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gma2024 ×
검색결과5건
연예일반

[왓IS] 신혜성, ‘살림남2’서 모자이크 처리…음주운전 탓 KBS 출연 정지

신화 신혜성이 음주운전으로 물의를 빚어 KBS로부터 출연 정지를 당한 가운데 방송에서도 모자이크처리됐다. 지난 26일 방송된 KBS2 예능프로그램 ‘살림하는 남자들2’(이하 ‘살림남2’)에 현진영이 박남정과 함께 스테이씨 컴백을 축하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현진영은 이날 “내 제자들이 많다”며 보아, 동방신기, 신화 등을 언급했다. 현진영은 SM엔터테인먼트 1호 가수로, 그가 언급한 가수들 또한 SM엔터테인먼트 소속이거나 출신이다. 이날 방송에서 현진영의 멘트와 함께 후배 가수들의 뮤직비디오가 자료화면으로 공개됐는데 신화의 영상에서 신혜성의 모습은 모자이크 처리됐다. 앞서 신혜성은 KBS로부터 출연 정지를 당했다. 지난 4월 KBS는 방송출연규제심사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음주운전 물의를 빚은 김새론과 신헤성에 대한 한시적 출연 제한 조치를 방송 출연 정지로 변경했다. 신혜성은 지난해 10월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아 경찰 조사를 받았다. 음주 측정을 거부해 현행범으로 체포됐는데, 재판부는 지난 4월 선고공판을 열고 신혜성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당시 신혜성은 강남구 논현동 음식점에서 술을 마신 뒤 다음날 새벽 남의 차를 몰고 귀가하다 송파구 탄천2교에서 잠들었다. ‘도로 한복판에 차량이 멈춰있다’는 신고에 출동한 경찰은 차에서 자고 있던 신혜성에게 음주 측정을 요구했으나 거부하자 현행범으로 체포했다.경찰 조사에서 신혜성은 약 10km를 만취 상태에서 운전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신혜성이 탄 차량 주인에게서 도난 신고가 접수되자 절도 혐의도 수사했으나 조사 결과 차량을 훔칠 의도까지는 없었다고 판단, 절도 대신 자동차 불법사용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송치했다. 신혜성의 음주운전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07년에도 술을 마시고 운전하다가 경찰에 적발된 바 있다. 그는 술에 취한 채 새벽 2시 40분쯤 강남구 압구정동에서 삼성동까지 운전했는데 당시 혈중 알코올 농도는 면허 정지에 해당하는 0.097%였다.유지희 기자 yjhh@edaily.co.kr 2023.08.27 16:39
연예

'비디오스타' 현진영 "이수만 때문에 방송 3사 출연정지"

'비디오스타’ 현진영이 거침없는 입담을 뽐낸다. 내달 1일 방송되는 MBC에브리원 ‘비디오스타’에서는 박남정, 현진영, 김완선, 홍영주가 출연해 레전드 춤꾼 특집 '제트 세대는 모르는 댄스 제로 세대'를 꾸민다. 이날 현진영은 SM엔터테인먼트 1호 소속 가수로 활동할 당시 프로듀서 이수만과의 일화를 공개했다. 과거 무대 의상으로 맨살에 조끼를 입었던 현진영은 음악방송 PD의 권유에 따라 조끼 지퍼를 올리고 리허설을 진행했는데 "누군가는 먼저 시작을 해야 유행을 만들 수 있는 건데, 지퍼를 올릴 거면 왜 조끼를 입냐?"는 이수만의 말을 오해해 지퍼를 완전히 내리고 생방송 무대에 올랐다고. 현진영은 "다음 날 신문으로 '3사 방송 금지' 사실을 접했다"며 추억을 회상했다. 현진영은 전성기 못지않은 여전한 인기를 자랑하기도 했다. 현진영은 팬들을 일컫는 ‘목화씨’들 가운데 "신화의 김동완과 래퍼 쌈디가 있다"며 "쌈디는 내가 가지고 있지도 않은 음반까지 소장하고 있다"고 말해 놀라움을 안겼다. 현진영은 김완선에게 배신을 사연도 폭로했다. 과거 김완선 측에서 작곡 의뢰를 받은 현진영은 바쁜 스케줄 와중에도 밤을 지새워가며 곡을 완성, 김완선의 은퇴 소식을 듣고 서운함과 억울한 마음에 눈물을 쏟았다고. 김완선을 위해 만든 곡은 이후 현진영 스타일로 편곡해 앨범에 수록됐다. 하지만 음원을 공개 후 노래를 들은 김완선은 “그때 은퇴하길 잘했다”고 팩폭을 날려 웃음을 유발했다는 후문이다. 조연경 기자 cho.yeongyeong@jtbc.co.kr 2021.05.31 11:38
연예

[리뷰IS] '사람' 현진영, 18년째 ♥ing…'나는야 아내바보'

