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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프랑스-독일 한 조…유로2020 본선 F조서 격돌

2020년 유럽축구연맹(UEFA) 선수권대회(이하 유로2020) 본선에 나설 24개국의 조 편성이 확정됐다. 우승후보로 손꼽히는 독일과 프랑스, 포르투갈이 한 조에 묶여 역대급 혼전을 예고했다. 유로2020 예선 플레이오프가 13일 모두 마무리되며 본선 대진도 함께 확정됐다. 플레이오프를 거쳐 본선행 티켓을 거머쥔 나라는 헝가리와 슬로바키아, 스코틀랜드, 그리고 마케도니아다. 코로나19로 인해 1년 연기된 유로2020 본선은 2021년 6월11일에 개막한다. 조 편성 결과 ‘죽음의 조’가 등장했다. 2014 브라질월드컵 챔피언 독일과 유로2016 우승팀 포르투갈, 2018 러시아월드컵을 제패한 프랑스가 F조에 함께 모였다. 최근 세 번의 메이저대회에서 정상에 오른 팀들이 본선 조별리그에서 생존 경쟁을 벌이는 셈이다. 플레이오프를 거쳐 합류한 헝가리는 최악의 가시밭길을 헤쳐가야한다. 치열한 경쟁 구도는 D조도 못지 않다. 잉글랜드와 크로아티아, 체코까지 경쟁력이 엇비슷한 세 팀이 모인 가운데 스코틀랜드가 합류했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같은 영연방 국가들이지만, 경쟁심은 다른 어느 라이벌 못지 않다. 크로아티아는 2018 러시아 월드컵 준결승에서 잉글랜드를 꺾고 결승에 오른 이력이 있다. A조는 이탈리아가 한 발 앞선 가운데 스위스와 터키, 웨일스가 결선 토너먼트 진출을 다툴 전망이다. B조는 FIFA랭킹 1위 벨기에를 필두로 덴마크, 러시아, 핀란드가 경쟁한다. C조는 네덜란드가 가장 주목받는 가운데 우크라이나와 오스트리아, 북마케도니아가 나선다. E조는 스페인과 스웨덴의 양강 구도에 폴란드와 슬로바키아가 가세하는 형태다. 유로2020은 유럽 12개 도시에서 분산 개최되며, 개막전은 이탈리아와 터키의 맞대결로 정해졌다. 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유로 2020 본선 조 편성 ▶A조 - 터키, 이탈리아, 웨일스, 스위스 ▶B조 - 덴마크, 핀란드, 벨기에, 러시아 ▶C조 - 네덜란드, 우크라이나, 오스트리아, 북마케도니아 ▶D조 - 잉글랜드, 크로아티아, 스코틀랜드, 체코 ▶E조 - 스페인, 스웨덴, 폴란드, 슬로바키아 ▶F조 - 헝가리, 포르투갈, 프랑스, 독일 2020.11.13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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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우 더비' 앞둔 조현우 "대구 상대로 울산의 축구를 하겠습니다"

'조현우 더비'가 열린다. 오는 12일 DGB대구은행파크에서 '하나원큐 K리그1(1부리그) 2020' 11라운드 대구 FC와 울산 현대의 경기가 펼쳐진다. 두 팀의 대결 자체가 빅매치다. 승점 23점으로 2위에 올라있는 유력한 우승후보는 대구를 잡고 1위 탈환에 도전한다. 대구도 만만치 않다. 대구는 최근 7경기 연속 무패 행진(5승2무)을 달리며 최고의 상승세를 자랑하고 있다. 대구는 승점 19점으로 4위다. 울산과 격차가 크지 않다. 대구는 더 높은 순위를 원한다. 내부적으로 들어가면 이 경기가 더욱 많은 관심을 끄는 이유가 있다. 바로 울산 골키퍼 조현우다. 그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대구의 '상징'이었다. 2013년 입단한 뒤 2019시즌까지 대구에서만 뛰며 한국 최고의 골키퍼로 성장했다. 대구의 FA컵 우승,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진출 등 대구의 역사와 함께했다. 대구 소속으로 2018 러시아월드컵에 나서 독일을 잡는 등 국민적 영웅으로 등극하기도 했다. 대구에서만 7시즌, 201경기를 뛰었다. 영원히 대구에 존재할 것만 같았던 대구의 스타가 지난 시즌을 끝으로 대구와 이별했다. 2020시즌 울산의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조현우는 울산으로 이적하면서 "대구 팬들에게는 정말 감사하다. 나를 많이 사랑해주고 믿어줘서 너무나 고맙다"며 감사 인사를 건넸다. 몸은 대구를 떠나지만 대구를 향한 마음은 간직하겠다는 의미다. 이런 조현우가 울산 유니폼을 입고 처음으로 친정 팀 대구를 상대한다. K리그 팬들의 시선이 조현우에게 집중되고 있다. 조현우는 올 시즌에도 위용을 이어가고 있다. 10경기에 나서 7실점만을 허용했다. 무실점 경기도 5경기나 된다. 기량에 흔들림이 없는 조현우가 사랑했던 팀을 상대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또 어떤 제스처와 메시지를 던질지 기대감이 크다. 조현우가 떠난 대구의 골문은 국가대표 출신 구성윤이 지킨다. 구성윤 역시 대구 유니폼을 입은 뒤 3경기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국가대표 골키퍼 간 자존심 대결로 이어진 상황이다. '조현우 더비'를 앞둔 조현우는 "이번 경기 상대가 전 소속 팀 대구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경기에만 집중하려 합니다. 우리가 준비한 대로 경기를 이끌어간다면 결국 승리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승점 3점을 위해 우리의 축구, 울산의 축구를 하겠습니다"고 약속했다. 골키퍼 대결만큼이나 뜨거운 곳이 공격수 맞대결이다. 대구에는 최고의 분위기를 품은 '에이스' 세징야가 있다. 세징야는 7경기 연속 공격포인트(7골3도움)를 올리고 있다. 또 5경기 연속 골에 성공했다. 울산을 상대로 8경기 연속 공격포인트와 6경기 연속 골에 도전한다. 또 1도움만 추가하면 K리그 역대 20번째로 40-40 클럽에 가입할 수 있다. 세징야는 48골39도움을 기록 중이다. 세징야에 맞불을 놓을 이는 울산의 간판 공격수 주니오다. 그는 10라운드 인천 유나이티드전에 올 시즌 K리그 첫 번째 해트트릭을 작렬시키며 포효했다. 주니오는 올 시즌 12골로 득점 단독 1위에 이름을 올렸다. 세징야가 7골로 2위다. 두 선수의 선의의 경쟁이 아름답다. 주니오와 세징야는 브라질 출신으로 대구에서 한솥밥을 먹은 경험이 있는 절친이다. 두 친구가 팀 승리를 위해, 또 득점왕 경쟁의 우위를 위해 서로를 겨눈다. 최용재 기자 choi.yongjae@joins.com 2020.07.10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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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50 한국스포츠 50년 ⑤] 김연아·이상화·손흥민…천재들의 시대가 열리다

스포츠는 한국스포츠 반세기를 함께 했다. 1969년 창간해부터 2019년까지 50년 동안 한국 스포츠에는 수많은 스타가 등장했다. 그중 시대를 풍미한 독보적인 슈퍼스타들이 존재했다. 일간스포츠와 스타들을 돌아보면 한국 스포츠의 역사가 보인다. 스타들이 만들어낸 환희의 장면들을 통해 역사를 되돌아보고자 한다. 일간스포츠는 중앙일보-일간스포츠의 스포츠 담당 기자들을 통해 50년의 기간을 10년 단위로 나눠 각 세대별 최고스타 10인을 선정했다. 이어 한국 스포츠전문가들의 자문 등을 두루 구해 총 50인을 확정했다. 지도자와 행정가는 제외했다. 오직 당시 현역으로 뛴 선수로만 구성했으며 또 각 시대별 같은 종목 선수들은 최대한 배제했다. 50년을 수놓은 영광의 슈퍼스타 50인을 소개한다.2009~2019 : 동계스포츠의 비상 그리고 100년에 한 번 나올까말까 하는 천재들과거 한국의 동계스포츠는 쇼트트랙으로 모두 설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달랐다. 상상도 하지 못했던 다른 종목에서 세계 1등이 탄생했다. 프로스포츠에서는 100년에 한 번 나올까말까 하는 천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김연아(피겨)한국 동계스포츠의 역사는 김연아가 있을 때와 없을 때로 나눌 수 있다. 피겨스케이팅 불모지에서 세계 최고의 선수 김연아가 나온 건 기적이다.김연아는 한국을 넘어 세계 피겨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꼽힌다. 하이라이트는 2010년 밴쿠버올림픽. 김연아는 쇼트 78.50점, 프리 150.06점 총합 228.56점으로 압도적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또 올림픽·세계선수권·4대륙 선수권·그랑프리 파이널 등을 모두 제패하며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최초의 선수로 역사에 기록됐다. 11번 세계신기록을 경신하기도 했다. -이상화(스피드스케이팅)'빙속여제' 이상화를 빼놓고 한국 동계스포츠를 논할 수 없다.2010년 밴쿠버올림픽 여자 500m에서 76초09로 우승, 한국 여자 최초로 스피드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4년 소치올림픽에서 74초70, 올림픽 신기록으로 2연패에 성공한다. 2018년 평창올림픽에서 은메달을 기록하며 아시아 선수 최초로 3개 대회 연속 메달을 딴 선수로 남았다. 2013년 미국 솔트레이크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나온 36초36의 세계신기록은 지금까지 그 누구도 깨뜨리지 못하고 있다. -윤성빈(스켈레톤)한국을 넘어 아시아 최초로 올림픽 썰매 종목 금메달을 딴 주인공, 윤성빈이다.한국 스켈레톤의 간판인 그는 2018년 평창올림픽에서 압도적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평창올림픽 남자 스켈레톤 1∼4차 레이스에서 무려 3차례나 트랙 신기록을 갈아치우면서 1∼4차 합계 3분20초55로 정상을 차지했다. 한국과 아시아 동계스포츠의 새로운 역사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스켈레톤 불모지에서 혜성처럼 등장한 윤성빈. 그의 헬멧에 그려진 아이언맨처럼 그는 한국 스포츠의 영웅이었다. -양학선(체조)한국 체조의 새로운 역사, 도마의 신이 창조했다. 양학선이다.