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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특집] 박용택·김태균 '레전드 끝장토크' "우리는 거짓말쟁이들입니다"

한화에서 은퇴한 레전드 김태균(38)이 "지금도 팬들에게 약속을 지키지 못해 마음이 너무 아프다. 전지훈련 출발 전에 '각오를 밝혀달라'고 하면 '올 시즌 마지막에는 팬들과 함께 웃겠다'고 말했다. 십 년 넘게 같은 말만 반복하다 끝난 느낌"이라고 말했다. 은퇴식에서 눈물을 펑펑 흘린 이유를 설명하면서였다. 김태균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옆에 있었던 박용택(41)이 치고 들어왔다. LG에서만 뛰다 은퇴한 그는 김태균의 말에 자기 생각을 더해 한 문장으로 깔끔하게 정리했다. "우리는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공식적으로 가장 많이 거짓말을 한 사람들입니다." 박용택과 김태균은 2020년을 끝으로 은퇴했다. 닮은 점이 많다. 뛰어난 콘택트 능력을 자랑한 둘은 수많은 기록을 남기고 그라운드를 떠났다. LG와 한화를 각각 대표하는 프랜차이즈 스타로 팬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별명도 참 많다. 일간스포츠는 2020년 경자년(庚子年) 마지막 인터뷰이로 화려한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이제 막 제2의 야구 인생을 시작한 박용택과 김태균을 만났다. 본격적인 인터뷰에 앞서 김태균이 "고민 상담을 하려고 박용택 선배에게 문자를 남겼지만, 답신을 받지 못했다"며 섭섭한 마음을 전했다. 이에 놀란 박용택은 황급히 자신의 휴대폰을 뒤졌다. 그는 이내 "문자가 아니라 통화를 했잖아?"라며 "(요즘) 방송인이 다 됐네"라고 응수했다. 둘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대화를 이어갔다. 야구 인생의 비하인드 스토리부터 베테랑으로서의 어려움, 우승을 달성하지 못한 아쉬움까지, 둘은 두 시간 동안 진행된 인터뷰 내내 서로의 이야기에 공감하며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박용택(이하 박)="11월 30일로 선수 계약이 종료됐다. 앞으로의 밥벌이, 미래에 대한 불안함을 안고 있다. 가끔 구직활동에 나서고(웃음). 집에서 무의식적으로 야구 배트를 들었다가 '내가 왜 이러고 있지' 하며 깜짝 놀라서 던진 적도 있다. (김)태균이는 7월부터 배트를 안 잡았다고 하던데." 김태균(이하 김)="은퇴 후 배트를 잡아본 적 없다. 꼴도 보기 싫어. 너무 지쳤던 것 같다. 물론 앞으로 '뭘 해야 하나'라는 고민 속에 방송과 인터뷰를 하며 새로운 재미를 얻고 있다." 박="다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팬들에게 좋은 안 좋든, 마지막 모습으로 많은 팬의 기억 속에 남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 그래도 KBO리그가 팀당 144경기를 다 소화해 다행이다." 김="경기장에서 팬들의 환호가 들리지 않아 어색했다. 또 나만의 루틴이 있어 컨디션 조절이 쉽지 않았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은퇴 예고'와 '은퇴 투어'로 흘러갔다. 박용택은 2018년 말 LG와 세 번째 FA(자유계약선수) 계약 때 2020년 은퇴를 예고했다. 그리고 올해 '미니 은퇴 투어'를 했다. 반면 김태균은 구단의 2년 FA 제안을 정중히 거절하고, 1년 계약을 통해 명예회복을 노렸다. 그는 8월 15일 삼성전을 끝으로 조용히 은퇴를 결심했다. 김="용택이 형의 마지막 시즌은 정말 멋있었다. 나 역시 멋있는 마무리를 상상하면서 땀을 쏟았다. 그런데 쉽지 않더라. (은퇴 시기를) 미리 결정해야 했는데, 팀 상황과 개인 사정도 있으니…." 박="그런 면에서 태균이를 보면 너무 아쉽다. 같이 은퇴한 정근우 역시 비슷한 상황으로 물러났다. 근우에게 '시즌 종료 후 은퇴하겠다고 발표하는 것보다 더 일찍 팬들에게 이를 알리는 게 좋지 않겠느냐, (선수로 좀 더 뛰며 은퇴를 미루면 어떨지) 한 번 더 생각해봐'라고 말한 적이 있다. 지난겨울 태균이가 1년 계약을 결정하면서 '보여주겠다'라고 했을 때, 정말 힘들 것으로 생각했다. 