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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승연예] ‘리바운드’, 실패해도 괜찮아 우리는 젊으니까(We Are Young)

영화의 매력은 작품 안에서 이야기가 끝나지 않고 확장된다는 점 아닐까요. 좋은 영화 한 편이 촉발한 감상과 의미를 다른 분야의 예술과 접목해 풀어보고자 합니다. ‘환승연예’는 영화, 음악, 도서, 미술 등 대중예술의 여러 분야를 경계 없이 넘나들며 이야기하는 코너입니다.장항준 감독과 김은희 작가가 합작한 농구 영화 ‘리바운드’를 관통하는 감정은 ‘즐거움’이다. 별볼일 없던 고등학교 농구부가 내로라 하는 명문고를 하나하나 격파하는 과정을 그리지만, 즐거운 농구를 즐겁게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있다. ‘리바운드’는 지난 2012년 최약체로 꼽히던 부산중앙고 농구부가 준우승을 차지했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팀을 이끌어야 하는 코치는 25세의 어린 청년이다. 농구부 에이스는 키가 더 이상 크지 않아 슬럼프를 겪고 있고, 다음으로 농구를 잘하는 선수는 부상으로 프로의 꿈을 포기했다. 총 6명의 농구부 중 4명이 고등학생이 돼서야 정식 경기를 처음 뛰어본 팀이었다.부산중앙고는 누구나 예상하는 ‘실패’를 마주하게 된다. 첫 경기에서 최고의 실력을 가진 용산고와 맞붙게 된 것이다. 팀워크는 전혀 맞지 않고, 코치는 강하게 심판에 항의하다 퇴장 당한다. 결국 부산중앙고는 몰수패라는 치욕적인 패배를 당한다.실패를 딛고 다시 뭉쳤다. 이유는 단순하다. 농구가 좋으니까. 3040세대의 심금을 울린 만화 ‘슬램덩크’에서 사고뭉치 정대만이 긴 방황을 끝내고 코트로 돌아온 이유도 이것이었다. “선생님, 농구가 하고 싶어요”. 한국 엘리트 체육의 공식을 무시하고 ‘하고 싶은 농구’를 중심으로 모인 부산중앙고는 대체선수 없이 8일간 쉼 없이 달려간다. 전국 강팀을 하나씩 격파해가던 부산 중앙고가 최강팀 용산고를 만나 고전하지만 이들은 멈추지 않는다. 거친 숨과 땀방울로 가득한 라커룸에서 이들은 후회 없는 경기를 뛰자고 다짐하며 손을 모은다. 그 순간 밴드 펀(FUN.)의 명곡 ‘위 아 영(We are young)’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오늘 밤, 우리는 젊어. 그러니 세상을 불태워보자. 우리는 태양보다 더 밝게 빛날 수 있어” 가사 전체를 보면 ‘위 아 영’은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술을 퍼 마시는 한심한 젊은이들을 연상할 수 있다. 하지만 청년이 한심한 시간을 보낼 때 ‘태양보다 더 밝게’ 빛날 수 있다. 엘리트 체육의 시각으로 보면 부산중앙고의 도전기는 매우 비효율적이다. 주목받지 못하는 선수와 어린 코치, 열악한 지원 등 실패할 수밖에 없는 요소가 다 모였다. 이런 환경 속에서도 농구를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뭉치자 준우승이라는 ‘세상을 불태우는’ 결과를 낼 수 있었다. 사람이 살면서 어떻게 모든 선택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까. 청춘에서 낭비한 시간이 때로는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여백’이 되기도 한다. 장항준 감독은 최근 일간스포츠와 인터뷰에서 “(한국 엘리트 체육은)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듯 대학에 못 가면 끝나고, 프로에 못 가면 끝나고, 부상을 당하면 끝난다”며 안타까워 했다. 장항준 감독은 부산중앙고가 이례적인 기록을 세울 수 있던 이유로 “주변의 기대가 없었기에 즐겁게 할 수 있었다”는 것을 꼽기도 했다.‘리바운드’는 농구가 끝나도 인생은 계속된다고 말한다. ‘위 아 영’도 청춘에게 실패해도 괜찮다, 우리는 젊고 살아갈 날이 더 많다고 외친다. ‘리바운드’는 이 노래를 틀기 위해 ‘억’소리 나는 개런티를 줬다고 한다. 그만큼 ‘리바운드’에 꼭 필요한 가치와 한국 젊은이들의 감정을 제대로 담은 노래라는 얘기다. 밴드 펀의 멤버 네이트 루스는 지난 2013년 안산 밸리 록 페스티벌에서 한국 관객들이 ‘위 아 영’을 떼창(다함께 부르는 노래)하는 것을 보고 크게 감동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밴드 펀의 또다른 노래 ‘캐리 온(Carry On)’도 명곡이니 추천한다.‘리바운드’는 오는 5일 개봉한다.김혜선 기자 hyeseon@edaily.co.kr 2023.04.02 11:00
프로농구

[IS 피플] 추일승 농구대표팀 감독 "우리도 손흥민이 필요하다"