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금메달에 이어 2011년 도쿄세계선수권 우승으로 큰 기대를 받았던 양학선.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신의 경지를 보여준다. 지구에서 단 한 명만 할 수 있는 최고난위도 기술 '양학선'을 앞세워 도마 금메달을 차지했다. 16.533점. 압도적 우승이었다. 한국 체조 역사상 첫 번째 올림픽 금메달은 그렇게 탄생했다. 이후 2013년 앤트워프 세계선수권에서도 우승하며 세계 최고의 선수로 군림했다. -황경선(태권도)태권도 종주국 한국. 수많은 선수가 세계 정상에 섰다. 그중 가장 많은 최초의 수식어를 가지고 있는 이는 '태권여제' 황경선이다.18세 나이로 2004년 아테네올림픽 여자 67kg에 나서 동메달을 차지한 그는 2005년 마드리드세계선수권과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그리고 2007년 베이징세계선수권까지 재패한다. 남은 건 올림픽.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당당히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멈추지 않고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태권도 최초의 올림픽 2연패. 최초의 올림픽 3회 연속 진출을 일궈냈다. -박인비(골프)미국 LPGA에는 한국 여성 열풍이 불었다. 그 열풍 최선봉에 자리를 잡은 스타, 박인비다.골프 여제의 2008년 US오픈 우승. 박세리의 최연소 우승 기록을 깨면서 정상을 차지했다. US오픈 총 2회 우승 등 메이저대회에서 7회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 최고 기록이다. LPGA 통산 19승으로 박세리에 이은 2위다. 56주 연속 세계랭킹 1위를 유지했고, 4개 메이저대회 타이틀을 모두 거머쥐는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아시아 최초로 달성하기도 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금메달 역시 박인비 품에 안겼다. -정현(테니스)2018년 1월, 한국에 테니스 열풍이 불었다. 그 바람은 정현이 일으켰다.정현은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대회 4강에 진출하는 역사를 썼다. 2018년 호주오픈 1~3라운드에서 미샤 즈베레프·다닐 메드베데프·알렉산더 즈베레프를 연이어 꺾으며 기대를 받았다. 16강 상대는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인 노박 조코비치. 꿈같은 일이 벌어졌다. 정현이 조코비치를 꺾고 8강에 진출한 것. 한국에 정현 신드롬이 일어났다. 8강에서 테니스 샌드그렌마저 넘으며 4강에 올라섰다. 4강에서 로저 페더러를 만나 부상으로 기권했다. -김연경(배구)한국 여자배구에 이렇게 독보적인 선수는 없었다. 김연경이다.흥국생명에 입단한 2005년. 득점상·공격상·서브상·신인왕·정규리그 MVP·챔피언결정전 MVP까지 싹쓸이한다. 얼마나 압도적인 선수인 지 알 수 있는 기록. 이후 3년 연속 정규리그 MVP에 올랐다. 2009년 일본 JT마베라스 유니폼을 입은 뒤 2011년 터키 페네르바체로 이적했고, 세계 최고의 공격수로 거듭난다. 가는 팀마다 우승으로 이끌면서 가치는 올라갔다. 2012년 런던올림픽 4강,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 등 배구대표팀에서도 기둥이었다. -류현진(야구)21세기 한국야구 최고의 선수라 불리는 그의 이름은 류현진이다.2006년 한화 이글스에 입단하자마자 다승·탈삼진·평균자책점 1위로 신인왕과 MVP를 동시석권한 프로야구 최초의 선수가 됐다. 2013년 미국 메이저리그 LA다저스로 이적한 첫해 14승 올리며 기대를 충족시켰다. 이후 꾸준함을 보이다 2019년 평균자책점 전체 1위를 기록, 올스타전 선발로 나서는 등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 중 한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금메달 등 야구대표팀 역사와도 함께 했다. -손흥민(축구)지금 한국 축구는 '손흥민의 시대'다.2010년 독일 분데스리가 함부르크를 시작으로 레버쿠젠을 지나 2015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으로 이적했다. 세계 톱클래스 공격수로 거듭났다. 특히 2018~2019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8강 2경기에서 3골을 넣으며 우승후보 맨체스터 시티를 침몰시켰다.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손흥민을 앞세운 토트넘은 최초로 결승에 올랐다. 축구대표팀에서도 에이스다. 2018년 러시아월드컵 독일전 승리 주인공.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금메달도 품었다. 최용재·김지한 기자 [창간50 한국스포츠 50년 ①] '박치기왕' 김일에 열광하고 양정모 첫 올림픽 금에 환호[창간50 한국스포츠 50년 ②] '슈퍼스타' 차범근·선동열·최동원…서울올림픽 감동에 푹[창간50 한국스포츠 50년 ③] 스포츠 영웅들, 국민에게 희망을 안기다[창간50 한국스포츠 50년 ④] 2002년 '붉은 물결' 대한민국을 휩쓸다 2019.09.23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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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50 특별기획]한국스포츠 50년, 슈퍼스타 50인, 환희의 50신

일간스포츠는 한국스포츠 반세기를 함께 했다.1969년 창간해부터 2019년까지 50년 동안 한국 스포츠에는 수많은 스타가 등장했다. 그중 시대를 풍미한 독보적인 슈퍼스타들이 존재했다. 일간스포츠와 스타들을 돌아보면 한국 스포츠의 역사가 보인다. 스타들이 만들어낸 환희의 장면들을 통해 역사를 되돌아보고자 한다.일간스포츠는 중앙일보-일간스포츠의 스포츠 담당 기자들을 통해 50년의 기간을 10년 단위로 나눠 각 세대별 최고스타 10인을 선정했다. 이어 한국 스포츠전문가들의 자문 등을 두루 구해 총 50인을 확정했다. 지도자와 행정가는 제외했다. 오직 당시 현역으로 뛴 선수로만 구성했으며 또 각 시대별 같은 종목 선수들은 최대한 배제했다.50년을 수놓은 영광의 슈퍼스타 50인을 소개한다. <1969~1979 : 배고팠던 시절 국민들을 위로한 영웅>1960년, 70년대 한국은 힘들고 배고팠던 시절이었다. 국민들이 위로를 받을 수 있었던 거의 유일했던 쉼터가 스포츠였다. -김일(프로레슬링)김일은 1960년대부터 70년대 중반까지 한국과 일본에서 박치기왕으로 최고의 인기를 누린 스타였다.박치기를 특기로 극동 헤비급 챔피언·올아시아 헤비급 챔피언·세계 헤비급 챔피언에 오르는 등 활약을 펼쳤다. 한국을 넘어 아시아 프로레슬링 전설로 위용을 떨쳤다. 국민들은 김일의 경기가 열리는 날에 흑백 TV 앞에 모여 열렬히 응원했다. 김일의 움직임으로 인해 용기와 희망을 얻을 수 있었다. 김일은 배고팠던 시절 조국의 영웅이었다. -홍수환(복싱)4전5기의 신화. 두 체급에 걸쳐 세계 타이틀을 거머쥐며 국민적 영웅으로 등극한 복싱 선수다.1974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WBA(세계복싱협회) 밴텀급 타이틀매치에서 세계 정상에 섰다. 당시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라는 한 마디는 국민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했다. 또 1977년 파나마에서 열린 WBA 주니어페더급 타이틀결정전에서 헥토르 카라스키야를 상대로 2회 4번 다운당한 뒤 3회에 KO승을 거뒀다. 4전5기 신화. 국민들은 홍수환의 투혼을 보며 힘겨운 삶을 포기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양정모(레슬링)1976년 8월 1일. 한국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이 나왔다. 주인공은 양정모였다.1976년 몬트리올올림픽 레슬링 자유형 62kg급에서 양정모는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광복 후 참가한 올림픽에서 첫 금메달이 등장하는 순간. 한국은 첫 금메달 소식에 열광했다. 당시 한국은 일요일. 신문이 발행되지 않는 휴일이어서 전국에 호외가 깔렸다. 양정모는 1974년 테헤란아시안게임과 1978년 방콕아시안게임까지 2회 연속으로 금메달을 차지하며 최고의 레슬링 영웅으로 군림했다. -조오련(수영)'아시아의 물개' 조오련은 한국 수영의 아버지다.1970년 방콕아시안게임 자유영 400m와 1500m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한국스포츠 역사상 최초의 아시안게임 2관왕이 탄생했다. 무명의 18세 고교생이었던 그는 자연스럽게 국민적 영웅으로 등극했다. 이어 1974년 테헤란아시안게임에서도 400m, 1500m 2관왕에 올랐다. 조오련은 한국신기록 33개, 대회신기록 17개를 갈아치웠다. 한국 수영은 그렇게 조오련으로부터 출발했다. -김진호(양궁)양궁 최강국 한국. 그 시작은 고교생 신궁 김진호였다. 1970년대 세계양궁은 김진호의 시대였다.그는 1979년 베를린 세계양궁선수권에서 5관왕을 차지하며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18세 고교생이었던 김진호를 위해 카퍼레이드 행사까지 열며 국민들은 뜨겁게 환영했다. 이어 김진호는 1983년 LA세계선수권에서 또 다시 5관왕에 올랐다. 여자 신궁 계보의 시조. 한국 양국의 위대함을 세계무대에 처음으로 이름을 알린 전설이다. -이에리사(탁구)한국 탁구의 어머니라 불리는 이에리사다.그는 1973년 유고슬라비아 사라예보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에서 단체전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 구기 종목 사상 처음으로 세계대회에서 우승을 일궈낸 것이다. 정현숙과 박미라 그리고 이에리사가 팀을 이뤘고, 19세 막내 이에리사가 에이스였다. 우승을 결정짓는 마지막 스매싱도 이에리사의 손에서 나왔다. 이 쾌거는 '사라예보의 기적'이라 불렸고, 한국에는 탁구 열풍이 불었다. 