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귀국하면 투옥된다” 벨라루스 육상선수, 日경찰에 보호 요청
동유럽의 벨라루스 육상대표팀 단거리 선수 크리스티나 티마노프스카야(24)가 벨라루스 당국으로부터 귀국 조치를 당한 뒤 “고국에 돌아가기 두렵다”며 일본 경찰에 신변 보호를 요청했다. CNN과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티마노프스카야는 1일(현지시간) 도쿄 하네다 공항에서 일본 당국에 정치적 망명을 신청했다. 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벨라루스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나를 도와달라”고 밝혔다. 앞서 티마노프스카야는 지난달 30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나의 동의 없이 대표팀이 1600m 계주 명단에 나를 올렸다”며 비판 영상을 게재했다. 티마노프스카야는 이전에는 계주 출전 경험이 없었다고 한다. 티마노프스카야의 공개적인 불만 표시는 곧 벨라루스올림픽위원회를 겨냥한 비판으로 해석됐고, 대표팀은 그에게 올림픽에서 빠지고 귀국하라고 명령했다. 티마노프스카야는 하네다 공항에서 벨라루스 매체 트리뷰나와 만나 “대표팀의 결정에 분노했고, 이는 무례한 일이었다”면서도 “나는 대표팀에서 빠지는 게 무서운 게 아니다. 고국으로 돌아가면 투옥될 것이 두려운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200m 경기에 참가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당했다”고도 했다. 티마노프스카야는 또 “대표팀 관계자들이 계속해서 ‘운동을 계속하고 싶으면 (비판)영상을 내려라’고 협박하는 전화를 했다”며 “(귀국 조치는) 체육연맹이나 관련 부처가 아닌 ‘상부에서’ 내린 결정”이라는 말도 들었다고 주장했다. 결국 티마노프스카야는 비판 영상을 내렸지만, 코치와 육상대표팀 감독이 1일 그의 방에 찾아왔다고 한다. 짐을 싸서 하네다 공항으로 당장 이동하라는 명령이었다. 공항에 도착한 그는 결국 일본 경찰에 신변 보호 요청을 했다. 티마노프스카야가 공포를 호소하는 데는 배경이 있다. 벨라루스 국가올림픽위원회(NOC)는 벨라루스의 장기 집권자인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현 대통령의 장남 빅토르 루카셴코가 위원장을 맡고 있다. NOC는 티마노프스카야의 중도 하차에 대해 “그의 정서적, 심리적 상태로 인해 올림픽 경기를 중단하기로 했다”며 “의료진 결정에 따른 것”이라고만 설명했다. 벨라루스에서는 지난해 8월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6선에 성공한 루카셴코 대통령이 공권력을 동원한 선거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대대적인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루카셴코는 27년 간 장기 집권을 해왔다. 이후 벨라루스 당국은 선거 부정 의혹을 제기하는 야당 정치인과 비평가는 물론 정부 비판적인 언론인, 운동선수 등을 광범위하게 탄압하고 있다. 티마노프스카야는 정권 비판을 한 건 아니지만, 스포츠 당국에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시한 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정부가 투자한 것에 비해 메달 실적이 저조하다”고 선수단을 공개 압박하는 등 집권 기간 스포츠를 정치적으로 이용해왔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벨라루스 외교관 출신으로 현재 유럽위원회에 소속돼 있는 파벨 슬런킨은 NYT에 “티마노프스카야의 비판은 대표팀의 관료주의에 초점을 맞춘 것이지 정치적인 것이 아니었다”며 “현 벨라루스 정권은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모든 사람을 박해한다”고 비판했다. 또 “루카셴코 대통령이 직접 티마노프스카야를 귀국 조치 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망명 중인 제1야당 지도자 스베틀라나 티하노프스카야도 트위터를 통해 “IOC가 티마노프스카야의 사건을 직접 맡아야 한다”며 “티마노프스카야는 국제적인 보호를 받으며 올림픽에 계속 참가할 권리가 있다”며 목소리를 냈다. IOC는 CNN에 “벨라루스 올림픽 당국(NOC)에 해명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NYT는 이번 사건으로 국제사회에서 루카셴코 정권의 고립을 자초하는 일화가 추가됐다고도 지적했다. 올해 5월 벨라루스 정부는 반체제 인사를 체포하기 위해 아일랜드 국적기 라이언에어를 민스크 국제공항에 강제로 착륙시키기도 했다. 벨라루스 영공을 통과하던 민항기를 전투기로 위협해 착륙시킨 것이어서 국제사회의 거센 비판을 샀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2021.08.02 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