“국내 팬들로부터 ‘우리 농구가 조금 괜찮아졌다’는 말을 듣도록 해야겠다.” 대표팀 훈련을 위해 진천선수촌에 입소하기 전 일간스포츠와 만난 추일승(59) 남자농구 국가대표팀 감독은 ‘아시아컵 성적이 중요할 것 같다’라는 질문에 창밖을 바라보며 이렇게 답했다. 최근 농구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된 추일승 감독은 7월 12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리는 2022 국제농구연맹(FIBA) 아시아컵을 시작으로 내년으로 미뤄진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까지 대표팀을 이끈다. 지난 2월 대표팀은 코로나19 이슈 탓에 2023 농구 월드컵 예선에 불참, FIBA로부터 실격 처리됐다. 추일승 감독은 “중요한 대회에 출전할 기회조차 받지 못한 건 어른들의 잘못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시아컵에서 우리가 좋은 기량을 보여주면 만에 ‘(월드컵 예선 참가) 기회를 한 번 더 주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열심히 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16개국이 참가해 4개국씩 4개 조로 나눠 조별리그를 치르는 아시아컵에서 FIBA 랭킹 30위 한국 대표팀은 대만(69위) 중국(29위) 바레인(106위)과 B조에 속했다. 추일승 감독은 “현재 한국 농구는 아시아에서 중하위권”이라며 “예능 프로그램에서 인정받는 게 아니라 경기력에서 한국 농구가 아시아에서 높은 위치에 있다는 걸 보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농구인이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약하며 농구의 인기 회복에 앞장서는 것에 더해 대표팀도 국제대회에서 성적을 거둬 대중의 관심을 끌어야 한다는 의도다. 현재 농구대표팀 사정은 좋지 않다. 이승현(전주 KCC) 전성현(고양 오리온) 김선형(서울 SK)이 부상으로 합류하지 못하거나 도중 소집 해제됐다. 대표팀 주축 자원들의 부상에 추일승 감독은 크게 아쉬워했다. 추 감독은 “최준용, 양홍석, 송교창, 김종규, 강상재 등 체격·스피드를 갖춘 빅 포워드를 활용해서 빠른 농구를 해볼까 한다”고 구상했다. 이어 추 감독은 “갖은 핑계를 대면서 훈련은 안 하고 경기만 뛰려고 하는 선수들보다 훈련 때부터 열정 있는 태도를 보여주는 선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추일승 감독은 남자 축구대표팀 손흥민(토트넘)을 언급했다. 추 감독은 “프로농구가 시즌 일정이 빡빡하고 주전 선수에 대한 의존도가 높긴 하다. 그런데 손흥민은 소속팀에서 활약한 후 장시간 비행기를 타고 와서 대표팀에서 뛰어도 핑계와 변명이 없지 않나. 세계적인 선수라는 생각이 든다”며 “태극마크를 달았을 때는 더 희생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정신력만 강요하는 건 아니다. 추일승 감독은 지도자의 역량과 훈련 시스템이 갖춰져야 대표팀 선수들의 기량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추 감독은 “최근 대표팀은 필요한 때에 맞춰 소집된다. 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짧은 기간에 선수들에게 (대표팀에 맞는) 농구 색깔을 입히는 효율적인 훈련 시스템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표팀은 세대교체를 진행하고 있다. 이현중(데이비슨대) 여준석, 문정현(이상 고려대) 등 2000년 이후 출생 선수들이 강화 훈련 명단에 포함됐다. 양홍석, 하윤기(이상 수원 KT) 등 프로농구에서 두각을 나타낸 이들도 태극마크를 달았다. 이중 이현중이 대표팀 명단에 포함되자 많은 관심이 쏠렸다. 이현중은 대학 3학년을 마치고 미국프로농구(NBA) 드래프트에 도전했다. 이현중이 대표팀 슈터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였지만, NBA를 노크하느라 대표팀에 합류하기 사실상 어렵다. 드래프트에 탈락하더라도 이현중은 NBA 하부 리그인 G리그에 남아 도전을 이어갈 계획이다. 추일승 감독은 “현중이는 스스로 슛 찬스를 만드는 게 필요하다. (NBA 리거가) 되기만 하면 농구 인기 회복에도 좋을 것”이라며 “대표팀에서는 한 시대를 끌고 갈 선수가 되지 않을까 싶다”며 기대했다. 추일승 감독은 오는 17일과 18일 안양체육관에서 열릴 필리핀과 평가전에서 여준석을 테스트 할 생각이다. 추 감독은 “여준석을 아시안게임에서 키워볼 선수인지 시험하기 위해 과감하게 기용할 생각”이라며 “1번(포인트 가드)부터 5번(센터)까지 다 맡을 수 있다는데, 맞는 옷(포지션)이 어떤 것인지 봐야 한다. 대학교에서 20득점 20리바운드 하면 뭐하나”고 말했다. 포워드 문정현도 주목하는 선수다. 문정현은 2022 KUSF 대학농구 U-리그에서 여준석과 함께 고려대를 정규리그 1위로 이끈 주역이다. 추일승 감독은 “경기력 향상 위원들이 이견 없이 문정현을 추천하더라. KT 김동욱 아니면 울산 현대모비스 함지훈 같은 선수”라며 기대했다. 김영서 기자 zerostop@edaily.co.kr 2022.06.14 05:30
스포츠일반