전국의 탁구장은 발디딜 틈이 없었다. -백옥자(육상)1970년대 '아시아의 마녀'라 불리며 아시아 육상을 지배한 선수가 있었다. 바로 백옥자다.그는 1970년 방콕아시안게임에서 포환던지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대회 신기록을 작성하며 한국 여자 선수 최초의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로 이름을 올렸다. 그의 행보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1974년 테헤란아시안게임에서 16m28cm, 아시아 신기록을 세우며 한국 육상 최초로 아시안게임 2연패를 달성했다. 육상 불모지 한국에서 등장한 영웅이었다. -김응용(야구)프로야구가 출범하기 전 한국야구 최고의 선수는 김응용이었다.1966년부터 1972년까지 한일은행 소속으로 한국 야구를 주도한 주인공이다. 김응용이 있기에 한일은행의 전성시대가 열렸다. 그는 홈런황 3회를 차지하는 등 실업야구 최고의 거포였다. 통산 타율 3할7리를 기록했다. 또 김응용은 국가대표 4번 타자였다. 1971년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에서 일본을 누르고 우승을 이끌었다. 아시아선수권 2번째 우승. 김응용 이름 앞에 '영원한 국가대표 4번 타자'라는 이름표가 붙은 이유다. -신동파(농구)1960년대와 70년대 한국 농구를 이끌었던 슈퍼스타 신동파다.그는 1967년 중소기업은행에 입단해 1974년 은퇴할 때까지 3만 득점 이상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에는 라이벌이 없었다. 그의 위상은 해외까지 퍼졌다. 1969년 방콕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 결승 필리핀과 경기에서 50점을 넣으며 한국의 우승을 이끌었다. 신동파의 활약에 반한 필리핀에 신동파 신도롬이 일어나기도 했다. 1970년 유고슬라비아 세계선수권에서 평균 30득점을 넘기며 득점왕에 올랐고, 1970년 방콕아시안게임에서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조혜정(배구)'작은 새'라 불린 한국 여자배구의 전설 조혜정이다.그는 165cm의 단신이었지만 엄청난 점프와 파워로 한국 배구의 간판 공격수로 이름을 날렸다.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에서 조혜정이 이끄는 배구대표팀은 3위 결정전에서 헝가리를 3-1로 꺾고 동메달을 차지했다. 한국 구기 종목 역사상 최초의 올림픽 메달이 탄생하는 명장면. 올림픽과 함께 조혜정은 1970년 방콕아시안게임과 1974년 테헤란아시안게임에서 연속으로 은메달을 목에 걸며 한국 여자배구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1979~1989 : 구기종목에서 등장한 불세출의 스타 그리고 1988년 서울올림픽>이 시대에는 유독 구기종목에서 불세출의 스타들이 등장했다. 축구와 야구 그리고 농구와 배구까지 역사상 최고의 선수들이 이름을 날렸다. 또 1988년 서울올림픽의 감동이 찾아왔다. -차범근(축구)1970년대와 80년대, 한국 축구에는 불멸의 슈퍼스타가 등장한다. 바로 차범근이다.차범근은 한국 선수 최초로 유럽 무대를 밟았다. 세계 최고의 프로축구리그로 꼽혔던 독일 분데스리가. 그는 다름슈타트를 시작으로 프랑크푸르트, 레버쿠젠 등에서 활약했다. 차붐은 UEFA(유럽축구연맹) 컵 우승을 2회를 이끌며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또 당시 분데스리가 외국인 최다골 신기록(98골)도 세웠다. 한국 대표팀에서도 136경기 출장, 58골로 최다출전, 최다골 기록을 가지고 있다. 한국의 영웅이자, 아시아 역대 최고의 선수로 꼽히고 있다. -선동렬(야구)야구에는 국보급 투수가 탄생했다. 한국야구는 선동렬 시대에 돌입했다.프로야구가 출범한 뒤 1985년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한 선동렬. 이후 프로야구는 해태 왕조가 지배했다. 그 중심에 '무등산 폭격기' 선동렬이 있었다. 3년 연속 투수 3관왕(다승·승률·평균자책점) 정규리그 MVP 3회·골든글러브 6회·7년 연속 평균자책점 1위 등을 기록하는 등 해태를 6번 우승으로 이끌었다. 통산 146승, 132세이브, 방어율 1.20이다. 프로야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라는 평가에 이견이 없다. -최동원(야구)선동렬이 등장하기 전 프로야구의 유일한 전설, 최동원이다.그는 1984년 다승왕·탈삼진왕·골든글러브에 이어 MVP까지 수상하며 프로야구를 평정했다. 그해 7전4선승제의 한국시리즈에서 삼성 라이온즈를 만나 홀로 4승을 따내며 롯데 자이언츠를 사상 첫 정상에 올려놨다. 강속구와 폭포수 커브를 장착한 무쇠팔 최동원이었다. 이후 1985년 20승·1986년 19승·1987년 14승까지 해마다 10승 이상을 기록하며 최고 투수로 명성을 이어갔다. 선동렬과 라이벌 구도는 프로야구 최대 빅이슈였다. -이충희(농구)신동파의 뒤를 이은 최고의 슈터, 이충희의 등장은 한국 농구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농구대잔치 출범 후 3시즌 동안 두 차례 팀 우승과 MVP를 동시에 석권했다. 현대전자의 상징. 한 경기 69점을 기록하며 팬들을 열광시켰고, 최초로 4000득점 돌파 그리고 5시즌 연속 득점왕 등 슛도사를 막을 자 없었다. 그의 영향력은 대표팀까지 번졌고, 1982년 뉴델리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또 1986년 스페인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에서 브라질을 상대로 홀로 45점을 성공시키며 세계적 주목을 받기도 했다. -강만수(배구)타고난 힘과 기술 그리고 센스까지, 모든 것을 다 갖춘 최고의 공격수. 강만수를 정의하는 말이다.1970년대와 80년대를 풍미한, 배구 역사상 최고의 레프트 공격수다. 1972년 17세의 나이로 국가대표에 발탁됐다. 한국은 강만수로 뜨거웠다. 한국 구기종목 사상 최연소 국가대표였기 때문이다. 이후 1978년 방콕아시안게임 우승과 1979년 멕시코유니버시아드 우승을 이끌며 '아시아의 거포'로 불렸다. 컴퓨터 세터 김호철과 최고의 호흡을 자랑하기도 했다. 1984년 LA올림픽에서는 5위를 기록했다. -현정화(탁구)한국에서 처음 개최된 올림픽. 1988년 서울올림픽 최고 스타는 현정화였다.한국 여자탁구의 상징.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단체전 금메달을 시작으로 1987년 뉴델리세계선수권 복식 금메달을 차지했다. 조국에서 열리는 올림픽 메달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기대는 현실이 됐다. 서울올림픽 복식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선수로 최초로 2010년 국제탁구협회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현정화라는 이름으로 한국 여자탁구의 황금기가 시작됐다. 그가 은퇴한 뒤 한국 여자탁구는 단 한 번도 세계 정상에 서지 못했다. -김수녕(양궁)한국 양궁 역사상 최고의 신궁, 단연 김수녕이다.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압도적 실력, 카리스마 그리고 냉정함까지, 김수녕 그 자체가 한국 양궁의 얼굴이었다. 1987년 16세의 나이로 국가대표에 발탁됐고,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개인전과 단체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최초의 올림픽 2관왕 탄생. 이어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단체전 금메달, 개인전 은메달을 품었다. 한국 최초의 올림픽 2회 연속 금메달의 주인공도 김수녕이다. 세계신기록을 무려 35회나 달성했고, 한국 역대 올림픽 메달 횟수(6개) 공동 1위다. -손미나(핸드볼)우생순의 시작은 1988년 서울올림픽이었다.1984년 LA올림픽에서 여자 핸드볼대표팀은 은메달을 차지했고, 4년 뒤 조국에서 드디어 정상에 올랐다. 소련과의 마지막 경기에서 21-19로 승리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구기 종목 역사상 첫 번째 금메달은 그렇게 나왔다. 금메달 멤버는 총 15명. 그중 골키퍼로 한국 골문을 든든히 지켰고, 서울올림픽 개회식에서 대표로 선서를 한 손미나가 국민들의 뇌리에 강하게 박혀있다. -이만기(씨름)예능에 나오는 친근한 옆집 아저씨가 아니다. 이만기는 한국 씨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였다.이만기는 1980년대 씨름 황금기를 이끈 스타였다. 1983년 첫 천하장사를 차지한 뒤 총 10회 정상에 올랐다. 역대 1위. 또 백두장사 19회, 한라장사 7회를 차지했다. 기술씨름을 도입한 최초의 선수로 기억되고 있다. 압도적 실력과 준수한 외모로 국민적인 인기를 누렸다. 이만기의 경기를 보기 위해 대통령이 경기 시간을 늦췄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이만기가 수놓은 씨름은 한국 최고 인기스포츠였다. -장재근(육상)한국 육상의 전설이 등장했다. 한국 육상 역대 최고의 스프린터, 장재근의 등장이다.그는 20세의 나이로 1982년 뉴델리아시안게임에 출전해 200m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아시안게임 최초 육상 트랙 금메달이었다. 육상 천재 장재근에 한국은 열광했다. 그는 이어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에서도 200m 금메달을 따내며 아시안게임 2연패에 성공한다. 1985년 자카르타아시아선수권에서 장재근은 20초41이라는 한국신기록을 작성했다. 이 기록은 이후 33년 동안 한국신기록으로 남아있었다. <1989~1999 : IMF로 실의에 빠진 국민들 희망을 안긴 영웅>1997년 한국에 불어닥친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실의와 고통에 빠진 국민들에게 용기를 안긴 스포츠 스타들이 있었다. 이들의 존재가 곧 희망이자 위로였다. -박찬호(야구)한국 최초의 메이저리거 박찬호. 