최고참이 되면 나 혼자만 야구를 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팀 성적, 분위기를 신경 써야 한다. 한화가 우승권에 있는 팀이었다면 베테랑이 조금 못해도 괜찮다. 그러나 반대 상황이면 의지만으로 되지 않는다. 모든 걸 어깨에 짊어져야 한다." 김="정말 공감한다. '괜히 선배가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1년 전에는 명예 회복만 생각했는데, 막상 시즌에 돌입하니 고참으로서 신경 쓸 부분이 정말 많더라. 내 야구뿐만 아니라 후배와 팀, 구단과의 관계 등등. 20년 프로 생활 중 마지막 1년, 올해가 가장 힘들었다. 즐기면서 야구를 하지 못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은퇴 후 후련한 느낌이다. 나보다 오래 야구를 한 용택이 형이 대단해 보인다." 박="100% 공감한다. 마지막 FA 계약 때 1년만 더 뛰면 아쉬울 것 같아 '2년 후 은퇴할게요'라고 했다. 그 이상은 내가 너무너무 힘들어 더는 못 버티겠더라. 몸은 50세까지 할 수 있는데, 마음과 정신은 하루하루 스트레스가 컸다. 아쉬움 없이 이 힘든 걸(야구) 끝내려고 잡은 시간이 2년이었다." 포스트시즌 무대까지 밟은 박용택과 달리 '끝(정규시즌 종료)'이 보였던 김태균은 10월 22일 은퇴 기자회견을 했다. 이때 김태균은 큰 체격에 어울리지 않게 서러운 눈물을 하염없이 쏟았다. 박="나 역시 은퇴 기자회견을 하면 눈물이 흘러내릴 것이다. (팬들은) '박용택 또 운다'고 생각하실 것 같다. 태균이의 눈물을 보며 '같은 감정을 느끼고, 같은 생각을 하는구나' 싶었다. 오히려 눈물이 안 보이면 의아할 것 같다." 김="나도 울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눈물이 그냥 나오더라. (무슨 감정인지) 나도 모르겠더라. 내 플레이를 보면서도 '이제 저렇게 다시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지 눈물이 나더라. 참 이상했다." 박="그만큼 야구가 쉽지 않다. 요즘 '다시 태어나면 어떤 포지션을 할 것이냐'는 질문을 받는다. '나는 야구를 보지도 않을 거다'라고 말한다. 나 역시 공식적인 자리에서 팬들을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 들어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김="용택이 형은 모든 후배가 꿈꾸는 은퇴, 훌륭한 마무리를 했다. 팀(LG)도 오랜 암흑기를 겪다가 마지막에 좋은 성적을 냈다. 그래서 나는 팬들에게 더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이 컸다. 지금도 약속을 지키지 못해 마음이 무겁다. 전지훈련 출발 전에 '올해는 어떻게 하겠다' '팬들과 웃겠다'라는 각오와 목표를 10년 넘게 반복했지만, 말만 하다 끝난 느낌이다. 나중에는 같은 말만 되풀이하니 민망하더라. 형이 팬들의 사랑에 대한 최고의 보답은 팀 성적이라 했는데, 나는 그걸 보여드리지 못하고 끝내 아쉬움이 짙다. 그래서 은퇴 기자회견 때도 '죄송하다'는 말 외엔 드릴 얘기가 없었다. 뭔가를 드리지 못하고 떠나는, 죄인이 된 느낌이었다. 그래서 용택이 형이 정말 부럽다. 선수 생활도 잘 마무리하고 팬들에게 보답하고." 박용택은 LG 트윈스가 창단한 1990년 야구를 시작했다. '엘리트 코스'만 밟아온 그는 LG 트윈스 입단을 꿈꾸며 성장했다. 천안에서 초·중·고교를 나온 김태균 역시 한화 입단이 목표였다. 박="LG는 내 야구 인생의 시작과 끝이다. 가족이나 마찬가지다. 우리 팬들은 내가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LG의 긴 암흑기 동안 같이 슬퍼하고 화도 내며, 눈물을 흘렸다. (2013년 이후) 가을 야구를 하면서 같이 즐거워하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래서 나를 형, 동생, 오빠를 대하는 감정으로 좋아해 주신다."김="나 역시 한화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해 유니폼을 벗었다. 한화 이글스가 우리 집, 가족 같다. 한화에 몸담아 국가대표에 다녀오고 해외 진출(일본 지바 롯데)도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한화 덕분에 많은 걸 얻었다." 