가수 현진영이 아내에게 꽉 잡혀 사는 모습으로 웃음을 안겼다. 13년 연애 끝 결혼에 골인한 그는 '아내바보'였다. '어떻게 하면 아내가 웃을까'를 생각하는 모습으로 감동을 전해주는 남자였다. 17일 방송된 MBC '휴먼다큐-사람이 좋다'에는 현진영의 일상이 공개됐다. 현진영은 "한 달 용돈 40만 원이다. 그 이상은 안 준다"고 토로했다. 아내가 3만 원을 내걸고 춤을 부탁했다. 자존심을 내려놓은 현진영은 "노래 1절만 부를 거야"라고 말하곤 애교 넘치는 춤과 노래로 아내를 즐겁게 했다.아내와 만난 지 18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애정이 넘쳤다. "아내 옆에 있음으로써 비빌 구석이 있다는 안정감이 있다"고 고백했다. 28년 전 힙합 가수로 각광받던 그의 무대는 재즈바로 바뀌었다. 2006년 재즈 힙합 앨범을 낸 후 재즈에 집중하고 있다. 그의 아버지는 대한민국 최초의 재즈 밴드 트리플A의 멤버 고 허병찬이었다. 아버지는 1세대 재즈 피아니스트였다. 노래를 보다 진정성 있게 대하는 모습이 깊은 인상을 남겼다. 현진영은 절친한 형 박남정을 만났다. 두 사람은 찔질방으로 향했다. 한때 소녀 팬들을 울리고 웃겼던 20세기 오빠들의 만남이었다. 박남정은 "이상하게 예전에는 연말에 일이 많이 있었던 것 같은데 요즘은 별로 없다. 그냥 잔다. 뭔가 할 일을 많이 찾아보고 있는데 못 찾겠더라. 인기가 떨어져서 그렇다"고 말했다. 둘이 합쳐 99세인 찜질방 메이트. 현진영이 "무릎에 물이 차고 그러진 않느냐"고 묻자 박남정은 "그런 건 없다"면서 "원래 금년 말까지 춤을 추려고 했다. 근데 춤이 되어서 내년까지 추려고 한다"고 너스레를 떨어 웃음을 안겼다. 현진영과 아내는 경제적인 문제로 갈등을 겪었다. 평소 애정 넘치던 부부 사이가 냉랭해졌다. 현진영은 "작곡가들을 입봉시키고 작곡가를 프로듀서까지 만드는 그런 작업을 했었다. 회사를 차렸다. 매일 같이 회식했다. 몇십 명씩. 내 주머니돈에서 돈이 나갔다. 빚이 생겼다. 그렇게 작곡가 양성사업이 실패로 끝났다"고 말했다. 아내는 최악의 상황에서 그의 곁을 지켰다. 가압류 딱지를 다 버리고 2012년, 2013년 이렇게 두 개는 가지고 있다는 아내. "앞으로 이런 일은 없어야 하지 않나"라고 말했다. 현진영은 "아내가 내 악기만 나중에 사줬다. 압류가 붙은 상황에서 경매가 붙었을 때 돈을 구해서 악기만은 지켜줬다. 그래서 악기는 안 빼앗겼다. 나 자신이 너무 싫었다. 한심하다"고 털어놨다. 아내는 의류업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일을 쉬고 싶지만 생업이기에 쉴 수 없었다. 과거 연기자로 활동했던 그는 남편이 건강이 안 좋아지면서 한 가지는 포기해야 했다. 사람이 먼저라고 생각했고, 그 선택에 지금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13년 연애 끝 2013년 결혼에 골인한 두 사람. 현재 2세를 위해 인공수정을 시도하고 있었다. 혼자만 덩그러니 있는 남편의 씁쓸한 뒷모습에 결혼을 결심했다는 아내는 묵묵하게 그의 곁을 지켰다. 그런 아내 곁에서 현진영은 아내바보로 살아가고 있었다. 황소영 기자 hwang.soyoung@joins.com 2017.12.17 08:58
연예

'사람이좋다' 박남정, 현진영과 찜질방行 "인기 떨어져 일 없어"

가수 현진영이 박남정과 찜질방 데이트를 즐겼다. 17일 방송된 MBC '휴먼다큐-사람이 좋다'에는 현진영의 일상이 공개됐다. 현진영은 절친한 형 박남정을 만났다. 두 사람은 찔질방으로 향했다. 한 때 소녀 팬들을 울리고 웃겼던 20세기 오빠들의 만남이었다. 박남정은 "이상하게 예전에는 연말에 일이 많이 있었던 것 같은데 요즘은 별로 없다. 그냥 잔다. 뭔가 할일을 많이 찾아보고 있는데 못 찾겠더라. 인기가 떨어져서 그렇다"고 말했다. 둘이 합쳐 99세인 찜질방 메이트. 현진영이 "무릎에 물이 차고 그러진 않느냐"고 묻자 박남정은 "그런 건 없다"면서 "원래 금년 말까지 춤을 추려고 했다. 근데 춤이 되어서 내년까지 추려고 한다"고 너스레를 떨어 웃음을 안겼다. 황소영 기자 hwang.soyoung@joins.com 2017.12.17 08:29
연예