그는 IMF 위기 당시 전성기를 구가하며 한국 국민들에게 희망을 안긴 영웅이었다.1994년 미국 메이저리그 LA다저스에 입단한 박찬호는 1997년 14승을 거두며 주목을 받았고, 1998년 15승을 수확하며 정상급 선수로 성장했다. 2000년 18승을 달성하며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 중 한 명으로 꼽혔다. 메이저리그 통산 124승. 아시아 최다승이다. 또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 금메달, 2006년 월드베이스볼 클래식 동메달 등을 이끌며 야구대표팀에서도 엄청난 존재감을 과시했다. -박세리(골프)IMF 위기의 시절 국민들을 위로했던 또 한 명의 슈퍼스타, 박세리다.미국 LPGA 개척자. 1998년 LPGA 무대에 뛰어들었고, 데뷔 4개월 만에 맥도널드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US오픈 최연소 우승을 차지하며 국민적 영웅으로 등극했다. 특히 US오픈 연장 18번 홀에서 양말을 벗고 맨발로 연못에 들어가 샷을 한 장면은 한국스포츠 역사상 최고의 명장면 중 하나로 꼽힌다. 위기의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박세리의 모습에 국민들은 힘을 얻었다. LPGA 25승으로 한국인 최다 우승자 역시 박세리다. -황영조(마라톤)'몬주익의 영웅'의 등장으로 한국 육상은 다시 한 번 세계적으로 위용을 떨쳤다.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황영조는 몬주익 언덕에서 모리시타 고이치를 따돌린 뒤 홀로 몬주익 스타디움에 들어섰다. 그리고 두 팔을 힘차게 들고 골인했다. 한국 정부 수립 이후 육상 첫 올림픽 금메달. 1936년 베를린올림픽 손기정의 금메달 이후 첫 번째 금메달이었다. 이후 황영조는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걸며 다시 한 번 포효했고, 1994년 미국 보스턴마라톤에서는 당시 한국 최고 기록인 2분8초09를 기록했다. -심권호(레슬링)심권호라는 이름은 세계 최고라는 의미다.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에서 48kg급 금메달을 목에 건 뒤 1995년 프라하세계선수권, 1996년 애틀란타올림픽까지 정상을 차지했다. 48kg급이 폐지되자 54kg급으로 체중을 늘려 다시 한 번 똑같은 코스를 밟았다. 1998년 예블레세계선수권·1998년 방콕아시안게임·2000년 시드니올림픽까지 금메달을 일궈냈다. 하계올림픽 최초 올림픽 2연패, 한국 올림픽 사상 첫 두 체급 석권 그리고 세계 레승링 최초 두 체급 그랜드슬램 달성. 기록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전기영(유도)한국 역사에서 가장 뛰어는 유도선수를 꼽으라면 단연 전기영이다.유도 천재, 업어치기의 달인으로 불린 그는 20세의 나이로 참가한 1993년 해밀턴세계선수권 78kg급에서 우승했다. 한국 역대 최연소로 세계선수권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1995년 지바세계선수권에서는 86kg급에 도전해 금메달을 차지, 두 체급을 석권했다. 1996년 애틀란타올림픽에서는 1회전을 제외하고 모두 한판승으로 이기며 정상에 섰다. 1997년 파리세계선수권에서도 1위에 오르며 세계선수권 3연패를 달성했다. -박주봉(배드민턴)배드민턴의 교과서 박주봉. 그는 한국을 넘어 세계 배드민턴의 전설이었다.1980년 17세의 나이에 대표팀에 발탁됐고, 1982년 덴마크오픈에서 이근구와 한 조로 역대 최연소로 국제대회 우승을 일궈냈다. 1985년 캘거리세계선수권 우승·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3관왕·1989년 자카르타세계선수권 금메달·1990년 베이징아시안게임 금메달·1991년 코펜하겐세계선수권 1위 등 승승장구했다.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차지했다. 1996년 '배드민턴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허버트 스칠 상을 수상했다. -전이경(쇼트트랙)'쇼트트랙 여제'라 불리는 유일한 선수, 전이경이다. 그보다 압도적인 선수는 없었다.1988년 12세의 나이로 역대 최연소 국가대표로 발탁된 그는 1994년 릴레함메르올림픽 1000m와 3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석권, 2관왕에 올랐다. 이어 1995년 요빅세계선수권을 시작으로 1996년 헤이그, 1997년 나가노까지 개인종합 3연패를 일궈냈다. 1998년 나가노올림픽에서도 1000m와 3000m 계주를 석권하며 한국 여자 최초로 올림픽 2회 연속 2관왕에 오르는 영광을 품었다. -허재(농구)농구대통령이 당선됐다. 농구 9단이라 불리며 한국 농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꼽히는 선수, 허재다.중앙대 1학년 시절 농구대잔치에 나서 평균 24득점을 올리며 신인왕을 수상했다. 이어 기아자동차에 입단하자 기아 왕조가 구축됐다. 기아의 에이스로 농구대잔치 5연패 등 7회 우승을 일궈냈다. 3번 MVP를 수상했고, 베스트 5에 6회 포함됐다. 압도적인 실력과 카리스마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스타. 국가대표팀에서도 에이스였다. 1990년 아르헨티나세계선수권 이집트전에서 62점을 넣으며 세계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홍명보(축구)한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 '영원한 리베로' 홍명보다.그는 1992년 포항제철 아톰즈에 입단해 K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신인 최초로 MVP를 수상하는 영광을 품었다. 이후 일본 J리그에서 진출하며 베스트 11에 선정되는 등 활약을 이어갔다. 한국 대표팀 전설이다.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을 시작으로 1994년 미국월드컵, 1998년 프랑스월드컵에 이어 2002년 한·일월드컵까지 아시아 최초로 4회 연속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았다. 홍명보는 A매치 136경기 출전으로 한국 최다 출장 기록을 가지고 있다. -강호동(씨름)이만기를 1인자에서 내려앉히고 새로운 1인자로 등극한 괴물, 강호동이다.이만기의 은퇴는 곧 강호동이라는 새로운 황제의 등극과 연결된다. 1989년 일양약품에 입단한 20세 강호동은 첫 백두장사 타이틀을 차지했다. 당시 4강에서 이만기와 첫 공식전에서 맞붙어 2-0으로 승리하며 파란을 일으켰다. 1990년 역대 최연소의 나이로 천하장사에 올라섰다. 이후 백두장사 7회, 천하장사 5회를 차지했다. 최단기간 천하장하 5회라는 신기록을 가지고 있다. 강호동이 은퇴하자 씨름의 황금기도 끝났다. <1999~2009 : 불모지에서 태어난 올림픽 스타 그리고 붉은물결 2002년>불모지 한국. 그동안 한국에서 약했던 종목에서 슈퍼스타들이 등장해 행복했던 시기다. 또 한국 스포츠 역사상 최고의 영광이었던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가 탄생했다. -박태환(수영)박태환의 등장. 한국스포츠는 새로운 역사를 맞이했다.수영 불모지에서 세계 1등이 탄생했다. 15세 나이로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 참가했던 그는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에서 3관왕을 차지했다. 2007년 멜버른세계선수권 남자 자유형 400m 금메달을 따더니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아시아 최초로 400m 정상에 섰다. 200m에서도 은메달.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3관왕, 2011년 상하이세계선수권 금메달 등 세계 정상급 기량을 이어갔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400m, 200m에서 은메달을 땄다. -장미란(역도)한국 역도 역사의 새로운 신화, 장미란이 썼다.2002년 국가대표에 발탁된 그는 2005년 카타르세계선수권부터 2006년 산토도밍고·2007년 치앙마이·2009년 고양까지 4연패를 일궈내며 세계 역도계에 독주체제를 구축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이 압권이었다. 여자 +75kg급 경기에서 인상 140 kg·용상 186 kg·합계 326kg을 기록, 세계신기록을 수립하며 우승했다. 이 과정에서 세계신기록을 두 번이나 경신했고, 2위와 격차가 무려 49kg이나 났다. 압도적인 우승, 압도적인 선수였다. -진종오(사격)한국은 세계최고의 권총 사수를 가지고 있는 나라다. 한국에는 진종오가 있다.2008년 베이징올림픽 50m 권총에서 금메달을 딴 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2연패를 달성하더니,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 세계 사격 역사상 최초로 3연패를 일궈냈다. 2010년 뮌헨·2014년 그라나다·2018년 창원 등 세계선수권에서도 연이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는 올림픽에서 금메달 4개, 은메달 2개로 김수녕과 함께 역대 한국인 올림픽 최다 메달 공동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유승민(탁구)한국 탁구의 마지막 자존심, 유승민이다.2000년 18세의 나이로 국가대표에 발탁된 유승민은 2004년 이집트오픈에서 우승하며 기대를 받았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남자탁구 단식에서 금메달을 차지하며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16년 만에 금메달이 나왔다. 이 금메달은 21세기 올림픽에서 유일한 비중국인 탁구 금메달이었다. 이후 2012년 런던올림픽 단체전 은메달, 2018년 베이징올림픽 단체전 동메달 등을 목에 걸며 한국 탁구의 간판 역할을 했다. 유승민 이후 한국은 단 한 번도 올림픽 정상에 서지 못했다. -이승엽(야구)국민타자. 