둘은 '별명 부자'이자 '기록 부자'다. 박용택은 역대 최초 10년 연속 3할, 7년 연속 150안타를 때려낸 '기록의 사나이'다. 은퇴 시즌인 올해 두 가지 기록을 추가했다. KBO리그 역대 최초로 개인 통산 2500안타를 달성했고, 개인 최다 출장 신기록도 작성했다. 김태균은 KBO리그에서 18시즌을 뛰는 동안 타율 0.320(2209안타), 311홈런, 1358타점을 올렸다. 개인 통산 출루율은 0.421다. 리그 역사상 2000안타와 300홈런을 함께 기록한 오른손 타자는 김태균이 유일하다. 2017년에는 86경기 최다 연속 출루 기록도 달성했다. 박="류중일 감독(전 LG)님의 스타일을 고려하면 최다 출장 기록 달성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2500안타 달성은 어려울 것으로 봤다. 이병규 타격 코치가 내 기록에 관해 굉장히 신경 쓰더라. 그래서 타격 코치가 '왜 일개 선수의 기록 달성을 염려하느냐. 후배들 타격 지도에 더 신경 써라'고 핀잔을 줬다. (박용택은 이병규 코치에게 '코치'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했다. 쑥스럽다고 한다. 그만큼 친분이 두텁다.) 또 최다 출장 기록 달성 전 정성훈(기존 기록 보유자)에게 전화했더니 '형, 내가 가진 통산 기록이 겨우 그거 하나다. 그걸 뺏어가냐. 욕심쟁이'라면서 '형, 고생했어'라고 하더라. 내 LG가 11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2013년을 제외하면 야구를 즐긴 적이 없다. 그땐 이병규, 정성훈, 이진영 등 고참급 선수 모두 야구가 잘 됐고, 팀 성적도 좋아 서로 장난도 많이 쳤다. 이 기간을 제외하면 야구를 즐겁고, 신나게 해본 적이 없다. 늘 버티려고 노력했다. 오래 버티고 버티다 보니 여기까지 왔고, 기록도 쌓였다." 김="나는 86경기 연속 출루 기록과 관련해 처음엔 의식도 하지 않았다. '어떻게 매일 출루하나?' 싶었다." 박="생각만 해도 스트레스 받을 만한 기록인데." 김="맞다. 문득 연속 출루 기록이 50경기에 다가섰을 때 '김태균 등번호가 52번이니까 '52경기 연속 출루'는 달성했으면 좋겠다'라는 댓글을 봤다. 그제야 기록에 대해 알게 됐다. 신경이 쓰였다. 처음 한두 타석에 출루하지 못하면 주변에서 '기록이 깨지는 거 아니냐'는 얘기가 들려왔다. 그럼 난 기록에 의식하지 않는 척 연기해야 했다. 그게 스트레스였다. KBO 신기록을 작성한 뒤엔 어떻게든 볼넷을 얻어 출루해야겠다는 생각에 타격 스타일이 바뀔 정도였다. '이러다가 안 되겠다' 싶어 초구부터 과감하게 휘두르고 했다. 그게 오히려 좋은 결과로 이어져 기록이 86경기까지 연장됐다. 기록 달성이 중단된 경기 마지막 타석에서 2루타성 타구를 쳐 '이제 됐다' 싶었다. 그런데 하필 김동엽(당시 SK, 현 삼성)이 쫓아가 기가 막히게 잡더라. 전날 배트도 선물했는데…. (김)동엽이가 숙소로 돌아가 '미안하다'고 전화를 걸어왔다. 그래서 '아니다. 잘했다. 천안북일고 후배가 잡아줘서 다행이다'라고 했다." 박="특별하게 잘하진 않았지만, 그냥 꽤 괜찮은 기록을 남겼다. 나이와 타협하지 않았다. 하물며 아버지께서 '나이 먹어서 배트 스피드 느려졌다'고 하신 말씀에도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했다. 또 타격 폼도 매일 조금씩 바뀌었다. 계속 연구하고 시도했다. 난 20대에 2할 타자, 30대에는 3할 타자였다. 40대에는 4할 타자를 하고 싶었다. 나이를 먹으면서 신체 능력이 떨어졌지만, 간절함은 더 컸기에 나름대로 꾸준한 모습을 보였던 것 같다." 김="용택이 형도 그런 것 같은데 나도 예민한 편이었다. 부진에 빠지면 배트를 끌어안고 잠을 잤다." 기록 얘기 도중 박용택의 '발'과 관련한 이야기가 나왔다. 박용택은 "잘 모르시는 분이 많은데 이대형(은퇴) 이전에 내가 LG 최초의 도루왕(2005년 43개)"이라고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그는 "20대에는 1군에서 버티려면 도루를 해야 했다. 그게 내 경쟁력이었다"라고 했다. 김태균도 "나도 과거에는 날렵했다"라고 했다. 그러자 박용택이 "그런데 왜 안 뛰었어?"라고 놀렸다. 김태균은 "입단 초기 때 코치님들이 '너는 다치지 말고 시즌 끝까지 소화하는 게 중요하다'라고 했다. 그래서 주루를 조절했더니, 나중에는 정말 못 뛰더라"며 자폭했다. 