순양, 아진자동차의 합병을 추진하려 한 것. 미라클은 이를 이용해, 돈이 없는 순양자동차에게 다가가 인수자금을 지원하는 대신 17%의 지분과 고용 승계를 조건으로 내걸었다. 진양철이 이를 받아들이며 마침내 과거를 바꾸는 '기적'을 이뤘다고 믿었던 진도준. 그러나 다시 찾아간 옛집에서 그는 또 다시 어머니의 죽음을 목격했다. 심지어 사인은 심장마비였던 이전과 달리 극단적 선택이라고 했다. 어머니의 미스터리한 죽음 뒤편에는 '순양생활과학', 그리고 '네이누스'가 있었다. 국가 부도 직후 그룹의 열띤 홍보와 함께 급부상했던 순양생활과학은 정부 차원의 기업 인수합병 과정에서 청산이 결정된 곳이기도 했다. 그리고 네이누스는 바로 이 흐름에 발 맞춰 주식을 사고 팔았던, 순양 출신의 인물들로 이루어진 사모펀드였다. 이들은 벌어들인 차익으로 순양물산 주식을 매집했고, 이는 곧 불법 승계를 위한 비자금 조성을 의미했다. 결국 재벌가의 경영권 대물림 때문에 자신의 가족이 희생됐다는 사실을 깨달은 진도준은 큰 분노에 사로잡혔고, 순양 그 자체를 거머쥐기 위한 싸움에 돌입했다. 진도준의 다음 목표는 새서울타운 개발사업이었다. 훗날 그곳에 세워질 디지털미디어시티가 순양그룹의 돈줄이 될 것을 알고 있던 진도준. 그는 순양건설에 맞설 대항마로 제아건설을 사들인 데 이어, 정계 진출을 욕망하던 진화영(김신록)의 남편 최창제(김도현)를 자극하여 시장으로 만들었다. 최창제가 순양건설을 등지고 제아건설에게 새서울타운 사업권을 넘기자, 진양철은 그 뒤에 또 다시 미라클인베스트먼트가 있음을 직감했다. 검찰까지 움직여 오세현을 잡아들인 그는 미라클을 움직이는 대주주를 불러오라고 요구했다. 이에 착한 손자의 가면을 벗고, '미라클 대주주'로서 진양철의 앞에 선 진도준의 모습은 숨 막히는 대치를 보여주며 긴장감을 폭발시켰다. 이날 진도준과 악연으로 얽힌 순양그룹의 황태자 진성준(김남희)과 현성일보의 장녀 모현민(박지현)의 움직임도 그려졌다. 모현민에게 이미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진성준과는 달리, 모현민의 마음은 진도준에게로 기울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진도준이 미라클의 진짜 주인임을 알아본 모현민의 모습은 그가 보여줄 앞으로의 행보를 궁금케 했다. 이전 생에서 진도준은 국가 부도의 고통을 뼈 저리게 느낀 서민 '윤현우'였다. 그는 그때 가족의 운명을 뒤바꿨던 정리 해고만 해결한다면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이는 오산이었다. 진양철은 '주인'과 '머슴'의 위계 앞에서 냉혹했고, 돈 앞에서는 영악했다. 여기에 서민들의 피해를 이야기 하는 진도준에게 “니는 평생 서민으로 살 일이 없다”라고 말하는 그의 '정도'는 소름을 유발했다. 자신이 지난 생에서 받았던 고통이 모두 재벌가의 이기심 때문이었음을 실감한 진도준. 이제 할아버지 진양철 앞에 실체를 드러낸 그의 전쟁이 통쾌한 복수극이 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이지수 디지털뉴스팀 기자 이지수 2022.11.28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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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투호 황태자’ 황인범 “11명 모두 부족해서 2골 내줬어요”

황인범(올림피아코스)이 지난 코스타리카전을 돌아봤다. 파울루 벤투(포르투갈) 감독이 이끄는 한국은 지난 23일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코스타리카와 평가전에서 2-2로 비겼다. 벤투호는 완성도 있는 빌드업을 선보인 동시에 역습에 약한 모습을 보였다. 2실점 모두 카운터 어택에 당했다. 27일 카메룬전을 앞두고 기자회견에 참석한 황인범은 “매 경기 무실점 승리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난 코스타리카전에선 2실점을 했다. 수비는 수비수 4명과 골키퍼 1명만 하는 게 아니다. 11명의 모든 선수가 부족한 점이 있었기에 2실점을 허용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반대로 11명의 선수 모두가 잘했기에 두 골을 터뜨렸다고 생각한다. (카메룬전을) 준비하는 시간이 짧았지만, 실점을 안 하기 위해 수비수들끼리 미팅했고, 동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등 노력하고 있다. 모든 선수가 노력한다면 무실점과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황인범은 벤투호 황태자로 불린다. 그만큼 그를 향한 벤투 감독의 믿음이 크다. 황인범은 “공을 받는 위치와 반대 전환을 많이 말씀하는데, 이는 감독님이 모든 미드필더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경기와 훈련에서 어떤 것을 원하시는지 인지하고, 동시에 내 장점을 최대한 많이 보여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은 황인범의 생애 첫 월드컵이 될 가능성이 크다. 황인범은 “아직 월드컵 최종 명단이 발표된 것이 아니기에 답변하기 조심스러운 질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꿈꾸며 준비해 온 월드컵이기에 꿈을 이룰 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긴 하지만, 아직 확정된 건 아니다. 그때까지 부상과 컨디션 관리를 잘해서 최대한 팀에 도움이 되고 싶고, 최종 명단에 들고 싶다”며 바람을 이야기했다. 카메룬전은 월드컵 전 벤투호 완전체가 치르는 마지막 평가전이다. 과정과 결과를 모두 잡아야 한다. 황인범은 “누가 경기에 나설지 모르겠지만, 누가 경기에 나가든 모두 준비가 됐다고 믿고 있다. 카메룬전에서 우리가 준비해 온 것들을 보여줘야 월드컵을 앞두고 자신감을 얻고 당당하게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최대한 실점 기회는 줄이고 득점 기회는 늘리면서 기회를 골로 연결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겠다. 많은 응원 부탁드린다”고 각오를 다졌다. 김희웅 기자 sergio@edaily.co.kr 2022.09.26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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