이승엽이 아니면 붙을 수 없는 이름이다.한국을 넘어 아시아 최고의 홈런왕. 1999년 54홈런을 기록하며 한국 프로야구 최초로 50홈런을 돌파했다. 2003년에는 한국 역대 최다인 56홈런을 때렸다. KBO 통산 465개의 홈런으로 역대 1위에 오른 이도 이승엽이다. 타점(1495점) 득점(1351점) 등도 1위다. 홈런왕 5회·MVP 5회·타점왕 4회·골든글러브 10회 등 기록이 이승엽의 위대함을 말해주고 있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과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주역이기도 하다. -안현수(쇼트트랙)쇼트트랙 여제가 전이경이라면 황제는 안현수다.많은 선수들이 세계 정상에 선 경험이 있지만 안현수보다 압도적인 선수는 없었다. 쇼트트랙 역사상 가장 이상적인 선수. 16세에 국가대표에 발탁된 그는 2003년 바르샤바부터 2004년 예테보리·2005년 베이징·2006년 미니애폴리스·2007년 밀라노까지 세계 최초로 세계선수권 5연패를 달성했다. 2006년 토리노올림픽에서 1000m·1500m·5000m 계주까지 3관왕을 차지했다. 500m 동메달도 추가했다. 한국 올림픽 역사상 단일 대회 최다 메달 신기록이다. -김세진(배구)한국 배구에 등장한 처음이자 마지막 월드스타, 김세진이다.1995년 실업배구 삼성화재의 창단멤버로 합류해 삼성화재 왕조를 이끈 스타였다. 김세진이 활약하던 시기 배구는 폭발적 인기를 받았다. 김세진을 앞세운 삼성화재는 리그 9연패를 일궈냈다. 배구대표팀에서도 에이스였다. 2001년 창원아시아배구선수권과 2003년 톈진아시아배구선수권 우승을 이끌었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금메달도 목에 걸었다. 특히 1994년 월드리그에서 베스트 6에 오르며 월드스타라는 칭호를 얻었다. -서장훈(농구)한국 농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빅맨, 단연 서장훈이다.1994년 연세대를 대학 최초로 농구대잔치 우승을 이끌 때부터 그는 국보급 센터였다. 공격과 수비 외곽능력까지 갖춘 전천후 선수. 1998년 청주SK 입단 후 서울 삼성·전주 KCC·인천 전자랜드 등에서 활약했다. 1999년 리바운드 상 수상. 프로농구 사상 외국인 선수를 제치고 리바운드 왕을 차지한 최초의 선수가 됐다. 프로통산 1만3231득점·5235리바운드 기록, 역대 1위.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서 야오밍이 이끄는 중국을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최경주(골프)한국 남자 골프의 세계화를 이끈 선구자, 최경주다.1999년 한국 남자 선수 최초로 PGA투어 자격을 획득했다. 2001년부터 꾸준한 성적을 내기 시작했고, 2002년 5월 뉴올리언즈 콤팩 클래식에서 한국 첫 PGA 투어 우승을 차지했다. 이어 탬파베이 클래식에서 2승을 챙겼다. 이후 AT&T 내셔널 등 PGA에서 6회 우승을 더 차지하며 통산 8회 우승을 기록했다. 한국 남자 선수로는 최고의 기록이다. 잡초 골퍼라 불리며 열악한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로 한국 골프의 자존심을 높인 영웅이다. -박지성(축구)한국 스포츠 역사상 최고의 환희,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 그 중심에는 두개의 심장을 가진 박지성이 있었다.한국은 포르투갈·이탈리아·스페인 등을 꺾고 아시아 역대 최고의 성적인 4강에 진출했다. 거리는 붉은물결르 뒤덮혔고, 선수들은 국민영웅으로 등극했다. 그중 핵심은 박지성. 그는 2005년 잉글랜드 최고 명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 유니폼을 입었다. 한국 최초의 잉글랜드 진출. 이때부터 맨유는 국민클럽이 됐다. 박지성은 맨유에서 리그 우승 4회 등 총 13개의 우승트로피를 수집했다. <2009~2019 : 동계스포츠의 비상 그리고 100년에 한 번 나올까말까 하는 천재들>과거 한국의 동계스포츠는 쇼트트랙으로 모두 설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달랐다. 상상도 하지 못했던 다른 종목에서 세계 1등이 탄생했다. 프로스포츠에서는 100년에 한 번 나올까말까 하는 천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김연아(피겨)한국 동계스포츠의 역사는 김연아가 있을 때와 없을 때로 나눌 수 있다. 피겨스케이팅 불모지에서 세계 최고의 선수 김연아가 나온 건 기적이다.김연아는 한국을 넘어 세계 피겨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꼽힌다. 하이라이트는 2010년 밴쿠버올림픽. 김연아는 쇼트 78.50점, 프리 150.06점 총합 228.56점으로 압도적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또 올림픽·세계선수권·4대륙 선수권·그랑프리 파이널 등을 모두 제패하며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최초의 선수로 역사에 기록됐다. 11번 세계신기록을 경신하기도 했다. -이상화(스피드스케이팅)'빙속여제' 이상화를 빼놓고 한국 동계스포츠를 논할 수 없다.2010년 밴쿠버올림픽 여자 500m에서 76초09로 우승, 한국 여자 최초로 스피드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4년 소치올림픽에서 74초70, 올림픽 신기록으로 2연패에 성공한다. 2018년 평창올림픽에서 은메달을 기록하며 아시아 선수 최초로 3개 대회 연속 메달을 딴 선수로 남았다. 2013년 미국 솔트레이크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나온 36초36의 세계신기록은 지금까지 그 누구도 깨뜨리지 못하고 있다. -윤성빈(스켈레톤)한국을 넘어 아시아 최초로 올림픽 썰매 종목 금메달을 딴 주인공, 윤성빈이다.한국 스켈레톤의 간판인 그는 2018년 평창올림픽에서 압도적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평창올림픽 남자 스켈레톤 1∼4차 레이스에서 무려 3차례나 트랙 신기록을 갈아치우면서 1∼4차 합계 3분20초55로 정상을 차지했다. 한국과 아시아 동계스포츠의 새로운 역사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스켈레톤 불모지에서 혜성처럼 등장한 윤성빈. 그의 헬멧에 그려진 아이언맨처럼 그는 한국 스포츠의 영웅이었다. -양학선(체조)한국 체조의 새로운 역사, 도마의 신이 창조했다. 양학선이다.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금메달에 이어 2011년 도쿄세계선수권 우승으로 큰 기대를 받았던 양학선.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신의 경지를 보여준다. 지구에서 단 한 명만 할 수 있는 최고난위도 기술 '양학선'을 앞세워 도마 금메달을 차지했다. 16.533점. 압도적 우승이었다. 한국 체조 역사상 첫 번째 올림픽 금메달은 그렇게 탄생했다. 이후 2013년 앤트워프 세계선수권에서도 우승하며 세계 최고의 선수로 군림했다. -황경선(태권도)태권도 종주국 한국. 수많은 선수가 세계 정상에 섰다. 그중 가장 많은 최초의 수식어를 가지고 있는 이는 '태권여제' 황경선이다.18세 나이로 2004년 아테네올림픽 여자 67kg에 나서 동메달을 차지한 그는 2005년 마드리드세계선수권과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그리고 2007년 베이징세계선수권까지 재패한다. 남은 건 올림픽.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당당히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멈추지 않고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태권도 최초의 올림픽 2연패. 최초의 올림픽 3회 연속 진출을 일궈냈다. -박인비(골프)미국 LPGA에는 한국 여성 열풍이 불었다. 그 열풍 최선봉에 자리를 잡은 스타, 박인비다.골프 여제의 2008년 US오픈 우승. 박세리의 최연소 우승 기록을 깨면서 정상을 차지했다. US오픈 총 2회 우승 등 메이저대회에서 7회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 최고 기록이다. LPGA 통산 19승으로 박세리에 이은 2위다. 56주 연속 세계랭킹 1위를 유지했고, 4개 메이저대회 타이틀을 모두 거머쥐는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아시아 최초로 달성하기도 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금메달 역시 박인비 품에 안겼다. -정현(테니스)2018년 1월, 한국에 테니스 열풍이 불었다. 그 바람은 정현이 일으켰다.정현은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대회 4강에 진출하는 역사를 썼다. 2018년 호주오픈 1~3라운드에서 미샤 즈베레프·다닐 메드베데프·알렉산더 즈베레프를 연이어 꺾으며 기대를 받았다. 16강 상대는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인 노박 조코비치. 꿈같은 일이 벌어졌다. 정현이 조코비치를 꺾고 8강에 진출한 것. 한국에 정현 신드롬이 일어났다. 8강에서 테니스 샌드그렌마저 넘으며 4강에 올라섰다. 4강에서 로저 페더러를 만나 부상으로 기권했다. -김연경(배구)한국 여자배구에 이렇게 독보적인 선수는 없었다. 김연경이다.흥국생명에 입단한 2005년. 득점상·공격상·서브상·신인왕·정규리그 MVP·챔피언결정전 MVP까지 싹쓸이한다. 얼마나 압도적인 선수인 지 알 수 있는 기록. 이후 3년 연속 정규리그 MVP에 올랐다. 2009년 일본 JT마베라스 유니폼을 입은 뒤 2011년 터키 페네르바체로 이적했고, 세계 최고의 공격수로 거듭난다. 가는 팀마다 우승으로 이끌면서 가치는 올라갔다. 2012년 런던올림픽 4강,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 등 배구대표팀에서도 기둥이었다. -류현진(야구)21세기 한국야구 최고의 선수라 불리는 그의 이름은 류현진이다.2006년 한화 이글스에 입단하자마자 다승·탈삼진·평균자책점 1위로 신인왕과 MVP를 동시석권한 프로야구 최초의 선수가 됐다. 2013년 미국 메이저리그 LA다저스로 이적한 첫해 14승 올리며 기대를 충족시켰다. 