[취중토크②] 이상민 "한꺼번에 다섯개의 사업 시작…빚의 시초죠"

'힘들 때 우는 건 삼류다. 힘들 때 참는 건 이류다. 힘들 때 웃는 건 일류다. 그래서 나는 웃는다.'산전수전 다 겪은 탓일까. 모든 질문에 솔직하지만 진지했다. Mnet '음악의 신2'에서 봤던 모습과 180도 달랐다. TV밖 이상민에게서 예능감은 없었다. 이상민(43)은 1990년대 가요계를 군림했던 최고의 그룹 룰라의 리더였다. 1994년 '100일째 만남'으로 가요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1995년 발매한 '날개 잃은 천사'는 167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하며 승승장구했다. 당시 헬기를 타고 행사장을 다닐 정도였다.앞만 보고 달려가던 중 1995년 12월 굴곡진 인생의 서막이 열렸다. 3집 '천상유애'가 표절 논란에 휘말리며 하락세를 걸었다. 프로듀서로 전향 후 인생 그래프가 상향 곡선을 그리는가 싶더니 오래가지 않았다. 이혼과 사기 혐의, 불법 도박사이트 운영 혐의 등 불행이 그를 집어 삼켰다. 69억원(이자 포함)이라는 어마어마한 빚까지 짊어졌다. 지상파 출연 금지를 당하며 일자리까지 잃었다. 하지만 이상민은 파산 절차를 밟지 않았고, 포기하지 않았다. 그것이 채권자에 대한 예의라고 말했다.이상민은 Mnet '음악의 신 시즌1(이하 '음신1')'에서 복귀 신호탄을 쐈다. 이어 tvN '더 지니어스' JTBC '아는 형님' '음악의 신 시즌2(이하 '음신2')'로 대중들에게 이상민이 살아있음을 알렸고, 지상파에도 복귀해 마치 한을 풀듯 입담을 선보였다.이상민은 셀프 디스도 마다치 않았고, 그것을 웃음으로 녹여냈다. 시청자들은 좌절에 꺾이지 않고 일어선 그를 '성실함'의 대명사, '멘탈의 승리' '희망의 아이콘'으로 불렀다. 이에 그는 "대리운전이나 발렛 해주는 분이 저보면서 용기를 얻는다는 말을 들으면 정말 감사해요"라고 얘기했다. 이때 마침 문자가 왔다며 보기 무섭다고 말한 뒤 특유의 웃음을 지었다. '효효효효효'- 가수 꿈은 언제부터 가졌나요."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가수의 꿈을 키웠어요. 룰라의 채리나가 동네 후배인데 동네에서 워낙 유명했어요. 춤추고 옷 잘 입기로 소문났죠. 춤과 음악을 좋아하는데 가수의 꿈을 안 가질 수 없잖아요. 소방차, 박남정에 이어 현진영이 나오면서 본격적인 댄스 가수의 전성시대가 열렸어요. 힙합 장르가 생기고 서태지, 듀스가 나오면서 나이트에서 춤추기 좋아하는 사람이 가수로 데뷔를 했죠."- 그렇게 룰라까지 이어졌나요."종착역이 룰라였죠. 그 전에 데모 테이프 들고 많은 분들을 찾아갔죠. 당시에 김동률·신해철·전람회 등 소속돼 있는 대형 기획사에 들어갔어요. 댄스 가수를 하고 싶다고 욕심을 내다가 결국 다른 회사로 옮겼어요. 나미 매니저가 룰라를 만들었어요."- 룰라 전성기 시절이 궁금해요."룰라가 꼭 왔으면 했던 대기업이 있었어요. 근데 이미 정해진 스케줄이 있어서 안 된다고 말했죠. 그랬더니 취소 위약금 물어주고, 헬기까지 대절 해줬어요. 그 금액을 다 합했더니 1억 원 정도더라고요." - 이후 좋지 않은 일들이 있었죠."그때 처음으로 PC통신이 활발해졌어요. '천상유애'와 같은 일본 곡이 PC통신을 통해 번져나갔어요. 표절에 대한 시비가 붙게 됐고, 심각하게 대두가 됐어요. 활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죠."- 표절이 맞나요."표절 맞아요. 그때 가수는 제작자가 시키는 대로 했어요. 지금처럼 가수가 음악적으로 개입하던 시기가 아니었거든요. 표절을 알고 나서는 정말 힘들었죠. 피해자라고 생각은 안 해요. 음악인으로서 알아차렸어야 했어요."- 많은 분들이 '천상유애'를 이상민이 작곡한 걸로 알던데."'음신2'전까지는 사람들이 제가 '천상유애'를 작곡한 줄 알았어요. 작곡은 4집 때 이현도 형과 작업하면서 미디 음악의 매력에 빠지면서 시작했어요. 5집 때부터 음악을 만들었죠."- 그 이후 프로듀서로 변신했어요."책임감이 강한 편이고, 성격이 보수적이에요. 룰라 남자 멤버들이 숨을 못 쉬었을 정도였어요. 