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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IS] "피해자 송곳 증언" 이윤택, 미투 첫 법의심판 받을까(종합)
지우고 싶어도 지울 수 없고,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시간이었다. 악몽 같았던 과거를 어렵게 되새기는 증인의 목소리는 담담하면서도 호소력이 짙었고, 또 강단이 있었다. 당사자 앞에서 쏟아 내야만 하는 아픔은 감히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큰 용기가 필요했다.20일 오전 10시 서울중앙지방법원(형사30부) 서관에서는 연극단 단원들에게 유사 강간 등 상습 강제 성폭행 혐의를 받고 있는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 감독의 첫 번째 정식재판이 열렸다. 고(故) 조민기와 함께 문화계 미투(Me Too) 운동의 시발점이 된 이 감독은 표정 변화 없이 법정에 등장, 모든 것을 변호인들에게 맡긴 채 특별한 발언 없이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이 감독은 연희단거리패 예술 감독을 맡았던 1999년부터 2016년 6월까지 소속 극단 여성 단원을 상습적으로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지난 4월에 기소됐다. 이 같은 만행은 단원들의 미투 운동 폭로로 알려졌고, 검찰은 공소시효가 지나지 않은 8명을 23차례에 걸쳐 강제로 추행한 혐의를 적용해 지난달 13일에 이 감독을 재판에 넘겼다.당초 첫 공판에는 8명 중 증인 2명이 참석할 예정이었지만, 이날 오전 공판에는 1명만 참석해 검찰 측과 이 감독 변호인의 신문을 받았다. 증인신문은 비공개로 진행됐고, 이에 따라 공판 시작 5분 만에 법정 문은 다시 굳게 잠겼다. 낮 12시까지 꼬박 2시간 동안 이어진 신문은 2시간 휴정 이후 오후 2시에 개정됐다.첫 공판에 첫 증인이 자리한 만큼 신문은 세밀하게 이뤄졌다. 비공개로 진행됐기 때문에 상세한 증언 내용이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문밖으로 새어 나오는 목소리만 들어도 긴장감은 팽팽했다. 각자가 주장하는 바가 다르듯 이윤택 측 변호인과 증인의 언성이 높아진 순간도 여러 번 있었다. 이 감독을 마주한 채 자신이 겪은 일을 털어놓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을 터. 하지만 증인은 피해 사실을 고백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이 감독은 연희단거리패 창단자자 실질적인 운영자로, 작품 제작 및 배우 선정 등 극단 운영에 절대적 권한을 가진 인물이었다. 연극계 거물로 연극계 전체를 제 손아귀에서 주물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영화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김기덕 감독 못지않은 악질로 대중의 비난을 한 몸에 받았고, 이제 법의 심판을 받을 차례다.이 감독의 변호인은 지난달 9일에 열린 첫 공판준비기일에서 "그간 행위가 정당하거나 잘못된 것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모든 것은 연극을 향한 열정, 발성을 위한 독특한 연기지도 방법이었다"며 스킨십 등 유사 강간 혐의에 대해서도 일절 부인했다. 이 같은 주장은 공판 내내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실제 이윤택 측 변호인은 오후 개정을 앞두고 "오늘 공판은 혐의 부인·시인이 아닌,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고, 그 일을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것을 명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쟁점이다"며 "증인신문 등을 통해 전반적인 상황을 따져보면서 피고의 행동과 행위가 왜 필요했는지 설명하고 '정당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이제 막 시작된 재판인 만큼 앞으로 얼마나 많은 증인들이 신문을 받고 언제쯤 판결이 내려질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다만 '이윤택 사건'을 끝까지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미투 운동 고발 대상자로 첫 사법 판단을 받게 되는 사례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문화계 인물들이 미투 운동 대상자로 고발됐지만 '사과 후 잠적'이 일반적인 수순이었다. 법적으로 피해 사실을 인정받은 경우는 없다. 불타올랐던 미투 운동이 다소 흐지부지된 이유기도 하다.이윤택 사건과 훗날에 나올 재판 결과과 미투 운동과 업계에 '관례'라는 명목으로 만연했던 행위들에 경종을 울릴 좋은 예가 될지, 길고 긴 싸움은 이제 진짜 시작됐다.조연경 기자사진= 박세완 기자
2018.06.21 08:00