이후 꾸준함을 보이다 2019년 평균자책점 전체 1위를 기록, 올스타전 선발로 나서는 등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 중 한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금메달 등 야구대표팀 역사와도 함께 했다. -손흥민(축구)지금 한국 축구는 '손흥민의 시대'다.2010년 독일 분데스리가 함부르크를 시작으로 레버쿠젠을 지나 2015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으로 이적했다. 세계 톱클래스 공격수로 거듭났다. 특히 2018~2019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8강 2경기에서 3골을 넣으며 우승후보 맨체스터 시티를 침몰시켰다.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손흥민을 앞세운 토트넘은 최초로 결승에 올랐다. 축구대표팀에서도 에이스다. 2018년 러시아월드컵 독일전 승리 주인공.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금메달도 품었다. 최용재·김지한 기자 2019.09.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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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재 in UAE]독일 잡은 팀이 어쩌다 이지경까지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고 아랍에미리트(UAE)로 입성했다. 2019 UAE 아시안컵이 열리는 UAE에서 한국 대표팀은 관심도 1위의 팀이었다. '우승후보' 중 하나로 평가받으며 아시안컵의 대세로 지목됐다. 수많은 외국 취재진들이 한국 대표팀 취재에 열을 올렸고, 한국 취재진들에게 질문도 많았다. 이런 관심을 받을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가 2가지 있다. 하나는 '아시아 넘버원' 손흥민(토트넘)이라는 존재감. 또 하나는 한국이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 '최강' 독일을 2-0으로 잡은 팀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이 독일을 꺾은 건 러시아월드컵 최대 이변으로 꼽혔다. 독일을 잡은 팀이었으니 아시아 팀들이 바라보는 시선은 달랐다. 선망의 눈빛이었다. 월드컵에서 다른 국가가 독일을 바라보는 것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시선은 조금씩 불신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약체' 필리핀, 키르기스스탄전에서 연이어 고전하며 가까스로 1-0 승리를 거뒀다.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팀은 대회 초반 부진하다는 정설을 믿었다. 최상의 조직력과 컨디션을 토너먼트에 맞춘다는 이야기도 들은 바 있다. 3차전 중국전에 조금 나아지는 가 싶었다. 그리고 이후 6일의 시간이 있어 기대감에 부풀었다. 체력도 회복하고, 조직력도 높아질 것이라 확신했다. 6일 뒤 16강 바레인전이 열렸고, 이번에도 졸전이었다.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2-1로 겨우 이겼다. 많이 쉬었으니 토너먼트에는 나아질 거란 확신은 무너졌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나아지겠지. 8강에서는 달라지겠지. 8강 카타르전. 이 기대감은 산산이 무너졌다. 대회 초반 부진하면 끝까지 부진하다는 것을 한국이 증명했다. 이토록 무기력한 대회는 없었다. 배신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굴욕적인 날이다. 선망의 눈빛은 동정의 눈빛으로 변했다. 모두가 부러워했던 한국이 이변의 희생양으로 전락해 위로를 받는 처지가 됐다. 카타르는 우승을 한 것처럼 환호하며 기쁨을 만끽했다. 독일을 잡았던 그 팀은 도대체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가 없다. 독일전은 2018년 6월 27일 열렸다. 고작 213일이 지났을 뿐이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어쩌다 이지경까지 왔을까. 독일을 잡고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우승으로 2002년 급 열기를 뽐냈던 한국 축구. 오래가지 못했다. 다시 고꾸라졌다. 아시아의 호랑이는 없다. 희망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독일 잡은 기세로 시작했지만 마지막은 독일과 비슷한 처지가 됐다. 한국에 패배하며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독일의 기분이 이랬을까. 아부다비(UAE)=최용재 기자 choi.yongjae@joins.com 2019.01.26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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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서 '실리 축구' VS 모리야스 '수비 축구'…미니 한·일전 빅뱅

24일 2019 UAE 아시안컵 8강에서 박항서 감독(왼쪽)의 베트남과 모리야스 감독의 일본이 만난다. 연합뉴스 제공'미니 한·일전'이 펼쳐진다. 베트남과 일본이 오는 24일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알막툼스타디움에서 2019 UAE아시안컵 8강을 치른다. 돌풍의 베트남과 우승 후보 일본의 격돌이다.이 경기가 '미니 한·일전'이라 불리는 이유는,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이 박항서 감독이기 때문이다. 박 감독은 이번 아시안컵에 출전한 24개국 중 유일한 '한국인' 지도자다. '박항서 열풍'은 베트남에서도 뜨겁지만 한국에서도 뜨겁다. 수많은 한국 축구팬들이 베트남의 '국민 영웅'으로 등극한 박 감독의 선전을 기원한다. 특히 박 감독의 8강 상대가 일본으로 결정되자, 한국 축구팬들은 한국 대표팀을 응원하듯 베트남의 승리에 큰 힘을 불어넣고 있다. 박 감독 뒤에는 한국 축구팬들이 있기에, 이 경기를 받아들이는 감정은 한·일전이다. 미니 한·일전의 키포인트는 박 감독의 '실리 축구'와 모리야스 하지메 일본 감독의 '수비 축구'의 맞대결이다. 베트남은 수비에 집중하다가 빠른 역습으로 득점을 노리는 실리 축구의 정석을 보여 준다. 축구에서 약팀이 강팀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리고 최근 세계 축구의 대세기도 하다. 2018 러시아월드컵 우승팀 프랑스도 실리 축구로 세계를 정복했다. 박 감독표 실리 축구가 베트남에 고스란히 녹아든 상태다.박 감독은 "일부에서 베트남 축구를 수비 축구라고 하는데 나는 수비 축구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철저하게 실리 축구를 한다.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이다. 수비 축구가 아니라 실리 축구다. 우리가 가장 잘하는 것이다"라며 실리 축구를 향한 자신감을 드러낸 바 있다.이 실리 축구가 일본을 상대한다. 객관적 전력에서 압도적 우위를 보이는 일본이다. 아시안컵 역대 최다(4회) 우승국 역시 일본이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에서도 일본(50위)은 베트남(100위)보다 한참 위에 있다. 과거를 보면 일본이 분명 우세하지만, 현재는 분위기가 다르다.일본은 이번 아시안컵에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우승 후보의 위용은 사라진 지 오래다. 조별리그 3경기도 신통치 않았고, 16강 사우디아라비아전에도 무기력한 모습이었다. 1-0으로 승리했지만, 사우디아라비아의 공세에 쉴 틈이 없을 정도였다.과거에 짧은 패스를 앞세워 유기적이고 매력적인 축구를 했던 일본의 컬러는 사라졌다. 지금은 오직 '수비 축구'로 일관한다. 사우디아라비아전에서 일본의 점유율은 23.7%에 불과했다. 한 골을 넣은 뒤 수비만 했다고 볼 수 있다. 일본 언론도 부정적이다. 일본 언론은 "일본은 공을 소유하지 못하고 공격의 실마리도 잡을 수 없었다. 시종일관 괴로운 전개였다"며 "23.7%라는 볼 점유율은 일본에는 이례적인 수치다. 패스에서도 3배 이상 차이가 났다"고 보도했다.이런 양상이 이번 8강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일본이 사우디아라비아라는 공격이 강한 팀을 상대했기에 점유율에서 밀렸다고 분석할 수도 있다.하지만 지난 2018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D조 3차전을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베트남과 일본이 격돌했던 당시, 베트남은 위협적인 '실리 축구'에 '점유율 축구'까지 더했다. 베트남은 전반 3분 빠른 역습을 통해 응우옌꽝하이(하노이)가 선제 결승골을 만들어 냈다. 이후에도 분위기는 베트남이 쥐었다. 결국 1-0 베트남의 승리. 베트남의 점유율은 무려 64%였다. 슈팅 수는 베트남이 13개, 일본은 7개였다. 상대가 일본이라는 점에서 놀라운 수치다.당시 일본 언론은 "한국인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은 일본에 철저하게 대비, 전방에서부터 압박 플레이를 펼쳤다. 점유율과 슈팅 수 모두 우리가 밀렸다"고 놀라움을 표현했다. 이 경기는 베트남 축구 역사상 일본에 처음 승리하는 역사적인 장면이었다. 물론 U-23 연령대가 출전하는 아시안게임과 A대표팀이 참가하는 아시안컵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큰 틀은 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공교롭게도 아시안게임에서 베트남에 무릎을 꿇었던 일본 감독이 현 일본 감독 모리야스기 때문이다.