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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그

2018년 보스턴 WS 우승 멤버인데…성적 하락에 결국 독립리그행

올스타 출신 외야수 재키 브래들리 주니어(34)가 재기를 노린다.미국 스포츠 전문채널 ESPN은 5일(한국시간) '브래들리 주니어가 메이저리그(MLB) 복귀를 위해 독립구단 롱아일랜드 덕스와 계약했다'고 전했다. 브래들리 주니어는 지난 시즌 캔자스시티 로열스에서 43경기 출전, 타율 0.133(105타수 14안타)로 부진했다. 그 결과 6월 방출됐고 이후 소속팀이 없었다.2013년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MLB 데뷔한 브래들리 주니어는 2016년 올스타, 2018년에는 아메리칸리그 골드글러브(GG)를 수상한 수준급 외야 자원이었다. 2020시즌이 끝난 뒤 보스턴을 떠나 밀워키 브루어스, 2021년 12월 트레이드로 '친정팀' 보스턴 유니폼을 다시 입기도 했다. 그러나 2020시즌을 기점으로 하락한 개인 성적이 회복되지 않았다. 2021년 타율 0.163(387타수 63안타), 2022년 타율도 0.203(344타수 70안타)에 머물렀다. 루 포드 롱아일랜드 덕스 감독은 "브래들리 주니어는 풍부한 경험과 뛰어난 재능을 가진 선수"라며 "그의 베테랑 러디십과 기술을 우리 로스터에 추가하게 돼 기쁘다"고 기대했다. 브래들리 주니어의 MLB 통산(11년) 성적은 1181경기 타율 0.225(3735타수 839안타) 109홈런 449타점이다. 2018년 무키 베츠(현 LA 다저스) 잰더 보가츠(샌디에이고 파드리스) J.D 마르티네스(뉴욕 메츠) 등과 함께하며 보스턴의 월드시리즈(WS) 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배중현 기자 bjh1025@edaily.co.kr 2024.04.05 08:56
야구

'NPB 통산 357홈런' 괴물의 아들, 라몬 카브레라…日 독립리그행

한때 일본 프로야구(NPB)를 주름잡았던 거포 알렉스 카브레라의 아들 라몬 카브레라(32)가 일본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간다. 일본의 닛칸스포츠는 10일 ''괴물 용병'의 주니어가 일본에서 아버지 뒤를 쫓는다'며 '라몬 카브레라가 독립리그 BC 이바라키와 계약했다'고 전했다. 주 포지션이 포수인 라몬 카브레라는 2015년 신시내티 소속으로 빅리그에 데뷔해 두 시즌을 뛰었다. 통산(2년) 성적은 타율 0.264(201타수 53안타), 4홈런, 26타점이다. 큰 두각을 나타내지 않았지만, 그의 일본 독립리그 입단은 눈길을 끌만 하다. 바로 '아버지' 때문이다. 라몬 카브레라의 아버지인 알렉스 카브레라는 NPB 역사에 이름을 남긴 외국인 타자다. 2000년 세이부에 입단해 2012년까지 NPB 통산 타율 0.303, 357홈런, 949타점이라는 무시무시한 성적을 남겼다. 2002년 무려 55홈런을 때려내 퍼시픽리그 홈런왕에 올랐다. 2005년에는 세이부돔 구장 천장을 때려내는 홈런(비거리 180m)으로 보는 이들을 모두 깜짝 놀라게 하였다. 골든글러브 1위, 통산 NPB 베스트 나인 5회, 월간 MVP(최우수선수) 6회 수상 등 화려한 이력을 자랑한다. 라몬 카브레라는 2018년부터 3년 동안 미국 독립리그에서 뛰었다. 최근엔 베네수엘라 윈터리그에 몸담았다. 닛칸스포츠에 따르면 BC(베이스볼 챌린지) 리그 이바리카 구단은 지난해 7승 4무 49패(승률 0.125)를 기록한 약팀이다. 배중현 기자 bae.junghyune@joongang.co.kr 2021.01.10 16:06
야구

