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위크
[취중토크③] 곽경택 감독 "'기생충' 제작자 친동생, 인생 큰 한방 축하해요"
부산에서 함께 한 '아침 해장술'이다. 곽경택 감독(53)이기에 가능한 타임라인이다. "역사적인 모닝 취중토크"라는 말에 곽경택 감독은 "원래 오전에 에너지가 가장 샘솟는 법이다"며 "기왕 왔는데 한 잔 하자!"고 첫 술을 뜨기도 전 소주부터 시원하게 들이켰다.부산을 대표하는 '부산 출신' 곽경택 감독은 부산국제영화제, 부산영상위원회가 막 출범한 시기였던 1997년 영화 '억수탕'으로 데뷔해 영화 산업의 궤적을 함께 하며 상부상조에 일조했다. 곽경택 감독의 역작 '친구'(2001) 역시 부산을 배경으로 흥행에 대성공한 작품으로 여전히 1순위에 꼽힌다.'챔피언'(2002) '똥개'(2003) '태풍'(2005) '사랑'(2007) '눈에는 눈 이에는 이'(2008) '통증'(2011) '친구2'(2013) '극비수사'(2015) '희생부활자'(2017) 그리고 최근작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2019)까지 곽경택 감독은 연출력 뛰어난 감독임과 동시에 장르의 경계없이 매 작품마다 '사람'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하는 이 시대 대표 '스토리텔러'다.20여 년간 숱한 풍파를 겪으면서 오뚝이처럼 살아난 곽경택 감독이기에 아쉬움 속 조용히 막을 내린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 역시 홀가분하게 떠나 보냈다. 곽 감독은 "개봉 일주일이 딱 됐을 때, 부산에 내려오기 3일 전 마음 정리를 끝냈다. 다음 작품을 더 긴장감 있게 하라는 신호로 받아 들였다"며 속시원한 반응을 내비쳤다.뉴욕 대학교 영화연출 전공자로 '유학파' 출신이었던 곽경택 감독은, 충무로 입성 당시 정통파가 아니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방인' 꼬리표를 달고 무수한 전쟁을 치러야만 했다. 때론 억울했고, 때론 답답하기도 했지만 20년이 지난 현재 버젓이 살아남은 승리자는 곽경택 감독이 됐다. 르네상스 시기와 침체기를 모두 경험한 한국 영화 역사의 산증인이다.때론 예측 불가능한 흥행 수치에 의아함을 느끼고, 때론 완성도 떨어지는 국내 영화들에 씁쓸함을 감추지 못할 때도 있지만 한국 영화와 관객을 애정하는 마음은 한결같다. 결과에 승복할 줄 알고, 변화를 배척하기보다 받아들이는 유연함은 곽경택 감독의 과거가 존경받고, 다음이 늘 궁금한 이유다. 그리고 지금 준비하고 있는 '다음'은 또 다른 '곽경택의 세계'를 마주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2편에 이어...-오래 살아 남을 수 있었던건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마인드의 영향도 컸을 것 같아요."변화는 재미있어요. 아직은 귀찮기보다 재미가 더 커요. '새로운 것이 나왔다, 변수가 생겼다' 하면 아직까지는 'OK'예요.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짜릿하기도 하고요. 누가 시나리오를 줬는데 '이건 내가 가진 것의 20%만 들여도 찍을 수 있겠다' 싶은건 하고 싶지가 않잖아요. 