예능도 농구도 허·허·허

요즘 허재(57) 전 남자농구 대표팀 감독 만큼 잘 나가는 이가 또 있을까. 프로농구에서 활약 중인 두 아들 허웅(29·원주 DB)과 허훈(27·수원 KT)도 인기가 상한가다. 16일 열린 프로농구 올스타전을 앞두고 허재-허웅-허훈 삼부자를 서울 강남의 한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허씨 삼부자’는 “요즘 각자 너무 바빠서 한자리에 모이기도 힘들 정도”라면서 인터뷰를 시작했다.선수 시절 ‘농구 대통령’으로 불렸던 허재는 이제 ‘예능 대통령’으로 불린다. ‘허씨 형제’ 허웅과 허훈은 올스타전 팬 투표에서 역대 최다 득표 1, 2위를 차지했다. ‘별들의 잔치’ 올스타전은 입장권 예매를 시작한 지 3분 만에 매진 됐는데 허웅과 허훈이 각 팀의 주장을 맡았다. 이날은 허재가 특별 심판으로 깜짝 등장해 ‘팁오프’를 했다. 허재는 “허씨 가문의 경사이자 영광”이라며 “허허” 웃었다.“선수 시절 MVP, 득점상 등을 다 받아봤는데, 꽤 오랜만에 상을 받는 건 같다. 은퇴 직전에 받은 ‘모범상’이 마지막이다. 그때 ‘욱’하는 성질을 줄여서 모범상을 받았지.”허웅은 “아버지가 운동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도 성공하다니 참 대단하다고 느낀다. 새해에도 큰 웃음을 주시지 않을까”라고 했다. 허재 가 “올해는 대상도 노려볼까”라고 맞받자, 허훈은 “유재석 님, 강호동 님이 계신다. 아빠는 책을 좀 더 읽고 한 단계 업그레이드돼야 한다”고 말했다.축하 인사를 건네자 허재는 ‘예능인’답게 농담으로 맞받아쳤다. 선수 시절 MVP(최우수선수)를 4차례나 받았던 허재는 지난해 말 열린 KBS 연예대상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예능 늦둥이’ 허재가 2019년 JTBC ‘뭉쳐야 찬다’에 처음 출연한 지 2년 반 만이다.허훈은 “아버지가 감독으로 일하실 때는 염색도 안 하셨다. TV 화면엔 스트레스 받는 모습만 나왔다. 아버지 원래 모습이 바로 이거였는데 이제야 꾸밈 없이 편안한 모습을 팬들이 알아봐 주시는 것 같다. 아버지는 원래 항상 ‘웃는 상’이었는데 ‘카메라 마사지’까지 받으니 인상이 더 좋아졌다”고 했다. 허재는 현역선수일 때는 물론 지도자로 나섰을 때도 ‘버럭’하는 이미지가 강해 대중이 다가가기 어려웠다. 하지만 예능에서 보여주는 그의 ‘허당 끼’ 가득한 모습을 대중이 좋아하고 있다.최근 허재는 유튜브 채널 ‘모던 허재’를 개설했다. 그는 “농구 부활을 위해 ‘뭐든지’ 하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올 시즌 KBL(프로농구연맹) 명예 부총재로 선임된 허재는 개막전에서 시투를 했다. 펭수와 농구 대결을 벌이는가 하면 댄서 아이키와 함께 ‘회전목마’ 춤도 췄다.허웅은 올 시즌 올스타 팬 투표에서 16만3850표를 받아 이상민(삼성 감독)이 갖고 있던 역대 최다득표 기록을 19년 만에 갈아 치웠다. 허훈은 역대 2위(13만2표)에 올랐다. 허재는 “지난 시즌엔 작은 애가 팬 투표 1위였는데 이번에 큰 애가 1위를 했다. 농구계 대선배들이 ‘농구가 배구보다 인기가 떨어졌다’고 걱정하시는데 두 아들이 농구 흥행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또 “피부가 하얀 웅이는 이상민처럼 보호 본능을 일으키는 것 같다. 훈이는 항상 웃는 게 매력적이다. 내 매력? 나는 상남자 아닌가”하며 껄껄 웃었다.허재는 “특히 웅이의 인기는 상상 이상이다. 팬들이 보약부터 시작해 하나부터 열까지 다 챙겨준다. 하루는 우리 삼부자가 예능 촬영차 목포의 한 섬에 갔는데 여성 팬이 빵을 챙겨서 찾아왔다. 정말 고마워서 내 차로 항구까지 데려다 줬다”고 했다.허웅은 지난해 예능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 출연한 뒤 아이돌급 인기를 누리고 있다. 허웅은 “지난해 생일날 선물을 정말 많이 받았다. 선물을 원주 숙소에서 서울 집으로 옮기기 위해 용달차까지 불렀다”고 했다. 홍삼, 로션 등은 물론 명품 선물까지 받았다.1990년대 농구대잔치 시절 허재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팬들이 허재의 아내(이미수씨)에게 다가가 팔을 꼬집고, 차에 흠집을 낸 적도 있다. 허웅은 “아버지 때랑 인기를 비교할 수 없다. 당시 농구는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였다”고 했다. 허재는 “예전엔 팬들이 종이학 천마리를 접어서 보내줬다. 너희도 팬들을 위해 올스타전에 설렁설렁 뛰지 말고 존재를 ‘각인’ 시켜야 한다”고 했다.그동안 허재가 농구 코트를 찾으면 허웅과 허훈 형제는 부진한 편이었다. 과도한 부담감 탓으로 보였다. 허훈이 “엄마가 경기장에 오면 우리 팀이 이기는 경우가 많아서 엄마는 ‘승리 요정’이라 불린다. 그런데 아빠만 오면 죽을 쑨다”고 털어놨다. 그러자 허재는 “야! 나도 너희들 경기를 볼 때면 화면에 얼굴이 10년은 늙어서 나온다”고 맞받아쳤다.그러면서도 허재는 “요즘 코트에 가면 ‘웅이, 훈이 아버지’ 또는 ‘허버지’라고 불린다. 이런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좋다”며 “옛날에는 웅이와 훈이가 ‘허재 아들’로 불리며 어려움을 겪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데 훈이는 2년 연속 실력을 발휘하고 있고, 웅이는 올 시즌 기술이 향상됐다. 두 아들 모두 아버지 그늘에서 벗어난 것 같아 기특하다”고 했다.최근 한 프로농구팀은 허재에게 농구계로 돌아오라며 러브콜을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허웅은 “아버지는 예능에 잠깐 발을 담그고 있지만, 뼛속까지 농구인이다. 언젠가는 농구계로 돌아오실 것”이라고 했다. 허훈은 “아버지는 ‘농구대통령’이라 불렸지만, 저는 아직 한참 멀었다. 굳이 비유하자면 보좌관 정도”라고 했다. 허웅은 “그럼 난 수행 비서 정도다. 아버지의 기록을 넘어서긴 어렵겠지만, 오랫동안 코트에서 뛰고 싶다”고 밝혔다.대구=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2022.01.17 08:30
야구