긴 프로 생활을 뒤로하고 이제 막 '제2의 야구 인생'을 내디딘 둘은 서로를 응원했다. 또 한국 야구의 발전을 고민하며 후배들에게 조언을 남기고, LG와 한화의 건승을 기원했다. 박="원래 야구 공부를 위해 미국 혹은 일본으로 유학을 가려 했다. 코로나19로 계획을 미뤘다. 다만 한 가지 원칙은 세워뒀다. 은퇴 직후 현장(그라운드)에 있고 싶지는 않았다. 물론 구단에서 러브콜도 없었다(웃음). 특정 팀에 소속되지 않은 채 제3자의 눈으로 한국 프로야구를 보고 싶었다. 내년에는 해설위원으로 팬들께 인사드릴 것이다." 김="용택이 형과 비슷한 생각인데, 다만 외국에서 야구 공부를 할 생각은 안 했다. 한화에서만 뛰었기에 시야가 좁다고 느낀다. 다른 팀의 장·단점을 보고 싶었다. '공부하려면 국내에서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부족한 것을 많이 알고 있어 (은퇴 뒤) 바로 지도자가 될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나도 해설위원을 고려하고 있다. 용택이 형은 말씀도 잘하시지 않나. 그래서 난 걱정이 된다. 요즘에는 야구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정말 전문가처럼 다양한 지식을 갖고 계신다. 이 부분을 충족시켜드리려면 준비를 정말 많이, 또 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도전하는 마음으로 해보려고 한다." 내년 시즌 LG와 한화의 전망을 부탁하자, 박용택은 "친정팀이라는 걸 떠나서 LG가 우승 후보 1순위는 아니다. 그래도 가을 야구에 진출할 확률은 90% 정도다. 그건 확실하다"라고 점찍었다. 김태균은 "한화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외국인 감독(카를로스 수베로)이 부임했다. 고참 선수들이 팀을 떠나면서 분위기에 민감한 젊은 선수 위주로 꾸려졌다. 수베로 감독이 젊은 선수들이 기죽지 않는 분위기를 만들어 줄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며 "당장 욕심부리기보다 가을 야구를 통해 경험을 쌓고, 자신감도 얻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흥도 많고, 화도 많은 우리 LG 트윈스팬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이제 사회인이 된 박용택입니다. 그동안 넘치고, 또 넘치는 사랑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평생 갚지 못할 것입니다. 정말 잘 간직하겠습니다. 열심히 살아가려고 합니다. 내년에는 아마 제3자의 눈으로 객관적이고 냉정한 눈으로 야구를 바라봐야 합니다. 어쩌면 LG 팬들이 왜 그렇게 화를 내셨는지, 왜 LG를 사랑하셨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응원 부탁드립니다. 항상 야구장 근처에서 여러분들 만나볼 수 있길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김="'보살 팬'인 우리 한화 이글스팬 여러분. 항상 죄송한 마음을 갖고 시즌을 치렀습니다. 좋지 않은 성적에도 한결같이 응원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제는 죄송하다는 말은 그만하기를 바랍니다. 우리 후배들이 저의 죄송한 마음을 풀어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도 뒤에서 잘 지원하겠습니다. 제2의 인생도 한화 이글스와 함께 잘 그려보겠습니다. 선수 시절 죄송했던 마음을 갚을 기회가 있도록 잘 준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30년 야구인생 담은 별명부자들 박용택 "머리에 얼음주머니 올리는 건 내가 시초"김태균 "넘어진 후 관중석 '괜찮아' 응원 창피했다" KBO리그에서 별명으로 박용택과 김태균을 뛰어넘을 선수는 없다. 둘의 별명에는 30년 야구 인생의 희로애락이 담겨 있다. 박용택은 "별명이 많다는 건 팬들의 관심 덕분"이라며 "다만 좋은 의미의 별명 못지않게 부정적인 의미, 또 화풀이나 놀림용 별명이 많다. 아무래도 팀(LG)이 오랫동안 암흑기를 보냈고, 이 기간 팀에 몸담아서 '쓴소리 화살'을 받을 대표적인 선수여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라고 말했다. 