도전 의식이 보이고, 그것 때문에 잠도 안 올 정도로 흥분돼야 더 좋죠." -현재 한국형 SF, 뮤지컬 영화, 로봇 영화까지 새롭게 준비되고 있는 한국 영화들이 많아요. 2020년이 기다려지는 이유이기도 하고요."저도 기대돼요. 할리우드와 비교가 되더라도 한국영화만의 색깔이 담기겠죠. 특히 로봇 영화는 영화 감독들에겐 꿈일 거예요. 감독들이 철이 잘 안 들고 유아적인 상태로 사는 경향이 많기 때문에 로망이 있죠.(웃음) 저도 어릴 때 로봇 설계도를 몇 개나 그렸어요. 영화적 도전은 다른 문제지만요." -새로운 것, 창작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고민하나요. "시도때도 없이 영화 생각만 한다고 보면 돼요. 아이디어 떠오르면 무조건 적어 놓고. 특히 술 마실 땐 더.(웃음) 가끔은 적어놔도 '이게 뭔 말이야' 생각이 안 날 때도 있는데, 그땐 같이 술 마신 사람에게 물어 보면서 이해를 하죠." -꿈도 많이 꿀 것 같아요."다음 작품 메인 소재가 소방관이에요.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 언론배급시사회 당일 아침까지 수정고 정리해 넘겼죠. '장사리'는 '장사리'대로 얼마나 걱정이 됐겠어요. 그날 꿈에 제가 언덕 위에 있는데 바다에서 파도가 막 넘쳐 올라오는 거예요. 휩쓸려 갈 것 같아서 도망가는데 또 불이 나더라고요. '장사리'와 차기작 스토리가 합쳐진 것이었죠. 하하. 엄청 좋은 꿈처럼 들리지만 길몽이 아니었고요." -매 순간 압박감을 느끼나요."사람 사는건 다 똑같아요. 대중적인 일을 하다 보니까 말을 하게 되고, 알려져서 더 그런 것처럼 보이지만 모두가 비슷하죠. 그래도 우린 이런 이야기를 하면 걱정도 해주고, 칭찬도 받잖아요. 좋은 것도 많죠." -최근 관심사는 무엇인가요."'어떻게 재무장해서 살아남을 것인가. 감독으로서, 제작자로서, 영화인으로서 재무장해야 한다'는 목적 의식이 가장 커요. 뇌구조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요. 결론은 '새로운 소재, 관점으로 독특하게 무장해야 한다'는 것인데 살아남기 위해 또 달려봐야죠." -한국영화는 자주 보나요. "짜증나서 잘 안 봐요. 으하하하. 요즘엔 특히 한 줄로 다 정리되는 이야기가 많잖아요. 우리 입장에선 어떤 것이 힘드냐면, 분명 기획적인 미덕이 있지만 완성도 측면에서는 관객들 눈에 안 보이는 것들이 보일 때가 있어요. 여배우 얼굴에 튀어나온 것을 그대로 찍었다든지. 그런 영화가 몇 백만을 찍었다고 하면 씁쓸하죠. 웬만하면 안 보고 그 시간에 인정받은 수작들을 챙겨 보려고 해요. 심장이 뛰는 작품들. 최근 가장 흥분시켰던 건 '체르노빌'이었어요." -'체르노빌'은 교과서처럼 필수 관람 작품으로 꼽히고 있죠."진심으로 소름끼쳤어요. 스쳐 지나가는 주민에게 입힌 옷 하나까지 디테일하더라고요. 그런 작품은 보고 있으면 미치죠." -자본의 힘이 느껴지기도 했고요."맞아요. 근데 미국 영화도 돈만 들였지 대충 찍은 것들이 많아요. HBO(Home Box Office·미국 케이블TV 프로그램 공급 회사)가 그런 도전들을 한번씩 하죠. 그들은 우리보다 훨씬 공격적이고 도전적이에요. 미국 성향이 그래요. 2차 세계대전 때도 전장에선 누가 이길지 모르잖아요. 근데 미군은 6명 중 1명 꼴로 촬영병이었어요. 필름은 컬러 필름을 돌리고요. 총알 쏘기 바쁜 와중에 엄청난 기록을 남긴거죠." -기록의 중요성을 아는 거네요."더 놀라운 건 당시 잘나갔던 할리우드 감독들이 다 군대에 갔다는 거예요. 가서 이등병이 아니라 소령, 중령 계급장 달고 종군 카메라맨으로 뛰었어요. 