그는 박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에 무너진 경험이 있기에 두려움을 잘 알고 있다. 쉽게 '공격 앞으로'를 외칠 수 없는 상황이다.8강 진출이 확정된 뒤 모라야스 감독은 "박항서 감독은 U-23 대표팀과 성인 대표팀을 겸임하고 있고, 좋은 역량을 갖췄다. 경험도 풍부하다"며 "베트남은 공격에 좋은 선수들이 포진하고 있어 위협적이다. 우리는 수비에 신경 써야 한다"고 경계심을 드러냈다. 관건은 베트남의 실리 축구가 일본의 수비 축구를 어떻게 뚫을 수 있냐다. 일본은 특히 중앙 수비진이 두껍고 강하다. 베트남의 체력적 피로도 역시 고민이다. 베트남은 2018 아세안축구연맹(AFF) 스즈키컵 이후 3개월 동안 쉬지 않고 강행군을 해 왔다. 게다가 요르단과 16강전에서 연장전까지 120분간 혈투를 치른 상황이다.박 감독은 희망을 쐈다.일본과 사우디아라비아전을 직접 관전한 뒤 취재진과 만난 박 감독은 "일본은 역시 우승 후보다. 강팀이다. 유럽에서 뛰는 선수들이 많다. 정교하고 패스 응용력이 뛰어나다. 허점을 보이면 찬스를 놓치지 않는 팀"이라고 했다.그러면서 "전략을 생각해 볼 것이다. 비디오 분석을 하면서 코치들과 상의해 볼 것이다. 일본 중앙이 밀집돼 있다. 뚫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박 감독은 "한번 도전해 보겠다"며 결연한 의지를 드러냈다.체력적 문제도 큰 걱정이 없다.박 감독과 함께 경기를 관전한 이영진 베트남 코치는 "일본 선수들 컨디션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며 "우리 선수들의 체력을 크게 걱정했는데 다행스럽게도 문제는 없다. 요르단전에서도 마지막까지 잘 뛰었고, 지금 몸 상태도 좋다. 일본보다 하루 더 쉴 수도 있다"고 희망을 제시했다. 두바이(UAE)=최용재 기자 choi.yongjae@joins.com 2019.01.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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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투 스타일'은 강팀에 강하고 약팀에 약한 스타일

파울루 벤투 감독의 '스타일'이 고착화 되고 있다. 한국 축구대표팀은 12일 아랍에미리트(UAE) 알 아인의 하자 빈 자예드 스타디움에서 펼쳐진 2019 UAE 아시안컵 C조 2차전 키르기스스탄과 경기에서 김민재(전북 현대)의 선제 결승골로 1-0으로 가까스로 승리했다. 이번 승리로 16강 진출을 조기 확정지었지만 벤투호는 웃지 못했다. 기본적인 패스 조차 미스를 범하는 모습을 보이며 실망감을 안겼다. 패스 미스가 잦았고, 백패스를 남발했다. 조직력응 엉망이었다. 답답하고 투박한 공격전개는 매력이 없었고, 골대만 때릴 뿐이었다. 부정확한 크로스도 변함이 없었다. 수비는 흔들렸다. 쉽게 공간을 내주는 수비는 몇 차례 실점 위기를 맞이했다. 전체적으로 조직력은 엉망이었고 답답하고 무기력했다. 이번 경기력이 벤투호의 스타일을 확실히 말해주고 있다. '강팀에게 강하고 약팀에게 약한 스타일'이다. 2018 러시아월드컵이 끝난 뒤 한국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벤투 감독. 강호들을 상대로 선전하면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데뷔전에서 북중미 강호 코스타리카를 2-0으로 잡더니 남미의 강호 칠레에 밀리지 않으며 0-0 무승부를 기록했다. 이어 남미의 강자 우루과이를 상대로 한국 축구 역사상 처음으로 2-1 승리를 이끌었다. 러시아월드컵에 참가한 파나마와도 2-2로 비겼다. 또 손흥민(토트넘) 기성용(뉴캐슬) 등 주축들이 빠진 상황에서 아시아의 강호 호주와 1-1로 균형을 맞췄다. 아시아의 복병 우즈베키스탄을 4-0으로 대파하더니, 2019 아랍에미리트(UAE) 아시안컵 우승후보 중 하나로 평가 받는 사우디아라비아와 0-0으로 비겼다. 결과가 아닌 실험에 집중한 경기였다. 이때까지는 좋았다. 이때까지는 친선경기였다. 진짜 무대, 아시안컵 본선에 들어가니 벤투호는 급격한 내리막길을 걸었다. 약체들과 2연전에서 무기력함으로 일관했다. C조 1차전 필리핀, 그리고 2차전 키르기스스탄까지 한국보다 한수, 아니 두수 아래인 팀들을 상대로 말이다. 아시안컵이 있기 전까지 벤투호는 대부분 강호들과 싸우며 경쟁력을 높였다. 즉 강팀을 상대로 살아남는 법만 배운 것이다. 약팀을 다루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약팀과 경기를 할 기회가 없었다. 실제로 정우영(알 사드)은 필리핀전이 끝난 뒤 "이렇게 수비만 하는 팀과 실제로 해본 것이 오랜만이다. 그런 팀을 뚫기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강팀을 상대할 때나 약팀을 상대할 때나 똑같은 전술. 벤투 감독은 아시아 무대에서는 한국이 강팀이라는 점을 망각하는 듯한 느낌이다. 아시아 축구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진다고밖에 볼 수 없다. 키르기스스탄이라는 약체의 공격력이 무서워 상대 코너킥 상황에서 골키퍼를 제외한 한국 선수 10명이 전원 수비에 가담한 것 등은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다. 강팀이 약팀을 상대로 시도하는 이례적인 전술이라 볼 수 있다. 약팀이 강팀을 상대할 때 자주 등장하는 모습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 있다. 앞으로 한국이 만날 상대가 더욱 강해진다는 점이다. 다음 상대 중국은 C조에서 가장 강한 상대다. 토너먼트로 올라서면 더 강한 팀들이 온다. 다행이다. 알 아인(UAE)=최용재 기자 choi.yongjae@joins.com 2019.01.1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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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인터뷰]리피 감독 "강팀의 부진? 한국은 승리했다"

세계적 '명장' 중 하나로 꼽히는 마르첼로 리피 중국 대표팀 감독이 아시안컵에 데뷔했다. 그는 '우승 청부사'다. 이탈리아 세리에A '명가' 유벤투스 감독 시절 리그 5회 우승과 1995~1996시즌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거두는 등 리피 감독의 유벤투스는 유럽을 지배했다. 그리고 2006 독일월드컵에서는 이탈리아 대표팀을 이끌고 정상에 섰다. 리피 감독은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 우승컵과 월드컵 우승컵을 모두 품은 세계 최초의 감독이 됐다. 그의 도전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아시아 무대로 넘어왔다. 2013년 중국 슈퍼리그 광저우 에버그란데를 지휘하며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우승컵을 품었다. 전 세계에서 월드컵·UCL·ACL을 정복한 유일한 감독이다. 아시안컵은 벤투 감독의 또 다른 우승 도전이다. 지난 2016년 리피 감독은 중국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다. 2018 러시아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했지만 한국에 승리를 거두는 등 달라진 중국을 만들었다. 이번 아시안컵이 리피 감독의 마지막 도전 무대다. 그는 은퇴를 예고한 바 있다. 첫 경기는 역전 승리를 거뒀다. 중국은 2019 아랍에미리트(UAE) 아시안컵 C조 1차전 키르기스스탄과 경기에서 2-1로 승리해 승점 3점을 챙겼다. 11일 필리핀과 2차전을 치른다. 리피 감독은 2연승으로 16강 진출을 확정짓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10일 아부다비의 모하메드 빈 자예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필리핀전 공식 기자회견에 참석한 리피 감독은 "필리핀은 유럽 스타일이다. 독일이나 잉글랜드 출신이 많다. 체격이 좋고 조직적이다. 우리에게 쉽지 않은 상대”라면서도 “승점 3점을 따는 것이 중요하다. 16강행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중국은 평균 나이 29세로 이번 아시안컵 참가팀 중 가장 나이가 많다. 만 30세가 넘는 선수가 15명이나 된다. 39세의 베테랑 정즈(광저우 에버그란데)도 이번 아시안컵에 나서고 있다. 이는 리피 감독의 전략적 선택이다. 그는 "아시안컵에서는 경험이 많은 선수들을 기용할 것이다. 젊은 선수들은 이런 큰 무대에서 많은 역할을 하지 못할 수 있다. 내가 베테랑 선수들을 불러들인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젊은 선수들에게 대한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리피 감독은 "러시아월드컵이 끝난 뒤 평가전을 통해 젊은 선수들에게 많은 기회를 줬고, 그들은 실력으로 증명했다"며 "중국의 미래는 점점 밝아지고 있다. 20세 이하에도 좋은 선수들이 많다. 계속 좋은 선수들이 발견되고 있다"고 말했다. 리피 감독이 추구하는 핵심은 밸런스다. 그는 "축구는 잘 공격하고, 잘 막아야 한다. 2-1로 이길 수도 있고, 3-2로 이길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밸런스다. 집중력과 긴장감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리피 감독은 이번 아시안컵 초반 강호들의 부진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디펜딩 챔피언' 호주가 요르단에 무너졌고, 한국과 일본도 첫 경기에서 우승후보의 위용을 드러내지 못했다. 이중 한국은 중국의 다음 상대다. 리피 감독이 가장 주시해야 할 팀이다. 리피 감독은 "아시안컵 첫 라운드에서 놀라웠던 결과는 모든 조를 통틀어 호주의 패배뿐"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국은 필리핀을 상대로 1-0으로 이겼다"며 승리를 거둔 한국 대표팀에 큰 문제가 없다고 봤다. 또 "일본도 투르크메니스탄에 승리했다.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는 대승을 거뒀다"고 말했다. 강팀의 부진은 호주에게만 해당된다는 의미다. 중국도 고전했지만 1차전에서 승리했다. 리피 감독은 "우리도 좋은 경기력을 보이고 있다. 지금 당장은 조별리그 통과가 목표다. 한 단계 한 단계 밟아갈 것"이라고 자신했다. 아부다비(UAE)=최용재 기자 choi.yongjae@joins.com 2019.01.1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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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2팀]②프랑스, 20년 전 위대한 선배들은 이렇게 '추악'하지 않았다