술도 못 먹게 하고 밖에도 못 나가게 했어요. 여자 멤버들도 틀 안에서만 살게끔 했어요. 책임감에 익숙하니까 가수보다는 프로듀서로서의 매력에 조금씩 빠지게 된 것 같아요. 이런 식이라면 리더에서 제작자로 충분히 발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죠."- 프로듀서로서 자신감이 있었나요."프로듀서를 많이 배출하면 좋은 팀을 많이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서 프로듀서를 더 역량을 키웠어요. 당시 전속 작곡가 6명이 있었고, 작업실과 녹음실을 호환하게 만들었고, 음악적인 의견을 조율하고 교환하는 시스템을 만들었죠." - 사업도 시작했어요."1999년까지 음반이 시장이 호황을 누리다가 2000년에 접어드니 음악을 공유해 듣는 시대가 오더라고요. 음반 판매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제작자로서 콘텐츠를 다각화해야겠다는 생각에 사업을 넓혔죠. 레스토랑도 열었어요. 그 당시 나름 최초였죠. 한꺼번에 다섯 개의 사업을 시작했죠."- 욕심을 부렸네요."다 나같이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죠. 전 2시간만 자고 일 하지만, 직원들은 정해진 시간만 일했으니까요. 시간과의 싸움이고 버텨야했는데 처음부터 욕심을 부렸죠."- 빚이 많이 생겼죠."운칠기삼이라는 게 맞는 이야기인 것 같아요. 다섯 개 사업이 다 괜찮은 건 아니었지만 버틸만은 했어요. 문제는 이종격투기 레스토랑인 '김미 파이브'를 동업으로 시작했는데, 동업 형태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대표이사를 사임하고, 지분까지 포기했어요. 그리고 다른 곳에서 새롭게 2호점을 시작했어요. 근데 1호점에서 사고가 난거죠. 그 사고의 소식을 들었을 때 저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있었어요. '김미 파이브'를 확장하기 위해서 1500평정도 되는 곳에 한국인 최초로 레스토랑을 만들 생각이었죠.."- 어떤 사고였나요."미국에서 계약 직전까지 갔는데, 한국의 '김미 파이브'에서 격투기 선수가 사망한걸 아냐고 묻더라고요. 저와 상관없는 회사였지만, 그 사건으로 인해서 모든 게 다 취소가 됐죠. 당시 대기업에서 무려 120억 해당하는 3개 층을 무상으로 주기로 했어요. 인테리어 50억 원도 대여를 해주겠다고 할 정도였죠. 이런 사건이 없었다면 저는 승승장구 할 수 있었어요."- 불법 도박사이트를 운영했다는 말도 있었죠."당시 매형이 불법인지 모르고 운영했던 사이트였어요. 제가 힘들 때 매형이 돈을 보냈줬어요. 1심에서는 무죄를 받았는데, 2심에서 '매형 처남 지간에 2억 1000만원을 줄 수 없다. 배당금을 받았다'며 혐의가 연루 됐어요. 이런 와중에 매형이 2심 재판 중에 암으로 돌아가셨어요."- 악순환의 연속이었네요."인생의 흐름 속에 운 때가 있는 것 같아요. SNS에 '1994 2003 2004 2013 영원히'라는 글을 올린 적이 있어요. 1994년부터 2003년까지 10년간 하락이 없는 운이었어요. 그 이후 10년간 끝없이 바닥을 치더라고요. 더 이상 저에게 희망이 없다할 정도로 바닥인가 했는데 더 바닥이 있더라고요. 누가 뭐를 기획을 하든 그들이 생각한 거보다 항상 기발하고 더 좋은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재기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버텼어요." ※인터뷰③로 이어집니다.이미현·황미현 기자 [취중토크 관련기사][취중토크①] 이상민 "탁재훈과 인생의 호흡…안부도 안 물어요" [취중토크②] 이상민 "한꺼번에 다섯개의 사업 시작…빚의 시초죠" [취중토크③] 이상민 "'멘탈의 승리'? 채권자 문자 오면 흔들" 2016.09.02 10:01
브랜드미디어
모아보기
이코노미스트
이데일리
마켓in
팜이데일리
행사&비즈니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