폭격기도 직접 타고요. 물론 자원 입대였죠. 그런 것에 목숨을 걸고, 국가는 엄청난 예우를 해주고요. HBO가 상업적인 것에만 연연하지 않고 과감하게 '이런건 우리가 한번 다룰 필요 있어'라고 판단하면 무명의 배우들을 주연으로 써서라도 만들어 버리는 정신이 무섭죠." -감독으로선 흔히 말하는 '공식이 안 통한다'는 것을 더 느낄 것 같아요."'그래서 진실을 얼마나 치열하게 파고 드냐'가 관건이죠. 최소한 외면 받지는 않아요. 다만 그쪽은 생존의지가 굉장히 높은 유전자라 괜히 어줍잖게 따라 하다간 작살나고요." -'영화를 위해 어떤 것까지 해봤다'는 것이 있을까요. "험한 일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했어요. 초창기엔 한국에 들어오기 겁나니까 미국에서 어떻게든 독립영화로 살아남아 보려고 온갖 일을 다 했거든요. 직접 한건 아니지만 북한에서 한창 미사일을 쏠 때, 주섬주섬 비상 가방을 챙겨 놓으려고 했던 적이 있어요. 최전방 가서 찍으려고. 와이프는 '미친 것 아니냐'고 했죠. 하하. 혼자는 못하고 뜻 맞는 사람들과 팀을 꾸려야겠지만 되게 많을거라 생각해요." -'기생충' 제작사 바른손이앤에이 곽신애 대표님이 친동생이죠. 굉장히 뿌듯했을 것 같아요."동생과 저는 성(性)도 다르고, 성향도 다르고, 작품을 해석하는 눈도 달라요. 오빠와 남동생, 하다못해 남편(정지우 감독)'에 비해서도 음지에서 그림자 같은 삶을 살다가 이번에 빵 터졌죠. 아침에 일어났는데 황금종려상을 탔더라고요. 바로 문자 했어요. '네가 지금까지 스스로의 삶에 대해 끈을 놓지 않고 나름의 길을 걸어간 것에 대한 보답을 받은 것 같다. 진심으로 축하한다' 나이 50이 넘어서 상승모드를 탔으니 얼마나 좋아요. 5년, 10년은 쭉쭉 활동할텐데 그땐 조카도 졸업할테고. 하하." -애틋한 마음이 있나요."동생은 하필 고3 때 몸이 좀 아팠어요. 희망했던 대학은 못 가고 지방에서 원하는 과는 갔죠. 몸이 좀 나아지면서 학교에서 모범생처럼 보였던 오빠와, 공부를 엄청 잘하는 남동생 사이에 치여 울컥하는 마음만 가득했을 거예요. 지금도 그럴 수 있고요. 하지만 본인 역시 본인의 인생에 대한 설계가 있으니까 어느 날 '엄마 나 서울에서 일하고 싶어요' 하더라고요. 어떻게든 알아봐 영화잡지 기자 일을 시작하고 홍보·마케팅을 거쳐 제작사 대표까지 됐어요. 그 사이에 굵직한 뭔가를 해낸 적은 없죠. 그냥 살아남은 거예요. 정말 대단하고 기특하다 생각해요." -차기작은 빨리 만날 수 있을까요."돈을 안 들이려면 시간과 바꿔야 하는 방법 밖에는 없어요. 미리 준비를 많이 해야죠. 배급사는 에이스메이커와 함께 할 예정이고, 캐스팅을 시작했어요. 무엇보다 다다음 작품은 어떨지 몰라도 이번 작품 만큼은 단 한 컷도 다른 사람에게 맡기도 싶지 않아요. 처음부터 끝까지 제가 '오케이' 사인을 외치고 싶어요. 사전에 철저히 약속하고 들어가려고요. 돈 가지고 뭘 해볼 생각도 없고 감독으로서 역량만 최대한 발휘하고 싶어요. 기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조연경·박정선 기자사진=박세완 기자 [취중토크①] 곽경택 감독 "억눌렸던 '장사리' 판단미스, 마음정리 끝"[취중토크②] 곽경택 감독 "재수없는 충무로 이방인, 꿋꿋이 20년 버텼죠" [취중토크③] 곽경택 감독 "'기생충' 제작자 친동생, 인생 큰 한방 축하해요"
2019.10.18 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