[창간특집] 치어리더의 역사③ 치어리더 3대장을 아십니까

한국 치어리더의 역사는 프로야구 역사보다 더 길다. 실업야구 롯데 자이언츠가 1975년 창단할 당시 응원단 '롯데 엔젤스'를 만든 게 최초의 치어리더 팀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롯데 엔젤스는 현재의 치어리더와 달리 '고적대'와 비슷한 구성이었다. 프로야구 초창기에도 '치어 걸'은 있었다. 하지만 대학 응원단 출신이나 춤을 잘 추는 그룹사 직원들이 파트타임으로 참여하는 수준이었다. 치어리더들이 본격적으로 활약하기 시작한 건 1990년대다. 야구장에서 팀을 상징하는 유니폼을 갖춰 입은 치어리더들이 응원단장과 함께 관중 응원을 이끌었다. 1997년 프로농구가 출범한 뒤엔 실내 코트에서 미국프로농구(NBA)처럼 화려한 율동을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1998년 프로농구 오리온스에서 치어리더를 시작한 노숙희 팀장은 "프로농구 출범 이후 치어리더들도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고 했다. 자연스럽게 '유명 치어리더'도 등장했다. 고지선(SK), 송주현(LG), 박채경(삼성) 치어리더는 수천명이 넘는 팬카페 회원이 생겼다. 치어리더들이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누린 건 2010년대부터다.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2008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프로야구 인기가 높아졌고, 자연스럽게 치어리더들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2세대 치어리더 대표 주자는 단연 박기량(30)과 김연정(31)이다. 2007년 치어리더를 시작한 박기량은 큰 키와 춤 실력, 높은 인지도를 얻어 '스타 치어리더'로 떠올랐다. 현재 소속사 RS ENT 팀장인 그는 무려 13년째 롯데 자이언츠를 응원하고 있다. 비슷한 시기 치어리더를 시작한 '경성대 전지현'으로 유명해진 김연정이 롯데에 합류한 2012년부터는 인기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팬들은 2013년 데뷔한 이수진 치어리더까지 세 사람을 묶어 '야구장 3대 여신' 혹은 '치어리대 3대장'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들은 야구장 밖으로 나가 방송 출연, 광고 모델 등 연예계로 활동 범위를 넓혔다. 최근엔 '신(新) 3대 여신'도 등장했다. 안지현(롯데), 서현숙(두산), 김진아(KT)가 주인공이다. 이들은 '사진 기사'와 '직캠(직접 촬영한 영상)'이 인기를 누리면서 지명도가 높아진 케이스다. 세 사람 외에도 이나경, 김한나, 박현영 등 유명 치어리더들이 등장했다. 김효경 기자 2021.09.24 06:32
스포츠일반

농구영신 상표권 등록, 프로농구가 가치를 찾아가는 법

"송구영신 오타 아니에요?" 한국프로농구연맹(KBL)이 처음으로 '농구영신'을 기획했을 때 농담처럼 했던 말이다. 물론 '농구'와 '송구영신'을 더해 만든 '농구영신'은 직관적이면서도 센스있는 작명이었지만, 한 해의 마지막과 새해의 시작을 농구장에서 맞이할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하는 의문을 지우기 어려웠다. 그러나 '농구영신'이 첫 뚜껑을 연 2016년 12월 31일 밤, 6083명이 모인 고양체육관의 풍경과 함께 이 의문은 눈 녹듯이 사라졌다. 그 이후로 4년, 해를 거듭할 수록 더욱 무르익은 '농구영신'은 어느덧 KBL을 대표하는 히트상품이 됐다. 수사적인 의미가 아니라, 상표권 등록까지 마친 진짜 '히트상품'이다. 국내 프로스포츠 중 유일하게, 가는 해와 오는 해에 걸쳐 치러지는 남자 프로농구의 '농구영신'이 하나의 브랜드가 됐다. KBL은 지난 8일, 2016~2017시즌부터 매년 12월 31일에 개최해온 '농구영신' 매치에 대한 상표권 등록을 마쳤음을 알렸다. 지난해 12월 특허청에 '농구영신' 상표 출원 신청을 한 지 약 5개월 만에 상표 등록이 완료돼, KBL이 '농구영신' 상표에 대한 독점권을 소유하게 된 것이다. 스포츠의 특정 이벤트 브랜드가 상표권까지 획득한 경우는 이번 '농구영신'이 국내 최초다. 이제 겨우 4번을 치른 농구영신이지만, 올스타전과 함께 KBL의 흥행 보장 카드로 자리매김한 이 특별한 이벤트는 프로농구의 장점과 매력을 극대화했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추춘제 시즌 스포츠이자 실내 스포츠인 프로농구의 특성을 십분 활용해 다른 종목에선 시도할 수조차 없었던 전혀 새로운 이벤트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야외 스포츠인 축구나 야구, 골프는 시즌도 맞지 않고, 같은 겨울 스포츠이자 실내 스포츠인 배구의 경우엔 점수제 경기로 시간을 예측하기 어려워 농구영신과 같은 이벤트를 시도하기 어렵다. '쿼터제로 시간제한이 있는 겨울철 실내 스포츠'라는 프로농구가 가진 기본적인 특성에 팬들이 원하는 특별함을 더하고, 대중이 원하는 이색적인 송년 이벤트로 포지셔닝한 것이 대성공을 거둔 셈이다. '농구영신'의 성공과 상표권 등록이라는 결과물은 프로농구에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농구대잔치 시절부터 프로농구 초창기까지, 농구는 팬들의 뜨거운 사랑 속에 겨울 스포츠의 꽃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매 시즌 관중 수가 줄어들고, 화제성 역시 동반 하락하면서 프로농구계는 절박해질 수밖에 없었다. 각 구단들과 KBL은 팬들의 관심을 끌고 사랑을 되찾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그리고 그 부단한 노력 끝에 '농구영신'이라는 성공 사례가 등장한 셈이다. '농구영신'이 특별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농구영신'은 팬들이 농구장에서 어떻게 즐기고 무엇을 바라는지 이해하고 제공하려고 노력한 결과다. 한밤에 치르는 경기인 만큼 선수들의 컨디션이 올라오기 힘들고, 이 때문에 경기력 논란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그런 부담마저도 팬을 위해 기꺼이 짊어지는 게 '농구영신'이 보여준 프로농구의 자세다. '팬들의 즐거움을 위해서라면 심야 경기 쯤이야' 불사할 수 있다는 각오가 프로스포츠로서, 프로농구의 가치를 끌어올리고 있는 것이다. '농구영신'을 자산화 하는데 성공한 KBL은 단발성 이벤트가 아닌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관점에서 팬들을 농구장으로 불러들일 수 있는 흥행 카드를 손에 쥐게 됐다. '농구영신'은 한 시즌에 한 번 뿐이지만, 이 특별한 이벤트를 시작으로 한국 프로농구에 대한 기대감 역시 더 커질 수 있다. KBL도 이번 '농구영신'의 상표권 등록을 계기로 팬들과 보다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함께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모션을 기획할 계획이다. 다가올 2020~2021시즌, 올해 12월 31일 경기도 안양체육관에서 열릴 안양 KGC-원주 DB의 대결로 치러질 다섯 번째 '농구영신'이 기대되는 이유다. 김희선 기자 kim.heeseon@joongang.co.kr 2020.06.11 06:01
스포츠일반