프랑스가 월드컵 우승 앞에 섰다.프랑스는 2018 러시아월드컵 4강 벨기에와 경기에서 1-0으로 승리하며 결승에 올랐다. 결승 상대는 크로아티아다. 결승은 오는 16일 러시아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펼쳐진다.프랑스의 목표는 20년 전 1998 프랑스월드컵에서 정상을 차지한 위대한 선배들의 위상을 이어가겠다는 것이다.'아트사커'의 재현이다.1998년 선배들이 이끌던 프랑스는 말 그대로 '예술' 그 자체였다. 지네딘 지단이라는 세기의 스타를 필두로 주장 디디에 데샹·릴리앙 튀랑·마르셀 드사이·로랑 블랑·유리 조르카에프·티에리 앙리·다비드 트레제게·파크리크 비에라·파비앙 바르테즈 등 공격, 중원, 수비 그리고 골키퍼까지 황금멤버를 꾸렸다.이들은 '예술'이라 부를 수밖에 없는 아름다우면서 우아한 축구를 선사하면서 '아트사커'라는 별칭을 얻었다. 프랑스가 선보인 예술에 세계 축구팬들은 열광했고, 환호했다.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강렬한 축구였다. 이들은 한 시대를 풍미한 세계 최강의 팀으로 군림했다. 월드컵 역대 최강의 팀 중 하나로도 꼽힌다.프랑스는 C조 조별예선을 3전 전승으로 통과한 뒤 16강 파라과이, 8강 이탈리아, 4강 크로아티아를 차례로 격파하며 결승에 올랐다. 결승 상대는 호나우두가 이끄는 브라질. 프랑스는 보란 듯이 3-0 대승을 거두며 세계 축구의 중심에 들어섰다. 이후 아트사커는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 2000까지 재패하는 영광을 누렸다. 20년 뒤 월드컵에 나서는 프랑스는 어떤가.황금멤버를 꾸린 것은 20년 전과 비슷하다. 킬리안 음바페(파리 생제르맹) 올리비에 지루(첼시) 앙투안 그리즈만(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폴 포그바(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은골로 캉테(첼시) 사무엘 움티티(바르셀로나) 라파엘 바란(레알 마드리드) 위고 요리스(토트넘) 등 공격, 중원, 수비 그리고 골키퍼까지 모자람이 없다.하지만 이들이 '아트사커'를 구사하고 있는가.그렇지 않다. 20년 전처럼 세계 축구팬들이 프랑스 축구에 환호하지 않고 있다. 찬사도 없다. 오히려 반감이 크다. 현재 프랑스는 '공공의 적'이 된 느낌이다. '선'이 크로아티아고 '악'이 프랑스가 된 분위기다. 프랑스가 스스로 자초한 일이다. 경기력도 예술로 부르기에는 한참 모자랐다.더욱 큰 이유는 프랑스가 보여준 '추악함' 때문이다.C조 조별리그 3차전 덴마크와 경기에서 프랑스는 세계 축구팬들을 실망시켰다. 프랑스와 덴마크는 무승부만 거둬도 16강에 진출하는 상황. 두 팀은 보란 듯이 무승부 전략을 들고 나왔다. 의욕 없이 수비만 했고 경기는 0-0 무승부로 끝났다. 러시아월드컵 최초의 0-0 무승부 경기였다.경기장을 찾은 7만 관중은 야유를 보냈다. 일부 팬들은 "이런 경기를 보러 온 것이 아니다. 티켓 값을 환불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영국의 'BBC'가 "월드컵 역대 최악의 경기다. 두 팀은 월드컵 분위기를 망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질타할 정도였다.16강 진출을 위해 축구팬들을 기만한 프랑스는 스스로 가치를 떨어뜨렸다. 20년 전 3전 전승으로 시원하게 통과한 선배들과는 다른 모습이다. 16강에서 프랑스는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가 이끄는 아르헨티나를 4-3으로 무너뜨렸다. 프랑스는 찬사를 받았다. 특히 '신성' 음바페는 2골을 넣으며 영웅으로 등극했다. 프랑스는 우승후보의 위용을 드러냈고, 음바페는 메시를 이을 미래 스타로 주목을 받았다.하지만 프랑스와 음바페에 대한 찬사는 여기까지였다.8강 우루과이전에서 프랑스는 전반에 밀렸지만 결국 2-0으로 승리했다. 경기력적으로도 매력적이지 못했다. 그리고 이 경기에서 본격적으로 추악한 모습이 드러났다. 그 중심에는 음바페가 있었다. 음바페는 과도한 할리우드 액션으로 시간을 지연시켰다.음바페의 추태는 벨기에와 4강전에서 정점을 찍었다.경기 막판 음바페는 경기를 지연하기 위해 벨기에의 스로인으로 선언된 공을 끌고 드리블을 시도했다. 월드컵 4강전에서 나올 수 없는 추태였다. 음바페는 경고를 받았다. 그리고 세계 축구팬들의 비난을 한 몸에 받아야 했다. 결국 프랑스가 1-0으로 이겼고 결승에 진출했다.경기 후 벨기에 에당 아자르(첼시)는 "프랑스처럼 이기느니 벨기에처럼 지겠다"고 일갈했다. 또 많은 세계 축구인들의 프랑스의 추태를 비판하고 나섰다. 음바페 개인의 행위로 치부할 수 없다. 이를 방치한 프랑스 대표팀 전체가 동조한 것이다.이렇듯 지금까지 보여준 프랑스의 행보는 아름다운 '아크사커'와 거리가 멀다. 20년 전 위대한 선배들의 위상을 잇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먹칠하는 셈이다.이런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는 기회는 단 한 번 남았다. 크로아티아와 결승이다.20년 전 지단도 비매너 행위를 보인 바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조별리그 2차전에서 상대 선수를 발로 밟아 퇴장을 당했다. 지단은 2경기 출장 정지를 당했다.하지만 지단의 행동은 적어도 시간끌기는 아니었다. 상대 선수의 인종차별성 발언에 화를 참지 못해 저지른 일이다. 이로 인해 팀에 큰 피해를 줬다. 지단이 없는 프랑스는 파라과이와 16강전에서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힘겹게 1-0 승리를 거뒀다.이후 지단은 심기일전했고 결승에서 2골을 넣으며 프랑스의 우승을 이끌었다. 지단을 향한 비난은 찬사로 바뀌었다. 음바페에 필요한 마음가짐이다. 음바페로 인해 프랑스는 비난의 중심에 섰다. 결승에서 팀에 피해를 준 것을 만회하고, 실망시킨 세계 축구팬들에게 사죄하는 마음으로 최상의 경기력을 선보여야 한다.혹여나 결승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면 음바페 그리고 음바페의 추태를 막지 못한 프랑스는 우승하고도 비난 받는 초유의 월드컵 우승팀이 될 것이다.최용재 기자 choi.yongjae@joins.com 2018.07.1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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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네이마르가 WC 우승하면 발롱도르 수상할까?

네이마르(파리 생제르맹)가 발롱도르를 수상할 수 있을까?지난 10년 동안 세계 최고의 선수에게 주어지는 발롱도르는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레알 마드리드)의 양강체제였다. 두 선수는 나란히 5회씩 수상했다. 두 선수를 제외한 그 누구에게도 발롱도르를 허락되지 않았다.그런데 2018년 발롱도르 수상자에 새로운 이름이 새겨질 수 있다는 조심스러운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 주인공은 네이마르(파리 생제르맹)다.현 시점에서 네이마르가 발롱도르를 탈 가능성은 없다. 전제가 있다. '브라질이 러시아월드컵에서 우승한다면'이라는 전제다. 지금으로서는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3연패를 일궈낸 호날두가 유력하지만 네이마르가 월드컵 정상을 차지한다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다.세계 최고의 대회 월드컵의 무게감은 엄청나다. 월드컵 우승이 발롱도르에 미치는 영향력 역시 크다. 월드컵을 정상으로 이끈 팀 선수가 발롱도르로 가깝게 다가설 수 있는 이유다.브라질은 러시아월드컵 우승후보 0순위라고 평가 받고 있다. 최대 라이벌로 꼽혔던 독일이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브라질은 오는 7일 벨기에와 8강전을 치른다. 브라질 축구의 '전설' 호나우두 역시 네이마르의 발롱도르 수상 가능성을 제기했다.호나우두는 "지금은 메시와 호날두가 월드컵에서 조기에 탈락한상황이다. 네이마르에게 발롱도르 수상 미션이 주어진 것이다. 메시와 호날두가 탈락한 것은 네이마르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이어 그는 "메시와 호날두가 지배했던 발롱도르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올해는 월드컵이 열리는 해다. 월드컵의 힘은 강하다. 네이마르는 우승할 수 있는 기회 앞에 있다. 또 발롱도르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엄청난 기회를 잡았다"고 강조했다.하지만 부정적 시선도 있다. 또 한 명의 브라질 축구 '전설' 히바우두는 네이마르의 발롱도르 수상에 회의적이었다.히바우두는 "내 생각을 말하지만 네이마르는 절대 발롱도르를 수상할 수 없다"고 확신했다.이유는 네이마르의 소속팀이었다. 히바우두는 "네이마르가 발롱도르를 원한다면 빅클럽으로 이적해야 한다. 파리 생제르맹은 아니다. 이곳에서는 절대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최용재 기자 2018.07.06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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