김태균은 "처음에 별명이 하나둘씩 생길 땐 너무 웃겼다. '어떻게 이런 기발한 별명을 만들지?'라고 생각하며 스트레스도 풀곤 했다"라며 "나중에 안 좋은 별명이 생기면서 멀리하게 됐다"라며 웃었다. [박용택]마호메트로-"머리에 얼음 주머니를 올리는 건 내가 시초. 왜 웃기냐면 내 얼굴에 아랍 느낌이 있으니까"커피택-"오해다. 나는 커피를 전혀 안 마신다. 캐모마일에 시럽을 넣어 마신다. 종이컵에 뜨거운 물을 받아 마셨는데 오해를 낳았다"용암택-"먼저 '찬물택'이라는 별명이 있었다. 그래서 '오늘은 왜 잘해?'라며 좋은 별명 지어주신 듯"꾸준택-"특별하게 잘하진 않았지만, 꽤 괜찮은 기량? 나이랑 타협하지 않았다. 신체 나이는 떨어져도 간절함은 더 컸기 때문"팬덕택-"내가 가장 좋아하는 별명. 발음도 좋다. 내 야구 인생은 정말 '팬덕택'이었다" [김태균]김꽈당-"수많은 별명의 시발점. 내 타격이 허무해서 하늘을 바라보다 잔디에 걸려 넘어져. 관중석에서 '괜찮아'라는 응원이 나와서 창피했다" 김스승-"KT 문상철이 조언을 구했는데 열정과 진정성이 느껴져 워밍업도 못 하고 설명했다. 오히려 내가 고마웠다"김소통-"어렸을 적 사진 찍는 걸 안 좋아했지만, SNS 활발해지면서 시작. 해시태그 없이 사진 올리니 주변에서 '아저씨 같다'라고"김기부-"쑥스럽다. 어릴 적 환경이 어려워 야구 그만둔 주변 선수들에 안타까움 느껴 조금씩 기부. 앞으로 더 많이 하겠다"김울보-"은퇴 기자 회견 그저 눈물이 나오더라. 뭔가 선물을 하지 못하고 떠나 죄인이 된 느낌. 팬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박용택과 김태균의 '송년 특집 인터뷰'는 일간스포츠 유튜브와 네이버TV 채널에서 영상으로 시청할 수 있습니다. 이형석·안희수 기자 2020.12.31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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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 캠프 모션] 콧수염 vs 안경, 코치 vs 해설…박용택의 선택은?

LG 박용택(41)은 잘생긴 외모에 패션 센스가 남다르다. 또 별명 부자다. 입단 첫 시즌인 2002년 처음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은 그는 LG 트윈스의 우승을 간절하게 바란다. 입담도 뛰어나고 후배들을 잘 챙겨 은퇴 후 진로도 궁금하다. 그래서 이와 관련된 두 제시어 중 한 가지를 선택하도록 했다. 박용택은 잠시 고민하면서도 유쾌하게 웃으며 답했다. -안경 vs 콧수염 "앞을 보고 살아야지. 안경은 끼고 살아야지. 아마도 올해는 콧수염 기르는 모습을 못 보실 것이다. 10년 정도 콧수염을 길렀는데 이제는 면도할 계획이다." -롤렉스 시계 vs 한국시리즈 MVP (LG는 1998년 故 구본무 LG 그룹 회장이 동기부여를 위해 당시 8000만원 상당의 롤렉스 명품 시계를 LG의 한국시리즈 MVP 상품으로 내걸었다.) "한국시리즈 MVP 부상이 롤렉스 시계 아닌가. 그렇게 알고 있다. 우승에 가장 공헌한 선수에게 시계를 준다고 했으니 한국시리즈 MVP가 받는 것 아닌가." -2002년(프로 입단) vs 2020년(마지막 시즌)"무조건 2020년. 2002년으로 돌아가면 야구하고 싶지 않다. 다시 태어나도 야구하지 않을 것이다(웃음). 그 정도 노력했으면 다른 일을 해도 잘 먹고, 잘 살 것 같다." -코치 vs 해설"아마도 다해볼 것 같다. 둘 다 경험하고 싶다. '어떤 야구인이 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다만 이것저것 경험하고 내가 가장 잘할 수 있고 야구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을 하지 않을까 싶다." -별명 vs 별명 ( '꾸준택' '간디택' '잠바택' '용암택' '찬물택' '별명택' 등등 30개는 족히 넘는다.) "가장 좋아하는 별명은 '팬덕택'이다. 두 번째 FA 계약을 한 뒤에 '팬들 덕분에 좋은 계약을 하게 됐다'고 했는데, 이후에 팬들이 '팬덕택'이라 불러줬다. 라임이 좋지 않나. (별명이 정말 많은데) 다 놀리려고 그러는 거지. 재밌잖아요(웃음)." 오키나와(일본)=이형석 기자 lee.hyeongseok@joongang.co.kr 2020.03.05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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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쌍둥이는 해피엔딩을 꿈꾼다