조기종료된 프로농구, 2019-2020시즌에 나온 각종 기록들

2019-2020 현대모비스 프로농구 정규경기가 ‘코로나19’로 인해 지난 24일 조기 종료됐다. 총 213경기가 진행됐으며, 무관중으로 진행한 8경기 제외 205경기에서 641,917명(평균 3,131명)의 관중이 경기장을 찾았다. 전 시즌 정규경기 평균 관중(총 270경기, 누적 :763,849명 / 평균 2,829명) 대비 10.7%가 증가했다. 특히, 지난 1월 19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개최된 올스타전은 9,704명의 관중을 동원하며 전 시즌 올스타전 대비 86.1% 증가했으며, 12월 31일 부산 사직실내체육관에서 치른 부산 KT 대 창원 LG의 ‘농구영신’ 매치는 7,833명으로 올 시즌 정규 경기 최다 관중을 기록했다. 이번 시즌에는 국내 선수들의 활약이 돋보였다. 다양한 기록을 달성하며 팬들의 관심을 끌었다. 전주 KCC 이정현은 추승균의(384경기)의 연속 출전경기 기록을 넘어 420경기 연속경기 출장으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부산 KT 허훈은 10월 20일 원주 DB와의 경기에서 3점슛 연속 9개를 성공해 조성원과 타이 기록을 달성했고, 전주 KCC 이대성도 11월 9일 KT와의 경기에서 30득점-15어시스트를 달성해 국내 선수 1호의 영예를 안았다. 또한, 라건아, 애런 헤인즈, 조이 도시 등 외국 선수들의 활약도 두드러졌다. 라건아는 조니 맥도웰을 넘어 역대 최다 더블더블(247회)을 달성했다. 애런 헤인즈는 서장훈을 넘어 누적 자유투 성공 개수 1위(2,311개)에 올랐으며, 조이 도시는 1쿼터에 12득점 10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유례없는 1쿼터 더블더블을 달성했다. 한편 KBL은 이번 시즌 뉴미디어 채널 ‘KBL TV’를 통해 팬들과 활발하게 소통했다. 영상, 인포그래픽 등을 포함해 지난 시즌(623개) 대비 올 시즌(1,006개) 61.5% 증가한 콘텐츠를 제작해 대중에게 선보였다. 특히, 팬들의 니즈에 부합하는 선수 활용 기획 영상에 중점을 두어 진행했다. 이어 KBL은 "관중, 기록, 뉴미디어 등 다방면에서 흥행 요소를 발견할 수 있었던 시즌이 조기 종료되어 안타깝다"며 "더욱 발전 된 모습으로 2020-2021 시즌을 준비해 팬과 함께하는 프로농구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고 전했다. 김우중 기자 2020.03.31 10:22
연예

[화보IS] 차은우 "'핸섬타이거즈' 합류? 서장훈 감독이 직접 전화"

차은우가 환한 미소와 소년스러운 매력을 발산했다. 스페셜 앨범 'ONE & ONLY'로 돌아온 아스트로 차은우가 스타&스타일 매거진 앳스타일(@star1)과 4월 호 커버 화보 촬영을 진행했다. 크린토피아와 함께했다. 현재 SBS '진짜 농구, 핸섬타이거즈'에 출연하며 성장캐릭터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프로그램에 합류하게 된 계기를 묻자 차은우는 "서장훈 감독님이 직접 전화를 줬다. 농구에 대한 감독님의 진심과 사랑이 전해졌다"고 말하며 "나로 인해 농구가 대중에게 좀 더 친근한 스포츠가 될 수 있길 바란다는 감독님의 말씀에 합류를 결정했다"고 답했다. 데뷔 4년 차에 접어든 아스트로.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 "꾸준한 활동을 통해 대중들에게 아스트로의 색깔을 확실히 각인시키고 싶다. 팬들과도 더 친근하고 유대 깊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고 전했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과 관련, "꾸준히 차은우가 가지고 있는 다양하고 새로운 매력을 많이 보여드리고 싶다. 나를 믿어주고 사랑해 주는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몸과 마음을 지치지 않게 한다"고 말했다. 차은우의 솔직한 인터뷰와 화보는 앳스타일 매거진 4월호에서 만나볼 수 있다. 황소영 기자 hwang.soyoung@jtbc.co.kr 사진=앳스타일 2020.03.17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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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중토크②]서장훈 "시청률 1위 예능 '미우새' MC 지금도 신기"