외국인 선수들 몸 값 치솟는 이유

올해 한국야구위원회(KBO)에서 열린 한 회의에서 한 구단 고위 관계자는 "현행 해외진출 FA 자격 기준(7년)을 낮추자"고 제안했다. "우리는 외국 구단에 비싼 이적료를 내고 선수를 영입한다. 그렇다면 국내 구단도 선수를 해외 구단에 팔 수 있어야 하지 않는가"라는 문제제기였다. 이 관계자의 말은 구단들 자신이 현재의 외국인 선수 고연봉에 불편함을 느끼고 있음을 알려준다. 일간스포츠는 지난 9일자에서 국세청 소득신고 자료를 통해 2008~2010년 8개 구단이 연 평균 91억7700만원을 외국인 선수에게 지출했음을 밝혀냈다.한 외국 구단 스카우트는 "올해는 지난해보다 금액이 더 클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는 "일본 프로야구단이 미국 프로야구 출신 선수에게 첫 해 연봉으로 제시하는 금액이 4000만엔 정도다. 국내 구단은 현재 그 이상을 쓰고 있다"며 말했다. 중남미 에이전트들과 교분이 깊은, 한 프로배구 에이전트는 "웬만한 선수라면 50만~60만 달러가 한국 프로야구의 적정 몸값이라는 게 그들의 상식"이라고 말했다. 그는 "배구의 경우 한국은 선수 선호도가 유럽 국가 다음이다. 그래서 몸값도 유럽리그의 2~3배를 줘야 한다. 그러나 야구는 한국의 우선 순위가 높은 종목 아닌가"며 의구심을 표했다.구단 입장에서도 할 말이 있다. 외국인 선수 업무를 담당하는 한 구단 관계자는 "국내에 오는 외국인 선수의 수준이 과거보다 높아졌다"고 말했다. 대만프로야구에서 뛰는 외국인 선수는 퇴출되면 대개 독립리그행을 택한다. 그러나 한국에서 퇴출된 뒤 메이저리그에 복귀하는 선수도 드물지 않게 나온다. 과거 외국인 선수 수준이 더블A급이었다면 지금은 메이저와 트리플A의 중간 수준이다. 나이도 상대적으로 젊어졌다. 이 관계자는 "이런 선수는 트리플A에서도 연봉 10만 달러를 받는다. 메이저리그 최저 연봉(41만 달러)를 맞춰줘야 협상이 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투자 대비 효과도 낮지 않다. 9일 현재 평균자책점 순위 10위 안에 외국인 선수 5명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한 지방 구단 단장은 "국내 FA 선수를 잡기는 쉽지 않다. 단기간에 팀 전력을 올릴 방법이 유능한 외국인 선수 영입"이라며 "현행 외국인 보유 한도(2명 보유·2명 출전)에서는 '육성형 용병'과 계약하기가 어렵다. 보유 한도가 늘어나면 지출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관계자는 "보유 한도가 늘어난다고 해서 지출이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2000년대 중반 현대 유니콘스 위기 이후 구단들은 '합리적인 경영'을 강조해왔다. 1999년 3757만원이던 프로야구 평균연봉은 2007년 8472만원으로 크게 상승했다. 그러나 그 이후 5년 연속 8000만원대로 안정세다. 연봉 총액은 2007년 이후 330억~340억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 야구 붐에 힘입어 구단 수입은 크게 늘었다. 롯데의 경우 지난해 그룹 광고비 120억원을 제외하고도 220억원을 벌어들였다. 수입 증가가 외국인 선수 몸값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건 국내 선수들의 불만 요인이다. 최민규 기자 [didofido@joongang.co.kr] 2011.08.09 10:43
야구