LG 트윈스는 올해 창단 30주년을 맞았다. '우승 청부사'로 영입한 류중일(59) 감독의 3년 계약의 마지막 시즌이자, '우승을 하는 게 소원"이라는 박용택(41)의 현역 마지막 시즌이다. '해피 엔딩'을 이뤄야 하는 이유가 그 어느 때보다 많다. 선수단은 하나의 목표로 달려간다. 우승이다. MBC 청룡을 인수한 LG는 1990년 창단했다. 그리고 창단 첫 시즌에 통합 우승의 역사를 만들었다. 1994년에는 유지현-김재현-서용빈 등 신인 삼총사를 앞세운 '신바람 야구'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했다. 창단 초기 호성적을 바탕으로 많은 팬을 확보했다. 하지만 2002년 한국시리즈 진출 이후 오랜 암흑기를 보냈다. 최근 10년간 4차례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지만, 1994년 이후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지 못했다. 故 구본무 회장이 선수들에게 동기 부여를 불어넣고자 LG의 한국시리즈 우승 때 최우수선수에게 선물하기 위해 구매한 8000만원 상당의 해외 명품 시계가 오랫동안 주인을 찾지 못한 채 보관돼 있고, 팬들은 팀의 상징과도 같은 '유광점퍼'를 잠시 꺼내입고 다시 옷장에 넣어 보관하고 있다. 이처럼 구단과 선수단, 또 LG를 응원하는 팬들 모두 '우승의 한'을 품고 있다. 2002년 입단해 올 시즌을 끝으로 유니폼을 벗는 박용택은 "2002년 한국시리즈가 마지막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우승을 못 한 채 마지막 시즌을 맞을 거라 생각한 적 없다"며 "(꾸준택, 간디택, 찬물택 등 별명이 많은데) '우승택'이라는 별명으로 마무리하고 싶다"고 간절함을 드러냈다. 창단 30주년을 맞는 올해 단단한 각오로 출발한다. 이규홍 대표이사는 "1990년 창단 첫 통합우승, 1994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역사의 뒤안길로 보내고 모두 제2의 창단을 맞는다는 자세로 트윈스의 성공시대를 만들어내자"며 "창단 30주년을 구단의 야망과 팬들의 소망을 모두 성취하자"는 야심찬 포부를 밝혔다. 류중일 감독 역시 "창단 30주년인 만큼 좋은 성적을 내서 LG 팬들께 선물을 드려야 된다"고 했다. 좋은 기운도 안고 출발한다. 박용택은 "LG가 첫 우승을 한 1990년에 야구를 시작했다. LG와 특별한 인연이 있나 보다"라며 웃었다. 또 류중일 감독은 "내 휴대전화 뒷번호가 2020이다. 또 팀명이 트윈스(쌍둥이)인데 올해 '20'이 반복되는 2020년이니까 좋은 느낌이다"고 했다. 2002년 입단해 19년째 줄무늬 유니폼을 입고 있는 박용택은 "내가 LG에 몸담은 기간 중 우승 확률이 가장 높다고 확신한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LG는 지난해 3년 만에 포스트시즌 무대를 밟았는데 올해에는 전력에 플러스 요소가 있다. 2차 드래프트를 통해 국가대표 출신 정근우를 영입, 취약 포지션인 2루수를 보강했다. 류중일 감독은 "정근우와 기존의 정주현을 경쟁시키겠다"고 했다. 1루 수비가 약한 카를로스 페게로와 재계약 대신, 새 얼굴을 물색 중인데 곧 영입 발표가 이뤄질 예정이다. 지난해 신인왕을 수상한 정우영의 뒤를 이어 즉시 전력감으로 손꼽히는 휘문고 출신 1차지명 투수 우완 이민호를 비롯한 신인 자원도 힘차게 새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또한 류제국, 심수창, 장원삼, 정상호 등 베테랑이 은퇴와 방출로 대거 빠졌지만, 젊은 자원들이 대거 부상에서 복귀하는 점도 기대요소다. 2016~2018년 홀드 38개를 기록한 김지용, 2018년 27세이브 정찬헌, 2019년 1차지명 투수 이정용 등이다. 모두 불펜 자원이다. 류중일 감독은 "정찬헌, 김지용에 김대현, 이정용까지 합류하면 과거(2000년대 후반~2010년대 초반) 삼성처럼 막강한 불펜진이 형성되지 않을까"라고 점쳤다. 2019년 LG의 불펜 평균자책점은 3.78로 상위권이었다. 