'방송인' 서장훈(44)은 제54회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남자 예능상의 주인공이었다. 전설의 연세대학교 농구부 주전 센터, 1998년 청주 SK 나이츠로 입단해 프로 농구선수로 활약해 온 그가 제2의 삶을 살아온 지도 어느덧 5년. 신인 시절 백상체육대상 무대를 밟았던 서장훈은 25년 만에 백상예술대상에서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JTBC '아는 형님' SBS '미운 우리 새끼(이하 '미우새')' '동상이몽2 - 너는 내 운명' 등 프로그램에서 종횡무진 활약 중이다. 웃음을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건물주 언급에도, 이혼 얘기에도 이젠 '해탈' 상태라고 말한 서장훈은 "내가 이 부분에 대해 먼저 언급한 적은 없다. 살기 팍팍한 시대에 항상 죄송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 알아줬으면 좋겠다. 다만 이것을 통해 잠시라도 웃을 수 있다면 난 괜찮다"고 밝혔다. 스스로를 "인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일컬었다. 농구인으로서, 방송인으로서 지금까지 이룬 모든 것은 주변의 좋은 사람들 덕분이라고 고마움을 내비쳤다. 이들처럼 자신 역시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밝혔다. '착한 거인'을 꿈꿨다. ※인터뷰①에서 이어집니다.- 농구선수로서 삶과 방송인으로서 삶, 가장 달라진 점이 있다면요."아무래도 농구선수는 (동료들과) 늘 같이 움직여야 해요. 개인적인 시간이 거의 없어요. 운동을 하냐, 안 하냐 문제가 아니라 늘 같이 움직여야 했어요. 신경 써야 할 것도 많고요. 방송은 아무리 바쁘다고 해도 녹화가 끝나면 나머지 시간은 개인적으로 쓸 수 있어요. 그게 가장 큰 환경적인 차이인 것 같아요. 정신적인 건 좀 달라요. 선수는 신경 써야 할 문제가 상대적으로 적어요. 목표가 분명하니까요. 시합을 잘해서 이기면 되는 거예요. 모든 이들의 목표가 명확하고 같죠. 방송은 게스트에게 어떻게 말할 것인지부터 해서 같이 일하는 스태프들과 관계, 동료들과 관계 등 좀 더 복잡하다고 볼 수 있어요. 단순한 승부의 문제가 아니니까 신경 쓸 게 많아요." - 농구에 대한 애틋함은 여전할 것 같아요."그럼요. 농구를 평생 하던 사람이 농구를 그만뒀다고 해서 농구인이 아닌 건 아니잖아요. 농구를 평생 했던 사람은 그만둬도 농구인인 거죠. 죽을 때까지 농구인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지금 방송을 하고 있으니까 방송인인 것도 맞고요." - 농구인들을 자주 만나나요."상대적으로 자주 보진 못해요. 농구인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거든요. 시즌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내가 시간이 있다고 해서 볼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최근에 이상민 감독과 만나 식사한 적이 있어요." - 요즘도 농구 경기를 자주 보나요."시간이 날 때 국내 프로 경기도 보고 NBA도 보고 그래요." - 주목해서 보는 후배가 있나요."개인적으로 모비스의 양동근 선수를 좋아해요. 그 선수는 우리나라 프로농구의 현실을 가장 잘 파악하면서 모범적인 길로 가는 선수예요. 본인 스스로 냉정하게 평가하면서 갈고닦아 그 자리까지 온 선수거든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해요. 그 선수를 보고 후배들이 잘 따라갔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한국 프로농구가 좀 더 발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 '아는 형님' 식구들과 호흡이 좋은 것 같아요."처음부터 시간을 좀 더 주면 잘될 것이란 확신이 있었어요. 기본적으로 한두 명 빼곤 원래부터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이라 호흡이 좋고 팀워크가 좋을 수밖에 없었어요. 사람들한테 조금만 더 알려지면 반응이 올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갈림길에서 위기를 잘 넘긴 것 같아요. 요즘은 반응도 좋으니 그야말로 팀워크가 굉장해요." - 방송가에서 '서장훈'을 찾는 사람이 많아요.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요."어려운 질문이네요.(웃음) 누구와도 잘 어울리는 게 이유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누구 눈치 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얘기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오랫동안 방송을 해 왔으면 방송의 생리와 여러 가지 외적인 부분에 대해 신경 썼을 수도 있는데 그렇지 않다 보니 조금 더 솔직하게 얘기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게 그분들이 원하는 것일 수도 있고요." - 방송에 재능이 많은 것 같아요."천부적으로 타고난 사람한테는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 있어요. 방송도 그런 분들이 있다는 걸 하면서 느껴요. 대본만 보는 게 아니라 애드리브가 많은데 그럴 때 보면 '진짜 천재'라고 느낄 때가 많아요. 아까 말한 형님들도 그렇고 (이)수근이 같은 경우도 그렇고요. 이건 내가 노력해서 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죠. 다만 스포츠 경기처럼 그분들을 이기기 위해서 하는 것은 아니니까 소금처럼 그분들과 잘 어우러져서 좋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해요. 그분들과 함께해 영광이고 행복해요." - 농구로도 성공했고 방송으로도 성공했어요. "한마디로 운이 좋고 복이 많죠. 물론 없는 복도 있지만요.(웃음) 감사하다는 생각이 점점 커지고 있어요. 농구도 내게 좋은 체격을 물려주신 부모님께 감사해야 할 부분이고, 농구를 하면서 대중들에게 얼굴을 알려 지금 이렇게 방송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거잖아요. 하는 프로그램이 잘될수록, 훌륭한 상을 받았을 때일수록 주접떨지 말고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는 것 같아요." - '미우새' 모벤져스와도 가까워졌겠어요."진짜 어머니 같은 분들이에요. '그분들이 없었으면 프로그램이 이렇게 잘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내 입장에선 너무나 고마운 분들이에요. 어떻게 보면 백상예술대상을 받은 것도 놀랍지만, 40세까지 농구선수로 살던 내가 우리나라에서 시청률이 가장 높은 예능 프로그램 MC로 앉아 있다는 것이 놀랍고도 감사해요. 그래서 '인생은 참 알 수 없다'는 생각이 계속 들고요. 나이가 들면서 하루하루 삶에 대해 배워 나가는 것 같아요. 말이 안 되지 않나요. 내가 대체 뭔데요.">>③에서 계속됩니다 황소영 기자사진=김민규 기자영상=이일용 기자 [취중토크①]서장훈 "25년만 백상체육→백상예술대상 수상…인생 알 수 없어" [취중토크②]서장훈 "시청률 1위 예능 '미우새' MC라는 것 지금도 신기" [취중토크③]서장훈 "건물주·이혼 얘기 이젠 해탈…웃을 수 있다면 괜찮아" 2018.06.08 10:00
생활/문화