사직구장 매점아들 허웅, 10년 만에 1군 출전

SK 왼손 박희수(28)의 바깥쪽 공을 받은 포수 허웅(28)은 "나이스 볼"을 크게 외쳤다. 타석에 있던 한화 가르시아는 "조용히 해달라"고 소리쳤다. 허웅은 "미안하다. 나는 마이너 포수다. 첫 1군 출장이다"라고 사과했다. 가르시아는 "그런가. 알겠다"고 했다. "훈련할 때의 버릇인데. 사실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라는 게 허웅의 설명이다. 7월 30일 대전구장에서 펼쳐진 광경. 허웅에게 드디어 '1군 경기 에피소드'가 생겼다. 29일 생애 첫 1군행을 통보받은 10년차 포수 허웅은 다음날 대전 한화전에서 6회 교체출장했다. 잊지 못할 1군 첫 출장이다. 부산고 추신수의 공을 받다허웅은 부산 출신이다. 어머니 강인자(53)씨는 부산 사직구장서 7호 매점을 운영했다. 소년 허웅은 사직구장 그라운드에 시선을 빼앗겼다. 그리고 야구를 시작했다. 즐거움의 연속이었다. 부산고 2학년 시절, 그는 당시 고교 최고투수 추신수와 배터리를 이뤘다. "1년 선배 추신수 선배의 공을 받는 게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허웅은 2000년 주전포수로 대통령배 우승의 기쁨을 누렸다. 2002년 그는 졸업과 동시에 현대에 2차 2순위로 지명되어 프로생활을 시작했다. 방출→사업→일본 독립리그행하지만 프로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그는 늘 2군이었다. 1군 포수 마스크는 당대 박경완의 몫이었다. 운도 따르지 않았다. 군입대를 위해 상무 입단 테스트를 치뤘지만 낙방의 아픔을 맛봤다. 허웅은 "정상호(SK) 박노민(한화)을 넘어서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2006년 7월 현역으로 입대했다. 부산 신병교육대에서 조교 생활을 했다. 부산고 1년 후배 전병두(현 SK)가 2006 월드베이스볼클래식 4강 멤버로 병역혜택을 받아 훈련하는 장면을 지켜보기도 했다. 군 생활 중 그는 "현대에서 방출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급하게 휴가를 내어 구단을 찾았으나 돌이킬 수 없었다. 전역 후 여러 구단을 찾아 입단테스트를 치르려고 했지만 "자리가 없다"는 말만 들었다. 그래도 야구가 하고 싶었다. 허웅은 "김해에서 호프집을 해보기도 했다. 골뱅이 무침을 잘 무쳤다(웃음). 그런데 야구가 정말 하고 싶었다. 오전에는 훈련을 했다. 주말에는 사회인야구를 했다"고 떠올렸다. 2008년 8월에는 일본 독립리그로 갔다. 하지만 투수와 말이 통하지 않았다. 결국 이듬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어머니와 연인을 위해다시 호프집에서 일하면서도 "마지막이다"라는 생각으로 몸을 만들었다. 어머니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응원했다. 현대시절 코치였던 금광옥 SK 원정기록원에게 "입단테스트를 보게 해달라"고 매달렸다. 금 기록원은 "100%로는 안된다. 400%~500%로 몸을 만들어오라"고 했다. 허웅은 "정말 죽을만큼 훈련했다"고 했다. 기회가 왔다. 2010년 8월, 김성근 SK 감독이 보는 앞에서 '시험'을 치렀다. 합격. 허웅은 신고선수로 SK에 입단했다. 올 시즌에는 정식 선수로 계약했다. 동기부여도 생겼다. 어깨부상 재활을 위해 다니던 수영장에서 임두리새암(26)씨를 만나 연인이 됐다. "여기서 포기하면 나는 부산으로 내려가야 한다. 그러면 연인과도 결별이다." 그는 매일 이를 악물었다. 7월 28일, 허웅은 "대전으로 가서, 1군에 합류하라"는 말을 들었다. 그는 "믿기지가 않았다. 눈물이 나려고 했다"고 말했다. 믿기지 않을 일들의 연속이다. 29일 1군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고, 30일에는 첫 1군 경기를 치렀다. 동료들은 "허웅시대가 왔네"라고 했다. 허웅은 쑥스럽게 웃으면서도 "행복하다. 10년만에 1군 선수가 됐다"고 감격해했다. 대전=하남직 기자 [jiks79@joongang.co.kr] 2011.07.31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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