시즌 도중 마무리로 옮겨 8승2패 35세이브 평균자책점 1.52를 기록한 '프로 4년차' 고우석과, LG 선수로는 22년 만에 신인왕을 받고 셋업맨에서 선발 투수로 보직 전환에 도전하는 '프로 2년차' 정우영은 한 단계 도약을 준비한다. 류중일 감독은 "지난해 좋은 성적을 올린 선수들이 올해에도 잘해야 한다. 고우석과 정우영은 자만하지 않고 새 시즌을 준비하도록 코칭스태프에게 주문을 할 것이다"고 말했다. 지난해 나란히 14승씩 기록하며 10개 구단 외국인 최고 원투 펀치로 활약한 타일러 윌슨-케이시 켈리와 올 시즌에도 함께 한다. 야수진은 백업 선수층이 얕은 편이나 박용택은 주전의 활약을 기대했다. 그는 "메이저리그는 20대 후반 전성기를 맞는데, KBO 리그를 살펴보면 30대 초반에 최고 성적을 많이 올리더라. 지금 우리 주전 야수진 대부분이 30대 초반이다"고 했다. 김현수와 이천웅, 채은성, 이형종, 오지환, 김민성이 모두 30대 초반이다. 4년 총 40억 원의 FA 계약으로 LG에 잔류한 오지환은 "우리 팀이 우승권에 근접해 있다고 본다"며 "나와 (김)민성이 형만 반등하면 될 것 같다. 민성이 형이 지난해 스프링캠프를 못 가서 힘들었을 텐데 같이 준비를 잘하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우승 목표를 이루기 위해 보완해야 하는 과제도 있다. 윌슨-켈리-차우찬으로 이어진 1~3선발은 강하지만, 국내 4~5선발은 뚜렷한 얼굴이 없다. 류중일 감독은 "10승 가까이 올릴 수 있는 4~5선발을 잘 갖추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선수단 내 사건, 사고 없이 한 시즌을 지내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해 음주 운전, 해외 전지훈련 도중 도박 시설 출입 등 선수단 일탈 행위로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LG는 최근에는 폭행 문제로 또다시 홍역을 앓고 있다. 선수단 사건, 사고는 팀 성적을 떠나 비난받아 마땅하고, 또 팀 분위기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이규홍 대표이사는 모범적인 자세를 주문했고, 류중일 감독은 강력한 경고를 선수단에 던졌다. 주장 김현수는 "선수 한 명이 잘못하면 (LG 야구단) 모두 피해를 받는다는 걸 깨달았으면 한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박용택은 우승을 향한 강한 염원과 기대감을 표현했다. "감독님께서 선수단 미팅 때 '올 시즌 좋은 성적을 내면 조만간 우승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그때 손들고 '올해하자'고 말하고 싶었다. 지난해엔 우승권 전력이라 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고우석, 정우영, 김대현 등 젊은 투수들이 많이 성장했다. 경험 많은 정근우가 우승 기운을 후배들에게 잘 전수할 수 있다. 또 감독님도 계약 마지막 시즌이다. 구단의 목표가 우승·가을 야구·리빌딩 등으로 나뉘는데 어떻게 마음을 갖느냐에 따라 결과가 다를 수 있다. 창단 30주년을 맞는 올해, 구단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모두 한마음으로 우승을 향해 달려가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형석 기자 2020.01.1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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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세 박용택…야구 마지막 시즌 꿈은 ‘우승택’