[박수성 How are you] 황유하 “농구, 머리 속에서 떠난 적 없다”

"미국에 와서 모진 고생 많이 했습니다. 운동만 하다가 이런 저런 일을 해본다고 했지만 쉽지 않았죠. 그러나 다행히 아이들은 어느 정도 키워 이젠 조금 안정을 찾았습니다. 다른 일을 하는 동안에도 농구 생각은 머리 속에서 떠날 때가 없었습니다." 고려대 재학 당시 49연승의 신화를 이끌었던 주역. 지도자로 변신해 프로농구 초창기를 이끌었던 사령탑. 올드 농구팬들은 황유하(54)를 이충희에 버금가는 감각적인 슈터로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황제는 두 명일 수 없는 법. 이충희라는 걸출한 슈터에 가려 황유하는 그 실력만큼 날개를 펴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이 농구에 대한 열정을 식게 만들지는 못했다. 지금도 그는 태평양 건너에서 농구만을 생각하며 다시 날개를 활짝 펼 날을 기다리고 있다. 황유하는 이충희의 2년 선배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대학교와 실업팀 모두에서 이충희에게 밀려 활짝 피어보지 못했다. 3점슛이 없었던 시절 이충희는 한 경기에서 62점을 넣을 정도로 불세출의 스타였지만 황유하 역시 슛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웠다. 81년 존스컵대회 파나마전에서 53점은 당시 대회 개인 최다득점으로 현지 언론에 대서특필 됐었다. 고려대와 현대 시절 그는 평균 30점을 넣을 정도로 막강 득점력을 자랑했다. ▲아쉬운 불명예 은퇴 프로농구가 출범한 1997 시즌. 황유하 감독은 광주를 연고로 한 나산 플라망스의 초대 감독을 맡았다. 미국 UCLA대에서 2년간 코치 연수를 마치고 막 돌아온 직후였다. 나산은 실업농구 약체였던 기업은행과 산업은행의 선수들을 주축으로 팀을 구성했는데 하위권에서 머물 것이라던 예상을 깨고 정규리그 5위를 차지하며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당시 주요 멤버는 센터 겸 포워드였던 이민형, '이동 스커드 미사일'이라는 별명을 가졌던 김상식, 우직한 수비를 자랑했던 김현국 등이었다. 외국인 용병으로는 이버츠와 탤리가 뛰었다.  그러나 97~98(9위), 98~99(8위)시즌에는 하위권에 머물렀고 모기업 나산의 부도와 화의신청 등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팀은 이리저리 휘둘리고 만다. 급기야 99~00 시즌에 벤처기업인 골드뱅크로 인수되는 곡절을 겪었고 시즌 중반에는 성적 부진을 이유로 해임되는 불명예를 떠안는다. 후임으로는 고대 동기였던 진효준 감독이 임명됐다. ▲한국이 싫었다 2000~2001시즌 SBS 농구 해설위원을 하기도 했지만 불명예 은퇴의 기억은 그를 몹시 괴롭혔다. 삼성 출신의 구단 고위관계자가 오면서 억울하게 손해를 입었다는 피해의식이 떠나질 않았다. 모기업이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다른 팀에서 제의도 있었지만 의리 때문에 딱 잘라 거절했던 그였다. 2001년 중반 준비도 없이 미국행을 결심하고 홀연 짐을 쌌다. 도착한 곳은 LA였다. 혈기왕성할 때였다. 그러나 전혀 준비가 안 돼 있던 그에게 미국 생활이 쉬울 리 없었다. 모아 놓은 돈도 없었다. 당초에는 1~2년 정도 지내고 돌아가자는 생각이었지만 막상 한국으로의 유턴은 쉽지 않았다. 레스토랑, 마켓, 일식집 등을 해봤지만 크게 성공한 것은 없었다. 그냥 아이들 교육을 어렵사리 시킬 정도였다. 그나마 하던 일식집도 지난해 말 접었다. 미국 경기가 하향세에 접어들자 운영이 쉽지 않았다. 그래도 그는 미국생활에서 얻은 것이 분명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도전 정신과 인간적으로 성숙해졌다는 뿌듯함이다. ▲농구는 인생의 전부  그의 머리 속은 지금도 온통 농구로 꽉 차있다. 몇년째 국내 프로농구(KBL) 시즌이 개막 중일 때는 주말 경기는 물론 평일 경기까지 모두 다 봤다.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서다. 미국에서 외국인 선수 트라이아웃이 있으면 빼놓지 않고 꼭 참관했다. 최신 작전이나 트렌드를 놓치지 않기 위해 미국 대학농구(NCAA) 자료도 꼼꼼히 수집해왔다. 지도자로 복귀할 기회가 있을 때 활용하기 위해서다.  열정이 식지 않은 것은 그만큼 아쉬움이 커서다. 85년 현대에서 은퇴할 때도 주위의 만류가 심했지만 그는 지도자로서 대성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이대로 은퇴한다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허재, 강동희 감독 등 40대 중반이 사령탑에 오르는 등 국내 프로농구 감독의 연령이 낮아지는 추세이지만 그는 50대 초반이 40대 중반과 경쟁을 못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다. 자질을 막 꽃피울 연령대의 사람들을 자꾸 밀어내는 풍조에도 할 말이 많다. 황유하 전 감독은 최근 국내 농구의 흐름에 대해 "큰 선수들이 (외국인 선수들 때문에) 자꾸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파워를 길러 골밑 패턴 위주의 경기를 많이 해야 한다. 또 나 자신도 감독 시절에는 다혈질로 이름을 날렸지만 아웃사이더 입장에서 보니까 너무 성적에 얽매여 심판에 대한 항의가 도를 넘는 것 같다. NBA에서는 억울한 상황이 있어도 한국 만큼의 항의가 통용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황유하 프로필 - 생년월일1955년 3월 22일생 - 신체조건184㎝ 76㎏ - 학력 중앙초-숭일중-신일고-고려대(75학번) - 경력 78년 방콕아시안게임 국가대표 79년 현대(현대중공업→현대건설→현대전자) 입단 85년 은퇴 85~94년 여자농구 한국화장품 코치·감독 94~95 여자농구 현대산업개발 감독97년 남자농구 나산 플라망스 초대감독 - 가족관계 이인영 씨와 2남 박수성 기자 ▷ 황유하 “농구, 머리 속에서 떠난 적 없다”▷ 황유하 “거액의 스카우트 제안 받았다” 2009.06.15 10:31
스포츠일반

세월따라 변한 한국 스포츠 지형도

스포츠도 세월따라 많이 변했다. 1960. 70년대 최고의 프로 스포츠는 복싱과 프로레슬링이었다. 김기수는 1966년 세계복싱협회(WBA) 주니어미들급 챔피언 벨트를 거머쥐며 한국인 첫 세계 챔피언이 된다. 복싱의 인기는 홍수환-김태식-박찬희-김철호-유명우 등으로 이어졌지만 1990년대 이후 점차 인기가 시들해졌다. 세계 챔피언이 되겠다는 일념으로 똘똘 뭉친 헝그리 복서는 더이상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요즘 복싱 체육관은 뱃살을 빼기 위한 여성들의 다이어트 열풍에 편승해 힘겹게 생존해 나가고 있다. 지금은 K1. 프라이드 등 이종격투기가 인기지만 과거에는 프로레슬링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김일의 박치기는 국민들의 속을 시원하게 풀어주는 청량제 구실을 했다. 하지만 프로레슬링의 인기는 1965년 ‘프로레슬링은 쇼’라는 한국 레슬링 장영철의 폭로 이후 몰락의 길로 들어섰다. 현란한 몸동작으로 1970년대 까지도 어느정도 팬들을 확보했던 프로 레슬링은 1980년대 초반 프로야구와 프로축구가 생기면서 크게 위축됐다.1980년대는 한국 프로스포츠가 본격화된 시기다. 전두환 정권이 출범하며 정책적으로 스포츠를 육성시켰다. 스포츠·스크린(영화)·섹스를 이용해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돌리는 우민화 정책이었다. 1982년 프로야구. 1983년 프로축구가 차례로 출범했다. 프로야구가 막을 올리며 1970년대까지 인기가 높았던 고교 야구는 ‘황금시대’의 막을 내렸다. 1988년 서울 올림픽도 한국 스포츠사에 커다란 획을 그은 사건이었다. 하지만 엘리트 체육으로 집중 육성된 한국 스포츠는 단기적이고 효율적인 성과를 냈지만 생활체육으로 저변을 넓혀나가는 건전하고 안정된 발전의 기틀을 다지지는 못했다. 프로야구와 프로축구 못지않게 1980년대에는 농구와 배구에 대한 팬들의 관심도 높았다. 프로농구가 1997년 출범하고 프로배구가 2006년 닻을 올렸지만 여전히 그 시절 농구대잔치와 배구 슈퍼리그의 영화를 되찾지 못하고 있다. 매년 신년 초 열렸던 프로농구 삼성전자와 현대건설의 대결은 두 재벌가의 맞대결로 관심의 초점이 됐다. 1990년대부터는 국내 스포츠의 해외 진출이 본격화돼며 스포츠 시장의 지형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1978년 차범근이 분데스리가에 진출했지만 정보 전달력이 떨어져 그 파급 효과가 국내 축구에까지 미치지는 않았다. 하지만 박찬호는 1994년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며 팬들의 눈길을 단숨에 국내 프로야구에서 메이저리그로 돌려놓았다. 2000년대 들어서는 2002 월드컵을 계기로 축구가 가장 대중적이고 인기있는 프로스포츠로 부상하고 있다. 그러나 프로야구와 마찬가지로 축구 역시 박지성·이영표·설기현 등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선수들의 경기가 실황중계되며 K리그의 인기를 위협하고 있다. 또 축구를 비롯한 스포츠는 종목 사이의 내부 경쟁 이외에도 영화·게임·방송 등 다양한 문화 영역과도 경쟁을 벌이며 생존의 길을 모색해나가야 한다. 이해준 기자 2006.09.25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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