한국에서 별명이 가장 많은 야구 선수는? LG 트윈스 박용택(41)이다. 오랜 기간 활약해서 붙은 ‘꾸준택’, 콧수염과 안경 때문에 인상이 닮았다고 ‘간디택’, ‘가을야구 할 테니 유광점퍼 사도 좋다’고 말해서 생긴 ‘잠바택’, 심지어 찬스에서 약하다고 붙은 ‘찬물택’까지. 박용택도 자신을 ‘별명택’이라고 할 만큼 즐기고 있다. 올 시즌 은퇴를 앞둔 박용택이 희망하는 별명이 하나 있다. 그렇다. ‘우승택’이다. 박용택은 2002년 고려대를 졸업하고 LG에 입단했다. 그해 LG는 정규시즌 4위였지만, 준플레이오프(PO)와 PO를 거쳐 한국시리즈(KS)에 진출했다. 하지만 KS에서 삼성에 2승4패로 밀려 아쉽게도 우승에 실패했다. 신인 박용택은 데뷔하자마자 KS 무대를 밟았다. 그런데 그게 그에겐 적어도 지금까지는 마지막이었다. LG는 그 이후 17년간 KS에 가지 못했다. 류중일 LG 감독은 “나도 현역 때 우승 못 했다. 용택이 꿈이 LG 우승하고 유니폼 벗는 거라고 들었다. 올해 꿈이 이루어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용택에게는 올해가 우승에 도전할 마지막 기회다. 19번째 시즌인 올해를 끝으로 은퇴할 계획이다. 지난해 LG와 2년 계약을 한 그는 이승엽·이호준처럼 ‘2020시즌 뒤 은퇴하겠다’고 미리 선언했다. 1990년 야구를 시작한 그로선 야구선수 생활 30주년을 맞는 해에 끝을 맺게 됐다. 그는 “선수 생활 이렇게 오래 하면서 우승도 못 하고 마지막 시즌을 맞이할 줄 꿈에도 몰랐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신년식이 선수 입장에선 귀찮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시간도 이제는 아깝다. 또 특별한 기분이 든다. 시간이 빨리 간다”며 웃었다. 또 “올해가 마지막이란 생각에 싱숭생숭하다가도 운동하면 그런 생각이 사라진다. 시즌이 시작하면 편해질 것도 같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LG는 정규시즌 4위였다. 포스트시즌 마지노선인 5위권 턱걸이 수준이란 평가를 뒤엎었다. 시즌 내내 안정적인 레이스를 펼쳤다. 그러나 가을야구는 짧았다. NC를 물리치고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통과했다. 키움에 가로막혀 준PO에서 탈락했다. 올 시즌 LG는 지난해 전력을 그대로 유지한다. 지난해 나란히 14승씩 올린 타일러 윌슨과 케이시 켈리와 재계약했다. 내부 FA (자유계약선수) 오지환, 송은범, 진해수도 잡았다. 2차 드래프트를 통해 베테랑 내야수 정근우도 영입했다. 박용택은 “다른 팀과 비교할 수 없겠지만, 내가 19년간 LG에서 뛰었는데, (올해가) 가장 우승 가능성이 큰 것 같다. 객관적으로 봐도 우승 가능성이 있다. 솔직히 지난해는 우승할 팀이라고 얘기하기 어려웠다. 올해는 투수진도 정상급이고, 주축 타자도 전성기인 30대 초반”이라고 자랑했다. 그는 “은퇴한 형들이 하나같이 얘기하더라. ‘선수 때가 좋다, 은퇴를 번복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고. 하지만 나는 ‘우승택’으로 마무리할 수 있는 시즌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최근 체중을 5㎏ 정도 감량한 그는 “지난해 부상으로 많이 뛰지 못했다(64경기 출장). 올해는 1부터 100까지 몸 상태에 초점을 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박용택은 ‘기록의 사나이’다. 통산 안타 2439개로 1위다. 그의 안타 하나하나가 프로야구 역사다. 그는 “마음 같아서는 200개를 더 채우고 싶다”면서도 “개인적인 목표는 정말로 없다. 내가 아무것도 안 하고, 후배들한테 얹혀 가도 좋으니까 우승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배우 하정우씨가 공약 때문에 ‘국토대장정’을 하고 영화도 찍었다고 들었다. 우승한다면 나도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 소수정예로 33명(박용택의 등 번호)을 모아 전국 야구장을 전부 다 걸어서 도는 것도 괜찮겠다”며 웃었다. 지난해 한국 프로야구 마지막 장면의 주인공은 두산 투수 배영수(39)였다. 마지막 상황에서 교체 투입돼 아웃 카운트 3개를 잡고, 우승을 확정했다. 그리고 은퇴를 결정했다. 박용택은 “영수를 보면서 소름 끼쳤다. 어찌 보면 내가 꿈꾸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KS 7차전 9회 말 투아웃에 끝내기 안타를 치는 꿈. 그렇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2020.01.09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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